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뎀나무
이스라엘의 광야에서 자라는 로뎀나무를 성경에 종종 등장한다. 로뎀나무 아래서 햇빛을 피하는 것은 유대인들에게 가장 비참한 신세를 상징하는 것었다. 광야의 백성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햇빛을 저주를, 그늘은 은혜를 상징한다. 로뎀나무를 빗자루같이 뻗어 있어서 그들이 거의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로뎀나무 그늘에서나마 쉬려로 머리를 들이밀고 있는 모습은 광야에서 가장 비참한 모습이었다.
쫓겨난 하갈과 이스마엘
사라의 몸종이었던 하갈은 아이를 갖지 못하는 사라를 대신해 아브라함과 동침해서 아이를 가졌다. 사라가 아들을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아브라함을 닦달해서 얻은 결과였다. 하갈은 임신하자 스스로 안방마님 행세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사라에게 약속의 자녀가 태어나면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했기 때문이다. 결국 하갈과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쫓겨났다. 브엘세바에서 쫓겨난 하갈과 이스마엘 모자는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광야에서 물이 떨어져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하갈은 네게브 사막을 방황하다가 이스마엘을 떨기나무 아래에 두고 통곡했다.(창21:14-16). 여기서 떨기나무로 번역된 나무는 로뎀나무를 말한다. 광야에서 오갈 데 없이 방황하는 비참한 상화에서 반드시 배경으로 등장하는 나무가 로뎀나무이기 때문이다
대싸리 뿌리로 연명한 욥
하나님을 잘 섬기고 많은 축복을 누렸던 욥은 사탄의 질시로 가족과 모든 부귀영화를 빼앗겼다. 욥은 자신의 비참한 신세를 한탄하면서 슬픈 노래를 불렀다.
"떨기나무 가운데서 짠 나무도 꺾으며 대싸리 뿌리로 식물을 삼느니라"(욥30:4).
여기서 짠 나물로 번역된 나무는 광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소금나무를 말한다. 소금나무는 이름처럼 잎사귀가 무척 짜다. 광야에서 사는 동물들은 이 나무의 잎사귀를 먹고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한 소금성분을 공급 받는다. 그러나 소금나무는 식용으로는 적당하지 않다. 대싸리 뿌리는 생긴 모양이 빗자루와 같은 로뎀나무의 별칭이다. 대싸리 뿌리 역시 도저히 먹을 수 없는 것이다. 과거의 우리 부모 세대들은 보릿고개를 넘기려고 나무껍질과 풀뿌리를 캐서 먹었다지만, 대싸리 뿌리와 짠 나물은 그런 상황에서도 먹을 수 없는 식물인 것이다. 욥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비참한지 알 수 있는 구절이다.
로뎀나무는 광야 같은 인생길에서 처할 수 있는 가장 비참한 상황을 상징한다. 로뎀나무는 시궁창이란 뜻이다.
로뎀나무 숯불
광야의 날씨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그 극심한 일교차를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낮에는 태양 때문에 숨쉬기조차 어렵고 밤에는 반대로 극심한 추위로 고생해야 하는 곳이 바로 광야다. 광야의 날씨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40년 동안 광야의 지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어떻게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지금도 이스라엘에서 광야에 텐트를 치고 양과 염소를 치며 원시적으로 살아가는 베두인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들은 어떻게 광야의 밤을 견뎌 내는 것일까? 수천 년 동안 광야에서 지내 온 베두인들이 광야의 추운 밤을 보내는 노하우는 바로 로뎀나무 숯불에 있다. 로뎀나무 숯불 위에 5~10센티 정도의 흙을 얹으면 베두인식 맥반석 찜질 침대가 된다. 그 위에 잠을 자면 따뜻한 광야의 밤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로뎀나무 숯불의 특징은 오래 타는 것이다. 겉으로 볼 때 다 탄 것 같아도 부지깽이로 속을 뒤집어 보면 여전히 그 밑에서 불씨가 타고 있다. 탈무드에는 로뎀나무 숯불에 관한 재미있는 표현이 있다: "초막절에 로뎀나무 숯불이 타는 것을 보고 간 사람이 유월절에 돌아왔는데도 그 숯불은 여전히 타고 있었다." 물론 이것은 과장된 표현이다. 그만큼 로뎀나무 숯불이 오래 탄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실제로 로뎀나무 숯불은 3일 정도 탄다고 하니 숯불의 왕자라고 할 만하다.
(열린다성경 식물이야기, 류모세, 두란노)
로뎀나무는 한국에 없는 나무이므로 한글성경에는 로뎀나무, 노가주나무, 싸리, 대싸리, 말라깽이 등으로 매우 혼란스럽게 번역되었다.
엘리야는 이세벨이 섬기던 바알의 선지자들을 죽이고, 브엘세바 광야로 도망하여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며, 나무아래 누워 자다가 천사가 준 음식과 물을 마시고 힘을 내었다. 욥이 시험에 빠졌을 때에도 그를 조롱하던 사람 중에는 로뎀나무(대싸리 욥 30:4) 뿌리를 캐먹던 가난한 사람도 있었다. 로뎀나무의 뿌리는 가늘고 단단하여 음식이 될 수 없고, 맛도 쓰지만 가난한 유목민들은 그런 것까지 먹었던 것 같다.
로뎀나무는 네게브, 가이사랴 등의 모래밭에서 볼 수 있는데, 기후풍토가 좋은 아얄론 골짜기에서는 키도 크고 가지도 풍성한 로뎀나무를 볼 수 있다. 싸리나무처럼 땅에서부터 가느다란 가지들이 자라기 때문에 그늘이 빈약하지만 사막에서는 그나마 고마운 그늘을 제공하는 나무이다.
콩과의 관목으로 높이 2~3m이다. 잎은 바늘 모양으로 적으며, 꽃은 백색, 이른 봄에 핀다. 긴 타원형의 열매를 맺는다. 팔레스타인 등지의 사막의 구릉이나 암석지대, 특히 사해 부근에서 번성하고 그늘을 내며 크게 자란다.
구약성서에도 언급되는 식물로, 《열왕기상》19장 4~5절에 따르면 호렙산(山)으로 가는 도중 엘리야가 이 나무 아래서 쉬었다.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뿌리는 숯불로 사용되었으며, 기근 때 먹었다. 아라비아에서는 오늘날에도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카이로에서는 다른 어느 것보다 비싸게 팔린다.
(네이버 백과사전)
로뎀나무는 시궁창이란 뜻이....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나이다 하고(왕상19:4)
한국성도들에게 ‘로뎀나무’는 한 번도 본적은 없지만 고상하고 좋은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로뎀나무를 이야기하면 먼저 엘리야를 떠올리게 된다. 엘리야는 갈멜산상에서 벌어진 아합왕과의 대결에서 승리했지만, 아합의 아내 이세벨의 서슬 퍼런 노기를 피하여 달아나게 된다. 얼마나 두려웠던지 북쪽 갈멜산에서 남쪽 브엘세바까지 수백Km 거리를 하루 만에 달아나버렸다. 그도 모자라 다시 혼자서 하루 길을 광야 속으로 달아난 그는 ‘로뎀나무’ 아래에서 하나님께 자신을 죽여 달라고 호소한다(왕상19:4). 그래서 인지 로뎀나무는 지친 사람에게 쉼을 제공하는 그들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는 수많은 로뎀나무가 있다. ‘로뎀카페’ ‘로뎀의 집’ ‘로뎀식당’ 등등... 하지만 ‘로뎀’이라는 말이 ‘시궁창’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은 것같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기자의 장난스러운 말놀이(Word play)를 보게 된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바알선지자들을 물리치고 승리한 그가 한낱 이방여인인 이세벨을 두려워하여 ‘시궁창-로뎀’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모습을 그리면서 인간의 나약함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로뎀나무은 큰 그늘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래서 광야의 뜨거운 햇볕을 피하는 그늘로서는 부적절하다. 나무라기보다는 그저 키가 큰 잡초 같은 느낌이다. 로뎀은 뿌리를 깊이 내리기 때문에 메마른 광야에서 생장하는 식물이다. 하지만 요즘은 그 뿌리가 깊고, 그 결속력 때문에 도심의 비탈진 곳이나 절개지에도 로뎀나무를 쉽게 볼 수 있다.
또 한 가지 로뎀나무의 뿌리는 사막에서 생활하는 유목민들의 뗄감으로 쓰인다. 일단 불을 붙이면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열기를 지속하는 굉장한 화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제롬’의 기록을 보면, 어떤 여행객들은 로뎀나무로 불을 때서 식사를 한 후, 일 년 후 다시 와보니 그때까지 불씨가 남아있더라고 하는 과장된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런 특징을 배경으로 시편 120편 3-4절에서는 로뎀 숯불을 징계로 표현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