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과 삶/경건서적산책

경청기도(잰 존슨, 윤종석, CUP)

기독항해자 2012. 10. 19. 14:15

경청기도(잰 존슨, 윤종석, CUP), 2012년 10월에 읽음


기도를 정의할 때, 보통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대화라고 정의한다. 그렇지만 오랫 동안 교회 안에서는 우리 쪽에서 하나님께 말하는 간구에만 초점을 맞추어 왔다. 그래서 기도가 쌍방향의 대화가 아니라 일반적인 우리 편에서의 간구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기도의 다른 쪽을 강조하는 흐름이 흘러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기도가 대화라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잃어버렸던 대화로서의 기도의 다른 한 면을 주목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말하고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들으시기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우리에게 말씀을 건넨다는 사실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 것이다. 사실 이것은 기도의 오랜 전통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우리는 듣는다. 이것을 회복할 때,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쌍방향의 대화가 된다. 잰 존슨의 경청기도는 잰 존슨이 복음적인 교회에서 오랫동안 간구기도에만 매달리다가 기도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하고 그것을 추구하면서 누리게 된 하나님의 은혜를 기록한 책이다. 우리 모두는 간구 기도 뿐만 아니라 경청 기도를 통해서 대화로서의 기도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의 신앙이 성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간구 기도를 통해서는 우리의 신앙은 자랄 수가 없다. 왜냐하면 간구기도는 우리의 필요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지만, 하나님의 뜻을 묻지는 않기 때문이다. 신앙성숙을 위해서는 경청기도의 회복이 필요하다. 이 책을 통해서 경청기도의 삶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크리스천이 되기를소망한다.


1부 경청기도의 뿌리는 성경이다

01 기도가 통하지 않을 때

기도가 더 이상 통하지 않거나 하나님의 실체를 알고 싶거든 지금부터 경청기도를 탐색해 보라.

수년째 나는 경청기도를 연습해왔다. 하나님 앞에 앉아 단순히 그분의 임재를 누리는 기도다. 일상생활의 압박감이 한창 고조되면 하나님의 임재를 잊고 자기중심적 구습으로 되돌아가기가 너무 쉽다. 그러나 2천년동안 그리스도인들이 사용해온 이 오래된 전통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그 보람은 엄청나다. 나는 내 영혼에 질서가 회복되고 평안이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여태 나를 삼켰던 불안정한 복수의 감정 대신 거룩한 고요함을 느꼈다.

오래된 습성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오면서 오랜 세월 내 기도는 내가 원하는 것들 투성이였다. 내가 배운 복음주의 기독교에는 이런 고요한 기도를 가르쳐준 부분이 전무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 교회 교부들, 위대하든 무명의 그리스도인이든 고금의 성도들이 경청기도를 실천해 왔음에도 말이다. 가장 단순한 형태의 경청기도란 내 생각과 감정을 가라앉히고 하나님께 집중하는 기도다. 그런 상태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더 잘 느낄 수 있고 나를 교정하시고 인도하시고 지도하시는 하나님 음성을 더 잘 들을 수 있다. 이 때 하나님의 업무 목록을 들고 오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속셈도 없이 온다. 근본 개념은 내 생각을 가라 앉히고 단순히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누리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입을 여실 경우 그 음성이 들린다. 그래서 경청기도를 때로 침묵기도라고도 한다.

영혼의 필요를 만나는 길

경청기도는 세상으로부터의 도피도 아니고 영적으로 높은 차원에 이르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단순히 하나님과 함께 있음으로 갈급한 영혼의 필요를 만나는 길이다.

경청기도의 역동성을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한 늙은 농부가 날마다 마을 교회당에 들어가 무릎 꿇고 기도했다. 무슨 문제로 그러느냐고 누가 묻자 그는 말했다.

“나는 그냥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를 바라보십니다.”

농부는 도피하거나 황홀경을 구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하나님의 임재를 누린 것이다. 경청기도를 실행하면 하나님과 연대감이 생긴다. 거기서 하나님은 우리의 산만함을 치유하실 수 있다.

02 하나님과 긴밀히 통하는 영혼으로 변하다

내 영혼을 하나님께 열고 상대에게 온전히 내어 주며 살면 변화가 일어난다. 하나님 사랑이 내 안에 거하며 내 행동 양식을 바꾼다.

하나님과 긴밀히 통하는 내면 생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은 단순하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주목하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그분의 생각과 마음을 느낀다. 하나님의 계획에 있어 내 역할을 느끼며 하나님의 심정으로 살기 시작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복을 전하신다. 하나님께 열린 자세와 그로 인한 마음의 변화는 여태 요원해 보였던 거룩함, 긍휼, 용기를 가져다준다. 우리는 내 안에 형성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보게 된다. 예로부터 이 과정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성 계발’로 알려졌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성품이 빚어지는 과정이다.

영성계발이란 일정한 습성들을 통해 하나님과 긴밀히 통하는 내면생활을 가꾸는 것이다. 내면생활은 외적 행동의 변화를 낳는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그분의 내적 마음가짐과 외적 행동을 함께 본받는다.

영적 성장을 위한 우리 노력을 외적 행동을 바꾸려는 시도일 때가 더 많다. 우리의 영적 선배들은 우리의 성장이 우리 안에 새 영을 빚으시는 하나님의 일에 협력함으로 오는 것임을 알았다. 영성 계발은 영혼에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며 이때 활용하는 영적 훈련들을 사용하여 우리 영혼에 행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에 눈뜨게 된다.

경청기도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일하시도록 하는 것

경청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 속사람 안에 일하셔서 우리의 궁극적 동인인 마음의 태도를 변화시키실 시간과 재량을 드리는 훈련 중 하나다.

속사람을 무시한 채 외적 행동에 치중하면 엄청난 결과를 낳는다. 영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경건한 열망과 종교 기관에 뿌리를 두고도 하나님께 심령이 마비된 사람을 낳는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독실한 한 중에 독실한 자, 종교적 보수주의자, 성경을 지키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자기의의 껍질을 깨뜨리고자 그들을 질책하셨다.

영혼의 훈련

성경에 나와 있고 예수께서 행하신 일정한 용인된 훈련들을 우리도 사용할 때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장은 이루어진다.

경청기도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자라게 하는 많은 영적 훈련 중 하나이다. 대체로 영성훈련은 하나님 마음에 일치하기 위해 일정한 훈련을 행하게 하거나 삼가게 한다. 역사적으로 이는 각각 행위훈련과 절제훈련으로 알려졌다. 행위훈련에는 공부, 예배, 기도, 축제, 섬김, 교제나 공동체, 고백, 복종 등이 포함된다. 절제훈련은 활동이나 물질을 삼가게 함으로 우리 영혼을 훈련한다. 이 훈련에는 고독, 침묵, 금식, 청빈, 순결, 은둔, 희생 등이 포함된다. 사실 세미한 음성에 귀 기울이고 그 말씀이 들려올 때 기꺼이 반응하도록 연습하게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나 영적 훈련이라 할 수 있다.

변화된 성품

영성훈련에 쏟는 노력은 행동 변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속사람의 동기와 필요를 하나님과 소통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 소통의 결과는 심령의 변화다. 심령의 변화야말로 영성 계발의 핵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그릇으로 변화된다.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귐에 붙들린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 성품과 인격을 변화시키신다. 기도는 구하는 부분이 줄고, 점차 토기장이의 손에 진흙으로 놓여 하나님의 만드심과 빚으심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된다. 하나님을 사랑할수록 우리는 그분께 더 순종한다.

03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우리는 듣고

우리는 침묵의 광야에 살고 있다. 사방에서 끊임없이 텔레비전, 차량 라디오, 기계의 소음이 들린다. 이런 소음은 성령 하나님의 음성을 삼켜 들리지 않게 한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우리는 듣고

예수님은 그분을 따르는 자들이 목자의 음성을 들으며 또 그 음성을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자신들을 훈련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그분의 음성을 알기게 따를 줄도 안다. 그러나 우리들 대부분은 고요히 앉아 하나님을 듣도록 훈련하기보다 목사나 강사의 말을 듣기를 더 좋아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이유

1) 하나님이 오늘날은 더 이상 말씀하시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아버지와의 쌍방적 교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듣는 일이나 성령의 인도에 대한 성경의 모든 가르침은 역사 속의 일정한 시기에만 해당된다고 믿는다.

2)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을 잘 모른다

때로 우리가 하나님 음성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누구인가에 대해 성경을 통한 정확한 머릿속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도하며 하나님을 구할 때 우리가 믿는 정확치 못한 내용이 우리를 지배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좋아하려면

경청기도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려면 먼저 하나님을 같이 있고 싶은 분으로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누구인지 잘 모르면 우리의 본능적 반응은 기도를 피하는 것이다. 경청기도를 즐기려면 성경의 하나님을 알고 사랑해야 한다.

04 경청기도의 뿌리는 성경이다

경청기도의 기초는 텅 빈 머리나 허황한 망상이 아니라 연구와 사색과 기도이다. 하나님 말씀을 깊이 생각하려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기도가 잘 안 돼도 놀라지 말아야 한다.

경청기도의 뿌리는 성경이다

경청기도란 “찬송의 삶, 예배의 축제, 묵상적 성경 읽기(거룩한 읽기) 속에서 이루어진다.” 거룩한 읽기란 경청기도가 수반되는 고전적 방식의 성경 읽기이다. 라틴어로 렉시오 디비나라고 하며 6세기부터 시작되어 신자들 사이에 특히 베네딕트회 수원들에 널리 사용되어 왔다. 경청기도는 렉시오 형식의 네 번째이자 마지막에 해당된다: 성경 본문 읽기, 그 본문의 묵상, 기도, 경청기도(관상기도).

경청기도는 언제나 성경을 기초로 한다. 이것이 기독교의 경청과 비슷한 여타 명상의 한 가지 중요한 차이이다. 렉시오 참여자들은 경청기도에 들어가지 전에 먼저 성경을 읽고 기도한다. 이 둘은 경청기도를 하는 신자들에게 익숙한 활동이다. 묵상이란 성경의 말과 사건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는 과정이다. 묵상은 성경 한 구절이나 본문을 중심으로, 내가 둥지 삼아 쉴 수 있는 단어와 이미지를 찾는 과정이다. 내가 본문 속으로 들어가며 그리하여 본문이 내 마음속에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영혼의 훈련

묵상은 성경공부와 다르다. 성경공부는 본문을 해부하지만 묵상은 본문 속으로 들어간다. 공부할 때는 우리가 본문에 관해 질문하지만 묵상할 때는 본문이 우리에게 질문한다.

묵상은 경청기도의 기초

공부와 읽기가 성경 묵상의 준비이듯이 묵상의 경청기도의 준비다. 묵상의 초점이 본문의 말과 이미지라면 경청기도의 초점은 하나님 안에 잠잠히 있는 것이다. 묵상으로 하나님에 관한 진리를 음미한다면 경청기도로 그것은 우리 영혼에 달콤하게 흡수된다. 경청기도에 말은 아버지와의 교제보다 덜 중요하다.

세계의 타종교들에 심심찮게 시행된다는 이유로 묵상과 경청기도를 의심쩍게 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이 행위들을 다른 사람들이 사용한다고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사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경청기도의 방식은 동양종교의 명상 기법과 일면으로 유사해 보일 수 있다. 우리는 목표가 다르다. 동양 종교의 경우 명상의 목표는 무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목표는 하나님을 만나 자신을 비우고 그분의 이미지와 마음과 생각과 뜻으로 자신을 채우는 것이다.

경청기도는 다른 사람들을 향하게 한다

경청기도는 우리 심령을 안으로 돌려 우리 안에 행하시는 하나님을 느끼게 한다. 또한 동시에 우리 심령을 밖으로 돌려 다른 사람들을 향하게 한다. 사람들을 밀쳐내지 않고 오히려 그들과 주파수를 맞추도록 나를 준비시킨다.

 

2부 하나님을 경청하는 기도의 비결

05 경청기도는 하나님을 알고 그분과 사귀는 것이다

일상 속에 경험하는 경청기도

경청기도는 하나님께 주목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예수님 발아래 앉은 마리아는 경청기도의 산 그림이다.

하나님과 나누는 대화

하나님과의 꾸준한 교류는 듣는 마음과 열린 생각을 통해 가능해진다. 달라스 윌라든 “영적인 사람들은 자기 삶을 하나님과의 대화적 관계에서 길어 올린다. 그들에게는 그 너머의 삶이 있다”고 단언했다. 그 너머의 삶은 하나님과의 풍성한 대화로 충만하며, 그분과 연합된 삶에서 양분을 얻는다.

06 하나님께 몰입하여 듣는 마음

우리는 세상살이에 바빠 하나님의 성령을 망각한다. 하나님의 움직임을 의식하려면 내적 고독과 침묵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계속 나타나시며 늘 우리와 함께하시는 분이시다. 하지만 우리는 그분이 우리의 주목을 얻으려고 문 앞에 계심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경청의 길

경청의 길의 두 가지 주요 도구는 침묵과 고독의 영성 훈련이다.

침묵과 고독의 작업

침묵과 고독 속에 이루어져야 하는 필수적인 작업 중 하나는 우리를 문화의 요구에서 떼어놓는 것이다. 격리된 고요한 시간에 우리를 내면의 침묵을 얻으며 그것은 우리를 세상에서 자유케 한다. 그것을 우리를 하나님이 빚으시는 인간으로 자라도록 준비시킨다. 침묵도 고독도 처음에는 훈련을 요하지만 점차 즐겁고 신선해진다.

마음을 드린다

경청기도를 하려면 내면의 착한 아이 이미지를 버리고 대신 하나님 앞에 발거벗고 연약한 참 자아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아직 변화되지 않은 부분들을 벽장 속에 감춰두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와 하나님께 드린다.

듣는 마음에 들려오는 소리

침묵과 고독 훈련으로 마음을 드리면 들린다. 남들이 보고 듣지 못하는 것을 보고 듣는다는 말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한 평생(필립 켈러)

주 하나님을 그토록 깊고 친밀하게 알고 사랑하게 된 사람에게 있어 경청의 시간은 삶 전체에서 가장 값진 시간이다. 사랑하는 분과 회합하는 이 시간을 그들은 간절히 고대한다. 하나님을 대하는 막간의 이 시간이야말로 삶의 절정이다.

07 하나님께 깨어 있는 영혼 만들기

하나님 임재에 집중한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우선 그것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며, 그 임재가 좋은 것임을 머리로 동의한다는 뜻이다. 연습을 거치면서 처음의 이 지적 동의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대한 의식으로 자라간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의 임재 의식이 생겨난다.

하나님께로의 집중을 가장 잘 표현하는 방식은 아마도 우리가 하나님의 파장에 맞추어 그분이 생각하시는 대로 생각하기로 작정하는 것이다. 집중의 목표는 두 가지다. 집중하면 평온하고 고요해져 하나님의 임재를 더 잘 누릴 수 있다. 그리고 집중하면 하나님께 깨어 있을 수 있다.

08 질문으로 하나님을 삶에 모셔라

질문은 경청기도의 미완성적 특성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들에게 틀을 제공하기도 한다. 우리는 경청기도 중에 질문하고 기다린다. 바로 생각이 떠오를 때도 있지만 답은 어뚱한 순간에 찾아와 우리를 놀라게 할 때가 더 많다.

질문으로 하나님을 모셔들인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분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셨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할 일이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며 하나님께 여쭙는 취지는 그분 없이 독립적으로 행동하려는 우리의 집요한 성향을 막는 데 있다. 하나님께 묻는 훈련이 없이는 우리는 인간의 통상적 일 처리 방식을 따르기 일쑤다. 하나님이 인도를 구할 생각조차 없이 문제를 내 시각으로 판단하고 나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질문으로 우리는 내 크고 작은 상황 속에 하나님을 모셔 들인다.

하나님의 뜻의 그릇

하나님께 질문할 때 우리는 타인과 세상을 고쳐야 직성이 풀리는 태도, 하나님까지도 교정하고 지시하려는 교만한 성향을 내려놓을 수 있다. 대신 우리는 하루 종일 귀 기울여 듣는다.

09 경청기도 중 일어나는 일들

무엇보다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사랑받는 느낌이다. 기쁜 소식의 핵심은 사랑이야말로 경청기도의 핵심적인 특성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수용 안에 잠잠히 쉬는 평온한 느낌을 기대하라.

1. 놀라워하게 될 것을 기대하라

2. 일반적 명령에 대한 특별한 음성을 기대하라

3. 순종에 주어지는 특별한 은혜를 기대하라

4. 부족한 모습이 드러나게 될 것을 기대하라

5. 심령의 결점이 드러나게 될 것을 기대하라

6. 우리 영혼의 필요를 듣게 될 것을 기대하라

 

3부 경청기도에는 지혜가 필요하다

10 하나님 음성을 명확하게 듣는 비결

명확한 마음으로 기도하라

경청기도의 침묵은 우리 영혼의 원수에게 하나님 음성이 아닌 음성들을 가지고 끼어들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런 가능성 때문에 경청기도의 중요성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두려워서 성경 읽기를 비롯해 모든 영적 훈련을 하지 말아야 한다. 원수를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 뜻이 아니다.

하나님 음성을 식별하기

하나님을 성경에 나타난 그분의 참 모습으로 알면 우리는 ‘도적질하고 멸망시키려 오는 도적’의 음성도 식별할 줄 알게 된다. 도적의 음성은 하나님 음성과 달리 두려움을 이용해 위협하고 겁준다. 그러나 선한 목자 예수님은 양떼를 몰아가지 않고 이끄신다. 그분은 문을 차고 들어오시는 게 아니라 두드리신다.

11 경청가는 친구 없는 적적한 신비가가 아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긍휼

고금의 노련한 경청가들에 따르면 하나님은 경청기도를 통해 우리 마음을 확 넓혀주시며, 그래서 우리는 아는 사람들뿐 아니라 모르는 사람들까지 돌아보게 된다. 경청기도를 마칠 때 우리 마음은 설령 상대가 생면부지일지라도 주린 자, 목마른 자, 나그네, 벗은 자, 병든 자, 옥에 갇힌 자에게 공의와 자비를 베풀 준비가 되게 된다. 하나님께 주신 섬김은 하나님께 듣는 내용에서 나온다. 그것이 동기가 되어 당신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대변자가 되라는 그분의 부름에 응답한다.

빛과 소금 그리고 나

하나님과 대화적 관계 속에 살 때 영성 계발은 이루어지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 경청기도의 영적 훈련은 사람과 상황을 통제하려는 숨막히는 욕구를 흩어버리고 완벽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는 욕구를 녹여버린다. 나는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안다. 그들의 선의의 충고는 흥미롭지만 구속력은 없다. 나는 그들의 비판을 경청의 기도로 받아 하나님의 통찰을 기다릴 수 있다.

12. 하나님의 임재 안에 사는 삶의 비결

하나님 임재 안에 사는 삶

경청기도 시간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에 준비된다. 로렌스형제는 그것을 ‘하나님의 임재 연습’이라 했다. 이런 경청기도의 생활방식 속에서 삶의 각 상황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차된다. 아무것도 하나님을 피해갈 수 없다. 우리는 하루 종일 하나님과의 하나됨 안에서 산다.

헨리 나우웬, 하나님과 단둘이 보내는 시간을 훈련하면 할수록 우리는 하나님이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되면 분주하고 활동적인 삶의 한복판에서도 그분을 알아볼 수 있다. 우리 심령은 우리가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하든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는 고요한 방처럼 된다.

삶 전체에서 하나님께 주목하는 법

1. 활동의 한복판에서 내적 고독으로 들어간다.

2. 삶을 분열시키지 않는다. 경청기도의 길은 하나님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삶이다. 신앙 따로 건강, 직장, 가정, 봉사 따로의 분리된 삶이 아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서 흘러나오면 성과 속의 구분이 흐려진다. 기도와 삶이 통합되면 경청기도의 질이 향상된다.

3. 반응을 유보한다. 충분한 여유를 갖고 하나님께 “어찌된 일일까요?” 물으며 그분이 주실 말씀에 나를 내맡기면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더 잘 들린다.

4. 일 속에 기도를 불어넣는다. “육체노동이 어떻게 기도일 수 있나? 손으로만 아니라 마음으로 일할 때, 일을 통해 하나님의 피조세계와 더 가까워지고 하나님의 땅을 경작하라는 인간의 본분에 가까워질 때, 일은 기도다.”

5. 평범한 것 속에서 하나님을 알아본다.

6. 자신의 핵심문구를 사용한다.

서구 지성인들은 영성을 따로 분리시키는 경향이 있지만 그건 하나님을 제한하는 것이다. 우리의 영적 삶은 가정, 직장, 교회, 동네 등을 대변하는 다른 조각들과 나란히 빵 덩이의 한 조각이 아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은 전체 덩이에 스며드는 누룩이다.

 

4부 경청기도 중 들려오는 하나님 음성의 내용

15 하나님은 기본 진리를 계시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말해 주신다

우리는 사랑받는 자다.

우리는 가치 있는 존재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큰 그림과 그분의 목적을 일깨우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로하신다

하나님은 사역으로 나아가도록 우리를 부추기신다

14 하나님은 어려운 진리를 계시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적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도전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신다

15.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신다

하나님은 슬퍼하신다: 사람들의 파멸을 인한 슬픔, 사람들의 악에 대한 고통, 사람들이 대가를 치르는 고통에 대한 슬픔

하나님의 침묵은 우리를 광야로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