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사무엘상

14장 6-15절

기독항해자 2017. 7. 15. 09:37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무기를 든 자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에 있는 대로 다 행하여 앞서 가소서 내가 당신과 마음을 같이 하여 따르리이다

요나단이 이르되 보라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로 건너가서 그들에게 보이리니

그들이 만일 우리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너희에게로 가기를 기다리라 하면 우리는 우리가 있는 곳에 가만히 서서 그들에게로 올라가지 말 것이요

그들이 만일 말하기를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하면 우리가 올라갈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우리 손에 넘기셨음이니 이것이 우리에게 표징이 되리라 하고

둘이 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보이매 블레셋 사람이 이르되 보라 히브리 사람이 그들이 숨었던 구멍에서 나온다 하고

그 부대 사람들이 요나단과 그의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너희에게 보여 줄 것이 있느니라 한지라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나를 따라 올라오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셨느니라 하고

요나단이 손 발로 기어 올라갔고 그 무기를 든 자도 따랐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요나단 앞에서 엎드러지매 무기를 든 자가 따라가며 죽였으니

요나단과 그 무기를 든 자가 반나절 갈이 땅 안에서 처음으로 쳐죽인 자가 이십 명 가량이라

들에 있는 진영과 모든 백성들이 공포에 떨었고 부대와 노략꾼들도 떨었으며 땅도 진동하였으니 이는 큰 떨림이었더라


6절은 이와 같은 행동이 요나단의 믿음의 행동이라고 증언합니다.

요나단의 믿음의 단계는 듣고 순종하는 단계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믿고 행동에 옮기는 단계입니다.

요나단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믿음의 행동을 한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아 행동한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감동이 없어도 우리가 하나님을 순수하게 믿고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행동을 책임져 주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요나단이 블레셋 진영으로 갈 때 함께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요나단의 무기를 든 사람이었습니다.

충분히 반대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반대하는 것이 합리적인 행동이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마음을 같이하여 따르리이다'라고 요나단에게 말했습니다.


마음을 같이하는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친구라고 부릅니다.


전도서 4:9-12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요나단은 이 단계에서 양털 믿음이라고 하는 것을 시도합니다.

9,10절 입니다.


그들이 만일 우리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너희에게로 가기를 기다리라 하면 우리는 우리가 있는 곳에 가만히 서서 그들에게로 올라가지 말 것이요

그들이 만일 말하기를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하면 우리가 올라갈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우리 손에 넘기셨음이니 이것이 우리에게 표징이 되리라 하고


성경에는 종종 이런 양털 믿음이 시도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양털 믿음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의지하여 행동에 옮길 때 시도됩니다.

양털 믿음이 행해진 사례를 성경에서 찾아보겠습니다.


첫번째 사례는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의 아내인 리브가를 만나는 장면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24:11-14

그 낙타를 성 밖 우물 곁에 꿇렸으니 저녁 때라 여인들이 물을 길으러 나올 때였더라

그가 이르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오늘 나에게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성 중 사람의 딸들이 물 길으러 나오겠사오니 내가 우물 곁에 서 있다가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하건대 너는 물동이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말미암아 주께서 내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아브라함의 종이 아브라함의 일가 친척이 살고 있는 밧단 아람으로 갔습니다.

아마도 아브라함의 종은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으로 옮겨오기 전에도 함께 살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란에 있을 때는 가마득한 오래 전의 이야기입니다.

리브가는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당연히 알아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양털 믿음을 행사한 것입니다.


두 번째 사례는 기드온이 사사로 부르심을 받을 때 행사한 것입니다.

여기서 양털 믿음이란 말이 나왔습니다.

 

사사기 636-40

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쭈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거든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 마당에 두리니 만일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

그대로 된지라 이튿날 기드온이 일찍이 일어나서 양털을 가져다가 그 양털에서 이슬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더라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쭈되 주여 내게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내게 이번만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원하건대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그 밤에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시니 곧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었더라


사사 기드온은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아 사사가 되었습니다.

기드온은 그리고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확신할 수가 없었습니다.

확신을 갖기 위해서 이런 기도를 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 이런 기도를 할 수가 있습니다.

다음 구절을 보겠습니다.


둘이 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보이매 블레셋 사람이 이르되 보라 히브리 사람이 그들이 숨었던 구멍에서 나온다 하고

그 부대 사람들이 요나단과 그의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너희에게 보여 줄 것이 있느니라 한지라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나를 따라 올라오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셨느니라 하고

요나단이 손 발로 기어 올라갔고 그 무기를 든 자도 따랐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요나단 앞에서 엎드러지매 무기를 든 자가 따라가며 죽였으니

요나단과 그 무기를 든 자가 반나절 갈이 땅 안에서 처음으로 쳐죽인 자가 이십 명 가량이라

들에 있는 진영과 모든 백성들이 공포에 떨었고 부대와 노략꾼들도 떨었으며 땅도 진동하였으니 이는 큰 떨림이었더라


공교롭게도 블레셋 사람들이 올라오라고 말합니다.

요나단이 손 발로 기어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블레셋 사람들이 요나단 앞에서 엎드러졌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어쨌든 블레셋 사람들이 요나단 앞에서 엎드러졌습니다.

우리는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요나단의 손에 무기가 있던 것 아닙니다.

무기는 무기를 든 자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블레셋 사람을 죽인 사람도 요나단이 아니라 무기를 든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죽은 사람이 이십 명 가량이었습니다.

요나단이 가까이 가면 쓰러집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요나단을 대적할 수가 없었씁니다.

요나단을 대적하러 나가면 요나단 앞에서 엎드러지기 때문입니다.

블레셋 진영이 두려움이 임했습니다.

그들에게 공포가 찾아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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