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과 삶/경건서적산책

회복의 하나님을 붙들라(어윈 루처, 김진선, 토기장이, 2011)

기독항해자 2012. 9. 7. 12:19

회복의 하나님을 붙들라(어윈 루처, 김진선, 토기장이, 2011), 2012년 9월에 읽음



1장 인류 최악의 결정/감사하게도 그것은 항상 누군가 다른 이들의 결정이었다

잃어버린 낙원

인류의 최악의 결정을 한 공로를 인정받을 이는 아담과 하와이다. 그러나 그들이 자초한 비극을 최대한 활용하고 돌이킬 힘이 하나님께 있고 또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그렇게 해 주실 분임을 우리가 확신한다면, 그분이 우리도 기꺼이 도와주실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의 선택

아담과 하와처럼 욕망을 따라갈 때 우리는 종종 쉬운 길을 택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마음을 들여다보는 창

마음에 원하는 게 있으면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그것을 정당화시키려고 머리를 굴린다. 인정하든 인정하고 싶지 않든 인간은 자기 욕망의 지배를 받는다. 스스로는 합리적 판단에 따라 결정한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우리에게 훨씬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우리의 욕망과 욕심이다.

영원히 잃어버린 낙원

어리석은 결정들을 되돌 수 있기를 원하지만 그 모든 그릇된 결정들로 인해 생긴 장벽 때문에 이전의 아름다웠던 시절로 결코 돌아갈 수 없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에게 낙원의 문이 닫히고 있을 때조차 희망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하나님은 상하고 깨진 우리 인생의 파편들을 사용해 선하고 아름다운 작품을 여전히 만들 수 있음을 확인해 주신다.

희망과 후회와 상실

알베르트 까뮈는 ‘타락’이라는 책에서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신의 무고를 주장한다. 설령 온 인류와 하늘 자체를 정죄해야만 한다 해도 말이다”라고 쓰고 있다.

수치를 가려주는 가리개

범죄한 후 아담과 하와는 무화과 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 하지만 무화과 잎사귀로 서로의 수치를 가릴 수 있었을지는 몰라도 스스로 만든 그 옷이 하나님의 면전으로부터까지 그들을 숨겨줄 수는 없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시들지 않는 옷이 필요함을 아셨다. 오직 그분만이 줄 수 있는 비싼 가리개가 필요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옷을 지어 입히시고 그들과의 교제가 회복되게 하시고 그들의 죄와 수치를 덮어 주셨다.

우리 죄를 해결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 죄책과 수치를 가려 주시기 위해 무화과 나뭇잎과 짐승 가죽보다 더 영구적이고 효과적인 것을 준비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도록 하신 것이다.

두 번째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

에덴에서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 옷을 입혀주신 하나님은 두 번째 기회의 하나님이셨다.

죄가 많을수록 넘치는 은혜

아담과 하와가 잘못된 결정을 내린 결과 이제 죄와 은혜가 항시 공존하고 있다. 저주만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도 있다.


2장 차선을 선택했을 때/잘못된 길을 걸어갈 때 하나님을 의지하기

잘못된 결정을 하면 악순환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 있다. 끊임없이 실패자가 될 것이라고 악담을 들으며 성장한 사람은 그 인식대로 행동할 경향이 아주 강하다. 한 번 잘못된 결정을 하면 계속해서 잘못된 결정을 하게 되고 그런 악순환은 절망감 속에서 필사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구할 때까지 통제 불능 상태로 치닫는다. 하지만 이미 인생의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하고 나면 다시 그 결정을 돌이키기가 절대 쉽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희망은 있다.

우리에게는 항상 우리가 내릴 수 있는 하나의 옳은 선택이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인생과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일이다.

하나님과 우리의 차선

일단 결정이 이루어지고 난 다음에는 그 결정을 되돌릴 수 없다. 실제로 바로 다음 날 마음을 바꾸었지만 하나님은 이미 때가 늦었다고 말씀하셨다.

가중된 대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대로 선택할 수는 있었지만 그 결과를 선택할 자유는 없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징계하시더라도 우리 인생과 우리가 처한 환경을 외면하시지 물러나지 않으신다. 우리가 있는 그곳에서 우리와 함께 일하신다. 심지어 가도가도 끝없는 사막어처럼 보이는 곳이라고 해도 그곳에 함께 계신다. 우리가 잘못된 결정들의 여파에 시달린다 해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항상 하신 대로 우리를 대하실 것이다.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며 우리를 용서해주실 것이다. 우리가 어리석은 결정을 했다 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거나 버리지 않는 분이시다. 때로 우리의 어리석음으로 하나님의 최선의 결정이 드러난다.

하나님의 심판과 은혜

용서의 축복

하나님의 은혜가 죄의 결과를 지워주지는 않지만 용서는 끊임없는 자기 정죄와 후회의 고통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해 준다. 지난 날의 관계들을 다 회복시켜 주거나 우리가 허비한 시간들을 되돌려 줄 수는 없지만 우리 마음을 치유해 준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언제나 용서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과거의 죄가 용서함을 받으면 미래의 희망이 생긴다.

자녀들의 받은 유업의 축복

자녀들은 부모의 전철을 밟을 필요가 없다. 가족 내부의 반복되는 전형적인 실패의 악순환을 하나님의 은혜로 능히 극복할 수 있다.

일용할 영식의 축복

일주일에 6일간 그들에게 만나를 공급하기로 하시고 심지어 그들이 고기를 먹고 싶어할 때는 메추라기를 주셔서 배불리 먹도록 해 주셨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축복

스스로의 결정을 고수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인도해 주겠다는 약속을 주지 않으신다. 하지만 전심을 다해 그분을 구하즌 자들에게는 기꺼이 손을 내밀어 이끌어 주신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축복

하나님의 능력이 미치지 못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지 못할 상황은 절대 없다. 절대 기도하기를 포기하지 말자. 구하기를 중단하지 말자.

여호수아와 갈렙이 받은 축복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 해도 부모나 배우자 혹은 상사나 친구와 같은 타인의 실수와 불운 때문에 고통당할 수 있다. 그런 잘못된 선택들의 후유증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하나님께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리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한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광야 생활을 한다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 계신다. 나치의 공포스러운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코리 텐 붐 여사가 말한 대로 “하나님의 사랑이 미치지 못할 정도로 깊은 구덩이는 없다.”

우리의 차선이 하나님의 최선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연을 구속하실 수 있지만 그 일은 하시도록 우리가 마음을 열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은혜는 스스로를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임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그 은혜를 구하는 자들에게 임한다.


3장 결혼 생활이 수렁에 빠졌을 때/어리석은 맹세를 했다는 후회에 시달릴 때

서약의 본질

서약은 조건을 배포하고 있는 약속과는 다르다. 서약이란 더 엄격한 수준의 약속으로써 맹세한 동등한 표현이다. 하나님은 서약이나 맹세를 매우 엄격하게 받아들이신다. 결혼 서약은 모든 서약과 맹세 중 가장 신성한 것이다. 그 서약을 파기할 수 있는 어떤 조건도 암시되어 있지 않다. 결혼 생활이 어려움이 생긴다 해도 그 서약은 절대 무효화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어리석은 서약을 축복하신 날

하나님께서 어리석은 서약을 축복하실 수 있을까? 물론이다. 그분이 축복하신다고 해서 어리석은 서약이 지혜로운 서약으로 내용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분은 우리의 어리석은 서약을 선한 방향으로 되돌리실 수 있다. 또한 필요하다면 그분의 능력과 은혜를 드러내기도 한다.

어리석은 결혼 생활을 해왔던 사람이나 지키기 어려운 약속을 한 사람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 상황이 변했다고 해도 언약을 저버리지 않는 사람들에게 영적 축복이 기다린다. 하나님은 힘든 결혼 생활 속에서도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어 주실 수 있는 분이다. 상황이 힘들어진다고 해서 도피처를 찾으려 하지 말라.

이혼을 결정하기 전에

보통 이혼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그런 결정은 거의 대부분 끝없는 갈등과 괴로움, 복수심, 분노, 후회로 이어진다. 게다가 자녀 문제가 개입되면 부부 스스로도 괴롭고 다음 세대까지 고통스러워지는 불행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사람들이 결혼 생활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흔히 믿는 다섯 가지 신화가 있다. 거의 항상 이혼으로 이어지는 이러한 신화들은 부부 관계나 가족 관계에 치명적인 독으로 작용한다.

1. 제일 중요한 것은 ‘나의 행복’이라는 신화

우리에게는 행복을 구할 권한이 없지만 하나님께 순종할 의무는 확실하게 있다. 그러나 우리 개인의 행복보다 순종을 더 중시할 때 역설적으로 축복이 임한다.

2. 이상형의 사람을 찾으면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신화

이상형을 찾아다니는 것보다 자신이 이상형의 사람이 되는 게 훨씬 더 현명하다. 인간은 누구나 약점과 단점이 있다.

3. 이상형의 사람과 결혼하기 위해 현재의 결혼 생활을 깬다 해도 나는 여전히 사려 깊고 배려심 있는 사람이라는 신화

4. 결과를 감당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면 얼마든지 헤쳐나갈 수 있다는 신화

이혼은 그 자체로 우리가 회개한다 해도 해결될 수 없는 후유증을 동반한다. 배우자, 자녀들, 더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나 한 사람의 이혼으로 받는 상처는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5. 배우자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화

힘들어도 헤어지지 않고 서로의 차이들을 극복한 후 화해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부부들의 예는 수없이 많다. 많은 부부들이 배우자의 부정, 중독, 심지어 ‘해소할 수 없는 차이’를 극복하고 잘 살고 있다. 하나님께서 당신과 당신의 배우자를 변화시킴으로 자기 능력을 드러내기를 원하신다면 누가 감히 막을 수 있겠는가?

잘못된 결혼 생활을 슬기롭게 회복하기

하나님을 중심에 모신다

상처를 하나님께 내어맡기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복수하기를 기꺼이 거부하고 용서함으로써 우리는 ‘은혜 위의 은혜’를 받는다. 치료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생살이 드러나 있던 상처에 딱지가 앉고 아물기 시작한다.

스스로를 돌아본다

결혼 생활에 문제가 생기고 삐걱거릴 때 배우자에게 탓을 돌리며 잘못을 찾지 말고 스스로 책임을 지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문제가 생길 때면 무엇보다 먼저 ‘내게 문제가 있어’라는 생각을 떠올려야 한다.

용서의 교훈을 배운다

“용서하지 않으면 그대로 누군가에게 그 악영향이 전가된다.” 우리 죄로 다음 세대를 고통스럽게 하지 않으려면 이 말을 명심해야 한다. 용서 없이는 평온한 관계를 누릴 가망이 없다.

어떻게 하면 용서하는 태도를 갖고 살 수 있는가? 무엇보다 자신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고 그분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고하게 알아야 한다. 이런 확신이 있을 때만 진정한 용서의 마음을 지닐 수 있다.


4장 도덕의 경계선을 넘었을 때/은밀하게 숨겨온 비밀이 들켰을 때

도덕적 실패로 이어지는 순서

부정한 관계는 결코 우리가 바라는 대로 덮어지지 않는다. 성적인 죄는 늘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기 마련이고 그 후유증은 다른 관계들과 인생 영역들까지 고통으로 몰아 넣는다.

은폐

죄가 발각될 위험에 처하면 우리는 종종 우리 잘못을 계속 숨기고 그 후유증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 꼼꼼하게 그 잘못을 은혜하려는 꼼수를 부린다.

부도덕한 선택을 했다 해도 지혜롭게 극복하라

우리가 그분을 신뢰한다면 그분은 상상할 수 없는 용서와 은혜로 우리를 놀라게 하실 것이다. 그분은 결국 다윗의 악한 결정을 선한 방향으로 이끄셨다. 한번 잃은 것을 다시 되찾기란 쉽지 않았지만 그의 과거는 구속을 받았다.

용서의 은혜

회복으로 향하는 길에 언제나 가장 먼저 임하는 축복이 바로 용서이다.


5장 재정적으로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숨은 함정을 보지 못하였을 때

가족의 필요성

잘못된 재정 운영으로 인한 혼란을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먼저 과거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작업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누군가를 용서하거나 용서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용서를 구하거나 용서해야 한다.

정직하게 자신의 문제와 실수를 인정하는 태도가 있을 때만 회복과 치유의 단초가 마련될 수 있다. 잘못된 투자 결정으로 한 가정이 찢어질 때는 잘못된 과거 실수를 정직하게 인정하지 않거나 용서를 끝까지 거부하거나 그 실패로 아무런 교훈도 배우지 않을 때뿐이다. 머리가 좋건 나쁘건 사람은 모두 실수를 하기 마련이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그 실수에서 배우는 반면 어리석은 사람은 계속 그 어리석음을 되풀이한다.

재정적으로 파산 위기에 내몰리면 가족들은 서로 상처를 주고 찢어지는 게 아니라 실제로 더욱 하나가 되어야 마땅하다. 남편과 아내를 서로를 원수처럼 대하지 말고 실제적인 공동의 적인 사탄과 빚이라는 괴물에 맞서 한마음을 싸워야 한다.

문제의 핵심으로 접근하기

쉽게 인정하려 들지 않겠지만 전부는 아니라도 대부분의 경우 어리석은 투자 결정은 어떤 면에서 탐욕이 원인이다. 게다가 대부분 투자를 결정하기 전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거나 경고 사인에 유의하지 않는다.

자신의 동기를 정직하게 인정하지 않고서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며 그 곤경을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다.

투자나 재정적인 결정을 고려하고 있다면 남편들은 남자들이 쉬이 무시해 버리는 아내들의 ‘육감’을 잘 경청하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 부부들은 서로 진심으로 합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재테크를 위한 투자를 해서는 안 된다. 합의오하 소통을 위해서는 깊이 경청하고 인내하며 듣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과거로부터 배우기

하나님의 시야로 바라보기

하나님은 경제적으로 형통할 때뿐 아니라 고통스러울 때도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닫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태어날 때부터 가능한 가장 최악의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전세계의 가난한 성도들의 경험을 해보기를 원하신다. 이삭에게 기근이 닥친 땅에 머물도록 말씀하셨던 하나님은 불확실한 미래를 확신과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해 주시는 바로 그 하나님이시다.

넉넉한 관용의 기쁨

경제적인 파산을 딛고 회복함으로 얻는 가장 소중한 축복은 빚에서 자유롭게 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베풀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신뢰할 수 있는 상담가를 찾아보라

당신을 이끌어줄 만큼 재정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는 사람을 찾아보라.

적은 것으로 만족하는 법을 배우라

현재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면 늘 갖지 못한 것을 가지고 싶어 한다. 심지어 그것을 구입할 여우가 없더라도 그렇다.

빚을 줄이라

신용 카드 때문에 과소비를 하는 경향이 있다면 과감히 카드를 잘라 버려라. 현금으로 지불할 수 있다면 모두 현금으로 지불하는 게 최선의 방법일 수 있다.

가정 경제 회복에 최우선을 두라

현재 누리는 생활방식을 당연시하기 때문에 돈을 절약할 수 있는 기회들을 간과할 때가 너무나 많다. 비상시기에는 비상 조치가 필요하다.

마음의 짐을 하나님께 내어맡기라

현재 처한 경제적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오늘 당신과 당신의 모든 자산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의도적인 결단을 하라.

재정적인 위기에 빠질 때 하나님은 궁극적인 가치를 가르치신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우리 옆에 서서 우리를 도우시며 동행하신다. 하나님께 소유권을 온전히 이양한다면 돈이 회복되든 그렇지 않든 우리 영혼은 더 심오한 구속의 은총을 누릴 것이다.


6장 직장이 적성에 맞지 않을 때/직장에 출근하기 싫을 때

자격은 넘치는데 대우가 형편없을 때

국가 경영을 위한 수업과 훈련을 받아왔지만 이제 그는 남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하게 되었다. 내면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직업을 소명으로 바꾸는 법

직업을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으로 생각하고 그런 무의미한 일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부르신 일이라는 생각이 있으면 창피하고 하찮다고 생각한 일이라도 의미를 지니게 된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은 그 일을 할 때의 마음가짐과 태도에 따라 그 의미와 중요성이 결정된ㄷ.

태도를 선택하라

시인 제임스 오펜하임, “어리석은 인간은 멀리서 행복을 찾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발치에 서서 그 행복을 키운다.”

하나님은 우리가 좋아하는 일이든 아니든 우리가 선택한 모든 인생의 길들을 사용하셔서 우리 내면에서 그의 구체적인 사역의 열매를 맺게 하실 수 있다. 능력이 되건, 능력이 미치지 않건 중요하지 않다. 그분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우리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밖으로 보이는 세계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관심있게 보시는 것은 우리의 내면이다. 단 밀러, “우리는 불행하게도 무엇을 하기 전에 어떤 존재가 될 것이냐 하는 기본적인 질문을 피해버린다.”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 히틀러의 독일 치하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이야기를 담은 책이었다. 이 책에서 프랭클은 수용소의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생존하도록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나이도 건강도 교육도 지능도 아님을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개인의 태도였다. 더 나은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믿은 사람들만이 그 끔찍한 고통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나님은 환경을 넘어서 더 중요한 대의와 목적을 바라보도록 우리를 도와주신다. 누군가의 글귀처럼 우리의 위치를 결정짓는 것은 우리의 태도이다.

섬길 자를 선택하라

광야에서 모세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했는지 성경에 자세히 알려져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가 무의미한 일을 하면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좌절과 낙담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양떼를 돌보는 일을 소명으로 인식할 수 있다면 그 일에서 보람을 얻을 수 있고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비범한 일뿐 아니라 일상적인 상황 속에서도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우리는 평범한 일상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인내하라

모세는 남은 평생을 미디안에서 별 볼일 없는 일을 하다가 마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디안에서는 그 누구도 그의 화려했던 이력에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는 과거의 실수를 생각하며 자신이 얼마나 신분에 걸맞지 않은 대우를 받고 있는지 곱씹으며 회한의 나날을 보낼 일 밖에 없었다. 사막의 후미진 곳에서는 그의 과거 신분 따위에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그런 세월이 몇 년이 되고 몇 십년이 되었다. 화려한 출세도, 업적도 전혀 없었다. 기껏해야 이 양떼어서 저 양떼로 옮기며 꼴을 먹이는 일이 다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곳에 계셨다. 내면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하나님은 인내에 아주 큰 가치를 부여하신다. “힘든 때를 견뎌내지 못하는 자는 살아 생전에 좋은 날을 보지 못할 것이다”라는 유대인의 격언이 있다. 아무리 괴롭고 힘든 나날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돌보심을 기꺼이 믿는 믿음이 있다면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갈 수 있다.

소탐대실하지 말라

오직 돈이 궁하다는 이유로 속임수나 편법을 동원하거나 부정한 방법을 사용할 생각을 하지 말라. 궁핍과 고통이라는 제단에 자신의 인격을 제물로 바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인생 그 자체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영광이다. 아무리 막강한 지위를 누린다 해도 인간됨을 잃는다면 어떤 것으로 회복할 길이 없다. 위기를 당할 때 믿음이 우리를 지탱해 줄 것이다.

프란시스 쉐퍼는 하나님 앞에서는 높은 사람도 낮은 사람도 없다고 말했다. 오직 거룩한 사람과 거룩하지 않은 사람만 있을 뿐이다. 우리와 달리 무슨 직업을 갖느냐가 하나님께 그렇게 의미가 없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모세는 희망이 불투명한 상황 속에서도 성취와 보람을 느낄 수 있음을 배워야 했다. 남의 옷을 걸친 듯 어색하고 하찮은 일을 하도록 요구받을 때라도 하나님을 위해 그 일을 한다면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에콰도르에서 네 명의 선교사와 함께 남편을 부족민들에게 잃어야 했던 엘리자베스 엘리엇은 컴퓨터도 복사기도 없던 시절에 그 지역 언어를 글로 옮기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다가 2년간의 고된 노력이 고스란히 담긴 가방을 도둑 맞았고 그녀는 그 모든 일을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 가방을 도둑 맞은 게 화가 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자 그녀는 “아닙니다. 그 일은 하나님을 향한 나의 예배였기 때문에 그분을 위해 한 일은 우리에게는 상실일지 몰라도 하나님께는 아닙니다”라고 대답했다.

하나님께 마음 문을 열라

광야에서 양떼들과 고독한 시간을 보내며 낮아질 대로 낮아진 모세에게 그 시간은 치유의 시간이었다. 숙명을 따르고자 한 자신의 노력이 왜 역풍을 맞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그가 어느 날 하나님과 조우하면서 완전히 달라졌다. 그동안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 안개에 가려진 듯 모호하기만 했던 터였다. 모세의 마음이 열리자 하나님은 그의 스승이 되어 주셨다. 사치와 풍요와 권력의 달콤한 자리에서 밀려난 상태에서 모세의 마음이 전능자라를 알 수 있도록 준비되면서 그에게는 서서히 변화가 일어났다. 결국 그는 지상의 그 누구보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가 되었다.

좋은 날을 주실 하나님을 신뢰하라

건강하고 회사에서 막 승진이 되었을 때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쉽게 말할 수 있다. 일에 만족하고 자녀들도 주님을 잘 따르고 순종한다면 어렵지 않게 믿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고 진심이 곡해당하고 외면당할 때, 혹은 능력이나 이력에 맞지 않은 일을 해야 할 때, 의료비가 쌓이고 배우자와의 관계가 극한 갈등으로 치달을 때, 그때의 믿음을 하나님은 정말 귀하고 보신다. 궁이 아니라 사막에서 우리 순종의 깊이가 드러난다. 그분이 참으로 귀하게 보시는 우리의 믿음은 그분이 말씀하실 때가 아니라 그분이 침묵하실 때의 믿음이다.

40년 동안 하나님은 원하시는 자리에 모세를 있게 하셨다. 그 자리는 바로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멀어져 인격을 훈련할 수 있는 자리였다. 목자로서 모세의 직업은 애굽의 최고 권력층들과 맞대결을 펼쳐야 할 지도자라는 소명의 기초를 단련하는 시간이었다.

우리의 광야

황무지와 같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두 사람을 상상해 보자. 한 사람은 황무지 같은 환경 그대로 황폐해지고 아무런 의미나 목적, 희망도 없이 직장 생활을 한다. 또 다른 한 사람은 동일한 환경임에도 회복할 힘을 얻을 자원이 있어서 남에게 기꺼이 도움이 되어주고 의미 있는 직장 생활을 한다. 이런 두 사람의 대조적인 모습은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척박한 곳에 당신을 두신 것은 그분의 증인이 되게 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에게 직장은 그리스도를 실제적으로 증언하는 장이 될 수 있다.

세 사람이 무릎을 꿇고 돌을 다루는 작업을 하고 있다.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자 첫 번째 사람은 “돌을 깎고 다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두 번째 사람은 “생활비를 벌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사람은 “성당을 짓고 있는 중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결국 중요한 태도이다. 무미건조한 사막과 같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께서 하나님 되시도록 하면 하찮게 보이는 목자로서의 인생도 거룩한 소명의 삶이 될 수 있다.


7장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을 때/기억에서 떨쳐내기가 어려울 때

고백해야 할 때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하나님께만 고백해야 하고 거의 언제나 그분께만 맡겨드려야 한다.

분별력을 발휘하라

약속을 어겼거나 금전적으로 사기를 친 경우, 혹은 누군가를 학대하고 화를 낸 경우라면 잘못을 했던 그 당사자 앞에서 정식으로 용서를 구해야 한다. 이런 죄들은 오래전에 지었던 일이라도 고통을 당한 당사자는 결코 그 일을 잊지 않는다.

화해를 위한 걸음

누군가를 용서할 때 가장 하나님과 닮은 자리로 나아가고 용서의 필요성을 깨달을 때 인간다움이 가장 잘 드러난다는 말을 한 사람이 있다. 관계가 틀어지고 단절되었을 때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만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일도 없다. 원한과 갈등과 반복이 있을 때 화해를 시도하기 위해 필요한 일은 얼마든지 하겠다는 자세가 우리에게는 있어야 한다.

정직하게 기도하라

잘못을 저지르고 고통스럽게 한 사람에게 진실을 인정하고 화해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그의 지혜와 능력을 힘입어야 한다.

조언자의 지혜를 구하라

스스로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감당하겠다고 결심하라

진정으로 화해하고 싶다면 모든 잘못이 자신에게 있는 듯한 태도로 대화에 접근하라. 관계가 단절된 데 대한 잘못을 전적으로 책임지려는 태도로 다가가면, 우리의 고백이 상대방이 건너와서 용서를 구할 수 있는 다리로 사용될 수 있다.


8장 지혜로운 결정을 하는 법/미래를 위한 지혜

그토록 수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결정을 하는 까닭은 대체 무엇 때문이라는 말인가? 바로 우리 문화에 만연한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 그렇게 된다. “우리 마음을 따라야 한다”고 하는 거짓말이다. 그러나 성경은 만물 중에서 심히 부패한 것이 마음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어떤 길을 가야 마땅한지 우리 직관은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결국 마음의 충동을 쫓아다니다 보면 이리저리 표류하게 된다. 가치 있고 의미 있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도록 안내를 받기 위해서는 변덕스러운 감정보다 더 나은 기준이 필요하다.

몇 가지 금해야 할 것들

1. 저항이 없는 쉬운 길이 있다는 거짓말에 속지 말라.

가장 쉬운 길은 옳지 않은 길일 때가 많다. 너무나 쉬운 길은 후회와 파멸로 이끌 가능성이 높다. 쉬운 결정은 종종 가장 고통스러운 결과를 낳는다.

2. 일시적이고 찰나적인 것의 제단에 영원한 것을 제물로 드리지 말라

결정을 내릴 일이 있다면 오늘만 생각하지 말고 그 너머 남은 평생을 바라보고 결정하기를 바란다.

3. 특별히 정말 중요한 결정이라면 절대 성급하게 결정하지 말라.

살면서 힘들에 체득한 한 가기 원리가 있다. 어떤 결정을 내리고자 할 때 하나님께 아니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시간을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여러 방법으로 기회의 문을 여닫으실 수 있다. 옳은 길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기를 정말로 원하신다.

4.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라

어리석은 자란 잠언의 정의를 따르면 지혜로운 조언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런 사람은 실수에서 배울 생각이 없고 남의 충고를 들을 귀가 열려 있지 않다. 어리석은 자는 자신의 지혜에 아주 만족한다.

혼란스러운 시대에 지혜로운 선택을 하려면

현명한 선택이란 늘 인생의 마지막을 생각하며 내리는 결정이다. 지금 여기서 현명한 결정을 내리고자 한다면 일생을 마무리할 때 어떤 모습이 되기를 원하는지 결정해야 한다.

1. 동기를 돌아보라

결정을 내릴 때 그 동기가 단순히 우리가 원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것인지 확인하는 시간을 가지라. 또 다른 질문은 훨씬 더 기본적이고 중요하다.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순종할 마음이 내게 있는가 하는 것이다. 잘못된 결정을 하게 되는 가장 심각한 이유를 하나 꼽는다면 하나님께 복종하기를 원치 않는 우리의 완악함이라고 생각한다.

2. 우선순위의 균형을 유지하라

3. 온전한 평안함을 생길 때까지 맡겨드리는 일을 계속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가 옳고 선한 일을 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일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생활방식과 결정에 판단 근거가 되어야 한다. 때로 이른바 마음의 제동이라는 것을 경험한다. 잘못된 길로 가려고 할 때 우리 마음에 걸리는 직감 같은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성령의 이런 부추김과 제동을 무시하지 말고 귀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내린 모든 결정의 결과를 미리 알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 아실 수 있다. 그래서 실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하나님께 의견을 여쭈어야 할 뿐 아니라 내면을 잠잠하고 침잠케 하여 고요한 가운데 낮은 성령의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게 중요하다.

4. 하나님께서 다양한 길로 인도하시리라는 기대를 가지라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실 때 ‘획일적인 전략’을 사용하지 않으신다. 때로 환경을 통해 우리의 다음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경우도 있다. 때로 소중한 지혜를 나누어줄 사람을 만나게 하시거나 우리 결정의 일부가 되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방식으로 길을 이끌어주시기도 한다. 또 여러 사건들이 한꺼번에 일어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시고자 특별한 계획을 꾸미고 계시다는 강렬한 느낌을 주실 때도 있다.

하나님의 뜻을 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알고 그분이 우리를 인도해 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진다는 뜻이다. 끊임없이 헌신의 자세를 다지며 하나님의 뜻대로 기꺼이 순종하겠다는 생각이 늘 우리 마음에 타오르도록 해야 한다.

5. 결정 과정에 의심이 찾아올 수도 있음을 깨달으라

하나님의 지혜를 구한 후에라도, 또한 최선을 다해 필요한 정보와 사실들을 취합했다 하더라도, 심지어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대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도록 기도하고 평강을 구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우리가 내린 결정들에 대해 의심을 찌꺼기가 남아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

어떤 결정을 하기 전이나 하고 나서 그리스도인들이 요구할 수 있는 하나님의 한 가지 약속이 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이 놀라운 약속의 말씀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왜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을 허락하시는지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슬픔의 즉효약이 되어 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안녕을 위해 일하고 계심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약속을 꼭 붙들고 믿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