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 나무와 그 열매
성경에서 최초로 무화과를 언급한 것은 모세의 글이다. 무화과는 약속의 땅을 특징짓는 과실로서(민13:23, 신8:8) 광야와 대조를 이룬다. 광야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다(민20:5). 여호와께서 그 백성에게 진노하시면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치셨고(시105:33), 또 강하고 무수한 메뚜기 떼가 올라와 무화과나무를 긁어 말갛게 벗겨버려 그 모든 가지가 하얗게 되었다(욜1:17). 만군의 여호와는 백성 중 신앙의 열매를 맺지 않는 자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칼과 기근과 염병을 그들에게 보내어 그들로 악하여 먹을 수 없는 악한 무화과 같게 하겠고 …"(렘29:17). 예언자 하박국은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고통의 날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산들이 주를 보고 흔들리며…해와 달이 그 처소에 멈추었나이다…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합3:10-17).
백성들이 각기 "자신의 포도나무와 자신의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아 있는 광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평안을 나타낸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독실했던 마카비, 즉 유대의 형제 시몬이 다스리는 동안 "이스라엘은 기쁨이 넘쳐 흘렀다 사람마다 자기의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앉았으며 그들의 마음을 괴롭힐 자는 아무도 없었다"(마카비상14:11). 미가는 이것과 꼭같은 광경을 미래의 구세주의 나라를 상징적으로 말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다: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 이렇게 말씀하셨음이니라"(미4:4).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세계의 종말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사용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앞에 이른 줄 알라"(마24:32-33,눅21:29-31). 열매를 맺지 않은 무화과나무를 베어버리라는 것은 상징적 비유로서 믿음의 열매를 맺지 않은 백성에게 적용된다(눅13:6-9).
교부신학에서는 특히 창세기3:7의 무화과 잎사귀를 증거로 끌어들여 이것을 죄의 상징으로 해석하였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뒤 무화과 잎사귀로 몸을 감추었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어거스틴은 무화과나무와 잎사귀에서 하나님의 깊은 은총 표현을 본다: "우리들은 한그루의 나무에 의해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한다. 한 그루의 나무는 우리에게 자신이 나체인 것을 가르치고, 한 그루의 나무는 자비의 잎사귀로 우리들의 몸을 감쌌다." 기독교 색채가 짙은 '아담의 서'는 낙원을 쫓겨난 아담과 하와의 생애를 기록한 문서로서 기원전 20년경부터 기원 70년경 사이에 유대인의 손에 의해 히브리어나 아람어로 쓰여졌다고 추측된다. 그러나 현재는 그리스어 라틴어 슬라브어의 사본이 남아 있을 뿐이다.
생명나무를 지키는 기룹이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에게 낙원의 무화과나무를 주었다고 전해지지만 이것도 신의 은총을 나타내는 것이다. 여러 교부들, 예를 들면 성 히에로니무스는 무화과나무의 열매를 성령의 상징으로 해석하고 있다.
(성서속의 상징 193, 최대형 편역, 은성)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거기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마가복음11:13-14).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직전에, 베다니에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은 대부분의 성도들에게 무척 친숙한 이야기이다. "예수님이 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을까요?"라고 물으면 대부분 별 생각 없이 "열매를 맺지 못해서"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저자 마가는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 놓았다. 차라리 이 말씀이 없다면 이해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텐데. 모든 것에 때가 있듯이 식물은 저마다 꽃이 필 때가 있고 열매를 맺을 때가 있다. 꽃이 필 때 성급하게 열매를 바라는 농부는 없다. 씨를 뿌린 농부는 추수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이 자연의 순리다. 그러나 때가 되지 않아 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를 인정사정없이 저주하신 예수님의 모습이 우리를 당황케 한다. 무화과나무의 저주 사건은 거의 모든 성도들이 알고 있지만, 이 말씀이 이처럼 모순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아는 성도는 그리 많지 않다.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스라엘에서 무화과나무가 어떻게 열매 맺는가'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지중해와 접한 중동 지방인 이스라엘의 독특한 기후에서, 무화과나무는 유월절이 있는 4월부터 초막절이 있는 10월까지 모두 다섯 번 열매를 맺는다. 이스라엘의 기후는 4월부터 10월까지 이어지는 건기(여름)와 그 나머지 기간에 해당하는 우기(겨울)로 나윈다. 6개월의 우기 동안 앙상한 가지로 겨울을 보낸 무화과나무는 유월절이 다가오면서 조그만 잎사귀와 함께 첫 열매인 무화를 맺고, 긴 여름 동안 무화과 열매를 다섯 차례 맺는다. 그런데 이 첫 열매인 무화과와 이후에 열리는 무화과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단어가 전혀 다르다.
성경은 무화과나무 저주 사건에서 이튿날이라는 시간적 배경을 말하고 있다. 이는 예수님이 벳바게에서 나귀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성전을 깨끗게 하신 사건이 있던 날 다음 날을 가리킨다.
유월절 즈음에 맺히는 첫 열매인 무화과는 히브리어로 '파게'라 하고, 이후에 순차적으로 열리는 무화과는 '테에나'라고 한다. 무화과를 뜻하는 영어 'fig'도 히브리어 단어 '파게'에서 온 단어다. 히브리어에는 첫 열매인 무화과와 이후에 열리는 무화과를 뜻하는 단어가 서로 다르지만, 헬라어나 영어나 한국어에는 이것이 모두 '무화과'라는 한 단어로 번역되어 있다. 두 종류의 무화과를 구별하지 않으면 전혀 엉뚱한 해석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말씀을 히브리어에 기초해서 다시 읽으면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튿날 예수께서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 시장하셨다. 멀리서 잎사귀 있는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열매(파게)가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예수께서 파게를 찾은 것은 때가 유월절 즈음인지라 아직 본격적인 무화과(테에나)의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유월절 즈음에 잎사귀와 동시와 맺혀야 할 파게를 맺지 못하고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예수님은 저주하셨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무화과나무는 꽃이 피지 않고 잎과 열매를 동시에 맺는다. 유월절 즈음에 맺히는 파게는 작은 잎과 함께 맺히는 작은 열매다. 이후에 커다란 잎과 함께 맺히는 무화과(테에나)에 비해 작고 당도가 떨어진다. 파게는 무화과 과수원의 주인 입장에서 보면 상품성이 떨어지므로 일일이 따 줘야 한다. 그래야 이후에 상품성 있는 테에나가 제대로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화과의 주인은 일일이 파게를 따는 수고를 하는 대신에 지나가는 행들이 이것을 공짜로 따 먹도록 허락했다. 어차피 시장에 내다 팔 수 없는 파게를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주어서 인심을 얻고, 그것을 일일이 따야 하는 노동력도 절감하려는 계산에서 그렇게 한 것이었다.
지나가는 행인 입장에서 파게는 어떤 유익이 있을까? 성서 시대에 이스라엘 국민의 90% 이상은 가난한 소작농이었다. 파게는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필요를 제때 채워 준 정말로 고마운 선물이었던 것이다. 파게가 당시 이스라엘의 소작농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이스라엘의 여름 과실을 알아야 한다.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일곱 개의 작물 가운데 밀과 보리를 제외한 다섯 가지(무화과, 포도, 석류, 올리브, 대추야자)는 모두 여름 과실이다(신명기8:8). 다섯 개의 여름 과실은 각각 시간 차이를 두고 열매를 맺는다. 모든 것이 새파랗게 타 들어가는 한여름의 이스라엘 산지는 8월에 포도를 시작으로 9월에 석류, 10월에 올리브, 11월에 대추야자를 맺는다.
문제는 12월부터 파게가 맺히는 4월부터 5개월 동안 가난한 소작농들이 여름 과실을 못 먹는다는 것이다. 물론 소수의 부자들은 말린 대추야자와 무화과를 창고에 쌓아 놓고 먹었다. 추운 우기(겨울) 동안 단 열매를 먹지 못한 이들은 건기(여름)의 시작과 함께 공짜로 얻게 될 파게를 간절히 기다렸다. 이는 성서시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독특한 문화 배경을 담고 있다.
테에나에 비해 당도가 떨어지기는 하지만, 파게는 오랫동안 단 열매에 굶주린 사람들에게 최고의 열매요 선물이었다. 예수님이 마지막 유월절을 앞두고 일주일을 보내신 베다니와 벳바게는 모두 무화과와 관련된 동네다. 예수님도 유월절을 앞두고 간절하게 파게를 찾으셨을 것이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채 긴 겨울을 보낸 무화과나무가 유월절 즈음에 작은 잎사귀와 함께 맺는 파게에 얽힌 비밀은 무화과 저주 사건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구약 성경에는 무화과나무의 첫 열매인 파게와 관련된 말씀이 세 번 나온다. 이는 성서 시대의 문화 배경을 알지 못하고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구절이다.
선지자 미가의 표현-"내 마음에 사모하는 처음 익은 무화과가 없도다"
미가는 의인이 사라진 유다 말기의 상황을 독특하게 표현하고 있다.
"재앙이로다 나여 나는 여름 실과를 딴 후와 포도를 거둔 후 같아서 먹을 송이가 없으며 내 마음에 사모하는 처음 익은 무화과가 없도다(미가7:1)."
초여름에 맺히는 파게를 간절히 기다리며 긴 겨울을 버티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토록 사모하는 파게가 없는 것만큼 더 절망적인 상황이 있을까? 긴 겨울의 터널을 지나더라도 멀리서 보이는 터널 끝의 한 줄기 빛을 보면 버틸 수 있다. 그러나 미가가 살던 남유다는 아무런 소망도 보이지 않는 황무한 상황에 있었다.
선지자 호세아의 표현-"너희 열조 보기를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같이 하였거늘"
호세아는 솔로몬 시대 이후 '이스라엘의 백은기'로 표현되는 마지막 전성기를 누리던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 때 활동했다. 그는 극심한 빈부 격차와 당시에 만연하던 우상숭배를 탄식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옛적에 내가 이스라엘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같이 하였으며 너희 열조 보기를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같이 하였거늘 저희가 바알브올에게 가서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드림으로 저희의 사랑하는 우상같이 가증하여졌도라(호세아9:10)."
선지자 이사야의 표현-"여름 전에 처음 익은 무화과와 같으리니"
이사야가 활동하던 남유다의 히스기야 왕 때에 북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당하고 말았다. 이사야는 일장춘몽같이 무너져 가는 북이스라엘의 영화를 초여름에 지나가는 행인들이 처음 익은 무화과를 얼른 따서 먹는 것에 비유했다.
"그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있는 그 영화의 쇠잔해 가는 꽃이 여름 전에 처음 익은 무화과와 같으리니 보는 자가 그것을 보고 얼른 따서 먹으리로다"(이사야28:4).
긴 겨울을 견디고 간신히 맺은 열매를 지나가는 행인이 냉큼 따 먹어 버렸다니, 그 순간적인 영화가 얼마나 덧없다는 말인가!
나다나엘과 무화과나무
빌립이 전도해서 예수님께 나아온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는가?'하는 의구심으로 가득했다. 나다나엘을 보신 예수님은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며 최고의 찬사를 하셨다. 그러자 나다나엘은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라고 물었다. 예수님은 참으로 이상한 말씀을 하셨다.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이 말씀을 들은 나다나엘은 곧 바로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고백했다.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나다나엘은 무화과나무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1세기에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다'는 말은 유대인들이 자주 쓰던 숙어 같은 표현이었다. 성서 시대에 이스라엘에서 토라를 가지고 있던 사람은 많지 않았다. 두루마리 성경인 토라는 1년치 봉급을 모아야 겨우 살 수 있는 귀중품이었다. 늘 다음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소작농이 대부분인 성서 시대 이스라엘에서, 토라는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마을의 회당에나 있는 것이었다. 회당이 없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토라를 공부할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당시 랍비 문헌을 보면, 회당이 없는 작은 마을에서 토라를 공부하기에 좋은 장소로 추천된 곳이 바로 무화과 나무 아래였다.
이스라엘의 건기는 한국보다 훨씬 덥지만 무척 건조하다. 그래서 햇빛 아래서는 호흡하기조차 힘들지만 그늘에 들어가면 무척 선선하다. 6개월이나 지속되는 이스라엘의 여름 날씨에서 잎이 넓어 좋은 그들을 제공하는 무화과나무 아래는 랍비와 함께 토라를 공부하고 토론하기에 좋은 장소였던 것이다. 아울러 여름 내내 쉼 없이 열매를 맺는 무화과의 향기는 기억력을 좋게 하는 청량제 역할을 했을 것이다.
나다나엘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열심히 토라를 공부하고 진리를 찾던 구도자였다. 예수님은 뜨거운 여름 햇살을 피해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토라를 묵상하던 나다나엘을 보셨던 것이다.
빠른 에너지 공급원 무화과
각종 미네랄이 풍부한 무화과는 특히 많은 철분을 함유하고 있어 이스라엘에서는 임산부에게 적극 권장하는 과실이다. 빵보다 3배 많은 영양분이 있고 빠른 속도로 혈당을 올릴 수 있다. 오랫 동안 굶주린 사람을 빠르게 회복시키는 데 무화과보다 좋은 식품이 없다. 무엇보다 인슐리 과다 복용으로 급격한 저혈당에 빠진 환자에게 무화과 열매를 짜서 수액을 먹이는 것은 최고의 처방이다. 가장 빨리 혈중의 혈당을 올려 주기 때문이다.
정성이 필요한 무화과나무
무화과는 손이 많이 가는 과실이다. 특히 열매가 익을 즈음 병충해를 막으려면 바늘로 일일이 구멍을 뚫어 주어야 하는데, 이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무화과는 초여름에 익기 시작해서 여름 내내 쉬지 않고 열매를 맺는다. 열매는 익으면 바로바로 따 줘야 하고 딴 열매는 금새 무르고 상한다. 그래서 납작하게 눌러서 말린 무화과는 성서 시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대표 식량이었다. 이처럼 눌러서 말린 무화과는 성경에 '무화과 뭉치'로 번역되어 있다(사무엘상25:18; 30:12).
무화과를 지키며 돌보는 자만이 그 과실을 먹는다는 잠언의 표현에서 과수원지기의 극진한 돌봄이 필요한 무화과의 특징을 알 수 있다. 사람이 돌보지 않는 야생 무화과는 작은 덤불에 지나지 않는다. 잘 돌본 무화과만이 열매를 맺고 잎이 무성한 나무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무화과나무를 지키는 자는 그 과실을 먹고 자기 주인을 시종하는 자는 영화를 얻느니라(잠언27:18)."
종말의 상징, 무화과나무
마태복음 24장은 흔히 '종말장'으로 불린다. 예수님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면서 성전의 멸망을 선포하시는 것으로 마태복음 24장은 시작한다. 예수님의 말씀에 충격을 받은 제자들은 예루살렘 동편에 있는 감람산 위에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라고 묻는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마태복음24:32-33)".
유대인들에게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의 사계절을 정확히 알려 주는 나무다. 겨울에 모든 잎이 떨어져 회색의 앙상한 가지만 남은 무화과나무는 여름이 다가오면 가지가 연해지면서 작은 잎과 첫 무화과나무 열매는 파게를 맺는다. 이때는 3,4월에 해당하므로 한국의 봄이라고 할 수 있다. 5-10월이 되면 잎사귀가 커지고 두번째 무화과나무 열매인 테에나를 네 차례 정도 반복해서 맺는다. 이때가 여름이다. 11월이 되면 무화과의 수액이 흘러나와 끈적거리고 공기 중의 흙먼지가 열매와 잎사귀에 달라붙어 지저분하게 보인다. 이때가 바로 가을이다.
무화과나무는 사계절을 알려주지만, 이 말씀에서는 특별히 여름을 말하고 있다. 종말 이야기를 하는데 왜 저자 마태는 굳이 여름을 말하고 있을까? 유대인들에게 여름이 상징하는 것을 무엇일까? 한국 사람들은 여름이라고 하면 부채나 팥빙수를 떠올리겠지만 유대인들은 종말을 떠올린다. 히브리어로 여름과 종말은 그 어원이 같기 때문이다. 보통 사계절의 순서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지만 유대인들의 사계절은 가을부터 시작된다. 가을, 겨울, 봄으로 이어지며 여름이 끝이 되는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가을이 시작인 이유는 이스라엘의 새해가 10월에 시작되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유대력에 기초한 달력을 기준으로 일곱 번째 달인 '티슈레이월'(국제달력으로 10월)의 첫째 날을 신년으로 지킨다. 가을에 새해를 시작하는 유대인들에게 사계절의 끝은 여름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여름이 가깝다는 말은 곧 종말이 가깝다는 말로 들리는 것이다.
무화과나무 비유의 초점은 무화과나무를 보고 사계절을 알 수 있고 특히 유대인들에게 종말을 뜻하는 여름이 가까이 온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또 하나의 숨겨진 초점이 있는데 이는 무화과나무가 바로 이스라엘 나라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열린다 성경 식물 이야기, 류모세, 두란노)
특징
무화과는 꽃이 피지 않는 과실이라고 해서 무화과라고 하나 실제로 꽃은 과실내에서 피므로 외부로 나타나지 않을 뿐이다. 과육은 꽃받기와 씨방이 발달된 것으로 단백질과 섬유질이 많은 알칼리성과일이다. 단위결실을 하므로 수분이 필요없으며, 과실은 생식을 주로 하나 저장성 및 수송성이 없어 주로 통조림 또는 건과로 유통되고 있다. 품종은 카프리형, 스미루나형, 산페드로형, 보통형의 4계통으로 나뉘며 우리나라는 주로 보통형와 산페드로형을 많이 재배한다.
무화과는 아시아 서부 및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인 아열대성의 반교목성 낙엽활엽과수로서 재배가 쉽고 병해충 피해가 적은 편이다. 연평균 기온 15℃, 겨울기온이 -9℃이상인 지역에서만 재배가 가능하다. 세계적으로 그리스와 이탈리아에서의 재배역사가 길며 우리나라는 일본과 중국을 통하여 도입하였으며 현재의 재배 중심지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이탈리아, 터키, 포르투갈 등지이고, 특히 이탈리아와 그리스는 세계 총생산량의 2/3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경제적으로 재배되고 있는 곳은 전남 일부 지역에 국한되어 있고, 주로 가정에서 한두그루씩 심어 생식하고 있으며, 제주도와 남해안 일대에서 재배하고 있다.
꽃생김새
봄부터 여름에 걸쳐 엽액에서 주머니같은 화서가 발달하여 그 속에 많은 소화가 들어 있음. 꽃은 봄, 여름에 피며 자웅동주로 수꽃은 상부에, 암꽃은 하부에 위치하며 화피열펀이 3개이고 자방과 암술대는 각 1개로 이루어짐.
심는 방법
무화과는 가을 낙엽직후, 봄 해빙 직후 심는다. 재식 구덩이를 깊이 80cm, 넓이 80~100cm로 파고, 파놓은 흙과 퇴비, 석회를 잘 섞어 넣은 다음 뿌리를 잘 펴서 심고 물을 충분히 준 후 잘 밟아준다. 심은 후 묘목은 지상부 50~60cm에서 자르고 자른부위가 마르지 않도록 발코트 등을 발라준다. 재식 후 지주를 세워 유인하고 짚으로 피복하여 건조를 방지한다.
준비물) 묘목, 퇴비, 석회
기후, 토양조건
기후조건) 무화과는 아열대지방이 원산지로 내한성이 약하여, 연평균기온이 15℃이고 겨울온도가 -9℃ 이상인 지역이 적합하다.
토양조건) 토양적응성이 강하며, 석회분이 많아도 배수만 잘 되면 생육이 가능하고 내염성 및 내건성이 비교적 강하며, 산성토양에대한 적응성이 약하여 pH 6.5~7.2인 약산성내지 중성토양이 적합하다. 지하수위가 높은곳은 피하고 근군의 확대를 위하여 표토가 깊은 곳을 택하는 것이 좋다.
물, 거름주기
거름주기) 무화과는 연중 지속적으로 가지와 과실의 발육이 이루어지므로 생육기간에 충분한 비료공급이 이루어지도록 한다. 퇴비와 석회는 연초에 밑거름으로 사용하고 질소와 칼리는 덧거름으로 6, 8월에 나누어 사용한다.
꺾꽂이, 가지치기, 분갈이방법
꺾꽂이) 겨울전정 때 일년생 가지를 모아 그늘진 곳을 택하여 물빠짐이 좋도록 모래땅에 묻어두었다가 땅이 풀리는 3월중,하순경에 퇴비와 석회를 섞어 묘상을 만들고 20cm의 길이로 잘라 꽂아두고 너무 건조하거나 습하지 않도록 해주어, 뿌리와 새순이 나오도록 한다.
가지치기) 1년차: 묘목은 지상에서 40cm 정도에서 절단하여 나무의 높이를 낮게 하도록 한다. 발아를 하면 주지로 이용할 3개의 신초를 서로 어긋난 방향에서 곧장 키우고 그외 가지는 기부에서 제거한다.
2년차: 지난해 자란 3본의 가지를 주지연장지는 기부에서 40cm, 기타 가지는 20cm를 두고 절단한다.
3년차: 봄전정은 긴 가지는 나무가 커지지 않게 기부에서 10~20cm두고 절단하고 복잡한 가지는 기부에서 솎아준다.
수확하기
하과는 7월 상, 중순에 수확하고, 추과는 8월~10월 하순에 수확한다. 성숙기에 비가오면 열과가 발생하여 과경이 열개되므로 완숙 2~3일 전에 수확하여야 한다.
(네이버 지식 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