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과 삶/크리스천과 독서

살아가는 동안 나를 기다리는 것들(웬디 러스트베이더, 이은정, 국일미디어

기독항해자 2012. 10. 22. 14:53

살아가는 동안 나를 기다리는 것들(웬디 러스트베이더, 이은정, 국일미디어), 2012년 10월에 읽음


저자는 사회복지사로 노인들을 섬기면서 노인들로 인생에 대한 지혜를 배우게 된다. 그리고 늙는다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이 아니라 인생의 과정임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점차로 노인들의 지혜로부터 멀어져가는 사회를 살고 있다. 저자는 한국 독자를 향해서 쓴소리를 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태어나는 순간 노인을 향해 가는 것이다. 젊음은 결코 영원하지 않다. 그렇다고 한다면 늙지 않으려 애쓰기 보다는 어떻게 잘 늙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현명한 사람의 자세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부모 세대와 좀 더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나이가 들어서 노인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현명하게 노인기를 보낼 수가 있을까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아직도 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노인들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노인에게서 우리는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는 교훈을 얻게 될 것이다.


1부 희망을 위한 소통

평등

가장 중요한 보상은 인생 후반기에 주어진다. 죽음이 가까워 올수록 권력과 돈이라는 신기루는 희미해지고 가장 마지막에 있던 것이 가장 중요한 자리에 온다. 가치를 좇아 일하는 사람은, 보수를 따라 성취감이 적은 직업에 매달렸던 사람들이 뒤늦게 의미 있는 일을 찾아 옮길 때에도 여전히 만족하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열악한 환경을 동정하던 사람들로부터 오히려 부러움을 받으며 소신 있고 품위 있게 나이드는 사람으로서 삶의 모범이 될 것이다. 오래도록 정신적인 만족을 추구하며 살아온 덕분이다.

인간관계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이 향상되면 인간관계도 좋아진다. 타협하고 조화롭게 지내는 게 능숙해진다. 이에 따르는 변화는 많다. 더욱 공정하게 싸우고 논쟁 중에 더 이상 몸을 낮추지 않아도 된다.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의도하는 것을 젊었을 때보다 더욱 명확하게 직접 표현한다. 또 자신을 더 정확히 파악한다. 하고 싶은 말을 당당히 하되 기분이 거슬리지 않는 방법을 더욱 세심하게 찾는다. 다툴 일이 있을 때는 윗사람으로서 신중하게 결정한다. 복잡한 마음을 견디는 것도 덜 힘들어진다.

시간이 흐르면서 친밀함은 겹겹이 쌓인다. 부부는 서로 상대의 감정, 특히 슬픔을 표현하는 언어에 유창해진다. 상대방을 어떻게 위로해야 하는지, 다정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언제 보여줘야 하는지, 혼자만의 시간을 언제 줘야 하는지 안다. 서로에 대한 배려는 부부가 어려운 전환기를 맞을 때, 이를테면 정들었던 집을 떠나 이사한다든지 오랜 친구의 죽음을 맞을 때 특히 가치를 발휘한다. 풍성한 관계속에 노년을 맞는 일은 많은 노력을 해도 좋을 만큼 충분한 가치가 있다.

감사

유대인의 추모 기도는 삶의 아름다움과 거룩함을 긍정하는 내용을 여러 번 반복한다. 그 내용은 우리도 잘 알지만 보통 때는 별로 의식하지 않는 것들이다. 젊을수록 그런 사실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이내 의무적인 일상으로 돌아가기 바쁘다. 사별을 당한 후에야 가장 평범한 것들이 주는 기쁨을 깨닫고 여러 가지 신체 능력을 누리고 있음에 감사한다.

상실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상실을 경험할 때마다 계속해서 커지는 커다란 슬픔의 우물이 있다. 우리는 새로운 슬픔을 겪을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묵은 슬픔까지 끄집어내어 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한동안 잠겨 있던 슬픔에서 빠져나와 사랑과 일상이라는 산소가 있는 곳으로 올라가는 법을 배운다. 그런 과정에 익숙해져서가 아니라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렇게 한다.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슬픔이 가벼워지지는 않는다. 다만 슬픔을 견디는 요령이 생기고 그 리듬에 응하는 지혜를 배운다.

젊은이들은 노인들이 인생 후반기에 겪는 상실 후에 도대체 어떻게 살아갈지 상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나이 든 사람들이 친구와 가족을 잃고 정든 집을 떠나고 소중한 일을 접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 후반부가 불행으로 점철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노년이 정말 불행한 시기라고 결론을 내려버린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노년이 되면 슬픔 속에서 새로운 삶의 의지가 싹트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 우리는 슬픔을 향해 마음을 열고 슬픔이 나를 통과해서 빠져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상실감이 크면 아직 많은 삶이 기다라고 있는 것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렇다고 깊은 상실감을 피하려고 애쓰기보다 상실감이 여생을 보내는 데 활력소가 되도록 해야 한다.

영성

비통한 경험을 하면 영적인 세계로 발을 들여놓기 쉽다. 무엇보다 가장 큰 계기가 되는 것은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일 때일 것이다. 누구라도 누군가의 도움으로 화장실에 간 후 바지를 끌어올려 줄 사람을 기다릴 때와 같은 절망적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우리는 흙과 같은 존재다. 우리가 죽어서 돌아갈 곳도 흙이다. 종교에 관심을 가진 적도 없고 영혼이니 믿음이니 하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은 사람도 여전히 인간의 유한함과 약함에 대합 답을 찾으려 한다. 인생을 이해하려면 불행했던 순간과 행복했던 나날, 두 가지를 모두 놓고 맥락을 찾아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영적인 욕구를 밀물처럼 밀려온다. 사랑하는 사람이 주거나 물질적인 세상에 집착이 약해질 때 신성한 존재에 대한 관심을 커진다. 인생에 대한 근본 의문도 더 또렷해진다. 자신을 초월적인 이야기의 일부로 보면서 개인적인 소유물의 가치가 시시하게 느껴진다. 자연의 섭리를 설명하기 위해 신과 같은 대단히 중요한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마음은 더욱 커진다. 더 큰 진리를 알게 될수록 세속적인 것에 지배를 덜 받는다.

자비

오래 살다 보면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경향에서 벗어나게 된다. 무엇보다도 인생 후반기에 겪는 사별은 연민을 일깨우고 남과 조화를 이루어 사는 삶의 중요성을 잊지 않도록 해준다. 나아가 더 넓은 목표에 관심을 가지고 사소한 방법이라도 인류 전체 미래와 직결되는 일을 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이를테면 지역 공동체에 기여한다든지 자기가 사는 지역 자연 환경을 보호하는 일을 돕는 것 등이다.

인생 후반기가 되면 자비를 베풀 여유가 생긴다. 자비를 베풀면 개인적인 어려움을 이겨낼 동기가 생기고 새 삶을 열어줄 중요한 원천을 만나게 된다. 남을 위해 선행을 함으로써 힘을 얻고 만남 자체에서 활력을 얻는다. 자비심은 생명력을 불러온다. 자신의 욕망을 이루는데 급급하면 정신이 고갈되는 반면 다른 사람의 삶을 도와주면 공허한 마음이 계속해서 채워진다. 자신을 위해 끝없이 더 많은 것을 찾아다니다 보면 폐쇄된 삶을 살게 되지만, 외부의 무엇인가에 관심을 돌리거나 자신이 가진 것을 남에게 주면 행운이 온다.

다른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은 자신을 벗어나는 가장 유익한 방법이다. 자기중심적인 목표를 세우면 시간이 지날수록 지치게 되지만, 다른 사람을 도우며 살면 에너지를 공급받는다. 자신이 다른 사람의 삶에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신체적인 굴욕감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된다.

자기인식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은 오랫동안 풀어나가야 할 과제다. 남과 비교하며 자신의 결점을 발견하는 부정적인 자기 평가는 오랜 세월을 따라다니며 우리를 위축시킨다. 그러다 인생 후반을 맞을 때 비로소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진다.

주고받기

인간관계는 삶의 기반이 된다. 어려움에 처한 누군가를 도와주면 우리가 어려울 때 도움을 받는 관계가 만들어지고, 슬퍼하는 누군가를 위로하면 우리가 슬플 때 위로를 받는 관계가 만들어진다. 이러한 인간관계는 안정감을 주는 토대가 되고, 위로라는 에너지를 공급한다. 위로와 힘을 주고받아야 할 필요 때문에 인류는 역사가 시작된 후로 줄곧 함께 모여 살았다. 혼자서 삶에 대처하는 것은 지속적인 기반 위에서 도움을 주는 공동체의 포용력에 비할 수 없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의지하는 인간관계 네트워크에서는 삶에 대한 두려움이 훨씬 많이 사라진다.

우리가 도움을 주든 도움을 받든 서로 의존하는 삶에 관심을 가질 때 인생은 훨씬 더욱 살 만해진다. 남들은 세심하게 배려하면서 그들이 좀더 수월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은 자신의 미래를 두려움 없이 맞이하며 의욕에 찬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2부 변화를 위한 정치

기억

외부에 차단된 이야기는 지도에 나오지 않는 뻥 뚫린 공간과 같아서 접근 방법이 없다. 최악의 경험을 숨겨놓고 절대 말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 회피하는 성격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고통을 표현하지 않으면 발전하지 못한다. 긍정적인 감정까지 억누르고 표현하지 못하게 된다. 무심함과 냉담함은 즐거울 시간까지 망친다. 나쁜 기억을 들추지 않으려다 자칫하면 소외감을 자초할 수도 있다.

시간

의도적으로 뒤로 물러나 자신이 한 말과 행동을 되돌아보는 습관을 반드시 길러야 한다. 젊을 때는 경솔함에 지배되기 쉽고 자신의 생각을 즉각 토해내야 직성이 풀린다. 미래를 위해 지금 당장 좋아 보이는 일을 미룬다는 것은 왠지 소심하거나 노인네처럼 고루하고 답답하게보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급하게 행동하면 경솔함의 대가를 나중에 치르게 된다. 나이가 들면 서서히 기다림의 미덕을 알게 된다.

기다리는 것을 배우는 것은 행복하게 살기 위한 기본 태도다. 또 흘러가는 시간과 동맹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연되는 상황에서도 너그러워지려면 특정한 기본 전략이 필요하다. 노력을 기울이는 것, 더 잘 될 거라고 믿는 것, 목표를 똑똑히 바라보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 전략이 없으면 인내심이 사라진다. 또 인간관계가 힘들어지거나 일이 어려워지면 너무 쉽게 포기하게 된다. 목표를 늘 마음에 간직하고 기다리면 보람이 있을 거라고 확신하며 보상을 그려보는 일에 익숙해져야 한다.

뒤늦은 깨달음

나이가 들면서 얻는 수확 중 최고의 것은 다른 사람의 인생 경험에 쉽게 공감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 역시 힘든 세월을 겪어보았기에 남들의 곤경을 전과 다른 눈으로 보기 때문이다. 살면서 알게 된 사실을 자신의 역사에 대입해보면 예전에는 공감하지 못했던 일이 문득 이해되곤 한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이해라고 하면 삶이 너그러워진다. 공감하는 수준이 높아져서 다른 사람의 무지라든가 무신경해보이는 행동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한때는 용서할 수 없었던 일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도움이 꼭 필요한 친구를 왜 모른 척했는지, 부모님은 왜 매몰찬 반응으로 감정을 악화시켰는지 이유를 깨닫게 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강도가 약해지면 자신에게도 너그러워진다. 이처럼 시야가 넓어지면 지혜의 눈이 생긴다.

결정

존경하는 사람들의 삶을 겉으로만 보면 치밀한 계획을 세워서 그 자리로 올라갔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보니 대부분 사람이 계획보다는 느낌에 따라 많이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막연히 안다. 목표를 정하지만,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기도 하고 예전에 벗어났던 길로 되돌아와 다시 나아가기도 한다. 그런데도 길을 정하면 처음부터 합리적으로 결정해서 일관성 있게 한 길만 걸어온 것처럼 이야기를 꾸민다.

삶은 다르게 사는 것 말고는 달리 대안이 없는 상황이 엄청난 도움이 될 때고 있다. 파국을 앞둔 상황은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던 일도 어떻게든 하게끔 한다. 한때 없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 없이 지내보면 사는 데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하지는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후에는 다음 변화에 부딪히더라도 한층 수월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된다.

멀리 돌아가는 길

자신을 발전시키는 고통을 피하는 한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감정을 끌어안지 않고 차단해버리면 정서적으로 성장하지 못한다. 자신을 숨기는 사람은 남들과 쉽게 친해질 수 없다. 도전을 피하고 자존감을 기르지 않으면 자신감을 키울 수도 없다. 인생이 주는 선물을 받는 데 지름길이란 없다.

삶을 회피하는 가장 흔한 방식은 술이나 약물 같은 화학물질에 의존하는 것이다. 이 외에도 정체 상태에 머무는 방법은 다양하다. 종일 일에 파묻혀 산다든지, 감정을 완전히 막아버린다든지, 끝없이 정신을 산만하게 하는 오락거리에만 빠져 지낸다든지 하는 식의 회피도 삶이 자연스럽게 발전하는 것을 막는다. 삶의 경험으로 강해지고 싶다면 난관을 돌아가지 말고 정면 돌파해야 한다.

술을 마시거나 약물에 의존하는 중독 상태가 되면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없고 헌신과 애정을 받지 못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점점 멀어지면서 화학물질이 다른 관계를 제치고 중심이 된다.

마음의 회복

어느 상황에서든 가장 믿을 만한 힘은 육체적인 민첩함보다 더욱 본질적이며 정신적인 회복력이다. 고난을 뚫고 나가겠다는 정신은 어느 떼라도 발휘할 수 있고 사용할수록 개발된다.

한 해 한 해 열심히 산을 오르면 지속적인 리듬으로 한 발을 다른 발 앞에 놓는 일이 점점 더 익숙해진다. 여전히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 차라리 가지 않은 게 좋을 자기인식이라는 통로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일이 생긴다. 과감하게 그 안으로 들어가려면 그동안 쌓은 담력을 불러내야 할지도 모른다.

항로변경

삶을 바꾸는 통찰력을 원한다고 해서 갑자기 불러낼 수는 없다. 통찰력은 수십 년간 노력하여 조금씩 커지면서 서서히 우리를 변화시킨다. 살다보면 내면에서 여러 힘이 뒤섞이고 커져서 어느 순간 놀라운 정도로 의식에 변화가 일어난다. 성장은 오랜 세월 짓눌러온 문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힘이다. 그만큼 파급력도 강하다. 그때는 그 일이 왜 그렇게 오래 시산이 걸렸는지 의아해질 뿐이다.

3부 평화를 위한 외침

용기

인생 후반기의 용기는 ‘내려놓기’와 깊은 관련이 있다. 몸에 밴 태도를 고수하면 정체되고 스스로 힘들어지는 반면 유연해지면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벽을 돌파할 수 있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처음에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사실 노쇠의 신호를 거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늙고 힘이 없어지는 것, 사생활을 침해받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을 때 하지 못하는 것, 즉 시간을 마음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 억울하게 느껴진다. 오래 해 온 일이라도 자신이 하던 대로 하지 못하거나 방해를 받을 바에는 차라리 그만두고 싶어진다. 자존심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용기를 내려면 먼저 자신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자신을 돌아보는 걸 최대한 미루다가 용기를 내야 할 시기를 놓치지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마음을 닫거나 불만을 나타내도 오래도록 그 원인과 해결책을 찾지 않는다. 자신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확신하다가 어떤 일을 계기로 그제서야 자신을 돌아본다.

몸이 주는 교훈

50세가 되면 신체 노화와 싸워야 한다. 활동이 줄어들면서 근육의 긴장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조금만 먹어도 살이 찐다. 시력이 약해지고 몸 여기저기가 쑤시고 피부 탄력도 떨어진다. 이것은 나이가 들면 피할 수 없는 생명 현상으로 70,80,90대가 되면 뼛속까지 실감하게 된다.

나이가 드는 것은 숨길 수 없다. 다른 사실은 숨길 수 있어도 시간을 견뎌낸 모습은 겉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젊음을 잃어버린 사실은 첫 눈에 알 수 있다. 얼굴을 아무리 젊게 꾸미고 머리를 염색해도 노화는 감출 수 없다. 나이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도 드러난다.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숨기려고 하는지, 노화를 인정하는지, 부인하는지, 자랑스러워하는지, 부끄러워하는지에 대한 태도까지 말이다.

태도

무엇에 주의를 기울이느냐에 따라 인생 후반부가 크게 달라진다. 그러므로 일부러라도 신체 노화를 의식하지 말고 해로운 고정관념이 스며들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심신이 위축될 거라고 생각하면 경험의 폭이 좁아져도 저항하지 않게 된다. 자신이 누린 것은 생각하지 않고 잃은 것만 계산하면 현실을 즐기지 못하고 박탈감만 느끼게 된다. 나이를 잊을 수 있는 경험을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즐길 줄 아는 자세도 훈련해서 몸과 마음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 관심을 신나는 쪽으로 돌리면 삶의 모든 것에 열정이 생겨날 것이다.

인생의 후반기에는 스스로 만들어내는 내면의 분위기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일과의 질이 정해진다. 초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새로워질 기회가 와도 포기하고 스스로 상황을 악화시키는 사람이 있는 반면, 집에 너무 오래 있었으니 환경도 변화시킬 겸 밖으로 나오라는 초대를 환영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기회를 잡는 선택의 문제에 관해 자신이 무능하지 않다고 생각해야 한다. 권리를 빼앗기지 않고 더 즐겁게 생활하면서 누구든 많이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느리게 살기

시와 소설, 그림 등 모든 예술 분야가 억압받지 않을 때 최고 작품이 나온다. 감정을 자유롭게 표출하고 생각과 이미지를 마음껏 떠다니게 하면 즉흥적이지만 가장 좋은 영감과 창의성이 솟아난다.

고집스럽거나 성급하게만 굴지 않으면 자기 앞에 놓인 시간을 여유롭게 쓸 수 있다. 조용히 앉아 내면을 돌아보는 것은 덧없음에 대한 대답한 대답이며, 시간을 움켜쥐어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이다. 우리로 하여금 보이고 들리고 느끼게 했던 것들을 줄이면 여유로운 시간을 얻을 수 있다.

평정심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도덕적인 잣대나 행동의 본질이 흔들리지 않는 태도가 정립된다. 그리고 이런 내적인 판단 기준은 평정심의 토대가 된다. 마침내 신념뿐만 아니라 싫어하는 것과 민감한 부분까지도 포함한 자신의 참모습에 편안해진다. 인생 후반에 이르러서야 자신에게 만족하는 법을 비로소 확실히 알게 된다.

초보자의 마음

나이가 들면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이 진정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된다. 안다고 믿었던 것에 대해 전보다 단호하게 확신하는 일이 줄어들면서 더욱더 수용적이 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공부의 출발이다.

수용하는 자세는 문제를 극복하는 힘이 된다. 중년을 지나면 우리의 의식은 불필요한 많은 것이 차지한다. 너무 산만해서 무엇을 보더라도 단순하게 생각하지 않을 때가 많다. 너무 많은 것이 쌓이면 고통스러워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수용하는 마음으로 주의를 기울이면 얼마든지 일상도 특별해진다.

마음이 시키는 일

살다 보면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을 못하게 막는 것이 많다. 그렇지만 그런 것에 둔감해지는 방법도 수없이 많다. 특히 가족이 그런 걸림돌이 될 때가 많다. 무엇보다 경제적인 상황이 우리를 안주시킨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성공을 목격하면 삶에 활력을 얻을 수 있다. 남들이 바라는 것에 관해 들으면 숨어 있던 갈망이 깊숙한 곳에서부터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그들은 인정하면서 자신의 열망도 활기를 띤다.

인생후반기에 자신을 개조하는 것은 흥미롭지만 불안하다. 안전한 길을 택하는 유혹이 수그러들지 않기 때문이다. 변화를 미루어야 할 이유도 많고 그것이 타당하기도 하다. 실제로 변화를 고려하다 보면 다음 기회로 미루는 일도 많다. 아무 고민 없이 편히 안주하는 편이 신경을 쓰는 것보다 훨씬 쉽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위험은 삶의 필수 요소다. 위험을 잘 이용하면 그만큼 성장하니까 말이다. 변화에는 두려움이 따르고 나이가 들면 상실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중요한 점은 두려워도 위험을 무릅쓰고 계속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