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창세기묵상

창세기강해1(창조의 첫째날) 창1:1-5

기독항해자 2010. 7. 15. 12:09

2010년 7월 6일(화)

사도신경-591장, 593장

본문: 창세기 1장 1~5절

1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3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5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제목: 창세기강해1(창조의 첫째날)

①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조의 첫째날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1장은 위대한 선언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바로 이 구절은 천지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밝혀주는 구절입니다. 히브리서 11장 3절은 이 구절을 이렇게 주석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창조주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태초에는 하나님이 천지 창조를 개시함로써 시작된 역사적 '시간의 출발점'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태초 이전에는 하나님께서만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히브리어로 엘로힘입니다. 그 뜻은 '두려워해야 할 강하고 능력 있는 자', '경외해야 할 최고 존재'입니다. 이 이름은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강조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엘로힘은 형태는 복수형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단수로 취급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 양식에 대한 암시로 볼 수 있습니다(26절). 또한 존귀하거나 장엄한 것을 표현할 때 복수형을 쓰는 히브리인의 독특한 관습에 따라 이를 장엄 복수형으로 볼 수도 있다.

구약에는 '창조하다'란 뜻의 단어가 셋이 나옵니다. 첫째, 여기서 사용된 '바라'는 무에서 유로의 창조를 가리킵니다. 둘째, '아사'는 이미 창조된 물질을 재료로 더 나은 물체를 만드는 것을 가리킵니다다(16, 25, 26절). 세째, '야찰'은 '아사'와 비슷하나 특별한 목적에 따라 기존 사물을 새로 완벽히 조성하는것을 가리킵니다(2:7.9). '바라'는 (1)무에서 유로의 창조를 가리키는 1절 (2)무생물에서 생물로의 창조를 가리키는 21절 (3) 영적 존재의 창조를 가리키는 27절에서 사용되었습니다.

②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2절은 하나님께서 지구를 창조하셨을 때의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지구는 첫째날 만들어졌고, 태양계는 넷째날 만들어졌습니다. 처음의 지구는 혼돈하고 공허하였습니다. 아직 질서가 잡히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다는 것은 단순히 빛이 아직 없었다는 뜻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창조하신 우주에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서 수면 위에 운행하셨습니다. 운행하다는 그 뜻이 '알을 품다'입니다. 어미 닭이 병아리를 까기 위해서 알을 품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③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자료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하나님이 이르시되(가라사대)는 6일 창조의 기간 동안 반복해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성삼위 하나님의 2위를 말합니다. 요한복음 1장 1절부터 3절 말씀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기자는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고 말했습니다. 사도요한은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고 선언합니다. 사도요한은 그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우리는 천지 창조의 첫째날에 나타난 성삼위 하나님의 사역을 볼 수가 있습니다. 천지창조는 성부하나님의 단독사역이 아니라 삼위하나님의 협력사역입니다. 그리고 삼위하나님은 항상 함께 사역하십니다.

하나님은 첫째 날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빛'은 때로 열(사44:16), 불(사31:9), 태양(욥 31:26), 번개불(욥 27:3) 등 구체적인 발광체 혹은 발광 현상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본절의 '빛'은 4일째 창조된 태양과는 구별되는 에너지원을 가리킵니다.

현대물리학이 발전하면서, 첫째 날에 창조된 빛에 대해서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빛은 에너지원을 말합니다. 한 개의 원자핵 속에 있는 양성자와 중성자는 매입방인치당 10억톤의 밀도로 서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이는 각 양성자 간의 약 40파운드의 에너지에 해당됩니다. 이 에너지의 힘은 정상 인력보다 1에 0이 38개나 붙은 숫자 만큼의 배나 강한 것입니다. 이 숫자가 얼마나 크냐 하면 전 지구상의 해변에 있는 모래 알의 수 보다 100조배나 큰 것입니다. 독일의 물리학자 오토 가일은 한 방울의 휘발유가 자동차에 완전히 이용되기만 한다면 지구 둘레를 400번 여행하는 데 충분하다는 계산을 해냈습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한 온스의 물에서 나오는 에너지의 전체량은 2억톤의 쇠를 지상 1마일 까지 쉽게 들어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측정했습니다. 여러 항성과 은하계들은 에너지가 질량으로 전환됨에 따라 창조된 것입니다. 물질은 에너지의 다른 형태입니다. 원자물리학의 발달로 에너지와 물질과의 관계를 알게 되었습니다.

④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은 창조를 보시면서 보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창조를 기뻐하십니다. 우주의 창조가 하나님께는 기쁨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창조를 만족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만족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처럼 천지의 창조를 만족하신 것입니다.

빛이 창조되자, 빛과 어두움이 나뉘게 되었습니다. 어두움의 특징은 빛이 있으면 어두움은 물러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빛이 어두움을 이기는 것입니다. 어두움은 빛을 비추면 사라집니다. 어두움은 빛이 없는 상태입니다. 우리는 어두움을 없애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빛만을 추구하면 됩니다. 그러면 어두움은 절로 물러가게 됩니다.

⑤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이는 첫째 날이니라

어두움이 먼저 있었습니다. 그리고 빛이 창조되자 어두움이 물러갔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저녁을 하루의 시작으로 셈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온 우주를 창조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질학의 발달로 6일 창조에 대한 믿음은 큰 도전을 받아왔습니다. 날은 히브리어로 욤이라고 부릅니다. 욤에 대한 해석으로는, 전통적으로 세 학설이 있어 왔습니다. 첫째로 '날'은 곧 한 시대를 가리킨다는 학설입니다. 이들은 5,8,13절의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는 말이 하나의 상징적 표현으로서, 한 시대의 끝과 다른 한 시대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이 주장의 근거는 창조주 하나님에게는 시간적 요소가 초월되어 있다는 점입니다(시90:4; 벧후 3:8). 이 학설은 지질학의 연대기를 성경해석에 적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욤'을 문자 그대로 24시간으로 보는 학설입니다(루터, 칼빈, 뻘콰). 그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성경 해석상 특별한경우가 아닌 한 원어의 일차적인 뜻을 따라야 합니다. 둘째, 실제적인 제7일을 안식일로 하나님께서 정하셨다면 다른 6일도 당연히 같은 24시간을 가진 하루이어야 합니다. 세째, 창조 사역에 있어서 마지막 3일은 분명히 오늘날과 같은 태양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에 24시간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최초의 3일도 같아야 되지 않겠는가?라는 주장입니다. (3) '욤'의 기간이 서로 다르다고 보는 절충적인 학설입니다(어거스틴, 바빙크), 즉 태양이 창조된 제4일 이전의 3일은 오늘날의 하루와 다른 장구한 기간으로, 그리고 이어지는 3일은 24시간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성경을 해석할 때는 보수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무리가 없습니다. 욤에 대한 해석은 안식일 규정이 6일 창조를 지지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