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성서동물

비둘기

기독항해자 2012. 7. 9. 10:54

비둘기



비둘기가 구애할 때 부리로 내는 울음소리 때문에 인간은 비둘기에게 주목하게 된다. 비둘기의 울음소리는 사랑의 속삭임으로, 또는 한탄의 소리로 해석되었다. 고대 오리엔트에서 사랑의 여신이 숭배되는 곳에서는 어디서든지 비둘기가 사랑의 여신에 속하는 새로서 사랑의 여신에게 봉헌된다. 그것은 바벨론의 이슈타르, 서셈족의 여신 아스타르테, 또 그리스의 헤라스에 정착한 여신 아프로디테의 신성한 새였다. 고대 인도인들은 흑색 비둘기에게서 죽음의 사자를 보았다. 또 다른 나라에서는 기분 나뿐 울음소리 때문에 비둘기는 죽은 사람의 혼을 나타내는 새라고 생각했다. 고대 시리아 사람은 그 묘석 위에 비둘기 집을 만들었다.

노아는 대홍수 후에 세 번 비둘기를 날려 보냈는데, 두번째에는 비둘기가 "입에 감람 새 잎사귀"를 물고 돌아왔다(창8:11). 이것은 여호와께서 대홍수 뒤에 그 백성에게 주신 평안 혹은 평화의 상징이다. 비둘기는 희생동물, 특히 가난한 백성이 드리는 희생 동물로서 희생에 바쳐지는 두 마리의 비둘기 중 한 마리를 번제물로, 나머지 한 마리는 속죄제물로 삼았다(레12:8, 14:22).

아가서에서는 신부의 아름다움이 비둘기에 비유된다: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아1:15). "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나로 네 얼굴을 보게 하라"(아2:14),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는 하나 뿐이로구나 그는 그 어미의 외딸이요 그 낳은 자의 귀중히 여기는 자로구나"(아6:9). 시편에서는 비둘기가 신속함에 대한 상징이다: "내가 비둘기 같이 날개가 있으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시55:6). 또 다른 곳에서는 여호와를 의뢰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비둘기라고 부르고 있다: "주의 멧비둘기의 생명을 들짐승에게 주지 마시며…"(시74:19).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은 직후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헤 임하심"을 보셨다(마3:16, 막1:10). 이 비둘기는 사람이 된 아들을 향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의 말씀이 가시적 형태를 취한 것이다: "내가 보내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요1:32). 하나님께서 성령을 비둘의 모습으로 보내심을 고대 오리엔트에 유포되었던 사랑의 상징언어를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택하신 구원의 왕을 계시하는 것이다. 비둘기가 내려온 뒤에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소리가 들려왔다(마3:17).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상인들을 몰아내고 깨끗이 하기 직전에 소를 파는 상인에게 나타낸 태도와 비둘기를 파는 상인에게 취한 태도는 차이가 있다. 전자는 노끈으로 만든 채찍으로 쫓아내셨지만 후자에게는 단지 나가라고 말씀하셨을 뿐이다(요2:14-16).

순교자 저스틴은 세례를 대홍수의 반복이라고 해석하고, 그리스도를 새로운 노아라고 보았다. 따라서 노아의 비둘기는 성령을 상징한다. 성령이 비둘기의 모습을 나타나는 복음서의 증언은 모든 기독교 미술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 때문에 비둘기는 마리아의 수태고지라는 그림에도, 성령강림의 기적의 그림에도 묘사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셨다"라는 하나님의 창세의 기록을 표현한 그림에도 여러 가지 형태로 비둘기가 그려져 있다.

오리겐은 신자를 비둘기라고 부르고 있는데, 마태복음에 이와 유사한 예가 있다. 마태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도를 향해서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말하고 있다(마10:16). 여러 전설에서는 비둘기가 죽은 사람의 혼의 새로서 나타나며 성인의 죽음에 당면하여 생명 없는 육체에서 하늘을 향해 날아 오른다. 

(성서 속의 상징 193, 최대형 편역, 은성)



학명(學名) Columbae에 속하는 새의 총칭. 원래 야생은 구(鳩), 집 비둘기는 합이라 했다. 미술의 모티브로 예로부터 애용됨(예 : 티볼리, 하드리아누스 제의 별장 모자이크, 100년경, 페르가본의 소소스 원작). 종교적, 도덕적 상징으로 표현되어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풍요와 사랑의 여신 이슈타르(아스테르데)의 속징(屬徵)으로 (예 : 마리 출토의 『마리 왕의 왕권신수』 벽화, B.C. 18세기, 루브르 미술관), 고대 그리스에서는 아프로디테 여신의 상징이됨(예 : 화가 올토스의 배(盃, B.C. 520경, 달퀴니아, 국립고고학박물관). 크레타, 미케네에서도 빈번하게 여신과 연결되고 있다. 고대에는 부부애, 정결의 상징이기도 했다. 고대 말기에는 인간의 영, 또는 영적정복(靈的淨福), 천상적 평화, 안식을 뜻했고 카타콤베의 벽화, 석관부조 등에 표시되었으나 그리스도, 성령의 상징이 되었다(⇒삼위일체). 성인(聖人) 등에 신(神)의 뜻을 전하는 것으로도 그려짐(예 : 『그레고리우스 교황교간집』삽화, 983경, 토리아 시립도서관). 12마리의 비둘기는 12사도를 표시함(예 : 로마, 산 클레멘테 성당 내진 모자이크, 12세기). 그리스도 신전봉납의 도상에는 신전의 공물로 나타남. 현대에는 주로 평화의 상징으로 그려짐(예 : 피카소, 석판화). 동양미술에는 중국 북송의 휘종 『도구도』(桃鳩圖), 명대의 전(傳) 변문진(邊文進)『쌍합도』등 화조화에서도 종종 등장함.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일반적으로 비둘기는 영혼 또는 성령의 상징으로, 가끔 천계의 방문이나 승천, 성령 강림 등을 표현한다. 특히 흰 비둘기는 성인의 혼에 비유되어, 순교자의 입에서는 이것이 튀어나온다고 믿었으며 모든 것으로 변신할 수 있는 마녀도 비둘기로는 변하지 못한다고 하고, 비둘기 깃털을 넣은 이불을 덮은 중병환자는 죽지 않는다고도 하였으며 고대 그리스ㆍ로마에서는 새점의 중요한 대상이 되었다. 또한 그 왕성한 번식력이나 생명력에서 풍요의 상징으로 생각되었다. 또한 올리브 가지를 입에 문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으로 이용되었다. 이는 노아의 홍수가 진정되었을 때, 육지가 다시 나타났는지를 조사하기 위해서 방주에서 놓아준 비둘기가 올리브의 작은 가지를 물고 돌아왔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비둘기와 올리브는 모두 고대부터 무후와 평화의 상징으로, 특히 1949년 파리에서 열린 국제평화옹호회의에서는 피카소의 디자인에 의한 비둘기 포스터가 만들어져 세계에 침투되었다. 또한 대(大)플리니우스의 『박물지』에 보이듯이, 오래전부터 군사나 민간의 통신용으로서 중시되며, 애완용으로서도 이미 크게 유행하고, 교량기법 등에 의해서 몸이 큰 것 등 개량종이 만들어졌다. 플리니우스는 동시에 〈비둘기는 닭과 달리 위를 보지 않고 물을 마실 수 있다〉 등의 흥미로운 관찰보고를 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사전)



비둘기의 귀소본능 탐구

비둘기들이, 심지어 마취돼 멀리 떨어진 낯선 곳에 옮겨진 상태에서도 정확하게 집을 찾아올 수 있는 것은 일종의 위성항법장치(GPS)를 타고 났기 때문이라고 뉴질랜드 과학자들이 주장했다. 비둘기들의 귀소본능을 과학적으로 설명한 것은 이들이 세계 처음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오클랜드 대학 마이클 워커 교수와 코듈라 모라 박사는 25일 비둘기들은 지구 자기장의 위치 표지에 반응하면서 정확하게 자기 집을 찾아간다고 뉴질랜드 언론에 설명했다. 그 동안 과학자들은 비둘기들이 자기장에 매우 민감하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나 지금까지 그 누구도 비둘기들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데 자기장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구체적으로 알아내지 못했었다.

연구팀은 독일에서 세군데 비둘기 집을 목표로 비둘기들이 집 찾아가는 경로를 추적하며 지도를 그려 보았다면서 비둘기들이 집을 향해 직선으로 날아가지 않을 때도 있어 의아하게 생각했으나 나중에 집 방향으로 코스를 바로 잡아 날아갔다고 말했다.

워커 교수는 자신들의 연구 결과 비둘기들이 처음부터 날아가는 지역의 자기장 특성 등에 반응하면서 집으로 가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심지어 마취를 시켜 먼 곳에 갖다 놓아도 집을 찾아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연구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면서 그 이유는 지구 자기장을 이용해서 경도와 위도도 알아낼 수 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연구 결과는 이번 주 나온 국제 학술지에도 소개됐다.

koh@yna.co.kr

에린튼 교수의 개의 귀소본능에 대한 그 보고서는 큰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교수는 자기가 개를 연구할 때 쓴 방법을 다른 동물에도 적용해 보기로 했다. 우선 비둘기였다. 비둘기가 귀소본능에 의해 자기의 둥지를 찾아온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거기에도 귀소본능 외의 것이 작용하고 있었다. 비둘기를 사육하는 사람들은 비둘기를 수백㎞나 떨어진 곳에 가져가 풀어 놓았는데 많은 비둘기가 둥지를 찾아왔다. 그러나 모두는 아니었다. 찾아온 비둘기도 있고 찾아오지 않은 비둘기도 있었다. 비둘기의 귀소본능은 곤충의 그것과는 좀 달랐다. 곤충들은 선천적으로 그게 유전자에 프로그램화되어 있어 모든 곤충이 무조건 거기에 따랐으나 비둘기에게는 선택권이 있었다.

먼 곳에 이동되어 집으로 돌아가라고 풀려난 비둘기 중에는 귀소를 포기하고 공원이나 광장 등으로 가버리는 비둘기가 있었다. 거기서 다른 비둘기들과 함께 아이들이 던져주는 과자를 얻어먹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비둘기는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게 수수께끼이며 신비였다. 도대체 비둘기들은 어떻게 집을 찾아가는 것일까?

사람들은 처음에 비둘기들이 기차나 트럭 등에 실려 이동할 때 그 길을 알아 두었다가 그 기억으로 집을 찾아간다고 생각했으나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이동 도중 비둘기는 눈으로 바깥을 보지도 않고 개처럼 오줌을 남기지도 않았다. 비둘기는 그래도 몇백㎞, 때로는 몇천㎞나 되는 곳에서 집을 찾아왔다. 도중에 바다가 있고 산이 있어도 비둘기는 돌아왔다.

에린튼 박사는 여러 전문가와 함께 비둘기가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헬리콥터를 타고 지켜보기로 했다. 학자들은 비둘기에게 자극을 주지 않기 위해 높은 상공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추적했다. 그 비둘기들은 영국에서 바다를 건너 프랑스로 가기로 되어 있었다. 2000㎞나 되는 거리였다. 새벽에 영국에서 풀려난 비둘기들은 일단 높은 상공으로 날아가 크게 원을 그리면서 주변을 살폈다. 덮어 놓고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방향설정을 하는 것 같았다. 비둘기들은 그렇게 방향설정을 하고 일정한 코스로 프랑스 쪽으로 날아갔다. 정확했다. 학자들이 헬리콥터 안에서 과학적인 방향설정기로 설정한 방향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었다. 비둘기들은 그 코스로 날아가 그날 오후에 프랑스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모두 열두 마리의 비둘기 중 열 마리가 집으로 돌아갔다.

비둘기는 어떻게 그런 방향설정을 했을까? 학자들의 의견이 일치되었다. 태양의 위치와 지구의 자기(磁氣)였다. 비둘기는 태양을 나침반 대신으로 쓰고 있었다. 그건 여러 가지 실험으로 증명되었다. 또한 비둘기에게는 지구의 자기를 감지하는 감각기관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 감각기관이 지구의 자기를 감지하면서 날아가는 방향을 잡았다. 그러나 그건 가정(假定)이고 확실한 근거가 없었다.

에린튼 교수와 동료 학자들은 일주일 후에 다시 실험을 했다. 여덟 마리의 비둘기를 전번과 같은 장소, 같은 조건으로 영국에서 풀어놓았다. 그런데 그날은 날씨가 아주 흐려 태양이 보이지 않았다. 태양이 보이지 않아도 비둘기들이 귀소를 할 수 있을지를 알아보려는 실험이었다. 비둘기들은 풀려나자 하늘 높이 날아올라 큰 원을 그리면서 선회했는데 전과는 좀 달랐다. 저번에는 서너 바퀴쯤 돌다가 바로 방향을 설정하고 날아갔는데 이번에는 열서너 바퀴나 돌았다. 태양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비둘기는 그 후 방향을 잡고 프랑스 쪽으로 날아갔으나 그날 이후 무사히 집으로 돌아간 비둘기는 단 한 마리 뿐이었다. 나머지는 행방불명이 되었다. 그 비둘기들은 출발 때부터 방향을 잘못 잡았다. 태양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학자들은 사흘 후에 또 다른 실험을 했다. 이번에 날린 비둘기들은 내이(內耳)를 잘라 버리거나 손상을 입혀 놓았다. 모두 일곱 마리 비둘기 중에서 무사히 집으로 돌아간 비둘기는 한 마리뿐이었는데 그 비둘기는 내이에 가장 가벼운 손상을 입은 비둘기였다. 그날은 태양이 떠 있는 날이었으므로 비둘기들은 출발점에서는 같은 코스를 잡았으나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서 대부분이 코스를 잘못 잡아 탈락해 버렸다. 

그런 실험으로 비둘기들이 태양의 위치를 보고 그걸 나침반으로 삼고 있다는 가설은 사실임이 증명되었다. 그리고 비둘기들의 내이 안쪽에 지자기(地磁氣) 역할을 하는 어떤 것이 있다는 가설이 거의 사실에 가깝다는 것도 입증되었다. 그러나 비둘기의 내이 안쪽에 지자기의 역할을 하는 어떤 것이 있다는 가정은 완전하게 입증된 것은 아니었다. 학자들은 그 어떠한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지 못했다. 아무리 비둘기의 머리를 해부해 봐도 그런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지자기가 있다는 가설은 그럴 것이라는 추측에 불과하지 증명은 되지 않았다.

비둘기가 먼 곳에서도 귀소하는 수수께끼는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 그건 아직도 신비에 가려져 있다. 에린튼 박사의 실험결과를 보고 군사병기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다시 정밀한 조사를 했다. 그 수수께끼가 풀리면 획기적인 군사병기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도 수수께끼를 완전하게 풀지 못했다. 비둘기의 머리 안에 지자기를 감지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주장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출처 : 동물들의 귀소본능 대전일보 2010. 4. 21 ? 4.26



길을 가다보면 뒤뚱거리며 한가로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비둘기를 보게 된다. ‘과연 날기는 할까?’라는 의문이 들게 하는 비둘기는 이제는 ‘닭둘기’로 불린다. 그러나 그런 비둘기도 한 때 먼 거리를 날아 편지를 배달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날렵한 ‘전서구’로 이용됐다. ‘전서구 비행 대회(pigeon racing)’에서는 1800km를 날아 원래 위치로 돌아온 비둘기가 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이렇게 비둘기가 먼 거리를 날아서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이유는 뭘까?

지난 2007년에는 비둘기 부리에 철 이온이 밀집된 부분이 6군데 있고 여기서 지구 자기장을 감지해 방향을 찾는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이 가설이 틀렸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돼 주목받고 있다. 오스트리아 분자병리학연구소의 데이비드 키스 박사팀이 비둘기의 부리를 면밀히 조사한 결과 철 이온이 함유된 세포는 자기장수용체가 아니라 면역세포라는 것이다. 이번 연구결과는 네이처 11일자에 발표됐다.

연구팀은 비둘기(Columbia livia) 약 200마리의 부리 세포를 0.010mm 크기로 잘라 철 이온은 푸르게 보이도록 염색하고 세포핵은 붉게 보이도록 했다. 붉은 바탕에 푸른 부분이 있는 부분은 철이 함유된 세포라는 뜻이 된다.

연구팀이 염색된 세포의 위치와 수를 분석한 결과 개체별로 차이가 있었다. 200번 비둘기는 부리 표피 아래 철 이온이 함유된 세포를 약 200개 가지고 있는 반면에, 203번 비둘기는 부리를 따라 철 이온이 함유된 세포가 약 10만 개 있었다. 게다가 비둘기의 배와 두피, 목의 피부 세포를 추가로 염색해 분석하자 여기서도 철 이온이 들어 있는 세포가 발견됐다. 부리 중 6군데에만 철 이온이 함유된 세포가 몰려있다는 기존 연구 결과를 반박하는 내용이다.

또 연구팀은 전자현미경으로 철 이온이 밀집된 세포의 초미세구조를 관찰했다. 그 결과 이 세포가 외부에서 침입한 병원체를 공격하는 ‘대식세포’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한 199번 비둘기 부리의 상처 주위에 철 이온이 함유된 세포가 몰려있었다는 사실로 볼 때, 연구팀은 손상된 부리 조직의 염증을 치료하기 위해 대식세포가 몰려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키스 박사는 “비둘기의 행동을 연구한 결과를 다시 분석해 비둘기가 철 이온으로 지구 자기장을 인식하는 것인지 재확인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비 기자 hello@donga.com

[출처] [해설이 있는 과학] 비둘기, 지자기로 방향 찾는다고?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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