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30일(월)
본문: 누가복음 3장 7-9절
7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9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제목: 세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들
①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온 사람들은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그들은 세례요한으로부터 아주 심한 욕을 들었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우리 식으로 하면 ‘독사의 새끼들아’라고 한 것입니다.
뱀은 사탄을 말합니다.
독사의 자식들아란 말은 사탄의 새끼들이란 뜻입니다.
“요한계시록 12: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이렇게 심한 욕설을 듣고도 머물러 있는 무리들은 경이롭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종종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향해서 욕을 사용하셨습니다.
한 번은 예수님께서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좋은 나무가 아니면서 좋은 열매를 맺는 척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귀신 들려 눈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고쳐 주시자, 그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며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이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바리새인들이 초 치는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밉상이라고 부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다 칭찬하고 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헐뜯은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바알세불은 원래 블레셋 사람들이 섬기던 신으로 바알세붑으로 불렀습니다. 바알세분은 주거의 신, 높은 거처의 주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를 '파리의 주, 파리의 대왕'라는 뜻으로 풀이 했습니다다. 이를 유대교에서는 바알세불('오물의 신')로 고쳐서 우두머리 마귀를 가리키는 말로 썼습니다. 예수님은 바알세불에게 속한 사람으로 바알세불의 도움을 받아 치병을 했다는 비난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만일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어떻게 그의 나라가 서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맞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사탄은 어리석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귀신을 쫓는 축귀사역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너희의 제자들은 누구의 도움을 받아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냐고 반문하시는 말씀입니다.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선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만 합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이것을 행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성령의 사역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하심을 받지 못하실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12:33-35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아주 험한 욕을 하신 것입니다.
바로 사탄의 새끼란 뜻입니다.
예수님과 바리새인의 논쟁은 누가 하나님께 속했고, 누가 마귀에게 속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바리새인 사이에 화해할 래야 할 수가 없는 강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요한복음8:44-46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는데도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세례요한은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 사람들을 향해서 독사의 새끼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정체성이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혈통적으로는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가지고 있는 율법 백성들입니다.
그런 그들을 향해서 독사의 새끼라 표현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유대인들은 자신들은 괜찮은 사람들이라고 착각하며 살았습니다.
유대인이고 아브라함의 후손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니라고 세례요한이 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세례 받으러 나온 사람들은 누군가로부터 세례요한의 이야기를 이 광야로 나온 것입니다.
그들은 불편을 감수하고 광야로 나온 것입니다.
누군가 전해주지 않았다면 아무도 광야로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광야의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장차 올 진노가 있습니다.
반드시 진노는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죄가 관영하게 되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됩니다.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죄가 가득차게 되면 하나님의 진노의 그릇이 쏟아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우리가 불러 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세례를 받으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러 나온 사람들은 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온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구원은 전인적인 것입니다.
세례를 받음으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우리의 전존재가 변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16-19
-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구원은 우리가 변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일어나는 것 아닙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이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입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
사람은 습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사람의 습관이 그 사람 자체입니다.
일요일에 교회에 가는 사람은 크리스천입니다.
절에 가는 사람은 불자입니다.
점집을 찾아다니는 사람은 크리스천 아닙니다.
이렇게 습관이 곧 그 사람입니다.
열매는 바로 습관을 말합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란 말은 말입니다.
겉 다르고 속 다르다란 말이 있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란 말은 겉과 속이 같으란 말입니다.
매사에 크리스천 답게 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크리스천 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크리스천 답게 산다는 것은 예수님처럼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처럼 살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동을 살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서을 읽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처럼 살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삶의 지침서로 가르친 것이 있다는데 바로 산상수훈입니다.
산상수훈의 핵심은 이 구절에 있습니다.
마태복음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이게 황금율이라고 부릅니다.
매사에 이렇게 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을 역지사지라고 부릅니다.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바로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사람들은 혈통을 중시합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자기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닙니다.
자랑할 게 못 됩니다.
유명한 팝 가수였던 마이클 잭슨이 백인이 되고 싶어서 갖가지 시술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흑인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자신들이 선민이라는 자부심이 대답합니다.
선민이란 말은 내가 선택했다는 것이 아니라 선택되었다란 뜻입니다.
선택을 받았기 때문에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선천적으로 주었진 것들에 대해서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이것들을 자랑합니다.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들을 자랑한다는 말은 그 사람이 아이 수준이란 뜻입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노력으로 이룬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상은 우리의 노력으로 이룬 것도 자랑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것을 이루게 한 능력도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사람을 이루고 있는 물질이나 돌을 이루고 있는 물질이나 다 똑같습니다.
사람을 이루고 있는 물질이나 동물을 이루고 있는 물질도 다 똑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동물도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돌도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사람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부릅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은 자신이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되어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 난 사람, 못 난 사람, 부자, 가난한 사람, 다 같습니다.
우리가 사회 제도를 통해서 편을 가르지만, 결국 죽음으로 흙으로 돌아가는 것 마찬가집니다.
중국에 가면 중국의 황제들의 무덤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 무덤 속에 있는 시신도 썩어서 흙으로 돌아갑니다.
세례요한이 유대인들에게 말합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자랑할 것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아니란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인정을 합니다.
로마서 3:1,2
-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 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그러나 이게 그들의 선택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들의 노력과 선택에 의해서 이룬 것도 자랑할 것은 없습니다.
자랑보다는 책임이 더 무거운 것입니다.
많이 맡은 사람은 많은 책임을 갖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나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결산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을 결산할 때가 옵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다는 말은 우리 인생을 결산할 때를 말합니다.
우리 인생에 주인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주인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유대인의 책임은 인류에게 이 주인이 누구인가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게 그들의 책임입니다.
나는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닙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란 말은 사단이 우리에게 심어준 말입니다.
사실 이 말만큼 고상한 것이 없습니다.
나는 내 인생의 주인이다,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나는 내 인생의 주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주인이란 말은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나는 내 생년월일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인종을 마음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민족을 마음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나라를 마음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같은 민족이라도 어떤 사람은 북한에서 태어나기도 하고 중국에서 태어나기도 하고 일본에 태어나기도 합니다.
나는 나의 부모를 마음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태어나 보니 정주영의 아들이 되어 있었고 이건희의 아들이 되어 있었고 빌 게이츠의 아들이 되어 있습니다.
나는 재능도 마음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인생에 주인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인의 뜻에 맡게 살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달란트 비유가 나옵니다.
달란트 비유는 우리 인생에 주인이 있고 주인이 결산할 때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14 .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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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보면 충성된 종과 그렇지 못한 종이 있습니다.
이들의 차이는 가지고 있는 지식의 차이입니다.
주인에 대한 지식이 차이가 있었습니다.
24절에 보면 한 달란트 맡았던 사람의 주인에 대한 지식이 나옵니다.
이르되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한 달란트 받았던 사람은 주인을 굳은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주인을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은 사람으로 생각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주인은 부당 이득을 취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많은 부를 축적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주인이 다 가져가 버립니다.
사실 인간 사회는 이런 주인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우리가 취직하여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 열심히 일한 결과 주인이 더 큰 부자가 됩니다.
나는 아무리 일해도 월급 밖에 가져오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월급 만큼 일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런데 일터의 주인이 달리 계십니다.
내 월급을 주는 사장이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께 그 일터의 주인이십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월급 이상으로 일합니다.
한 철도회사에 도랑을 파는 일을 하는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은 그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참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수십 년 동안의 작업으로 허리가 흰 사람이었습니다.
한참 일하던 중 신입 일꾼이 나이든 선배 일꾼을 보면서 말했습니다.
"어제 호장님과 리무진을 같이 타고 가던 사람이 정말 선배님인가요?"
굽은 허리 때문에 일어서기 힘든 선배 일꾼이 올려다보면서 대꾸했습니다.
"맞아, 우리는 가끔 저녁을 같이 하곤 하지."
젊은 일꾼은 어떻게 한낱 도랑을 파는 사람이 회장님과 같이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지 매우 궁금했습니다.
"선배님은 어떻게 회장님과 저녁을 먹게 되었나요?"
"회장과 나는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지. 실은 여기서 같은 날 도랑을 파는 일을 시작했거든."
"정말인가요. 그런 회장님은 바닥부터 시작해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거군요. 그럼 선배님은요."
나이든 일꾼이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 회사를 위해 일하러 왔고, 나는 시간당 몇 품을 벌기 위해 이 일을 시작했던 거지. 그게 그 사람과 나의 다른 점이었고 지금 우리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는 이유라네."
생각의 차이가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회장의 된 사람은 종업원 때부터 주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일을 한 사람입니다.
주인처럼 행동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주인의 입장에서 행동하라는 말입니다.
이게 주인의식을 갖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 인생에 주인이 있습니다.
그분은 이때 어떻게 하실까?라고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주인의식입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주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것입니다.
주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려면 주인을 잘 알아야 합니다.
지식의 차이가 결과의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생각의 차이가 결과의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많은 직장인들이 돈을 벌기 위해 일터로 갑니다.
그렇지만 성공하는 직장인들을 일을 하기 위해 일터로 갑니다.
성공하는 직장인들은 그래서 월급만큼 일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일의 차이를 만들어내기 연구하고 노력합니다.
사실 돈을 버는 것은 일하는 목적이 아닙니다.
돈은 일을 한 결과물의 일부일 뿐입니다.
이들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우리는 우리 인생의 주인이 아니지만 주인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주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게 바로 황금율의 정신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내가 주인이라고 한다면 어떤 종업원을 원하는지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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