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하나님의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인간 곧 사람을 말합니다.
영만으로 이루어진 천사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그들은 피조된 존재들입니다.
사람은 만들어진 존재들이지만 낳은 존재들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낳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것을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사람의 아들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신인 혹은 인자라고 부릅니다.
왜 예수님이 오셨을까요?
왜 예수님이 인간이 되셨을까요?
예수님은 이 땅에 죽으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죽기 위해서 인간이 되셨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의 목적지입니다.
예수님이 죽음에 대해서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 사도가 말렸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베드로 사도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마태복음 16장 21~25절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예수님은 예수님의 죽음을 방해하는 사도 베드로에게 사탄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은 이미 오래 전에 예정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 계획 속에 이미 예정된 것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불가피한 선택이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길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십자가가 불가피한 일이라면 인간의 타락도 피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타락한 아담과 하와를 없애고 다시 시작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는 예정의 일부인 것입니다.
마귀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마귀를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라고 부릅니다.
타락이 불가피한 일이었다면 죽음도 불가피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죽음은 우리의 종착지가 아닙니다.
죽음은 우리 인생의 하나의 과정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죽음 이후에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것 아닙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가 아닙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존재입니다.
죽음으로 나의 존재가 소멸하는 것 아닙니다.
죽음으로 나의 존재가 소멸한다면 우리 인생은 허무한 인생인 것이죠.
그렇지만 성경은 죽음이 우리 인생의 끝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타락 이후에 죽음은 하나님의 심판의 일부가 됩니다.
그리고 죽음을 통과한 인생은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서게 됩니다.
그래서 타락한 인생은 죽음을 생각할 때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어떡하든지 피할 수 있으려면 피하고 싶은 게 죽음입니다.
마귀가 하는 일은 죽음이라고 무기로 사람을 협박하고 자기 세력 범위 안에 있게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일을 하게 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5, 56절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예수님의 죽음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내가 너희를 이렇게 사랑한다는 하나님의 표현입니다.
십자가에서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사람의 아들들이 예수님을 닮은 존재들로 변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로 태어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