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의 첫 아들(창 4:17). 가인은 인류 최초의 성(城)을 세우고 그 아들의 이름을 따라 ‘에녹’이라 명명했다(창 4:17-18). 위치는 불명확하다.(라이프성경사전)
<구약성서와 기술: 에녹성>
1.
기술의 기원을 주술에서 찾는 학자들은 적지 않다.
Mauss, Oursel 등이 있고, 엘륄도 그 중 한 명이다.
하지만 주술만이 기술의 기원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점에서 엘륄은 놀라운 통찰을 준다.
엘륄은 뜻밖에도 기술의 근원적 형태를 구약성서에서 찾는다.
그는 구약성서에서 '기술'과 '도시(혹은 城)'을 등치시키고,
최초의 기술을 가인의 에녹성에서 찾는다.
그가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기술철학자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에녹성에서 기술의 본질을 찾으려는 시도를 가볍게 무시하기 쉽지 않다.
그가 에녹성을 최초의 기술로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2.
성은 무엇보다 예측가능한 세계이다.
성 밖은 불확실성이 지배한다. 그래서 불안하다.
하지만 성 안은 모든 불확실성이 배제된다. 그래서 불안할 필요가 없다.
이로써 성 안의 공간은 성 밖의 공간에 비해서 질적으로 변화된다.
불확실성의 제거는 현대 기술의 특징이기도 하다.
현대 기술은 시간과 공간을 계산가능하고 예측가능한 것으로 바꿈으로써 세계를 근본적으로 변형시킨다.
3.
성은 자기 보호의 수단이다.
성은 단순히 보호의 수단이 아니다.
성은 '자기 보호'를 위해서 '자기 스스로' 찾은 수단이다.
성의 이름을 '에녹'이라고 지은 것은 의미심장하다.
에녹은 가인의 아들의 이름이다.
즉 가인은 아들과 똑같이 성을 낳은 것(beget)이다.
아들은 자신의 분신이다. 그래서 자손을 낳은 것은 불멸하려는 시도다.
이는 가인이 성에 자신을 투사했음을 알 수 있다.
성 안에서 가인은 왕이자 신 된다.
그리고 이것은 현대 기술의 특징이기도 하다.
기술은 무엇보다 인간 스스로의 방식으로 인간 스스로를 보호하는 수단이다.
그리고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은 스스로를 세계의 주인(master)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은 완전한 착각이지만 말이다.
4.
성 안에서 기도와 신앙은 불필요하다.
하나님은 아벨을 죽인 가인에게 '보호의 약속'을 주셨으나, 가인은 믿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성을 쌓았기 때문이다. 성은 가인 스스로를 보호할 수단이었다.
성 안에서도 기도할 수 있다.
성 안에서의 기도는 '나의 수호신이여, 그대는 이 성의 수호신이 되어 주시오.' 가 될 것이다.
기도는 성을 위한 기도가 된다.
성은 가인을 보호하는 수단이 되고, 기도는 성을 보호하는 수단이 된다.
이것은 거짓 기도고 선전으로 전락한 기도다.
참 신앙과 기도는 축출된다.
기도와 신앙을 배제한 성은 아예 신을 추방한다.
성은 모든 불확실성을 배제하기 때문에, 모든 불확실성의 근원인 신과 신의 개입도 배제한다.
설령 신이 자신에게 이로움을 줄 수 있을지라도 그것이 예측불가능하게 갑작스럽다는 점에서 반기적이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요3:8]
성령의 존재는 성에서 추방된다.
성은 하나님의 언약을 배제하고, 성령의 개입을 차단하며, 하나님과의 모든 관계를 끊는다.
5.
이런 점에서 기술은 중립적으로 보지 않고, 반역적이다.
구약성서는 여러 곳에서 이러한 관점을 일관성 있게 보여준다.
흥미롭게도 셋의 후예 중에서는 단 한 명의 기술자도 보이지 않으나 가인의 후예에는 기술자들로 가득하다.
-가축 치는 기술자: 아다
-악기 제조 기술자: 유발
-구리/쇠 기술자: 두발가인 ...
6.
엘륄이 구약성서를 통해 기술을 반역적으로 본다고 해서 곧바로
그가 기술을 파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러다이트' 운동을 지지한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그는 무엇보다 기술에 관해서 변증법적으로 사고하도록 요구한다.
-기술은 반역적이다.
-그러나 기술은 벗어날 수 없는 필연이다.
(http://aisurvive.tistory.com/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