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성서식물

겨자나무

기독항해자 2012. 7. 30. 13:44

겨자나무

 

 

 

겨자나무는 이스라엘에 오는 순례객들이 가장 보고 싶어하는 성지 식물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막상 겨자나무를 보면 모두 크게 실망한다. 눈앞에 펼쳐진 갈릴리 호수를 보면서 은혜를 받다가도 그 주변에 잡초처럼 자란 겨자풀을 보고는 못마땅한 표쳥을 짓는다.

나는 순례객들을보면 슬쩍 말을 흘린다.

"자, 저게 겨자씨 비유에 나오는 겨자나무입니다."

그러면 다들 눈이 동그래져서 이렇게 되묻는다.

"아니, 저게 무슨 겨자나무에요? 저렇게 볼품없는데!"

"어떻게 저게 나무가 되고, 공중의 새가 그 가지에 깃들어요? 혹시 잘못 아신 것 아니에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겨자나무를 보고 실망하는 모습을 보면서,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수많은 비유들을 바라보는 1세기 유대인들의 시각과 현대 문화의 시각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갈릴리 호수 주변에 잡초처럼 자란 겨자풀을 한 번이라고 봤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겨자씨 비유를 우리 식으로 잘못 이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겨자씨 한 알에 비유한 말씀을 읽을 때, "겨자씨가 자라서 새가 깃들 정도의 큰 나무가 된다"는 것에 초점을 두면 안 된다. 그러면 겨자씨 비유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겨자풀은 들에 널려 있는 잡초라는 것이다. 둘째는 하나님이 이런 잡초의 씨 한 알을 자신의 정원에 갖다 심으셨다는 것이다.

볼품없는 잡초를 자기 집 정원에 갖다 심어 애지중지 가꾸는 사람은 없다. 겨자풀은 정원에 갖다 심을 만큼 보기에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향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정원수로는 전혀 맞지 않는, 그야말로 잡초 중의 잡초다. 정원을 가꾸는 사람에게 가장 큰 적은 이런 잡초들이다. 잡초는 정원에 심은 것이 아니라 전부 뽑아 주어야 한다. 이것이 잡초의 운명이 아닌가?

"그러므로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꼬 내가 무엇으로 비할꼬 마치 사람이 자기 채전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눅3:18-19)."

예수님이 주로 사역하시던 갈릴리 지역의 사람들은 2월이 되면 갈릴리 호수 주변에 잡초처럼 피는 겨자풀을 너무도 잘 알았을 것이다. 예수님은 이런 잡초의 씨앗을 자기 정원에 심어서 새들이 깃드는 큰 나무로 자라게 하겠다고 하셨다.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말로는 설명 못할 큰 은혜를 받았을 것이다.

당시에 갈릴리 주민들은 로마의 압제를 받고 있었다.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한 주류 사회에서 밀려나 '이방의 갈릴리'라고 멸시받으면서 잡초처럼 눌러 있었다. 이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잡초의 씨앗을 자기 정원에 심어서 큰 나무가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 나라의 시민들이 바로 이런 잡초 같은 자들임을 전하신 것이다. 실제로 예수님을 따르던 열두 제자들이 수많은 새들이 깃드는 인류의 거목으로 자라지 않았는가!

예수님은 3년동안 공생애 사역을 하면서 잡초처럼 버려진 인생들을 집중적으로 찾고 심방하셨다. 세리와 창기와 문둥병자처럼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에게 찾아가셨다. 겨자씨 비유를 몸소 실천하신 것이다.

(열린다 성경 식물 이야기, 류모세, 두란노) 

 

 

 

 

이스라엘 성지 순례 객들이 가장 보고 싶어하는 것 중 하나가 겨자이다. 겨자씨와 더불어 '겨자 나무'를 보고자 하는데 복음서의 겨자씨 비유(마 13:31,32 막 4:30-32, 눅13:18,19)를 읽은 사람이 '겨자 나무'를 찾는 것은 무리는 아니다. 겨자씨가 자라 나무가 된다는 표현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있으며, 마가복음에는 새들이 깃들 정도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헬라어로도 틀림없이 나무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겨자가 어떤 식물인가 하는 것을 이야기 하기 전에 먼저 겨자씨 비유를 간략하게 언급하고자 한다. 성서의 사건이나 예수님의 말씀에는 이해하기 쉬운 것이 있는 반면에 좀 의아한 것들이 있는데, 겨자씨 비유는 후자에 속하는 것으로 많은 성서 주석가들을 곤란하게 하는 대표적인 구절이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사실 겨자는 나무가 아니라 1년 생 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겨자씨 비유에서 이 비유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는 것은 앞부분이다. 겨자는 어떤 사람이 자기 밭에(마태복음), 또는 자기 채전에 (누가복음) 심은 나물, 채소와 같은 것이다.

즉, 겨자는 라카논(밭, 또는 정원에서 기르는 모든 종류의 작은 식물로서 풀, 나물, 채소를 가리킴)의 하나로 밭이나 채전, 정원에 심겨 지는데, 그 씨앗이 다른 라카논의 씨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으나 자라면 그 키가 다른 것들보다 훨씬 커진다는 것이다.

더 작은 씨에서 더 큰 식물이 자란다는, 씨앗만으로는 쉽게 기대나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는 의미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도 일반의 예상의 벗어나는 것으로서, 도저히 생각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게 된다는 것이 이 비유의 가르침이다. 비유의 후반부 내용은 겨자가 나무가 된다는 것보다는 나무만큼 커진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이스라엘에는 우리가 겨자라고 이야기 하는 식물이 있는데, 학명이 Sinapis alba (직역하면 흰 겨자). 일반 명이 '보통 겨자' 또는'이집트 겨자'이다. 그런데 이 Sinapis abla는 1년 생 풀로서 그 키가 겨우 80 - 100 Cm 정도 자란다. 그러므로 이것을 예수님께서 염두에 두신 겨자로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래서 거의 모든 성서 식물학자들은 학명으로 Brassica nigra (직역하면 '검은 배추'), 일반 명으로 '검은 겨자' 인 풀을 예수님이 말씀하신 겨자로 생각하고 있다.

이 Brassica nigra는 그 씨앗에서 짜낸 기름을 약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재배 되었다. 기름을 짜고 남은 씨앗의 가루 들은 겨자로 알려진 향료의 재료로 사용 되었다. 또 어린 풀잎은 샐러드나 다른 요리로 만들어 먹을 수가 있었다. 이 식물은 약 2m 정도 자라며 , 골란 고원 등 적합한 환경에서는 그 이상 자란다.

한편 이스라엘에 학명이 Nicotiana glauca, 히브리어 일반 명이 '타바크'인 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가 겨자 나무로 잘못 소개되는 경우가 있다. 이 담배 나무는 글자 그대로 나무이고, 또 그 씨가 라면 스프 가루처럼 작기 때문에, 겨자 나무로 알려졌을 것이다.

이 Nicotiana glauca가 나무이고 그 씨가 정말 작기 때문에 예수님의 비유와 어울리는 듯이 보이나, 이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담배와 관련이 있는 나무로서, 예수님 당시에는 없던 나무이다.

 

출처: http://www.g25korea.com/mannaworld/geja.htm

 

 

 

 

겨자

- 산을 옮길 만한 믿음에 비유된 작은 씨앗이 열리는 식물 -

 

학명 : Brassica nigra (L.) W.D.J. Koch (십자화과 )

영명 : Black mustard

히브리명 : ???? ???(하르달 라반), ???? ????(케루브 샤호르)

헬라명 : σιναπι(시나피)

원산지 : 지중해 연안, 유럽

개화기 : 2~3월

성경 : 마 13:31, 17:20, 막 4:31, 눅 13:19, 17:6

 

주요 성경구절

1)〔마태복음 13장 31~32절〕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σιναπι 시나피)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2)〔마태복음 17장 20절〕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σιναπι 시나피)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식물 해설

마태복음에 겨자씨를 모든 씨보다 작은 것으로 비유하고 있다. 예수께서 살아계실 당시 유대인들은 작은 것을 설명할 때 겨자씨에 견주어 말하였는데 예수께서도 일반 유대인들이 말하는 방식을 따라 겨자씨가 작다는 것을 비교급으로 표현한 것이다.

문제는 겨자를 ‘나무가 되매’로 표현한 부분이다. 유채(rape)씨만 한 것이 최고 3m까지 자라는 확장성을 감안한다면 이해될 수도 있으나, 여전히 일년초일 뿐이므로 난제이다. 다만 영어에서 바나나나무(banana tree), 야자나무(palm tree) 등으로 실제로 나무가 아닌 것을 나무로 부르며, 한국에서도 고추나무, 토마토나무 등으로 광역화시켜 사용하는 점은 참고가 된다.

예수께서 겨자씨 비유는 제자들이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하여 쩔쩔매고 있을 때에도 사용하셨다. 제자들에게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귀신을 ?아 내고, 산도 옮길 수 있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성지에서 본 겨자

성지 전역에서 잘 자라지만 특히 갈릴리 지방에서 많이 자라며, 2~3월에 이 지방으로 여행하면 온 산과 들판을 노랗게 물들인 겨자꽃을 볼 수 있다. 한인(韓人)들은 어린 싹을 뜯어 김치를 담그거나 살짝 쪄서 말린 후 나물로 먹기도 한다. 모양이나 맛이 갓과 비슷하므로 갓으로 부르는 사람도 있다.

겨자는 크게 검은 겨자(Brassica nigra)와 흰 겨자(Sinapis alba)가 있다. 두 가지 모두 키가 비슷한데다 십자화(十字花)의 노란 꽃이 피므로 구분하기 힘들지만, 잔털과 씨방의 모양을 보면 구분이 된다. 즉 검은 겨자는 식물이 매끈하여 잔털이 없고, 씨앗은 한 꼬투리 안에 5~10개가 들어 있어서 흰 겨자 씨앗보다 더 작다. 이에 비해 흰 겨자는 몸에 잔털이 나 있고, 씨앗은 끝이 뾰족한 작은 꼬투리에 2~3개 정도 들어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검은 겨자를 성경에 나오는 작은 겨자씨로 지목하고 있으나, 실제 갈릴리에서 자라는 것은 대부분 흰 겨자이다.

 

식물 모양

겨자씨는 지름이 1~2mm이며 한국의 유채씨와 비슷하다. 팔레스타인의 정원이나 들판에서 잘 자라는 겨자의 어린 싹은 나물이나 샐러드로 이용할 수 있고, 겨자씨는 기름을 짜거나 향신료를 만드는데 사용된다.

겨자는 포기로 자라며 군락을 이루는데, 키는 2~3m 정도로 어른 키보다 크며, 여름 건조기가 시작되면 씨앗을 맺은 후 가지가 마른다. 마른 가지는 오히려 더 단단해지므로 여러 마리의 참새가 앉더라도 문제되지 않는다.

 

참고사항(야생담배)

예루살렘 나사로 무덤에 가면 아랍 상인이 한국말로 “겨자씨! 겨자씨!” 하면서 실제로는 야생담배씨를 팔고 있다. 그곳의 성직자들도 그걸 겨자씨로 알고 있고, 심지어 정원무덤의 영국인들도 야생담배씨를 코팅하여 겨자씨로 판매하고 있다.

이스라엘에는 야생 담배나무가 많으며, 먼지처럼 작은 씨앗을 아주 많이 맺는다. 이것은 학명이 Nicotiana glauca이며 가짓과(Solanaceae)에 속하므로 겨자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리고 불과 200년 전 미국으로부터 들어온 것이므로 예수께서 사시던 당시에는 팔레스타인에 없었던 식물이다.

야생담배는 어릴 때는 재배 담배처럼 자라다가 점차 줄기가 2~3m로 자라 나무처럼 되어 버린다. 지중해 연안 기후풍토와 잘 맞아 토착 식물처럼 분포되어 있다. 봄에 무성하게 나던 잎은 점차 작은 잎으로 바뀌고, 5~10월에는 노랗고 긴 대롱꽃이 핀다. 꽃은 길이 4~5cm, 넓이 0.8cm 정도이고 씨방 안에는 먼지처럼 작은 씨앗이 소복하게 들어 있다.

 

 

출처 : www.wcmk.or.kr 정정숙전도사의 성서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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