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창세기묵상

창세기강해6(창조의 여섯째날1) 창1:24-27

기독항해자 2010. 7. 15. 12:22

2010년 7월 11일(주일)

사도신경-538장, 539장

본문: 창세기 1장 24~27절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가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26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제목: 창세기강해6(창조의 여섯째날1)

오늘은 창조의 여섯째 날 첫 번째 말씀에 대해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창조의 여섯째날에는 땅에 살게 된 동물들과 사람의 창조가 있었습니다. 오늘은 26절과 27절에 나와 있는 우리란 말과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①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누군가와 대화를 하시고 계십니다. 그때 우리는 말씀을 사용하시고 계십니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우리를 사용하고 계십니다. 3을 나타내는 말에는 셋이라는 뜻의 기수 ‘솰로쉬’와 셋째라는 수 ‘쉘리쉬’가 있습니다. 헬라어로는 ’트레이스‘가 있습니다. 이 3수는 포괄적으로 완성과 완결의 수로 이해됩니다. 구약성경에서 3은 거룩한 완전수이며 완성수로, 처음과 중간과 끝, 연합 및 협력, 승인 및 허가의 뜻이 있습니다. 숫자 3에 해당하는 세 번째 히브리어 알파벳인 Gimel은 헬라어로는 ‘감마’에 해당하며, 3 또는 3,000이란 수의 값을 가집니다. 특히 성경에서 3이라는 수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곧 하늘의 수로 하나님의 완전성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막은 뜰 성소 지성소의 3구분으로 되어 있고 (출 26:33, 27:9) 아론의 축복에서 여호와의 이름이 3번 나오고 하나님의 축복행위가 3번 이루어 질 것(민 6:24~26)을 단언했습니다.

우리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이 있어 왔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재촉하는 의미로 복수형을 사용하셨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둘째는 삼위일체에 대한 구약적인 표현이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셋째는 하나님이 천사들과 의논하시는 천상회의를 가리킨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넷째는 히브리인들은 장엄한 것을 나타낼 때 흔히 복수형을 사용하므로 강세를 나타내는 히브리 문학적 표현이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삼위일체론 정립된 이후에는 삼위일체에 대한 구약적인 표현이라는 해석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창조 사역에 나타난 각 위(位)-성부,성자,성령...의 완벽한 협력을 나타낸 말로 보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삼위일체란 말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삼위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이것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아직은 없습니다.

②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26절에는 형상과 모양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형상과 모양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있어 왔습니다. 첫 번째는 형상과 모양을 별개의 단어로 보는 것입니다. 형상은 구체적인 닮음으로서 신체와 관련된 것으로 보았고, 모양은 추상적인 유사성으로서 영적이고 도덕적인 닮음으로 보았습니다. 두 번째는 형상과 모양을 구별하지 않고 유사한 단어의 반복으로 보는 것입니다. 유사한 단어를 반복하여 사용함으로써 강조의 효과를 나타내는 히브리 문학적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형상이란 무엇을 말할까요?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습니다. 우선 이 표현은 사람에게만 적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사람과 동물을 구별 지을 수 있는 독특한 차이점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존귀한 존재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문맥에서 사람과 동물을 구별짓는 표현은 사람은 “다스리는”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표현은 인간의 “다스리는 역할”과 연관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Imago Dei)대로’ 지으셨다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사람을 ‘다스리는 자’로 세우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대 근동 에서는 ‘신(神)의 형상’이라는 표현에 대한 개념이 분명하였습니다. 왕이 가진 권위와 그의 통치는 신의 권위와 통치를 대신하는 것으로 간주 되었고 이런 의미에서 왕은 신의 권력을 그대로 소유 하고 있는 이른바 신의 복사본(copy)인 것입니다. 그리고 복사본(複寫本)이란 원형을 본뜬 것이므로 ‘형상’(image)이라는 표현으로 나타내었습니다. 따라서 ‘신의 형상’ 이라는 표현은 다름 아닌 ‘왕’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온 세상에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다스림을 나타낼 형상으로서 사람을 창조 하셔서 그로 하여금 세상 만물을 다스리도록 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다스림을 나타내시려고 인간(남자와 여자)을 왕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뜻대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다스림으로써 그분의 다스림을 피조물 세계에 반영하도록 지음 받은 것입니다.

성경 전체에 비추어 볼 때 아담은 분명히 왕의 역할을 수행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세 가지 직임(職任)은 왕직, 제사장직, 선지자직입니다. 이것은 두 번째 아담으로서 갖는 직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 직임을 행하시는 것은 첫 사람 아담이 인류의 대표로서 이 직임들을 행하는 일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인류의 대표로서 그 직임을 맡아 행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그리스도를 가리켜 둘째 아담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중에 세상으로 보냄을 받을 때에, 우리에게는 이 삼중직을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선지자로서 우리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제사장으로서 우리는 이 세상과 살고 있는 사람들을 중보기도해야 합니다. 왕으로서 우리는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은 왕직을 완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서는 교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우리가 따르는 개혁교회의 입장에 대해서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종교개혁자 칼뱅의 견해를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칼뱅은 ‘인간 안에 어느 곳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발견되는가?’라고 질문하면서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 자리 잡고 있는 좌소는 인간의 영혼속이다”라고 답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은 원래적으로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를 “아담이 부여받은 순결성”은 이 단어로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표현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칼뱅은 골로새서3:10과 에베소서4:24에 근거하여 결론짓기를 인간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은 원래 참된 지식, 의로움, 거룩성을 포함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타락하기 전에는 인간은 완전한 상태로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소유 하고 있었으나 인간의 타락은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에 엄청난 파괴적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칼뱅은 타락한 인류의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에 관하여 어떤 입장을 취하였을까요? 칼뱅은 하나님의 형상이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철저하게 도말되었다(utterly defaced), 파괴 되었다(destrroyed)라고 종종 말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타락한 인간도 계속해서 하나님의 형상 안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죄로 인해서 하나님의 형상은 아주 심하게 손상을 입었고 끔찍하게 변형되었습니다.

이렇게 부패하고 오염된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은 성령의 역사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새롭게 되어 질 수 있습니다. 중생과 성화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은 원래의 형상으로 회복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 완전히 회복되어 지는 때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는 새 사람과 옛 사람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란 말만큼 인간의 존엄성을 높여주는 말은 없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란 사상이 회복되기 전까지는 인간의 존엄성은 위협받게 됩니다. 우리는 나치 독일 치하에서의 유대인들에 대한 수용소에서의 폭력과 구소련 치하에서의 시베리아 수용소에서의 정치범들에 대한 폭력 속에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란 믿음이 없는 사회에서의 인간의 가치를 보게 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란 믿음이 없는 사회에서의 인간의 가치는 고기 덩어리일 뿐입니다. 기독교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란 믿음 위에 세워진 종교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오늘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의 뜻은 하나님의 대표자란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여기 소자 한 사람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뜻입니다. 내 앞에 서 있는 그 사람이 하나님을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대표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