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개정 개역 번역은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다른 번역으로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영역과 대조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시는 하나님이 많은 사람을 영광으로 인도하시려고 구원의 창시자이신 예수님을 고난을 통해 완전하게 하신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보존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많은 자녀를 영광에 이끌어들이실 때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으로써 완전하게 하신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새번역)
하느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만물은 그분을 위해서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당신의 많은 자녀들이 영광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로 하여금 고난을 겪게 해서 완전하게 하신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공동번역)
In bringing many sons to glory, it was fitting that God, for whom and through whom everything exists, should make the author of their salvation perfect through suffering.(NIV)
For it became him, for whom are all things, and by whom are all things, in bringing many sons unto glory, to make the captain of their salvation perfect through sufferings.(KJV)
우리 말 성경들은 NIV가 author로 번역한 것을 창시자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author는 우리 말로 주로 작가로 번역합니다.
작가는 새로운 것을 상상하여 창조해내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창시자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를 완전하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이 구원의 창시자를 완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구원의 창시자를 완전하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이 고난을 통해 구원의 창시자를 완전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구원의 창시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난을 받으셔야만 했습니다.
그래야만 예수님은 구원의 창시자로 완전하게 되시는 것입니다.
구원의 창시자인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모든 만물이 그를 통해 존재하게 된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만물의 창조주이십니다.
그래서 KJV는 만물이 그를 위해 있고, 그에 의해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창조주이시기도 하고 구속주이시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구속주가 되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십자가의 고난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구원의 창시자로 완성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고난 당하심으로 인해서 많은 아들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들을 수식하는 단어가 모든이 아니라 많은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을 받는 것 아닙니다.
만물을 말할 때는 all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들들 앞에는 many입니다.
왜 모든 아들이 아니라 many이라고 했습니까?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아들들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백성으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과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통해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은 산모의 출산의 고통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모두가 다 영광의 자리에 참여하는 것 아닙니다.
모두가 다 영광의 자리에 참여하게 된다면, 그것은 자동구원과 같습니다.
자동으로 구원받는다면, 구원은 감사할 일도 아닙니다.
자동으로 구원받는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세상에 살 이유가 없습니다.
아무렇게나 살아도 됩니다.
성경은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고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입으로 말하는 것은 사람이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사람의 겉입니다.
마음은 사람이 볼 수 없는 부분입니다.
사람의 속입니다.
겉과 속이 같아야 합니다.
겉과 속이 같은지는 나만 압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릅니다.
그리고 겉과 속이 같은지를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내가 진짠지 가짠지 나와 하나님이 압니다.
진짜는 닮아갑니다.
진짜는 변해갑니다.
진짜라면 예수님처럼 변해갑니다.
진짜라면 예수님을 닮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