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창세기묵상

창세기강해32(셋의 길) 창4:25-26

기독항해자 2010. 8. 11. 12:34

2010년 8월 10일(화)

사도신경-540, 542장

본문: 창세기 4장 25, 26절

25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26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제목:창세기강해32(셋의 길)

오늘 아침에는 아벨 대신 주신 셋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 역사에 대해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①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아담은 하와와 동침한 후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셋이라고 불렀습니다. 셋이라고 이름을 지은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아담은 죄가 인류에게 들어오게 되는 통로의 역할을 하였지만, 인류를 구원하게 될 여자의 후손에 대해서 원(시)복음을 믿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첫째 아들인 가인이 바로 여자의 후손을 오게 할 통로라고 믿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믿음은 곧 가인에게서 아벨에게로 옮겨졌습니다. 왜냐하면 가인은 인본주의 길을, 아벨은 신본주의 길을 선택하며 사는 것을 아담과 하와가 보았기 때문입니다. 가인이 인본주의의 길을 가는 것을 본 아담과 하와의 마음이 어떠하였을까? 아마도 마음이 찢어지는 아픔을 겪었을 것입니다. 그는 첫째 아들입니다. 첫째 아들에 대한 기대는 모든 부모들에게 다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기대를 저버린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가인을 바라보면서, 자신들이 범죄했을 때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은 달랐습니다. 아벨은 항상 하나님의 중심의 신본주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제 두 사람의 기대는 가인에게서 아벨에게로 옮겨졌습니다.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가인이 그 기대가 부담이 되어 엊나간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우리 자녀들 중에도 그런 자녀들이 많이 있습니다. 부모의 지나친 기대가 부담이 되어 탈선하는 자녀들을 주위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부모의 기대가 자신에게서 아벨에게로 옮겨졌을 때, 부모의 기대는 부담이 되었지만,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동생이 미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습니다. 미움이 증폭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삭의 아들들인 에서와 야곱에게서 가인과 아벨의 모습을 봅니다. 야곱의 열 아들과 요셉에게서 가인과 아벨의 모습을 봅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죽었습니다. 그것도 그의 형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마음이 어떠하였을까? 그들은 큰 절망과 낙담에 사로잡혔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요셉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낙망하는 야곱에게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벨이 죽은 후에 셋이 태어났습니다. 아담을 바라보면서 내적 확신이 왔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절망과 낙담 가운데 있던 아담에게 하나님께서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약속을 변치 않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임을 아담에게 계시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아담은 하나님의 섭리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가인의 살인이 하나님의 섭리 역사를 멈출 수가 없습니다. 사단은 가인을 통해서 여인의 후손이 오는 길을 막으려 했지만, 하나님은 셋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②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성경은 우리 앞에 가인의 길과 셋의 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인의 길은 인본주의자의 삶입니다. 그 길은 자기 자신을 높이는 길입니다. 세상의 교육은 우리의 자아 실현이 목적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인류 창조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자아 실현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현하는 것입니다. 셋의 길은 바로 이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인의 후손들은 하나님이 없는 물질문명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들의 계보는 노아 홍수 후에도 이어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시날 평지에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이 그들입니다. 그렇지만 셋의 후손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다란 말은 하나님께 대한 공적 예배와 관련하여 성경에 사용된 말입니다. 기도와 간구, 감사와 찬양의 예배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가인의 길과 셋의 길은 같은 일을 하지만 다른 목적으로 합니다. 가인의 길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고 셋의 길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