듣고 격노하게 하던 자가 누구냐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아니냐
모세하면 위대한 지도자란 말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그런 제목의 설교도 많이 있습니다.
모세를 위대한 지도자라고 부르는 이유는 아마도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내용 때문일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24-29절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그들을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를 위대한 지도자라고 말하지 않고 믿음의 사람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위대한 지도자가 아니었습니다.
모세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는 한 번도 이스라엘 백성을 지도한 적이 없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있던 중재자였습니다.
모세를 지도자라고 부른다면 그는 실패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니까 모세는 지도자가 아니었습니다.
모세는 선지자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해준 선지자였습니다.
모세, 위대한 지도자란 말이 성립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모세를 굳이 지도자로 본다면 그는 실패한 지도자였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시킨 것 아닙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순종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탈출할 수밖에끔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다 죽었습니다.
그리고 모세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러니 모세는 실패한 지도자입니다.
듣고 격노하게 하던 자가 누구입니까?
바로 모세를 따라 광야로 나온 사람들입니다.
사람은 참 변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모세를 따라 광야로 나온 사람들이 변했나요?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변화시키시는 데 얼마나 걸리셨습니까?
40년이 걸렸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만 바라보는 모세를 만드시는 데 40년이 걸리셨습니다.
그런데 모세를 따라 광야로 나온 사람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옛생활에 젖어 있었습니다.
성인이 되면 사람들은 변하지 않습니다.
나이가 많이 먹을수록 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합니다.
사람들을 변화시키리면 새로운 환경으로 데려가야 합니다.
그런데 나이가 먹은 사람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보다는 옛생활과 비교하면서 불평하고 불만을 말합니다.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그래서 예수님은 새술은 새부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를 따라 광야로 나온 사람들은 몸만 나왔습니다.
마음은 애굽에 있었습니다.
이 말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나온 것이 아니란 뜻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나온 것입니다.
마지 못해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모르셨을까요?
그러면 하나님은 전지하지 않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자녀들이 필요했습니다.
이들의 자녀들은 애굽의 때가 덜 묻었습니다.
아직은 백지와 같은 아이들이었습니다.
애굽의 문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수를 놓으시길 원하셨습니다.
오늘 교회 안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나오긴 나왔지만 몸만 나온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부귀공명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앙을 자기의 욕망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만듭니다.
욕망덩어리들이 모여든다
현세의 복도 포기하지 않는다
줄기차게 기도의 향연으로
현세의 복을 기원한다
영생의 복도 누리려 한다
현세의 복과 영생의 복을
두 손에 꼭 붙잡고자
온갖 몸부림을 다한다
다 갖고 싶고 다 누리려 한다
거기가 천국이라고 말한다
욕망을 포기하지 말라고 한다
그들의 주인이 그 욕망을 채워줄 것이라고
강단에 선 자들이 말한다
허깨비 주인을 섬긴다
욕망덩어리들은 참 주인으로부터
점점 멀어져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