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과 삶/크리스천과 독서

귀곡자(박찬설·공원국, 위즈덤하우스, 2009)

기독항해자 2012. 9. 14. 11:54

귀곡자(박찬설·공원국, 위즈덤하우스, 2009), 2012년 9월에 읽음


귀곡자는 어떤 일을 이루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특히 지도자라고 한다면 꼭 읽어야만 할 책이다. 그렇지만 사기꾼이나 모사꾼들은 읽어서는 안 되는 책이다. 자신이 사기꾼이나 모사꾼이라고 생각하면 이 책을 읽지 마라. 다른 사람들을 못 살게 굴고 망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선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읽어서 다른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일에 쓰일 수가 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사기꾼과 모사꾼들이 읽지 못하도록 금서목록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남이 읽으면 나쁘고 자신이 읽으면 좋은 책으로 여겨 몰래 읽던 책이다. 그런 사람은 모사꾼이나 사기꾼이다. 이런 사람들은 절대로 이 책을 읽어서는 안 된다. 아무쪼록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어서 지혜를 얻게 되기를 바란다.


21세기와 귀곡자

1. 귀곡자는 누구인가?

귀곡자는 중국 전국시대에 활약한 종횡가의 비조로 알려져 있다. 그 문하생이던 소진과 장의는 합종책과 연횡책으로 각국의 제후들에게 유세하여 천하에 이름을 날렸다. <손빈병법>으로 유명한 전국시대 군사전략가 손빈과 위나라의 명장 방연도 그의 문하생이었다.

2. 왜 귀곡자인가?

귀곡자는 하나의 큰 일을 이루어나가는 단계를 설명한 책이다. 특히 일을 수행하는 주체의 입장에서 일을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진행하여 마무리할 것인지를 설명한다. 귀곡자는 중국 고전 중에서 이러한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 대해 가장 기본적인 지혜와 방략을 제시하는 거의 유일한 책이다.


1부 총론

1. 패합(捭闔)/나아가서는 반드시 이긴다

패는 연다는 뜻이고, 합은 닫는다는 뜻이다. 문을 연다는 것은 곧 나간다는 것이고, 닫는다는 것은 지킨다는 뜻이다. 즉 나갈까 말까, 시작할까 말까를 결정하는 단계가 바로 이 단계다. 이 단계에서 귀곡자가 제시하는 출사의 요결은 반드시 주도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도적이라는 말은 일에 휘둘리지 않고 일을 장악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일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할 일이 있다. ‘과연 할 수 있는 일인가’를 생각하고 일 전체를 가늠해보는 것이다. 결국 일 전체를 먼저 가늠한 후 주도적으로 진퇴를 결정하는 것이 패합이다.

첫째, 형세를 읽고 출사한다.

첫 번째는 결정권자의 내심과 외부의 조건을 살펴서 닫고 여는 때, 즉 말할 때인지 아닌지, 일을 시작할 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라는 것이다.

“성인은 음양이 열리고 닫히는 것을 살펴 사물에 이름을 부여하고 성공하고 망하는 관건을 파악해서 만물과 시작의 끝을 주관했으며 사람들의 마음을 깊이 알고 변화의 징조를 미리 알아서 존망의 관건을 지킬 수 있었다.”

둘째, 결정권자들의 마음을 읽고 출사한다.

두 번째로는 나와 함께 일을 도모하고자 하는 사람을 잘 파악해야 한다.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사람을 파악하는 것은 일을 성공시키는 관건이다.

“현명한 사람이 있으면 못난 사람이 있고 지혜로운 사람이 있으면 어리석은 사람이 있고 용기 있는 사람이 있으면 비겁한 사람이 있고 어짊, 의로움 등고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사람들의 차이에 근거해서 어떤 때는 문을 열고 어떤 때는 잠가 단속하고, 어떤 때는 나아가고 어떤 때는 물러나고, 어떤 때는 상대를 천하게 쓰고 어떤 때는 귀하게 쓸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을 볼 때는 실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깊이 살피고, 상대가 좋아하는 것과 얻고자 하는 것을 따라주면서 그 의지를 살피고, 말을 자세히 듣고 꼼꼼히 되물어서 본심이 무엇인지 알아낸다. 그렇게 상대가 지닌 지략을 깊이 탐구하고, 나와 같고 다른 점을 비교해서 함께할지 여부를 결정한다.”

일을 한번 시작하면 변화무쌍하게 흘러간다. 비도 오고 눈도 올 수 있다. 작은 틈 때문에 종국에 바위가 깨지듯이 사람과의 관계도 깨질 수 있다. 때문에 일을 시작하기 전에 같이 일할 상대가 나와 완전히 의기투합할 수 있는 사람인지 살펴야 한다. 만약 상대가 나에게 투합하지 않으면 나 자신을 바꾸어 상대와 투합해야 한다.

셋, 계획이 완전히 섰을 때 출사하고, 출사하기 전에는 기밀을 유지한다.

세 번째로 일단 나갔으면 실패의 여지를 없애야 하고, 나가지 않고 닫고 있을 때는 쓸데 없는 기미를 보이지 말아야 한다.

“열 때는 넓고 상세함이 관건이고, 닫을 때는 은밀함이 관건이다.”

일을 하면서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일을 시작했으면 널리 정보를 구하고 빈틈없이 준비하라. 그러나 일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마치 그 일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듯이 초연하라. 일이란 시작한 후에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 실제로 이룰 준비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말을 앞세우면 작게는 기회를 잃고, 크게는 신의를 잃는다.

넷, 성공과 실패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네 번째는 상황이 극에 달하면 변화하니 그 변화를 거스르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일이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졌다고 교만해지지 말고, 과정에 어려움이 있다고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말라는 뜻이다.

“양은 움직여 나가고 음은 따라서 들어온다. (그런데) 양이 극에 달하면 음이 되고, 음도 극에 달하면 양이 된다. 양으로써(세력으로) 움직이는 자는 덕이 함께 생기고, 음으로써(형세를 따라) 고요한 자는 모습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양(우세한 처지)으로 음(열세)을 구할 때는 덕으로써 감싸고, 음으로 양과 맺을 때는 전력을 다 보여준다.”

중심을 취하면 주변은 정리된다

언제나 주변은 중심에 주도권을 빼앗긴다. 일을 시작하려면 일단 주도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주도권을 잡는 가장 좋은 방법은 중심을 차지하는 것이다.

힘이 없으면 칼을 뽑지 말고, 뽑았으면 돌아보지 마라

일이란 일단 시작했으면 일 자체를 장악할 방안을 바로 시행해야 한다.

함께 일을 하는 사람은 자기 몸의 일부분이다

형세가 바뀌면 방법도 바뀐다

판단은 언제나 틀릴 수가 있다. 중요한 것은 성공에 교만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려면 변화를 수용하는 태도를 갖출 필요가 있다. 바로 자신이 제어할 수 업는 형세를 거스르지 말라는 것이다. 만약 그가 그 형세를 객관적으로 받아들였다면 참담한 실패를 맞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뛰어난 자가 영원히 뛰어나지 않고 완전히 성공한 인간과 완전히 실패한 인간도 없다. 기회가 항상 있는 것도 아니지만 완전히 없는 것도 아니고, 위기가 상존하더라도 역전의 기회가 또 있는 것이다.


2부 준비단계

2. 반응(反應)/일에 관계된 사람의 진심을 파악한다

본격적인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그 다음에 필요한 것은 일을 같이 할 사람들의 진심을 파악하는 일이다. 일에 일단 탄력을 받으면 예기치 않은 변화가 계속 생긴다. 그 변화를 대하는 태도도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지금 기획하고 있는 일에 대해 사람들이 어떤 태도를 지니는지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정확히 듣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대일의 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협상에서, 깊은 인간관계에서 정확하게 듣는 것은 웅변보다 중요하다.

하나. 상대의 말을 경청하라

“우선 말에는 상징이 있고 일에는 비견할 대상이 있다. 그래서 상대방의 진심을 알고자 하면 상징과 비유를 쓰면 된다. 상징과 비유를 써서 유도하는 말을 던진 후 그 사람의 반응을 살피면 그 사람의 진심을 파악할 수 있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사실 잘 듣는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상대를 존중한다는 느낌을 줌으로써 상대에게 마음을 열고 나와 함께할 여유를 주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비슷하다. 내 말을 상대방이 경청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상대방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말을 진정으로 듣고 있다고 느끼면 그는 하고 싶은 말을 은연중에 할 수밖에 없다.

남에게 경계심을 주는 달변은 달변이 아니다-공자

둘. 상징과 비유를 써서 상대를 유도한다

“옛것을 살펴서 오늘날을 알고, 남을 알고 그에 비추어 나를 알았던 것이다. (지금 일이 진행되는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면) 옛것을 돌아보아 이를 살펴보아야 하는데, 일을 돌이켜서 살피며 비슷한 경우를 찾아내는 것은 성인의 뜻이요, 이렇게 하면 파악하지 못할 것이 없다.”

상대의 특성에 맞는 말로 본심을 유도한다-적벽대전의 명장 유수

상대의 외양을 통해 근심을 파악하고, 태연함으로 상대의 의심을 무너뜨린다-방통

상대방을 자극하여 본심이 드러나게 한다-제갈량

셋. 먼저 자신의 기준을 세워라

“자신이 기준을 정하지 못하면 상대를 바르게 활용하지 못하고 일의 쓰임이 교묘하지 못하게 되는데, 이것을 상대의 본심을 읽지 못해서 도를 잃었다고 하는 것이다. 자신을 깊이 관찰하여 먼저 기준을 정하고 남을 활용하면 그 방책은 형상이 없고 그 문을 볼 수도 없는데 이를 천신(최고의 경지에 달함)이라고 한다.”

자신의 기준을 정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이용할 수 없다고 한다. 자신이 먼저 기준을 정하고 남을 활용하면 나는 상대를 파악하되 상대는 나를 모르니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 자신의 기준을 세우려면 남을 알기 전에 나를 먼저 알아야 한다. 남에게 말을 걸 때 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면 유도하는 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상대의 반응을 파악하기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일을 하면서도 내가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그러면 동조자를 얻을 수 없다. 자신이 제대로 서 있지 않으면 남이 움직이지 않아도 상황이 자꾸 바뀐다. 내가 기준이 없는데 어떻게 일을 장악할 수 있겠는가? 기준이 없으면 상대방의 본심을 읽을 구체적인 방법이 없다.


3. 내건(內揵)/ 함께할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

내란 안으로 들어간다는 뜻과 안에 위치한다는 두 가지 뜻이 있다. 그리고 건이란 매우 긴밀하게 관계를 맺는다는 뜻인데, 원래 ‘막는다’ ‘닫아건다’는 뜻으로 어원적으로 빗장을 뜻하는 楗과 열쇠를 뜻하는 鍵 등과 동류다. 그 뜻은 상대방, 특히 나와 운명을 함께한 사람의 마음 안으로 들어가 빗장을 채우듯이 잠근다는 뜻이다. 그러면 나와 일을 함께하는 사람은 내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나와 분리되지 않아서 일을 마음 놓고 진행할 수 있으며, 어떤 경우에도 신뢰를 잃지 않아서 위험에 빠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내건은 일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공동운명체 같은 관계를 맺는 것을 말한다.

하나. 내건이란 결정권자와 한 몸이 되는 것이다

“내라는 것은 유세하는 말이 군주의 마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건이라는 것은 그 책략을 건의하면 그 건의가 군주의 뜻과 굳게 결합하는 것을 말한다.”

결정권자와 의기투합하는 정도를 내건이라고 얘기하지는 않는다. 상황에 따라 결정권자가 ‘거의 무조건적으로’ 나의 결정에 따르도록 하는 것이 내건이다. 이 정도면 사실 하나의 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주의할 점이 있다. 나의 의견이 결정권자의 의견과 완전히 같은 것처럼 보여야지 내가 결정권자를 끌고 다니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그래서 ‘조짐도 없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둘. 내건은 두 사람의 욕망을 일치시키는 단계적인 과정이다

내건은 단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것이다.

“모든 일에는 내건이 중요하다. 따라서 평소에 시작부터 잘 맺어놓아야 한다. 도덕으로써 맺거나, 당을 지어 친구가 되거나, 심지어 재물이나 여색으로써 맺을 수 있다.”

이 말은 도덕을 숭상하는 자와는 도덕으로 관계를 맺고, 서로 뜻이 맞는 사람과는 결합하여 붕당을 만들어 맺고, 아니면 재물, 미인 등을 바쳐서 맺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그 부류를 제대로 보아야’ 제대로 내건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셋. 내건이 되지 않는다면 미련 없이 물러나라


4. 저희(抵巇)/틈이 작을 때 미리 제거한다.

일을 도모하는 사람과 깊은 신뢰관계를 맺었다면 이제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귀곡자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균열의 조짐을 없애라고 한다. 실 같은 틈이 벌어져서 큰 틈이 되고 결국은 거대한 구조물도 붕괴되고 만다. 일을 하다 보면 모든 부분에서 틈이 생길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틈을 다 막을 수는 없다. 저희는 사전 행동이기 때문에 고도의 기술이 요구된다. 그리고 실패의 위험이 있다. 그래서 귀곡자는 틈을 막을 수 있는 기술을 최고의 기술이라고 말한다. 저희에게 성공하면 그 만큼 자원과 노력을 절약하게 된다. 또 실패의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여 프로젝트의 안정성을 높이게 된다. 그러나 효과가 큰 만큼 위험하므로 반드시 신중해야 한다.

하나. 작은 틈을 미리 막으면 큰 힘을 줄일 수 있다

“희라는 것은 틈이니, 틈은 곧 아주 작은 금을 말한다. 작은 금이 커져서 큰 틈새가 된다.”

틈이 커지면 막기가 아주 어렵다. 그러면 많은 자원과 인력을 희생하게 된다. 저희에 실패한 가장 큰 예는 국가가 침략당하는 것이다. 국가가 침략당하면 그 손실은 말할 수 없이 크다.

한꺼번에 많은 틈을 막는 역발상-조조

제일 나쁜 선택은 화근을 남긴 채 몰래 보는 것이다. 그러면 마치 횡재를 한 듯이 부하들의 약점을 잡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조직이 무너진다. 상하의 명령 관계로 이루어진 주종 관계에서 주군이 자신을 불신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누가 주군에게 목숨을 바쳐 충성하겠는가? 결국 상호 불신에 따른 조직의 약화만 있을 뿐이다.

둘. 상황에 따라 틈을 막는 방법은 달라진다.

틈을 막는 방법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최선의 방책은 이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 틈을 미연에 막지 못했다면 ‘막아 물리칠 수도 있고’, 그러지도 못한다면 ‘막아서 멈추게 할 수도 있고’, 일단 ‘막아서 감출 수도 있고’, 마지막으로 나의 힘에 의존하여 ‘막아서 내 것으로 만들 수도 있다.’

“천하가 혼란하고 갈라져 위로는 밝은 임금이 없고, 제후들은 도덕을 잃자, 소인배들이 도적이 되어 현인들은 쓰이지 못하고 성인들은 숨어버리고, 이익을 탐하는 자들이 거짓을 작당하니 군신이 서로 의혹을 품고, 토대가 무너지고, 이리하여 서로 쏘고 베며, 아비와 아들이 이산하여 서로 반목하게 되었는데 이를 ‘틈새의 싹’이라고 부른다.

셋. 틈을 막을 수 없으면 멀리 물러나라

저희의 방법을 쓰기 위해서는 틈의 조짐을 명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상황을 잘못 판단하면 부작용이 훨씬 클 수 있다. 저희란 무척 어려운 것이다. 극도의 세밀한 관찰이 없으면 틈을 메울 실마리도 찾을 수 없을뿐더러 오히려 일을 크게 그르칠 수 있다. 그래서 저희는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저희를 하려다 오히려 해를 입거나 작은 일을 어설프게 막으려다 문제를 더 크게 만든 경우도 수두룩하다. 그리고 툭하면 저희는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니다. 특히 저희술을 함부로 쓰면서 남에게 이를 드러내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신임받을 수 없다.

저희를 악용하면 인재를 잃는다-유방, 조고, 이사, 방연

인재를 쓰기도 전에 싹을 잘라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마음이 관대해져야 한다. 인재를 자르는 가장 큰 원인은 인재를 자신의 경쟁자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비자를 죽인 것은 동문수학한 이사였고, 귀곡자의 제자 손빈을 제거하고자 한 자 역시 동문수학한 제자 방연이었다.


3부 실행단계

5. 오합(忤合 )/형세를 살피고 기세를 탄다

오는 거스른다, 배반한다는 뜻이고, 합은 따른다, 함께 한다는 뜻이다. 오합이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어떤 사람과 함께하거나 헤어지는 것이고, 또 하나는 어떤 사태의 추이와 함께하든지 아니면 거스르든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오합이란 천시를 제대로 살펴 그 천시가 변하는 형세를 타고, 일단 그 형세를 탄 후에는 최선을 다하라는 내용이다. 일단 천시를 살피고, 그 천시에 자신이 부응할 수 있는지 자신의 능력을 살핀 후, 자신이 있을 때 방향을 정해서 일을 성취하라는 뜻이다. 뜻이 있고 능력도 있을 때, 또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을 때 바로 방향을 비틀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거스른다는 오의 의미이다.

하나. 오합의 기초-반복된 관찰로 대세를 읽어라

우선 합치고 등을 돌리는 것에도 방법이 있다. 그 방법은 하늘의 큰 뜻, 즉 변화의 큰 물결을 말한다.

“성인이 세상에 나와 몸을 세우고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하며 이름을 드높이는 이유는, 반드시 사물이 많이 모이는 것을 살펴서 천시가 적합한지 보고, 천시의 적합함을 근거로 일을 안 뒤에 그에 따라 자신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성인이 못 하는 것이 없고, 못 듣는 것이 없어서 일을 이루고 계책을 성공시키는 것은 천시를 따라서 함께 주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물이 모이는 것을 살핀다는 것은 세력을 본다는 것이다. 이 말은 사실 세의 향방을 본다는 것이다. 천시는 어떤 도덕의 명에 의한 것은 아니고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통해 관찰할 수 있는 것이다. 대세는 어떻게 파악하는가?

“오합의 방법을 천하에 쓸 때는 반드시 천하의 형세를 개량하여 이와 함께해야 하고, 나라에 적용할 때는 반드시 그 나라의 역량을 계량하여야 하며, 가정에 쓸 때는 가정의 역량을 계량하여야 하고, 자신에게 적용할 때는 스스로의 능력과 기세를 잘 재어본 후에 써야 한다. 크고 작음과 나아감과 물러섬에 그 방법은 모두 같으니 반드시 먼저 깊이 생각한 후에 계략을 정하고, 계략을 정한 후에 비겸의 술을 이용하여 실행한다.”

둘. 오합의 요결-천시는 대세와 윤리가 결합한 것이다

“성인의 수준에 도달하지 않으면 세상을 다스릴 수 없고 각고로 노심초사하지 않으면 일의 근본을 알 수가 없고, 상대의 본심을 전력해서 살피지 못하면 이름을 이룰 수 없으며, 나의 자질이 지혜롭지 않으면 군대를 쓸 수 없고, 진정으로 충실하지 못하면 상대방을 알 수가 없다.”

한마디로 일을 이루는 것은 결국 자신의 기량과 성실함에 달려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천시는 대세와 윤리가 합쳐진 것이다. 오합이란 이렇게 큰 흐름을 읽는 눈, 개인의 명철한 기준, 그리고 자신의 능력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어우러진 것으로 결코 시류에 기회주의적으로 영합하라는 뜻이 아니다. 보통 천시와 대비되는 뜻으로 시류라는 말을 쓴다. 시류야 아침저녁이 다르지만 천시는 그런 것이 아니다. 결국 천시는 안다는 말은 최종의 승자가 누가 되는지를 예상한다는 말이지 강해 보이는 세력에 빌붙는다는 뜻이 아니다. 짐승도 세력이 무엇인지 아는데 아무리 우둔한 사람이라도 세력의 강약을 모르겠는가? 주동하는 인간은 원칙과 명분을 갖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함께 보면서 세력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일을 만드는 사람이다.

셋. 오합의 전제조건-주도하는 판세를 만들어라

귀곡자는 오합의 전제를 덧붙인다. 바로 ‘너 자신을 알라’는 것이다. 자신이 주도하여 일을 하라는 뜻이다.

“그래서 오합의 도는 반드시 자신의 재능과 지예를 먼저 알고, 누가 능력이 나보다 못한지 알아야 ㅎ나다. 이런 후에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있으며, 종으로 갈 수도 있고 횡으로 갈 수도 있는 것이다.”

오합의 진짜 목적은 일을 마음대로 제어해서 일을 성공시키는 것이다. 자신과 주변의 상황을 먼저 파악하여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동서남북으로 자유롭게 움직이며 일을 주도하는 것이 오합이다.

“옛날에 대세를 잘 읽어 방향을 잘 잡는 사람은 우선 온 세상과 협력하고 제후들을 끌어안고 등을 돌리고 합칠 곳의 형세에 따라 상대의 변화를 시도한 후 그런 연후에 합쳤다.”

대세는 누가 읽는가? 바로 내가 주도적으로 읽는 것이다. 누가 제후들을 끌어안는가? 내가 제후들을 규합하는 것이다. 누가 상대의 변화를 시도하는가? 내가 상대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온 세상과 협력한다는 것은 천하의 여론을 수렴한다는 뜻이고, 제후들을 끌어안는다는 것은 일을 이룰 세력을 넓혀가는 것이고, 형세에 따라 상대의 변화를 시도한다는 것은 올바른 방향 제시를 통해 도덕적인 명분을 쌓는다는 것이다. 그런 후에 오합을 하는 것이다.


6. 췌마(揣摩)/정보에서 상대를 앞선다

췌란 헤아린다, 즉 추측한다는 뜻이다. 물론 추측을 하기 위해서는 근거가 필요하다. 마란 추측을 하기 위한 방법인데, 그 본뜻은 만져본다는 뜻이다. 췌마는 정보의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수행하는 테크닉이다.

하나. 췌마의 정의-상대방의 힘의 크기와 방향을 파악한다

상대를 파악하려면 일단 힘이 어떻게 배치되어 있는지 알아야 한다.

“옛날에 천하를 잘 쓰는 사람은 반드시 천하의 권세를 재어보고, 제후들의 진심을 알아냈다. 권세를 제대로 살펴보지 못하면 누가 강하고 누가 약한지 정황을 알지 못하고 진심을 면밀하게 보지 못하면 숨어 있는 변화의 양상을 파악하지 못한다.”

권세를 잰다는 것은 객관적인 세력 관계를 살핀다는 것이다.

“권세를 잰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나라의 땅이 얼마나 크고 작은지, 백성과 생산품의 총량은 어느 나라가 큰지, 백성들은 어느 쪽이 부유한지, 지형의 험난함과 평탄함은 누구에게 유리한지, 군주들의 지혜는 누가 더 뛰어난지, 군신 간의 사이는 얼마나 친한지, 누가 현명하고 못났는지, 실력 있는 빈객들은 누가 더 많은지, 천시의 회복을 보면 누구에게 길하고 흉한지, 제후 사이의 친밀함을 보아 누구를 쓰고 말지, 민심의 형배를 볼 때 누가 위험하고 안전한지, 백성들은 누구를 좋아하고 증오하는지, 누가 상황에 따라 몸을 재빨리 움직여 변신을 꾀할지를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췌마의 두 번째 단계는 상대의 힘의 방향을 파악하는 것이다. 객관적인 세력을 파악하는 것으로 상대를 다 파악했다고 할 수 없다. 상대의 힘의 크기는 알았지만 힘의 방향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의 숨겨진 마음을 추측해봐야 한다.

둘. 췌마의 요결-상대가 모르게 상대의 욕망을 건드려야 진심이 나온다

“본심을 측량(췌정)할 때는 반드시 상대가 기뻐할 때 욕망을 최대한 부채질하는데, 욕망이 있으면 본심을 숨길 수 없다. 또 가장 두려워할 때에 두려움을 극대화시켜야 하는데, 두려움이 있으면 역시 본심을 숨길 수 없다. 결국 가슴속에 욕망이 있으면 그 욕망의 변화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마를 쓸 때는 상황에 따라 평, 정, 희, 노, 명, 행, 렴, 신, 리, 비 등을 이용할 수 있다. 즉 평정을 유지하든지 혹은 방정한 태도로 상대의 진심을 유도하든지, 스스로 기쁨을 내비치거나 상대를 기쁨에 들뜨도록 만들든지, 나의 이름을 내세우거나 상대의 이름을 높여서 분발하게 만들든지, 힘써서 일을 성취하도록 북돋는 말을 하든지, 자신의 깨끗함을 내보이거나 상대가 추구하도록 하든지, 먼저 신의를 보이거나 상대가 지키라고 하든지, 이익을 보여서 좇도록 하든지, 아첨을 하든지 등 상대가 내부에 숨겨진 본심을 은연중에 드러내도록 상황에 맞는 방법을 쓴다는 뜻이다.”

“계책을 쓸 때는 반드시 주도면밀해야 하며 반드시 서로 뜻이 통할 수 있는 상대를 골라서 유세를 해햐 한다. 이렇게 해야 사로 맺어도 틈이 없게 된다. 대체로 이를 성공시키려면 반드시 방법이 합당해야 하는데, 이것을 전체적인 전략과 구체적인 전술 그리고 시기가 서로 맞아떨어졌다고 한다. 유세를 할 때는 상대의 본심을 제대로 들어야 한다. 이것을 ”본심이 서로 통하면 듣는다“라고 하는 것이다. 장작 묶음에 불을 지피면 잘 마른 곳부터 타고 땅에 물을 부으면 낮은 곳부터 고이는 것처럼, 사물은 서로 어울리는 부류가 있어서 비슷한 세력끼리 호응한다. 따라서 내부의 신호가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상대와 비슷한 부류가 되어서 은근슬쩍 본심을 추측해 보는데 어떻게 반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 상대의 욕망을 건드려서 추측해보는데 어떻게 내 말을 듣지 않을 수 있겠는가? 따라서 이것을 유일무이한 최고의 방법이라고 하는 것이다.”


7. 비겸(飛箝 )/상대를 높여 상대를 제압한다

비란 띄운다, 즉 칭찬한다는 뜻이다. 겸은 쇠사슬로 묶는다, 혹은 집게 따위로 꽉 잡는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한마디로 꼼짝 못하게 잡는다는 뜻이다. 비겸은 상대를 앞에 두고 설득이나 협상을 벌이는 첫 번째 초식이라고 할 수 있다. 비겸을 현대적인 의미로 해석하면 이렇다. “상대를 높이는 것이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다.” 상대를 높인다는 의미는 내가 비루해진다는 의미가 아니다. 내가 높은 지위에 있다면 상대를 겸손하게 해서 마음을 얻고 내가 지식이 뛰어나면 상대의 지식을 인정하여 그의 경계심을 없애고 내가 부유하면 상대가 더 부유해질 수 있음을 알게 해서 계층의 거리감을 없앤다는 의미다. 그런데 만약 내가 지위도 없고 지식도 없고 부유하지도 않으나 정직하게 살면서 상대의 깨끗함을 존중해 그가 나를 더 인격적으로 대하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비 즉 상대를 띄운다는 말의 현대적 의미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느 지점에 서 있는가이다. 어떤 방면에서 자신보다 못한 사람이 있다면 그를 높여서 긍지를 심어주고, 어떤 방면에서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은 그 점을 인정해서 마음의 벽을 넘어서는 것이 바로 띄운다는 것이다.

하나. 비겸의 사전 조건-객관적 상황, 결정권자의 능력과 진심을 파악한다

“천하에 비겸의 방법을 쓸 때는 천하의 권세와 능력을 파악한 후, 천시의 흥망과 성쇠, 땅의 넓음과 좁음, 지형의 험준함과 평탄함, 인민과 재화의 다소, 제후들 간의 친함과 소원함, 애정과 증오, 군주(제후)가 마음에 품고 있는 바를 함께 꿰뚫어야 한다. 군주의 뜻을 잘 살펴 좋아하고 싫어하는 바를 파악한 후, 그가 중시하는 것을 집중적으로 유세하는데, 비겸의 말을 써서 그 좋아하는 바를 낚아챈 후, 꼼짝 못하게 그를 잡는다.”

둘. 비겸이 요소-칭찬을 이용한다.

귀곡자에 의하면 비겸의 목적도 세력을 형성하여 일을 성사시키기 위함이다. 그러자면 능력 있는 사람들을 모아야 한다. 그래서 귀곡자는 “그 능력을 살펴보아 일을 바로잡을 능력이 있으면 쓴다”고 말한다. 나와 함께할 수 있고 또 능력 있는 인물이라면 반드시 잡아야 한다. 어떻게 잡는가? 귀곡자는 “낚아서 꼼짝 못하게 하는 말을 써서 띄워준 후 묶는다”라고 이야기한다. 이것이 바로 비겸이다. 비겸의 핵심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이고 결국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귀곡자는 설득을 하려면 상대를 높여주라고 한다. 상대를 높이면 상대는 은연중에 안정을 잃고 마음이 동요한다. 마음이 동요하면 상대는 자신의 본심을 토로하는 데 바로 그때 장악하라는 것이다.

“일단 상대를 칭찬하는 말로 띄워서 환영하고 따르다가 기회를 봐서 꼼짝 못하게 장악하고 뜻으로 친하게 된다. 남에게 쓸 때는 내가 칭찬하는 빈말을 던지면 상대는 본심을 드러내서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제약하는 말을 한다. 이를 놓치지 말고 상대의 말을 자세히 탐구하면 자기 마음대로 사람을 이끌 수 있다.”


8. 권(權)/말의 힘으로 상황을 주도한다

권이란 원래 저울추를 뜻한다. 권의 가장 원시적인 의미는 나와 주위 사람들이 처한 상황을 판단하는 것이었는데 의미가 확장되어 상황에 따른 의미가 확장되어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이라는 뜻이 추가되었다. 그래서 권모라고 하면 상황에 따라 꾀를 낸다는 뜻이다. 권이란 상황에 따른 말의 변화를 뜻한다.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는 것과 거짓말을 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거짓말은 수동적인 위치에서 하는 선택이다. 반면 상황에 따라 말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상황을 먼저 파악하여 핵심을 찌르는 말만 사용한다는 것이다. 말의 힘으로 상황을 주도적으로 끌어가는 것이 바로 말을 변화시킨다는 의미이다.

귀곡자가 강조하는 말의 요지는 상대방의 말을 꺾으려 해서 힘을 낭비하지 말라는 것이다. 말을 할 때는 일단 상대방을 피로하게 해서는 안 된다. 상대방은 말하는 나 못지않게 바쁘다. 일단 그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을 주어야 한다. 정말로 원하는 것을 준다면 상대방은 피로를 잊는다. 그 때 더 많은 말을 해도 늦지 않다.

하나. 말의 힘을 믿어라

“세라는 것은 상대를 설득하는 것인데, 상대를 설득하는 것은 그를 이용한다는 뜻이다. 말을 꾸미는 것은 말의 힘을 빌리는 것이고, 말의 힘을 빌린다는 것은 어떤 것은 빼고 어떤 것은 늘려서 말을 만든다는 뜻이다.”

남을 설득하려는 사람은 최소한 ‘거침없이 말에 능해야 한다.’ 거침없이 말에 능해야 한다고 해서 굳이 아첨하고, 잡다한 지식으로 본심을 숨기는 일까지 할 필요는 없다. 말을 할 때 결단을 보여주는 것과 말을 통해 스스로를 보완하는 것 또한 반드시 배워야 할 점이다. 귀곡자는 결단은 의심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결정이 있은 후 의심하지 않는 것을 결단이라고 한다. 그러면 말에 힘이 생긴다. 결정이 오락가락하면 말이 힘을 잃는다. 그리고 결점을 보완한다고 하는 것은 상대방의 말에서 보충할 것을 얻는다는 뜻이다. 그러면 말이 정밀해져서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상대를 이기기 위해 달려들지 않더라도 스스로의 결점을 보완하면 승리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말을 잘하고, 잘 들어야 하는 이유는 말은 쓰이는 상황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이다.

말을 제대로 쓰고 말이 진시로 힘을 지니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귀곡자는 입과 귀와 눈을 유기적으로 쓰라고 말한다. 말은 변화가 있어서 아첨하는 말도 충언으로 둔갑한다고 한다. 그래서 마음의 또 다른 문인 귀와 눈을 잘 활용해야 한다.

“입은 말이 드나드는 문이 본심을 숨기는 역할을 한다. 귀와 눈은 마음을 보조하는 것들이어서 말로 살피지 못하는 틈을 살피고 간사한 것을 가려내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입, 귀, 눈이 조화롭게 응해야 방도에 맞게 움직일 수 있다.”

상대의 말을 들을 때는 말 자체와 함께 눈과 귀를 통해 상대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말이란 정말 무서운 것이다. 한 사람이 말을 왜곡할 수도 있고 여러 사람이 말을 왜곡할 수도 있다. 그래서 귀곡자는 “여러 사람의 입은 쇠도 녹일 수가 있으니 삿된 마음으로 바른 것도 왜곡할 수 있음을 말함이다”라고 경계한다. 따라서 귀를 열어 상대의 말을 정밀하게 듣고 눈으로는 상대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내가 말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말은 상대의 귀와 눈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한다. 말 자체가 상대의 흥미를 끄는 것은 상대의 입, 즉 구미를 맞추는 것이고, 논리가 빈틈이 없는 것은 상대의 귀를 만족시키는 것이고, 거짓을 버리는 것이 상대의 눈을 맞추는 것이다. 눈인 평온하고 흔들리지 않되, 그 빛깔이 맑은 사람은 대체로 진심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진심으로 말을 하면서도 두려움에 떨거나 자신감을 잃으면 눈이 흔들린다. 말을 할 때 자신감을 가지면 눈이 흔들리지 않는다.

둘. 상대를 꺾지 말고 상황에 맞게 활용하라

귀곡자는 말을 하는 요결을 제시하고 있다. 그 요결은 말로 남을 꺾지 말라는 것이다. 설득의 핵심 요결이다. 절대로 말로 남을 꺾으려 하지 마라. 물론 남을 꺾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목적이 아님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목적은 귀중한 여러 가지 자원을 투입해서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것이다. 말을 통해서 상대가 우리의 목표를 납득하고 우리의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하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즉 우리의 목적은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해서 상대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남이 자신의 말을 들어주기를 원하고, 일을 할 때는 꼭 성공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단점을 쓰지 않고 어리석은 사람의 장점을 이용하며 자신의 못난 부분을 쓰지 않고 어리석은 사람이 잘하는 부분을 이용한다. 그러니 자신이 피곤할 필요가 없다.”

귀곡자는 나의 단점을 쓰지 말고 상대의 장점을 쓰라고 한다. 소는 밭을 갈고 사람은 소에게 방향을 잡아 준다. 쟁기를 끄는 데 사람이 소보다 나을 수 있을까? 사람이 쟁기를 끌면 힘이 금방 소진된다. 그러나 소의 힘을 이용하고 방향만 잡아주면 힘이 들지 않는다.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는 요지는 바로 이것이다. 힘이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다. 귀곡자는 상대방을 꺾지 말고 그 힘, 혹은 그 욕구를 이용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바로 상대의 논리를 이용하여 상대를 설득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박식함을 쓰고, 어리석은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명쾌하게 판단하고, 판단이 좋은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그 요점을 잡는 것에 의지하고, 신분이 귀한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기세를 유지하고, 부유한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고상함을 지키고, 가난한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그 이익을 제시하고, 천한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겸손하고, 용감한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과단성을 보여주고, 허물이 있는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예리하게 지적해야 한다.”

셋.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는 말을 삼가라

귀곡자는 병든 말, 원망하는 말, 걱정에 떠는 말, 분노하는 말, 기쁨에 들뜬 말은 신중하게, 아주 정통한 후에 쓰라고 한다. 병든 말이란 허약하고 확신이 전혀 없는 말을 말한다. 주장이 나약한 말을 하면 군중의 마음이 흐트러진다. 말은 마음의 문이니 심기가 흐트러진 상태에서 나오는 말은 은연중에 마음이 흐트러졌음을 드러낸다. 원망하는 말은 상대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급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생각이 있을 수가 없다. 그저 감정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분노하는 말도 마찬가지다. 걱정에 떠는 말은 생각이 갇힌 사람들의 말이다. 생각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를 맴도는 상황이다. 기쁨에 들떠 있다는 것은 마음속의 열정 때문에 의도하지 않은 말들이 나오는 상황이다.

선조는 원망하는 말을 가장 많이 한 조선의 임금이다. 그의 논리는 이렇다. “나라를 이렇게 만든 것은 과인의 실수다. 그러나 과인을 보좌하지 못한 것은 그대들의 실수다.” 그래서 어떤 때는 김성일, 어떤 때는 유성룡, 어떤 때는 이순신, 어떤 때는 정철, 어떤 때는 윤두수가 그대들의 목록에 올라갔다. 지도자가 이런 원망하는 말을 자주하면 아래에서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 “나라를 망친 것은 왜적의 침략을 묵살한 김성일 때문이다” “김성일의 배우는 모두 유성룡이다” “이순신이라는 자는 믿을 수 없다” 등등의 말이 여과 없이 나온다. 그런 후 다시 자신의 잘못을 잊으라는 청을 하니 신하들이 진심을 다할 수가 없다.


9. 모(謀)/사람을 움직여 일을 성사시킨다

모란 실제로 지략을 써서 일을 이룬다는 뜻이다. 이제 장애를 제거하고, 사람들과 경쟁하고 화합하면서 일을 이룰 차례다. 귀곡자는 항상 상대방을 꺾으려고 하지 말고, 흐름을 타서 일을 도모하라고 말한다.

하나. 모든 사람을 다 쓸 수 있다

품격이 높은 사람이라면? 그가 가진 것을 쓰게 하라. 기백이 있는 자라면? 그 기백을 꺾지 말고 어려운 일을 시켜라. 비범하고 센스 있는 자라면? 트릭을 쓰기보다는 높은 목표를 주어 공을 세우게 하라.

“대개 어진 사람은 재물을 가볍게 여기므로 이익으로 유혹할 수는 없지만 오히려 일을 할 비용을 쓰게 할 수는 있다. 용감한 자는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으므로 우환으로 겁을 줄 수는 없지만 위험한 곳을 지키게 할 수는 있다. 또 지혜로운 자는 술수와 이치에 밝으니 속일 수는 없지만 도리를 내세워 공을 세우게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어리석은 이는 쉽게 속일 수 있고, 모자라는 유약한 이들은 쉽게 겁줄 수 있고, 탐욕스런 자들은 쉽게 유혹할 수 있다. 각각의 방법은 일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인재는 꺾지 않는다-어성룡을 등용한 강희제

두려움을 무서워하지 않는 용기가 있는 자는 쉽게 굴복시킬 수 없다. 신념이 있는 사람들은 소신을 굽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능력에 맞는 자리를 찾아주면 큰 일을 이루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쉽사리 쓰기는 어렵지만 대신 크게 쓸 수 있다.

둘. 객관적인 형세를 정확히 설명하는 것이 주장을 펼치는 것보다 중요하다

객관적인 정세를 이용하여 상대를 설득하는 것이다. 즉 상대가 의심하는 바에 따라, 견해에 따라, 말하는 바에 따라, 형세에 따라, 싫어하는 바에 따라, 그리고 걱정거리에 기대어 일을 도모한다.

“상대가 의심하는 바를 역이용해서 변화를 유도하고, 견해를 역이용해서 나의 말을 믿게 하고, 논리를 역이용해서 강요하고, 그 세력을 이용해 일을 성취하고, 싫어하는 바를 이용해 계략을 펼치고, 걱정거리를 이용해 꺾어버리는 것이다. 은근히 건드려서 겁을 주고, 높은 논리를 펼쳐 흔들고, 상세한 논증으로 일을 증명하고, 신호를 보내서 응해보고, 둘러싸서 막아버리고, 어지럽게 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하는 것을 바로 계략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셋. 일이 완성되기 전에는 기밀을 유지하라

세 번째로 귀곡자는 일은 은밀하게 기초를 닦은 후에 시작하고, 믿을 수 있는 상대와 함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일은 사적으로 하는 것이 드러내놓고 하는 것보다 낫고, 그보다는 결맹하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한다. 결맹한다는 것은 틈이 없다는 것이다.

넷. 유연함과 변화가 지혜의 힘을 배가시킨다

다섯. 지혜는 전술이 아니라 전략적 사고다

귀곡자는 일을 이루려 할 때 형세를 거스르고 섣불리 상대를 꺾으려 하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상대가 원하지 않는 것을 강요하지 말고 상대가 모르는 바를 가르치려 하지 말라. 상대가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배워서 따르고 싫어하는 것은 일부러 피한다. 더 나아가 제거하고 싶은 자가 있으면 이를 놓아주고 놓아준 후에는 이를 이용하여 기회를 본다. 정면으로 부딪히는 것만 능사가 아니다.

여섯. 상황에 휘둘리지 말고 상황을 주도하라

판을 좌우해야지, 판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남에게 제어당하면 목숨까지 위태롭다. 제어당하지 않는 최고의 방법은 무엇인가? 적수라면 완전히 파악하고 자신의 권역 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틈도 없이 완전히 심복하게 하는 것이다.”


4부 최종단계

10. 결(結 )/ 마지막 결단으로 성과를 얻는다

일에는 변수가 수도 없이 많다. 예기치 않은 일은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고, 단 한 번의 결정이 전체의 성과를 좌우하기도 한다. 세상 모든 일은 결정에 의해 좌우된다. 대체로 지혜가 부족한 사람이라도 결단력이 있으면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지혜가 뛰어나도 결단력이 없으면 남을 위한 일을 해서는 안된다. 마지막 순간 결단을 하지 못해서 일을 그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 결단의 목적은 나와 결정권자의 실질적 이익이다

“대개 남을 위해 결단을 내릴 때는 반드시 상대가 의심하는 바를 해결해야 한다. 상대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잘 이용하고 걱정거리와 손해를 피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유혹이 와도 시종 흔들리지 않아 이익이 있다.”

결단을 하는 것은 한마디로 현재의 불확실한 상황, 즉 의심을 정리해서 역량을 집중시킨다는 뜻이다. 그리고 결단의 기준은 구체적인 이익이다. 구체적인 이익을 보장하지 못하는 결단은 정세의 변화에 취약하다.

둘. 자신의 실력과 객관적인 상황에 맞는 결단을 내려라

일을 우리는 방법은 객관적인 상황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객관적인 상황을 인식한다는 것은 물론 자신의 실력을 측정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자신의 실력에 일을 하는 방법은 다달라진다. 귀곡자는 성인이 능히 그 일을 이루는 데는 다섯 가지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바로 양으로 덕을 베푸는 것, 음으로 공격하는 것, 성심을 다해 신의로 대하는 것, 가려 숨기는 것, 평소처럼 행하는 것이다. 양으로 베풀기 위해서는 압도적인 힘의 우위가 필요하다. 음으로 공격하는 것은 백중세일 때 쓰는 전략이다. 성심을 다해 신의로 대하는 것은 싸움을 피하고 상대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일 때 쓰는 전략이다. 가려 숨기는 것은 자신이 열세에 있을 때 약점을 숨기는 전략이다. 평소처럼 행한다는 것도 열세에 처했을 때 당황하여 상대에게 나를 공략할 기회를 주지 말라는 의미다.

귀곡자는 자신의 역량과 객관적인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매우 고전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온고지신, 즉 과거를 배워 현재를 알고, 미래를 예측한 후에 결단을 내린다는 말이다. 현재를 관찰의 기초로 두고, 과거의 관찰을 미리 검증하는 척도로 만들면, 미래는 과거와 현재의 관찰을 기초로 투사하여 미리 예측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한 번의 잘못된 결단으로 일 전체가 망가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셋. 최고결정권자는 이익에 명분과 책임을 더하여 결단한다

“공경대부와 왕이라면 위태롭더라도 그 이름을 밝힐 수 있는 일은 할 수만 있다면 해야 하고, 비용과 힘을 들이지 않고 쉽게 이룰 수 있는 일이라면 할 수 있다면 해야 하고, 많은 수고와 각고의 노력이 드는 일이라도 부득이 해야 하는 일이라면 할 수 있다면 해야 하고, 우환을 제거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할 수 있다면 해야 한다.”

최고결정권자는 부득이한 결단을 할 때가 있다. 그것은 명분과 관련이 있다. 또 많은 어려움이 뛰따르더라도 미래를 위해 해야 하는 일이다. 각고의 노력이 든다는 말은 실패시 책임을 질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단이란 어려운 것이다. 과거의 가장 뛰어난 지도자도 결단시 하늘의 뜻을 물어본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최고결정권자는 최고수준의 결단을 내려야 한다-장자

최고결정권자의 결단은 객관적인 관찰에 명분이 더해져야 하고, 거기다가 반드시 할 수 있는 것을 하되 아래 사람들을 희생시키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결단은 한번 내리면 주워 담지 못한다. 이렇게 무엇인가를 결단하는 일은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