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天秋帆 1896년 민영환의 세계일주(민영환 지음, 조재곤편역, 책과 함께), 2012년 3월에 읽음
1896년 4월 1일, 특명전권공사 민영환 일행은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제물포항에서 배에 올랐다. 민영환 일행은 중국, 일본을 거치고 태평양을 건너 캐나다와 미국을 경유했다. 이어 대서양을 건너 영국, 아일랜드, 네덜란드, 독일, 폴란드를 거처 모스크바를 경유, 대관식이 열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다. 민영환 일행은 대관식과 외교임무를 마치고 그해 10월 21일 귀국한다. 6개월 21일, 총 204일간의 여정이었다.
민영환 일행의 여행은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일주였다. 세계 최초의 세계일주는 1519년 8월 10일부터 1522년 9월 8일에 걸친 마젤란 원정대의 항해이다. 그러나 ‘세계일주’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유럽의 스페인과 남미, 아시아 일부 해안에 한정된 지극히 제한적인 기행에 불과하다. 이후의 세계 일주도 비슷한 형국이어서 민영환 일행의 세계 일주와 같은 전 세계적인 일주는 유례가 흔치 않다.
민영환의 사행에는 윤치호, 김득련, 김도일, 손희영, 스테인 등이 동행했다. 이들 중 일부는 이 사행의 기록을 남겼는데, 민영환의 <해천추범> 외에 김득련의 <환구일기><부아기정>, 윤치호의 <윤치호 일기> 등이 있다.
청일전쟁(1894∼1895)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을 보호국으로 만들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이에 따라 명성황후 등 조선의 집권세력은 다른 열강의 힘을 빌려 난국을 타개하려 했는데, 바로 러시아와 손을 잡는 것이었다. 위기의식을 느낀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1895)하자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난하는 아관파천(1896)을 단행하게 된다.
'해천추범'은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다'라는 뜻으로, 조선의 근대화라는 과제를 안고 있던 젊은 관료 민영환의 고민이 드러난다. 민영환은 유럽 도시에서 엘리베이터, 전등, 영화관, 상수도 시설 등을 경험하며 근대 자본주의 문화에 큰 충격을 받았고, 대관식에서 각국 외교관과의 열띤 설전을 통해 부국강병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닫는다. 비록 러시아와 비밀조약을 맺는데 실패했지만 이 경험은 그가 귀국후 근대화에 앞장서도록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해천추범'을 완역한 이 책은 당시의 정황을 생생하게 되살리기 위해 편역자가 수행원이었던 김득련의 한시집 '환구금초(環??艸)'와 윤치호의 '윤치호 일기'를 덧붙이고, 여행과 관련된 사료들을 따로 찾아서 보충했다. 특히 고종이 니콜라이 2세에게 보낸 친서 원본을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서관에서 찾아내 처음 공개했다.
민영환 선생이 자살하지 않고 오래 살아 나라와 민족과 백성을 위해 좀 더 많은 일을 했으면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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