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과 삶/크리스천과 독서

성호, 세상을 논하다(강명관, 자음과 모음)

기독항해자 2012. 7. 19. 11:59

성호, 세상을 논하다(강명관, 자음과 모음), 2012년 7월에 읽음



'성호, 세상을 논하다'는 저자가 성호사설을 발췌하여 자기의 견해를 덧붙인 글이다. 이 글을 읽다보면, 세상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전도서에서 솔로몬은 이렇게 말했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영정조 시대를 살았던 성호의 시대나 오늘의 시대는 변한 것은 별로 없다. 문명의 이기는 발전했을 지 모르지만, 부정부패와 불법은 조금도 변한 것이 없다. 성리학에서 말하는 수양으로 문제가 해결될까? 성리학의 나라 조선은 그것이 불가능함을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부는 정당한 것인가?

성호는 ‘사재의 미담’에서 중종 때의 명신 사재 김정국(1485~1541)의 일화 한 토막을 전하고 있다. 사재는 자신이 잘 알고 지내는 황씨란 사람이 돈을 모으느라 남에게 험담을 듣자 편지를 부친다.

나는 20년 동안 가난하고 검소하게 살고 있습니다. 낡은 오두막집 몇 칸, 메마른 땅 몇 마지기, 베옷 몇 벌이 있을 뿐이지만 그래도 누우면 남는 땅이 있고, 입성에는 여벌의 옷이 있고, 밥그릇 밑에는 남은 밥이 있지요. 이 세 가지 남은 것으로 세상사 거리낄 것 없이 살고 살고 있습니다. 천 칸의 큰 저택과 만종의 녹봉, 백 벌의 비단옷을 마치 썩은 쥐처럼 봅니다. 살아가는 데는 없을 수 없는 것은 책 한 시렁, 거문고 하나, 붓과 벼루 한 갑, 신발 한 켤레, 잠을 청할 베개 하나, 시원한 바람이 드는 창문 하나, 따스한 햇볕이 비치는 방 한 칸, 늙은 몸을 의지할 지팡이 하나, 봄을 찾아 나설 때 탈 나귀 한 필이니, 이것만 있으면 노년을 보내기 충분하지요.(사재의 미담/제10권 인사문)

삼락이란 글에서 성호는 세 가지 즐거움을 말한다. 첫째 큰 전란이 없는 세상에 태어나 온전히 시골에서 평생을 마치는 것, 둘째 너무 춥거나 덥지 않은 온화한 고장에서 태어난 것, 셋째 보통 백성은 한 해 내내 노동해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가혹한 세금에 시달리는데, 자신은 그대로 조상의 음덕으로 편히 지내며 굶주림을 면하고 사는 것이 세 가지 즐거움이다.

수탈은 어떻게 정당화 되는가

사람들은, “산과 하천이 많아 경작할 만한 땅이 적다”고 한다. 하지만 이 역시 그렇지 않다. 만약 높고 가파른 곳을 깎아 없애고, 하천을 좁게 만들어 땅을 늘린다면, 가난한 사람이 부자로 만들 수 있을까? 잘못은 땅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잘못은 명백히 사람이 만들어낸 제도 에 있다. 문제는 백성이 생산한 재화를 위에 있는 사람이 마구 써버리는 데 있는 것이다.(백성의 가난/제16권 인사문)

백성의 가난은 잘못된 제도에 있다. 윗자리에서 하는 일 없이 농민이 생산한 생산물을 마구 써버리는 지배층이 있기에 백성이 가난한 것이다. 농사를 짓지 않는 지배층이 농민의 생산물을 가져다가 먹으려면 무언가 그것에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 아닌가. 희한하게도 그 대가가 없다. 대가 없이 남의 물건을 취하는 것은 절도거나 약탈이다. 남의 소유물을 빼앗는 것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고부터 금지 사항이었다. 하지만 농민은 자신의 생산물을 빼앗기고도 늘 침묵했다. 왜인가? 법과 제도가 절도와 약탈을 거룩한 언어로 분식해, 그것을 일방적으로 농민에게 주입했기 때문이다.

도둑을 만드는 세상

요즘 인구가 날이 갈수록 불어나 백성들은 경작할 땅이 부족하건만, 널찍한 들판이 텅 빈 채 버려져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것은 도둑들이 백성의 재산을 빼앗기에 백성이 그 땅에 흩어져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도둑을 잡고 벼슬을 받다/제8권 인사문)

인구가 불어나 농토가 부족하다. 널찍한 들판이 있으면 일구어 곡식을 심고 가꾸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텅텅 비어 있다. 왜인가. 도둑들이 횡행하여 백성이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의 백성의 대부분은 농민이다. 농사를 지어 먹고살 수 있다면 굳이 도둑으로 나설 이유가 없다. 그런데 도둑이 성행하고 있다.

어리석은 백성이 굶주림과 추위에 몰린 나머지 도둑이 되어 살 길을 찾으니, 그것은 이와 같은 신세라고 할 것이다. 이는 옷의 솔기에 숨어 살면서 사람을 물지 않으면 살아갈 방도가 없다. 살아 있는 몸뚱이를 갖고 있으니 죽음을 면할 방도를 찾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의 처지에서 차라리 죽을지언정 사람을 물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이가 사람을 물어 살갗을 다치게 하면 사람이 모를 리가 없다. 사람 또한 부득이 이를 태워 죽이게 된다. 이는 사람을 깨물지 않으면 굶어 죽고 깨물면 또 불에 타 죽고 만다. 어리석은 백성이 도둑이 되어 살 길을 찾으니 부득이 잡아 죽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실정을 보면 또한 동정할 만하다. 증자는 “만약 그 실정을 알게 된다면 불쌍히 여겨야 할 것이다. 기뻐하지 말라” 하였다.(굶주림과 추위가 도둑을 만드는 법이다/제12권 인사문)

이는 사람을 물어 피를 빨지 않으면 굶어 죽을 것이고, 물어 피를 빨면 사람 손에 죽는다. 도둑질도 그와 같다. 도둑질은 죽을 수밖에 없게 된 백성이 하는 수 없이 택하는 길이다. 도둑질은 나쁜 짓이지만 그 사정은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도둑질이 늘어나는 것은 결국 자신들의 통치행위가 불량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쓸데 없는 관료들의 세상

천하의 벼슬자리를 차지하려고 비루하게 구는 자들은 너나 없이 사리를 채우려는 자들이다. 오직 공정하고 청렴한 한마음으로 민생을 후하게 만들려고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서사 무리의 명칭/제14권 인사문)

성호는 관직을 구하는 사람이 모두 사리사욕을 충족시키려는 자들이라고 말한다. 조선시대 관료의 봉급은 입에 겨우 풀칠을 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관직에 목을 매다시피 하는 것은 이미 관계가 되어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 ‘부정적 수입’이 넉넉했기 때문이다. 과거에 응시하는 자들 역시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백성의 후생에 관심이 있고, 또 그것을 실천하는 관료가 있었다면 아마도 예외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조선이란 국가의 관료제도는 본질적으로 착취기관이다. 백성들 중 그 누가 그들을 왕으로, 관료로 섬긴다고 동의해주었단 말인가?

부패한 자가 왜 출세하는가

성호사설 곳곳에서 성호는 백성의 궁핍한 삼에 대해 언급하면서, 관리들의 탐학을 멈출 것을 호소한다. 사대부가 벼슬을 하기 위해 익혔던 사서삼경은 사대부가 도덕적 존재일 것을 끊임없이 설파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탐학은 왜 그치지 않는가? 성호는 감영창고에서 감사의 재정을 전횡하는 권력을 이렇게 고발한다.

지금의 감사는 재물을 제 마음대로 쓰고 있지만 조정에서는 까마득히 모른다. 재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백성에게서 나오는 것인데도, 백성을 쥐어짜는 무리가 욕심을 채우고 자신을 살찌우니, 백성이 어떻게 곤궁하지 않을 수 있으랴? 지금 제도에 감사가 있으면 반드시 판관이 있다. 그러나 감사와 판관은 각각 창고를 갖는다. 판관은 감사를 공봉하지만 감사의 감영창고에 대해서는 관여할 수 없다. 감영창고는 국가의 내탕고와 같은 것이다. 내탕고란 것도 옳지 못한 것이거늘, 하물며 감영창고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지금 마땅히 법을 세워 감사가 비록 재부를 총괄을 하더라도 반드시 판관이 관장하게 하여 사사로이 쓰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다.(감영창고/제8권 인사문)

보통 관리는 감사로 있을 때 한몫 단단히 챙긴다고 보면 됐다. 예컨대 정조 즉위년에 평양 감사로 있던 조엄, 황해 감사였던 홍술해, 전라 감사였던 원의손을 각기 60만냥, 12만냥, 10만냥을 횡령여 유배되었다. 당시 쌀 한 가마니 값이 2냥에서 4냥 정도였다고 하니 실로 엄청난 액수다. 이런 부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가문이 결딴이 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영예를 얻기도 하는데 예로, 조엄의 가문은 뒷날 왕비 신정왕후(1808~1890, 익종의 비, 헌종의 어머니)를 내면서 풍양 조씨 세도가문이 된다.

부자 감세는 가난한 백성을 괴롭힌다

성호는 ‘가벼운 세금은 폐단을 낳는다’에서 세금을 적게 받는 것을 두고, 오랑캐의 제도라고 비난한다. 즉 세금을 적게 받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이다. ‘세금을 깎아주다’에서 성호는 ‘세금을 깎아서 백성을 구휼한다는 것은 정치의 요점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왜냐? “논밭이 있어서 세금을 매기는 법이니, 세금을 깎아주면 논밭을 소유한 사람만 혜택을 입기 때문이다.” 즉 세금을 깎아준다면 그것은 과세의 대상이 되는 토지를 소유한 사람만 이익을 본다는 것이다. 논이고 밭이고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은 깎아줄 세금조차 없다. 같은 글에서 성호는 이렇게 말한다.

정전제가 폐지된 이후 농토을 소유한 백성은 열에 한둘도 안된다. 이러니 위에서는 아무리 은택이 비처럼 쏟아진다 해도 아래서는 굶주림의 고통에 시달리니, 무슨 이익이 있을 것인가. 농토가 있으면 부자다. 부자들이야 세금을 깎아주지 않아도 무슨 해로움이 있을 것인가. 저 산에 불을 지르고 물을 막아서 자기 땅의 경계로 삼고 저기 집안의 이익을 누리고자 하는 자들이 세금의 반을 깎아달라고 날마다 은근히 바라자. 나라의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은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데 힘써 단지 나릐 재정만 축내고 있으니, 어찌할 것인가?(세금을 깎아주다/제14권 인사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