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성경사전

놋(창4:16)

기독항해자 2017. 11. 7. 20:13

'놋'이란 의미는 유리, 방황, 요동이라는 뜻으로, 기쁨과 환희의 땅인 에덴과는 대조되는 도망과 추방의 땅임을 암시한다(Keil). 이곳의 위치에 대해서는 '에덴의 동쪽'이라는 사실 외에는 지리학적으로 더 이상의 추적이 불가능하다.(그랜드종합주석)


졸음이나 수면을 가리킬 때 흔히 이 표현을 쓴다. 성서에서는 실제의 지명처럼 나온다.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창세기 4:16)히브리어에서 '놋'은 '방랑'을 뜻했다. 어쩌면 놋은 특정한 지명이 아니라 그냥 '방랑하는 장소'라는 뜻인지도 모른다.

[네이버 지식백과] 놋 땅 [land of Nod] (『바이블 키워드』, 2007. 12. 24., 도서출판 들녘)


이 지명은 히브리어 동사2) 누드에서 파생된 것인데, 구약성경에서 ‘누드’라는 동사는 25번 사용되었다. 이 단어의 기본적 의미는 “앞뒤로 왔다갔다 하는 것”으로 ‘방황하다, 동정하다’라는 말로 번역되었다. 히브리어 ‘누드’가 ‘방황하다’와 ‘동정하다’라는 두 가지 큰 맥락으로 사용된 근거는 다음과 같다. 

 

 

 

먼저 ‘누드’는 ‘목적없이, 또는 집 없이 방황한다’는 기본적인 뜻을 가지고 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쳐서 물에서 흔들리는 갈대같이 되게 하시고”(왕상 14:15)라는 구절에서 ‘흔들리고’라는 단어가 히브리어 ‘누드’를 번역한 것이다. 그러므로 목적없이 이리저리 방황하는 것을 성경은 물에 의해 움직이는 갈대와 같은 행동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사야 24:20에서는 “땅이 취한 자 같이 비틀비틀하며 침망 같이 흔들리며”라고 하였는데 여기서는 술에 취한 사람이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것을 ‘누드’로 표현하였다. 잠언 26:2에서는 ‘누드’가, 참새가 아무런 의미없이 창공을 ‘떠도는 것’으로 번역되었다.

이처럼 ‘방황하다’라는 뜻이 더 확장되면 “~로부터의 도피”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너희가 내 영혼더러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찜인고”(시 11:1)라는 구절에서 ‘누드’는 ‘도망한다’는 뜻으로 번역되었다.

이러한 뜻을 나타내는 히브리어 동의어는 3) 나다드4) 누스 등이 있다. ‘나다드’는 ‘후퇴하다, 도망하다, 유리하다’는 뜻으로 구약성경에서 28회 사용되었는데, ‘누드’의 의미 중 ‘방황하다, 도피하다’는 뜻과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대표적인 용례는 “유리하며”(욥 15:23), “도망하고”(시 68:12), “도피하는 자”(사 21:14) 등이 있다. ‘누스’라는 단어도 “도망치다, 사라지다”라는 뜻이며 구약성경에서 161회나 사용되었다. “달아날 때에”(창 14:10), “도망하게 하소서”(민 10:35, 왕하 7:7, 사 10:3), “도피한 자로”(신 4:42), “피하다가”(암 5:19) 등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다음으로 ‘누드’의 기본적 의미인 ‘앞뒤로 왔다갔다 하는 행위’가 어떤 사람들을 동정하고 긍휼을 표시하는 의미로 머리를 앞뒤로 끄덕일 때는 ‘동정하다’라는 전혀 다른 뜻으로도 사용되었다. 이 경우는 주로 장례식이나 죽은 사람 앞에서 슬퍼하며 애곡하는 행위를 묘사하였다. 욥기나 예레미야에서 이러한 뜻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조문하고”(욥 2:11), “슬퍼하며”(욥 42:11), “긍휼히 여길 자를”(시 69:21), “슬퍼하랴”(사 51:19), “곡할 자”(렘 15:5), “애곡하지”(렘 16:5, 나 3:7), “놀라서 그 머리를 흔들리라”(렘 18:16, 48:27), “애통하지”(렘 22:10), “스스로 탄식함을”(렘 31:18, 48:17)
  
가인의 거주지가 주목을 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에덴 동산은 지명의 뜻 자체도 ‘기쁘다, 즐겁다’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의 행복을 뜻하고 있다. 반면에 가인은 타락 후 하나님의 품을 떠나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다. 그곳은 어원을 살펴본 바와 같이 ‘끊임없이 앞뒤로 왔다갔다 방황하며 고개를 흔드는 행위’를 뜻하고 있다. 사람의 삶은 한 곳에 정착하여 안정될 때 심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누드’라는 어원의 뜻처럼 끊임없이 방황하며 불안에 떨고 있다면 그의 인생이 행복할리 없다.

의미없이 왔다갔다 하는 것은 타락한 인류의 실상을 가장 잘 표현해 준다. 또한 그러한 인생 앞에 머리를 흔들며 애곡하고 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난 비참한 인생의 실상 앞에 애도를 표현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지명이 ‘놋’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최초의 살인자 가인의 비참한 실상을 그가 ‘놋 땅에 거하였다’라는 짤막한 한마디로 충분히 드러내주고 있다.

[출처] ‘놋’ 땅에 거한 가인|작성자 sellester



인류 최초의 살인자인 가인은 에덴의 동쪽 놋 땅으로 이주하였다고 한다. 놋은 히브리어로 ‘유리하다’ ‘방황하다’라는 뜻이다. 함께 살아야 할 형제를 경쟁 대상으로 보아 제거한 인간의 운명이 그 지명 속에 반영되어 있다. 사랑의 관계가 무너진 자리에 들어서는 것은 근원적인 불안감이다. 그 불안감을 떨치고 살아가지 못하는 모든 이들은 놋 땅의 주민이다. 급격하게 적대적 공간으로 변하고 있는 이 세상의 흐름을 돌이킬 수는 없는 것일까? 많은 이들이 그런 절망감에 빠져들고 있다. 이제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희망은 있는 것일까? 


희망은 하늘에서 내려오거나 땅에서 솟아나는 것이 아니라 검질기게 희망의 씨를 뿌리는 이들을 통해 이 땅에 유입된다. 프랑스인들이 가장 존경한다는 아베 피에르 신부는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구분은 ‘믿는 자’와 ‘안 믿는 자’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홀로 만족하는 사람과 공감하는 사람 사이에, 다른 사람들의 고통 앞에서 등을 돌리는 사람과 고통을 나누려는 사람 사이에 있다고 말한다. 믿는 자 가운데도 홀로 만족하는 이들이 많고, 안 믿는 자 가운데도 다른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려고 애쓰는 이들이 있다. 누가 참 사람인가? 적대의 공간을 환대의 공간으로 바꾸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아닐까?

(김기석, 청파감리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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