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15절에서 사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모순 되어 보입니다. 은혜는 값없이 거저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른 번역을 살펴보았는데 모두 은혜를 잃어버리는 사람들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요즈음 기독교강요를 읽고 있습니다. 칼빈은 이 책에서 예정론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예정받은 사람은 은혜에 떨어지는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예정론의 골자입니다. 그러니 이 말씀을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정론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 창조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인간 창조의 목적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예정론을 올바로 이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 창조의 목적은 하나님 나라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나라는 법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법이 실현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법의 통치 아래 하나님 백성이 살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인간을 생각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자유로운 존재로 인간을 만드신 것입니다. 이 자유에는 하나님의 뜻을 반역할 수 있는 자유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담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은 인류가 타락할 것을 아신 것입니다. 당연히 구속 계획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창조-타락-구속-완성, 이것을 구속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이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인간을 창조할 때부터 하나님은 이 계획을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태초에 인간은 어린 아이와 같았습니다. 그들에게는 풍족함이 주어져 있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은 그들에게는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한 번도 결핍을 경험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그런데 이것에 만족했나요?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만족을 모르는 존재들입니다. 만족할 줄 모릅니다. 은혜는 만족을 아는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감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에덴 동산의 아담에게는 이런 것들이 결핍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떠나야만 아는 게 있습니다. 내가 떠나온 곳이 얼마나 소중한 사랑이었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잃어야만 하는 게 압니다. 그곳이 얼마나 사랑이 넘치는 장소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로마서 1장 21절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에덴 동산의 아담이 하나님을 몰랐나요?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과 교재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들은 감사하지 않았습니까? 아직 이들은 결핍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왜 에서는 한 그릇 음식에 혹해서 장자의 명분을 팔았을까요? 망령되다는 말은 불신앙을 말합니다. 신앙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에서의 후손들은 다 약속의 계보에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에서는 무엇이 소중한지를 몰랐습니다. 반면에 야곱은 안 것입니다. 장자의 명분의 가치를 안 것입니다. 신앙은 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알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살고 있습니다. TV를 보면 다 한 그릇 음식에 대해서 말을 합니다. 그리고 이 한 그릇 음식 때문에 사람이 다투고 싸웁니다. 먹어도 배부르지 않는 음식을 위해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깁니다.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진리를 버리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