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사무엘상

2장 35, 36절

기독항해자 2017. 3. 11. 11:09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니 그가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

그리고 네 집에 남은 사람이 각기 와서 은 한 조각과 떡 한 덩이를 위하여 그에게 엎드려 이르되 청하노니 내게 제사장의 직분 하라를 맡겨 내게 떡 조각을 먹게 하소서 하리라 하셨다 하리라


어제는 탄핵 심판이 있었던 날입니다.

조선 시대에도 탄핵을 받아 물러난 왕들이 있었습니다.

연산군과 광해군입니다.

한국 개신교는 똥볼이 아닌 자살골을 찼죠.

80% 이상의 국민이 탄핵을 찬송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를 지지하였습니다.

김대중, 노무현의 집권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하더니 범죄자 박근혜를 옹호하였습니다.

결국 그 사람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하나님도 지도자를 탄핵하십니다.

엘리 제사장이 하나님으로부터 탄핵을 받고 있습니다.

사실 지도자는 없습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습니다.

사람은 다 동등합니다.

지도자는 앞에서 이끄는 사람입니다.

아니 앞에서 모범을 보이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위아래가 아니라 앞과 뒤, 옆에 있는 수평적인 관계만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가진 자들은 위에 있는 것처럼 착각하며 삽니다.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위가 아닙니다.

우병우가 기자를 바라보는 눈이 자기가 위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2017년 3월 10일은 바로 그 사실을 확인하는 날이었습니다.

더 이상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인 관계가 세워진 날입니다.

아직은 멀었지만 이제 한 걸음을 뛴 것입니다.

수평적인 사회를 향한 걸음입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낡은 구조를 좋은 구조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수직적인 구조에서 수평적인 구조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리고 의식구조도 수직적인 구조에서 수평적인 구조로 바뀌어야 합니다.

조선의 유교는 상하관계의 수직적인 구조를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유교의 삼강오륜은 그것을 대변하는 규범이었습니다.


삼강오륜은 유교의 도덕에서 기본이 되는 세 가지의 강령과 다섯 가지의 도리를 말합니다.
삼강
1. 군위신강(임금과 신하 사이에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2. 부위자강(어버이와 자식 사이에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3. 부위부강(남편과 아내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

오륜
1. 군신유의(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의로움이 있어야 함.)
2. 부자유친(어버이와 자식 사이에는 친함이 있어야 함.)
3. 부부유별(부부 사이에는 구별이 있어야 함.)
4. 장유유서(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차례와 질서가 있어야 함.)
5. 붕우유신(친구 사이에는 믿음이 있어야 함.)

삼강오륜을 비롯한 유교의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가문의 풍습 이어가기, 웃어른 공경하기, 부모님께 효도하기, 조상 섬기기 와 같이 도덕의 이름으로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삼강오륜은 수평적인 관계가 아니라 수직적인 관계를 중요시여깁니다.


어른이란 이유만으로 모든 것이 다 된다고 생각합니다.

버젓이 무단횡단을 합니다.

법을 위반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나이로, 입사년도로, 입학년도로 상하관계를 만드닙니다.

민주주의는 합리를 골간으로 사회 체계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이름만 민주주의였습니다.

합리가 없었습니다.

유교적인 삼강오륜이 우리 의식을 꽉 누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아버지들은 무조건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자녀들은 옳은 주장을 해도 네가 뭘 아느냐고 말하면서 힘으로 눌렀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쓰는 말 중에 하나가 대통령을 통치자라고 부르는 말입니다.

대통령은 통치자고, 국민은 통치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 통치자란 용어는 전근대적인 용어입니다.

통치는 위에서 지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국민은 통치의 대상이 아닙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교회를 섬겨오면서 교회안의 부조리를 많이 보았습니다.

많은 행태들이 믿음이란 이름으로 용납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신앙은 비합리가 아닙니다.

그런데 비합리를 신앙의 이름으로 용인합니다.

목사는 지도자가 아닙니다.

그런데 목사를 왕적인 존재처럼 떠받듭니다.

그리고 목사들은 제왕적인 정치를 하려고 합니다.

결국 부패와 부정이 판을 치게 됩니다.

잘 알다시피 한국 교회는 자정 능력을 잃어버린지 오래입니다.

자체의 능력은 자정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닙니다.

자정 능력을 잃어버린 교회가 무슨 사회 개혁을 말할 수 있습니까?


나는 한국 교회를 바라보면서 한국의 정치와 쌍두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의 정치가 자정 능력을 갖고 있나요! 아닙니다.

결국 국민이 각성해야만 정치가 바로 설 수 있습니다.

국민이 깨어 있지 않는 한 나라는 바로 설 수가 없습니다.

박근혜와 같은 사람은 또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를 새롭게 할 사람들을 일으키길 소망합니다.

교회는 이미 구조적으로 자정 능력을 일어버린지 오랩니다.

교회의 상층부는 유교의 삼강오륜으로 꽉 차 있습니다.

그들은 있지도 않은 권력을 가지고 횡포를 부리고 있는지 오래입니다.

그리고 신앙의 이름으로 협박을 합니다.

반대를 하면 무조건 마녀 사냥을 합니다.

신천지라고 딱지를 붙입니다.

그러니 전병욱과 같은 괴물이 나오게 됩니다.

엘리시대가 바로 그런 시대입니다.


교회를 새롭게 하는 것은 어떤 무브먼트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항상 개혁을 부르짖는 사람일수록 그 사람이 개혁의 대상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이미 타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우리 사회의 문제는 매뉴얼대로 움직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법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만큼 무서운 말이 없습니다.

민주주의는 법치주의 사회입니다.

법대로 해야 합니다.

박근혜씨가 탄핵 받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법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법대로 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했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아야만 했습니다.

크리스천 기업인들이 정직하게 기업을 경영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망할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정직하게 기업을 경영하지 않습니다.

정직하게 기업을 경영하지 않은 이유를 물으면 관행을 탓하고, 다른 사람들은 다 한다고 말을 합니다.

왜 이렇게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망할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신앙은 내 문제입니다.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내 마음대로 살 것인가? 

아니면 손해가 날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것인가?

선택하며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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