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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의 일일수행 참된 나 찾기(박석무, 생각의 나무)

기독항해자 2012. 6. 20. 10:46

다산 정약용의 일일수행 참된 나 찾기(박석무, 생각의 나무), 2012년 6월에 읽음


아직도 묏자리를 보다니

다산은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망치는 다섯 가지를 통박하는 ‘오학론’이라는 글을 지었습니다. 반드시 없애야 할 학문으로, 첫째는 성리학, 둘째는 훈고학, 셋째는 문장학, 넷째는 과거학, 다섯째는 술수학을 들었습니다.

본디 그런 학문이 애처부터 나쁜 것이어서가 아니라 잘못 적용되고 변형되어 세상을 타락시키고 나라를 망치는 학문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성리학이야 인간성의 본원을 탐구하고 고운 성품을 길러 유위유용의 세상을 만들자고 발전한 학문이지만, 깊은 관념의 세계로 빠졌고 당파싸움과 연결되어 삶의 논리에 하등의 도움을 주지 않고 정쟁의 대상으로 바뀐 것을 없애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못된 술수학, 풍수지리설로 인간을 현혹시키고 관상론으로 인간을 속이고, 점을 치고 사주를 따져 인간의 운명을 미리 판단하는 혹세무민의 설이야말로 사람을 망치고 세상과 나라를 파멸시키는 근원이라고 격노하기에 이릅니다.

요순이나 공맹도 다가올 일이나 앞일을 예측하지 못했는데 어찌 범부들이 미리 예측하고 미리 알아 세상과 인간을 속일 수 있다는 것이냐라는 다산의 주장은 너무 옳기만 합니다.

임금을 감복시킨 다산의 지혜

화성의 정조의 아버지 사도제자와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양주 배봉산에 있던 사도세자의 묘소를 수원의 화산으로 옮긴 다음에 화성의 축조가 시작되었습니다. 학자 군주 정조는 효심이 깊어 억울한 죽음을 당했던 아버지를 잊지 못해 아버지를 위한 일에 특히 온갖 정성을 바쳤던 것은 잘 알려진 일입니다.

화성은 아버지와 관계되는 일이어서 가장 정성을 바친 역사였기 때문에 우선 철저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사도세자의 비궁·침원 및 용주사·배봉진의 여러 가지 유래와 제도 등을 기록하여 편찬하도록 다산에게 명하여 ‘화성정리통고’가 제작되었으며, 사도세자의 묘소이던 현륭원의 조경사업으로 심은 나무들의 목록을 기록한 ‘식목연표’까지 작성하더록 하였습니다.

다산의 글, ‘발식목연표’를 읽어보면 정조가 얼마나 꼼꼼한 효자였고 다산의 지혜를 얼마나 훌륭했나를 금방 알 수 있습니다. “7년 동안 8읍에서 현륭원에 심은 나무의 장부가 수레에 실으면 소가 땀을 흘릴 정도인데, 그 공로는 누가 더 많으며, 나무의 숫자는 얼마인지 아직도 명백하지 않으니 1권이 넘지 않은 범위에서 네게 명백하게 정리하라.” 임금의 명을 받은 다산은 표를 만들되 가로로 12칸을 만들어 7년 12차를 배열하고, 세로로 8칸을 만들어 8읍을 배열하였습니다. 1칸마다 그 수를 기록해 종합하니 소나무·노송나무·상수리나무 등 여러 가지 모두 1천2백만9천7백72그루였습니다.

다산의 지혜에 감탄한 정조는 높이 칭찬했습니다. “1권으로 상세하게 기록할 수 없을 것으로 알았는데 그렇게 많은 분량의 문서를 너는 종이 한 장에다 마무리하였으니 참으로 훌륭하다”가로 감탄하여 마지않았다는 것입니다. 수원화성, 다산과 정조, 그 임금에 그 신하임을 명확히 증명해주는 역사가 바로 화성의 축조였습니다.

성리학을 왜 반대했는가

다산학의 요체는 성리학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독창적인 새로운 학설을 세운 점에 있습니다. 공자나 맹자는 물론, 노자나 장자에도 나오지 않는 본연지성을 끌어다가 순수하게 선하기만 하고 일체의 악이 없는 성품을 말한다고 하면서, 그 대칭으로 기질지성을 연결시켜 착할 수도 악할 수도 있는 성품으로 구별하여 성리학의 체계가 세워졌습니다.

다산은 바로 여기에서 본연이라는 두 글자의 출처를 밝히면서 우리 유학에는 어디에도 없는 말임을 증명해냅니다. 능엄경이라는 불경에 “여래장성 청정본연”이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 부분에 나오는 본연이라는 두 글자를 송나라의 학자들이 우연하게 빌려 사용했는데, 그것이 결국 성리학이라는 송학으로 발전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산은 불경에 의거하여 본연이라는 ‘무시자재’의 뜻으로 풀이된다고 하면서, 우리 유가에서는 성품이란 하늘에서 받은 것이나 불교에서는 본연의 성품이란 어디서 받은 곳도 없이 태어나면서 하늘과 땅 사이에 저절로 있는 것으로 여긴다면서, 이것이야말로 하늘을 거역하여 천명을 무시하고 이치에 어긋나 착함을 해치는 것으로 본연의 학설이야말로 그보다 더 나쁜 학설은 없다고 통박하였습니다.

이런 논리에서 다산은 성리학에는 ‘본연지성’이라는 불교의 논리가 삽입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성리학의 선병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선이라는 불교적 논리가 성리학에 끼여 있으니 그련 병통을 제거할 때에만 본질적인 유교가 된다면서, 경전의 모든 논리를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으로 양분하여 성리학적으로 해석한 송나라 유학자들의 잘못을 파헤쳐, 새로운 경학의 세계를 수립하였으니, 그게 바로 경을 실용적이고 실사구시적으로 해석한 ‘다산학’이라는 학문세계였습니다.

인물성동이와 성리학의 문제점

중용에 대한 다산의 연구는 참으로 깊고 넓었습니다. ‘중용자감’과 ‘중용강의보’라는 연구서를 통해 의미가 깊고 어렵기 짝이 없는 중용의 논리를 가까이 접할 수 있도록 해설햊부고 있습니다. “오직 천하의 지성됨이라야 그 성품을 다할 수 있다.”라는 대목에서, “인간의 성품을 다할 수 있다면 만물의 성품도 다할 수 있다”로 연결되는데, 여기서의 인성과 물성에서 저 조선 중기이후의 ‘인물성동이론’이라는 희대의 성리철학 논쟁이 벌어져 학파과 문중별로 나뉘어 대단한 싸움이 전개되었습니다.

여기서 다산은 그 혹독한 학설논쟁의 허구성을 지적하고 인간의 삶이나 나라와 인민의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논쟁의 중단을 외치며, 그 논리의 허구성을 참으로 명쾌하게 설파했습니다. “자신의 성품을 다한다는 제 몸을 닦아 지극한 선에 이름이요, 인간의 성품을 다한다는 남에게 봉사하며 지극한 선에 이른다 함이요, 만물의 성품을 다한다는 위와 아래, 초목·조수 등 모든 것에 다 잘한다”라는 뜻이라 해석하였습니다. “그렇게 되어야 일마다 모두 지극히 진실하며, 실천에 옮길 수 있으며, 붙잡고 접촉할 수가 있으며, 과장도 없고 허탄함도 없다”라는 실용과 실천의 세계가 가능해진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인성과 물성이 논의되었다고, 단 한 차례라도 인물성동이의 학설이 더해지게 되면, 광막하고 허활하게 되어 머리를 넣고 손을 쓸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는 위대한 경고를 내리고 있습니다. 너무 넓고 너무 막막하며 너무 헛되고 너무 비워서 손도 쓸 수 없는 관념의 유희로 빠지고 만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세상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하고 인류의 삶이 제대로 향상되지 못하는 모든 이유가 바로 이런 경의 잘못된 해석에 있다고 보고, 지극히 참되고 지극히 실제적인 경의 해석을 강조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산은 인물성동이론은 불교의 이론이지 유교의 이론이 아니라고 반박하면서 실행·실천의 새로운 유교철학을 열어젖혔으니 바로 다산의 실학사상이었습니다.

청렴에 대한 다산의 철저한 태도

목민심서의 큰 항목은 12편인데 각 편마다 6조씩이니 도합 72조항입니다.

어느 조항인들 값이 높고 중요하지 않으리오마는, 핵심 중에도 핵심은 두 번째 편의 두 번째 항인 "청심"이라는 부분입니다. 결론부터 먼저 말하면, 공직자들이 청렴한 마음을 지니고 그대로 실천에 옮기면 세상은 밝아지고 깨끗해진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부연하면 청렴은 모든 선의 원천이며 모든 덕의 근본이라는 것입니다.

공자는 "어진 이는 인에 편안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인을 이롭게 한다"고 했으나, 다산은 "청렴한 사람은 청렴을 편한히 여기고 지혜로운 사람을 청렴을 이롭게 여긴다"고 해석을 확대했습니다. 청렴은 만 가지 문제가 모두 해결된다고 해석한 이상주의자 다산은 지고지선의 청렴을 요구하는데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첫째 등급의 청렴은 어떤 것일까요. "청렴에는 세 등급이 있다. 최상의 것은 봉급 이외에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며, 먹다가 남은 것은 역시 가지고 집에 돌아가지 않으며, 벼슬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에는 한 필의 말로 조촐하게 가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다산의 욕심은 그렇게 무서운 정도였습니다.

둘째 등급을 봅시다. "봉급 외에 명분이 바른 것은 먹고 바르지 않은 것은 먹지 않으며, 먹고 남은 것은 집으로 보낸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만 되어도 호호라는 것이지요.

세번째의 최하위 등급은 조금 복잡합니다. "무릇 이미 규례로 되어 있는 것이라면 비록 명분이 바르지 않더라도 먹지만 규례로 되어 있지 않은 것은 먹지 않으며, 시골의 벼슬을 팔지 않으며 재난에 구휼하는 물품을 훔쳐 먹거나 곡식을 번롱하지 않으며, 재판과정에서 죄와 벌을 돈으로 사고팔지 않으며 세금을 더 부과하여 나머지를 착복하지 않는다"하여 범죄행위를 하지만 않다도 청백리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뇌물은 들키기 마련

"뇌물 주고 받는 행위를 누가 비밀스럽게 하지 않으리로만은 한밤 중에 했던 바도 아침이면 벌써 드러나고 만다."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뇌물의 역사는 길고도 길지만, 인류가 존재하는 어느 시대에도 뇌물을 주고받는 행위가 근절되지 않고 있지만, 그것은 언제가는 반드시 밝혀지고 만다는 다산의 경고입니다. 누가 뇌물을 주면서 공개된 곳에서 준다는 말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고 주는 일이 있겠습니까마는, 아무도 모르게 그것도 한밤중에 주고 받는 일일지라도 자고나면 벌써 알려지고 만다고 했으니 무서운 이야기가 아닙니까.

다산은 '목민심서'에서 그런 멋진 경고를 하고는 '후한서'의 영진열전을 인용하면서, 어떤 벼슬아치에게 밤에 금 열 근을 품고 와서 "어두운 밤이니 아무도 모릅니다"라고 하면서 어떤 사람이 받기를 청하자 "하늘이 알고 귀신이 알며 내가 알고 그대가 아는데, 어찌 아무도 모른다 하는 거요"라고 하면서 그 벼슬아치가 거절했다는 고사를 부연하여 설명했습니다. 유명한 사지가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하늘, 귀신, 나, 그대가 모두 넷인게, 그 넷이 알고 있는데 왜 아무도 모른다고 하느냐는 꾸중의 말입니다.

재산을 오래 보관하려면

“세상의 옷이나 음식의 재료나 재화는 부질없는 것들이다. 옷이란 입으면 닳기 마련이고 음식을 먹으면 썩기 마련이며 재물이야 자손에게 전해주어도 끝내는 탕진되어 흩어지고 만다. 다만 한 가지 가난한 친척이나 벗에게 나누어 준다면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삶의 깊은 내막을 이해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실체나 형체가 없는 재물은 없어지기 마련이지만, 남에게 시혜하여 형체가 없는 것은 영원히 불멸한다는 다신의 해석이 너무 멋집니다. 세상에 이름 높던 부자들의 재산은 세월이 가면서 깡그리 사라지고 말았지만 큰 부자가 아니면서도 남을 도와준 옛날의 사실은 기록으로 남아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까지 달았습니다.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교훈사람 내려준 편지의 내용입니다.

물질로써 물질적인 향락을 누린다면 닳고 없어질 수밖에 없으나 형태 없는 것으로 정신적으로 향락을 누린다면 변하고 없어질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형태 있는 것이야 의당 없어지는 것이고 형태 없는 것은 없어질 수가 없으므로, 곧 정신적인 향락인 시혜야말로 영원불멸임을 더욱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남에게 도와만 주어버리면 도적에게 빼앗길 염려도 없고, 불이 나서 타버릴 염려도 없고, 소나 말로 운반하는 번거러움도 끼칠 필요가 없다는 데는 설득력이 크기만 합니다. 재물이 안달이 나는 걱정도 없이, 오히려 천추에 꽃다운 이름을 전하여 후손들의 명예에까지 영향을 미치니 얼마나 이로운 일이겠는가라는 반문은 너무 좋은 주장입니다.

“재물은 더욱 단단히 붙잡을수록 더욱 미끄럽게 빠져나가는 매기 같은 물고기라고나 할까?”라는 경고는 의미가 너무 깊습니다. ‘베풀기를 즐겨하라’던 다산의 이야기를 우리는 전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재물보관법으로 연결되는 것은 지혜로운 다산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라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