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민족이 정착하기 전의 원주민들을 가나안족이라 불렀다.
가나안과 가나안족이라는 이름은 성서를 비롯해 설형문자로 된 BC 15세기경의 이집트·페니키아 문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가나안'은 때로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전체를 포함하는 지역을 가리키거나 요르단 강 서편 땅 전체, 또는 아크레(⁽Akko) 북쪽으로부터 해안을 따라 있는 좁고 긴 땅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BC 2000년대 후반이 시작될 무렵, 또는 그 이전에 팔레스타인, 즉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차지했는데, 성서에서는 가나안을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약속의 땅'과 동일시하여 이 점령을 정당화한다.
가나안이라는 말의 어원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으나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진한 자줏빛 염료를 말하는 '붉은 자줏빛'을 의미하거나 또는 그 색으로 염색된 모직을 뜻하는 고대 셈어에서 유래한 듯하다.
〈구약성서〉의 〈창세기〉에서는 가나안 족속이 노아의 손자이자 함의 아들인 가나안의 후손으로 설명되어 있다.
가나안 해안지방의 문명은 구석기시대와 중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마을이나 부락을 이루어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신석기시대(BC 7000경~4000경)에 이르러서부터였다. 그다음의 동석기시대(BC 4000경~3000경)에 이 지역의 특징은 도자기와 청동을 사용했고, 진흙으로 담을 쌓았으며 다듬지 않은 돌로 집을 지었다는 데 있다.
초기 청동기시대(BC 3000경~2000경)에 금속이 도입되자 문화적인 혁명이 일어났고, 그결과 채색된 도자기는 쇠퇴하고 조각과 야금술이 발달했다.
이 시기에 셈족이 처음 나타났으며, 중기 청동기시대(BC 2000경~1550경)에 이르러 역사가 문자로 기록되기 시작했다. 북동쪽에서 가나안으로 침투한 셈족 계통의 아모리족은 이 지역 인구의 대부분을 이루었다. 그밖에 이집트인과 힉소스족, 그리고 팔레스타인 북쪽에서 이주해온 듯한 일단의 아시아인들이 침입해왔다. 후르리족(〈구약성서〉에서는 호리족)도 북쪽에서 가나안에 들어왔다.
후기 청동기시대(BC 1550경~1200경)에는 아나톨리아의 히타이트족이 도전해오기도 했지만 주로 이집트가 통치했다.
그 시대는 하피루 또는 아피루라는 약탈자들의 침략이 두드러졌다. 많은 학자들이 다양한 인종들로 이루어진 이들을 본래의 히브리인들로 생각하고 있다. 후대의 이스라엘은 이 하피루 가운데 한 분파이거나 이들의 연합체였다. 그러나 BC 13세기말에 가나안 남쪽지역에 대한 이집트의 지배는 약화되었고 히타이트족은 북쪽에서 침입한 적의 공격 때문에 멸망하고 말았다.
BC 1250년경으로 여겨지는 후기 청동기시대에서 초기 철기시대로 바뀌는 무렵,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의 고지대와 남쪽지방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그다음 세기에 가나안은 크레타에서 온 듯한 필리스틴(블레셋)의 침입을 받았다. 필리스틴은 결국 가나안 남부 연안에 5개의 도시국가로 이루어진 연합체를 결성했다. 다윗 왕의 지도 아래(BC 10세기)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침내 필리스틴을 물리치고 가나안 원주민들을 정복할 수 있었다. 그뒤로 가나안은 실제 이스라엘 땅이 되었다.
가나안은 여러 문명의 교차로에 위치해 있었으며 기록된 역사를 볼 때 가나안의 예술과 문학에는 이집트·미케네·크레타·후르리·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요소들이 혼합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시리아 북부 해안에 있는 고대 우가리트 지역인 라스 샴라에서 발견된 일련의 점토판으로부터 가나안 종교에 대한 대부분의 지식을 얻을 수 있다.
가나안의 주된 신은 엘이었으나 비와 풍요는 바알 또는 하다드 신이 관장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다른 중요한 신들로는 재앙과 지옥을 주관하는 레셰프, 기술의 신 코타르, 엘의 아내 아세라, 풍요를 주관하는 여신 아스타르테 등이 있었다.
가나안 사람들의 언어는 고대 히브리어에 가장 잘 나타나 있는 듯하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가나안족은 알파벳을 사용한 최초의 민족이었다. 고고학자들은 후기 청동기시대 지층에서 많은 학자들이 페니키아어·그리스어·라틴어 알파벳의 모어(母言)로 인정하고 있는 문자의 원형을 발견했다.
또한 호기심을 끄는 설형문자 알파벳이 라스 샴라에서 사용되었음도 발견했다. 그러나 이런 새로운 혁신과 함께 전통적인 메소포타미아 설형문자가 일상적으로 쓰이게 되었다.(다음 백과)
가나안 땅
가나안 땅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주겠다고 언약하신 약속의 땅으로서, 이 약속은 구약 성경에서 자주 되풀이되어 나타난다.1) 그 땅은 성경 안에서 무척 좋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묘사되고 있다.2) 가나안 정복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선조들에게 하신 언약이 실현된 것을 의미했다. 오경3) 과 여호수아기와 판관기를 보면 약속의 땅이라는 주제가 집중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즉 오경에서는 이스라엘 조상들에게 약속된 약속의 땅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여호수아기와 판관기에서는 약속의 실현으로 보는 가나안 정복과 정착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이를 보면 가나안 땅이라는 말이 하느님의 약속과 그 실현이라는 주제와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가나안’이라는 말은 가나안족이 살고 있던 땅인 팔레스티나를 가리키는 옛 이름으로서, 이 땅은 후에 이스라엘 백성이 점령하여 차지하게 된다. 이집트와 시리아 사이에 놓여 있는 가나안 땅의 범위는 대략 다음과 같았다. 요르단 강과 지중해 연안이 각각 동쪽과 서쪽의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남쪽은 가자와 브에르 세바와 사해의 남쪽 끝과 접경해 있었고 북쪽은 옛 연안 국가인 페니키아와 접경을 이루고 있었다.4)
가나안 땅의 대부분 지역은 날씨가 건조하고 산과 바위가 많았다. 반면에 특히 바다를 따라 이어져 있는 해안 평야와 강 유역에는 비옥한 농지가 풍부한 편이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향해 나아가던 때 그 땅을 정찰하러 보낸 사람들이 가져온 과일들(포도, 석류, 무화과)은 가나안 땅의 비옥함을 보여 주는 증거였다.5) 가나안 땅은 또한 남쪽의 이집트에서 시작하여 북쪽으로는 시리아와 페니키아 그리고 동쪽으로는 옛 바빌론 제국에까지 뻗어 있던 무역로(貿易路) 가까이 자리 잡고 있었기때문에, 비록 작은 면적이었지만 고대 세계에서 비교적 중요한 전략적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다. 후에 가나안 땅을 점령한 이스라엘 백성은 이 무역로를 따라 다른 나라들과 무역을 함으로써 상업 체제를 발달시킬 수 있었다.
한편 ‘가나안족’이라는 용어는 보통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전 그 땅에 살던 사람들 모두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6) 가나안 사람들은 각각의 임금이 통치하는 독립된 도시 국가들을 형성하고 있었으며7) 꽤 발달한 문화를 누리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알은 가나안 사람들이 가장 많이 떠받들던 주요 신(神)이었으며8) , 그 밖에도 아세라, 아스타롯 같은 신들이 있었다.9) 이 신들은 아주 야만적이었고 성적(性的)인 행위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정복한 이후에도 그들 가운데 섞여살던 가나안 사람들10) 의 바알 신(神) 숭배나 윤리적인 부패는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숭배 또는 성적으로 타락한 행동 등을 하도록 부추겼다.11) 이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약속의 땅 안에서 가나안 사람들을 전멸시키라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하기도 하셨다.12) 가나안 사람들의 그릇된 종교와 싸우는 이스라엘 백성의 투쟁은 이스라엘의 신앙에 새로운 차원과 깊이를 부여했다. 구약 성경에 잘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이 역사의 주님이신 하느님께서는 이교도들의 거짓 신과 악행에 대항해 싸우는 이스라엘 백성의 투쟁을 통해 그들이 유일하신 분이신 거룩하신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다져 나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다.
1. 개요
이집트 시나이 반도와 아나톨리아 사이에 있는 해안지역을 가리키는 옛 지명. 성경에서는 일반적으로 요르단 강(요단강) 서부 지역을 가리킨다.
현대에는 레반트 지역에 속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과 시리아/레바논 남부에 걸쳐 있다.
2. 어원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손자이자, 함의 아들 이름이 가나안이다.
이 지역은 이전부터 자줏빛 염료와 직물 무역이 발달하여 다른 민족으로부터 '자줏빛 땅', '상인의 땅'으로 불렸는데, 가나안이라는 이름이 여기서 나왔다는 견해도 있다.
3. 역사
가나안이라는 명칭이 최초로 기록된 것은 성경이 아닌 기원전 18세기 설형문자로 기록된 마리 문서이다.
3.1. 성경 속 묘사
아브라함 시절부터 히브리 민족에게 주기로 한 약속의 땅( הארץ המובטחת )으로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헤매던 중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목표하던 곳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땅을 얻기 위해 예리코의 전투(여리고 전투)와 같이 많은 전쟁을 벌였으나, 이스라엘 왕국이 남북으로 분단되어 멸망하기까지 모든 땅을 차지하지는 못했다.
4. 민족
성경에 기록된 일곱 선주민 족속으로는, 히타이트(헷), 기르가스, 아모리, 가나안, 브리스, 히위, 여부스가 있으며, 이후 지중해 지역에서 이주한 페니키아(베니게)와 블레셋(필리스틴)을 포함하기도 한다.
DNA 연구에 따르면 현대 레바논 주민들의 조상이 된다고 한다.
5. 언어
가나안어란 가나안 지방에서 사용된 히브리어, 모아브어(모압어), 페니키아어 등의 셈어파 언어를 말한다.
다만 가나안이라 불리던 당시에는 수메르나 아카드의 언어가 쓰였을 가능성도 있다.
6. 고대 종교
바알, 아세라에 대한 신앙이 있었다.
(https://namu.wiki/w/가나안)
‘낮은 땅’이란 뜻. 팔레스타인의 옛 이름. 이스라엘이 정복하기 전 가나안 사람의 땅이었다(민 21:3). 위치는 레바논과 수리아 남단에서 가자 지역 남쪽 애굽 시내까지 이르는 땅으로, 통상적으로는 요단 강 서쪽 전지역을 일컫는데, 성경에서는 ‘단에서 브엘세바까지’(삿 20:1; 삼상 3:20)로 묘사된다. 그러나 넓은 측면에서 가나안은 멀리 북방의 하맛과 요단 동편 유브라데에 이르는 광활한 지경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곳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시기로 약속했던 땅이지만(창 12:7; 15:18; 출 6:4; 신 11:24), 이스라엘은 가나안 사람을 완전히 멸절시킬 수 없었다(수 16:10). 다만 솔로몬 시대에 와서 이 광활한 땅을 잠시 정복했을 뿐이다(왕상 8:65).
한편, 이 땅은 각종 산물이 풍부하고(신 8:8), 광물질이 많이 매장되어 있어(신 8:9), 매우 아름다운 땅(신 8:7), 기름진 땅(렘 2:7), 젖과 꿀이 흐르는 땅(민 14:8)으로 불렸다. 이런 풍요로운 자연의 혜택으로 인해 이곳은 일찍부터 물물 교환이 빈번하였고, 거래도 활발하였다(겔 27:17). 그 대표적 산물은 가나안에서 많이 생산되는 염료와 자줏빛 직물이다.
그래서 가나안은 일찍부터 이방인들 사이에 ‘자줏빛 땅’, ‘상인의 땅’으로 불릴 정도였다(잠 31:24). 혹자는 ‘가나안’이란 지명의 뜻을 ‘자줏빛’으로 보기도 한다. → ‘팔레스타인’을 보라.
가나안 땅의 다른 이름들
가나안 땅(창 17:8)은 몇 가지 별칭을 지니고 있는데, ‘히브리 땅’(창 40:15),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출 3:8), ‘블레셋 땅’(출 15:14), ‘이스라엘 온 땅’(삼상 13:19), ‘영화로운 땅’(단 8:9), ‘여호와의 땅’(호 9:3), ‘거룩한 땅’(슥 2:12), ‘유대인의 땅’(행 10:39), ‘약속하신 땅’(히 11:9) 등이 있으며, 이외에도 하나님의 백성이 최종적으로 들어가게 될 ‘하나님의 나라’(천국)를 상징하기도 한다.
가나안 사람들
가나안 족속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정착하기 이전에 거주하던 민족을 가리킨다. 노아의 손자요, 함의 아들인 가나안 자손들에 의해 형성된 민족들을 가리키는데, 좁게는 가나안 일곱 족속, 곧 헷, 기르가스, 아모리, 가나안, 브리스, 히위, 여부스 족속을(신 7:1), 넓게는 지중해 섬들에서 가나안 땅으로 이주한 베니게(페니키아)나 블레셋 족속까지를 포함하기도 한다. 이들은 일찍부터 우상을 숭배하며 가증스런 문화와 풍습에 젖어 살았기 때문에(창 13:13; 레 18:25; 20:23)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이들을 그 땅에서 모두 죽이고 추방시켜야 했다(출 33:2; 34:11). 성경에는 이들의 사악하고 가증한 풍습들이 엄히 경계되고 있는데, 대표적인 악행들을 살펴보면, ‘남색’(창 19장), 근친상간(레 18:6-18), 수간(레 18:23), 간음(레 20:10), 우상 숭배(레 18:21), 각종 사술(레 20:6) 등이 있다.
이런 배경 때문에 가나안으로 이주한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 곧 구약의 족장들은 가나안 여인과의 결혼을 금기시하였으며, 아내나 며느리를 구할 때는 고향 땅을 찾곤 하였다. 아브라함이 며느리 곧 이삭의 아내를 얻기 위해 종 엘리에셀을 하란 땅에 보낸 사실(창 24:1-9), 이삭의 장자 에서가 가나안 여인 중에서 아내를 구한 사실로 이삭과 리브가가 크게 근심한 일(창 28:1-9) 등은 좋은 사례다. 또 훗날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뒤 가나안 여인을 비롯한 이방 여인과 결혼한 이스라엘 백성은 종교개혁을 단행한 에스라의 명을 좇아 아내들을 내어보내기도 하였다(스 9:2).
[네이버 지식백과] 가나안2 [Canaan] (라이프성경사전, 2006. 8. 15., 생명의말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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