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사무엘상

2장 6, 7절

기독항해자 2017. 2. 3. 12:02
  1.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2.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주권을 노래하는 구절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시는 분이십니다.

성경학자들은 성경의 주제를 창조-타락-구속-완성으로 보고 있습니다.

완성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창조에서 완성 사이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게 될 하나님의 백성을 만들어 가는 과정입니다.

현재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백성을 만들어 가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며 하나님을 알아갑니다.


우리가 부하기만 하고 높은 곳에 있기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불필요하신 분입니다.

모든 것이 다 잘되어 가면 우리는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하나님을 배제하고 자신들만의 왕국을 이루어가고자 할 것입니다.

그게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입니다.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창세기에 나오는 바벨탑 사건입니다.

하나님 없이 잘 되어 가는 역사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역사입니다.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는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힘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가 힘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한다면 하나님은 성경의 주제인 창조-타락-구속-완성은 불필요한 과정일 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 잘드는 존재들로 이루어진 사회를 이루고자 하셨다면 천사만으로 충분했을 것입니다.


영화를 보면, 로봇이 반란을 일으켜서 인류 문명을 파괴하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로봇이란 사람들이 프로그램한 대로 움직이는 존재들입니다.

지구상에는 이런 존재들이 있습니다.

바로 동물들입니다.

동물들은 본능대로 살아갑니다.

본능이란 입력된 대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다릅니다.

사람들은 생각이라는 것을 합니다.

이 생각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냅니다.

생각하는 존재들은 왜라고 질문을 합니다.

그들은 당연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로봇이 사람들처럼 생각이라는 것을 합니다.

그러면 이 로봇이 반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런 존재로 우리를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생각하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인간과 동물은 큰 차이가 없습니다.

딱 하나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염색체 하나의 차이입니다.

그게 바로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마어마한 차이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생각이라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낮추시고 높이시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드러내 보이십니다.

우리의 오감을 통해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영감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은 찰나의 순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와 하나님은 다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존재간의 만남은 이렇게 우연처럼 찰나의 순간입니다.

그래서 그 순간이 지나면 확신이 사라져 버립니다.

이 순간의 만남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그때야 비로소 우리의 인식에 하나님의 존재가 분명하게 각인되게 됩니다.

우리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십니다.

유한은 무한을 담을 수가 없습니다.

유한은 무한을 인식할 수가 없습니다.

유한으로 무한을 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무한은 유한을 담을 수 있고 인식할 수 있고 잴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만나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나와 같은 신앙의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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