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과 삶/크리스천과 독서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박완서, 현대문학)

기독항해자 2012. 5. 7. 21:32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박완서, 현대문학), 2012년 5월에 읽음


연륜과 깊은 성찰이 담긴 박완서의 산문집!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 박완서가 4년 만에 펴낸 에세이『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올해로 등단 40주년이자 팔순을 맞이한 작가는 아직도 글을 쓸 수 있는 기력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한다. 계속해서 글을 쓸 수 있으며, 아직까지도 너무 많이 모르고 있는 것들에 감동받을 수 있는 삶은 작가에게 늘 새롭고 경이로운 시간으로 다가온다. 이번 산문집에서는 노작가의 연륜과 깊이 있는 성찰을 엿볼 수 있다.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 사람 사는 세상 속에서의 깨달음, 세상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애정의 글들이 담겨 있다. 김수환 추기경, 소설가 박경리, 박수근 화백 등 먼저 간 빛나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들에 대한 가슴 찡한 그리움도 함께 털어놓았다.

야다리 이야기

야다리는 개성에서 서울로 오는 국도를 타려면 그 다리를 거쳐야 하는, 개성 시내에서는 젤 남쪽 끝에 있는 다리이다. 다리 밑을 오천이라는 개울이 흐르는데 오천은 사천강의 지류이다. 고려시대엔 서해의 밀물이 사천강을 거쳐 오천까지 차올랐기 때문에 서역에서 오는 상인들의 배가 육지를 거치지 않고 송도까지 올 수가 있었다. 고려 때조 때는 거란 왕이 보낸 사신 30명과 낙타 50필을 실은 배가 야다리 아래까지 와서 수교를 청하였다. 고려 태조는 거란이 동족인 고구려 유민이 세운 발해를 침략해서 멸망시킨 것을 괘씸하게 여겨 수교를 거절했다. 사신 30명은 귀양을 보내고 낙타 50마리는 야다리에 매 놓은 채 방치해서 종당엔 굶어 죽게 했다. 그 다리에다가 낙타를 매 놓기 전의 다리 이름은 만부교였다고 한다. 낙타가 굶어 죽고 나서 사람들이 낙타교 또는 낙교라고 부르다가 낙타를 흔히 약대라고 부르는 속어를 따르다 보니 야다리가 된 거였다.

엄마와 밥 이야기

우리 엄마도 뒤주에 쌀 떨어질까 봐 전전긍긍하며 반평생을 보냈고 자식들이 밥 먹고 살만해진 후에도 자식들에 대한 안부는 밥으로 시작해서 밥으로 끝났다. “밥은 잘 먹는 게야? 얼굴이 왜 그 모양이야. 감기가 들었다고? 억지로라도 밥을 챙겨 먹어야 한다. 예로부터 감기는 밥상 밑으로 도망친다고 했어. 애들 도시락 다섯이나 싸주기 얼마나 힘드냐. 그래도 빵 같은 것 사 먹게 하지 마라, 밥이 보약이다.” 뭐니뭐니해도 우리 엄마의 탑 타령의 압권은 내 신랑감을 처음 보고 하신 말씀, “제 식구 밥은 안 굶기게 생겼더라”가 아닐까.

시 이야기

글을 쓰다가 막힐 때 머리도 쉴 겸 해서 시를 읽는다. 좋은 시를 만나면 막힌 말꼬가 거짓말처럼 풀릴 때가 있다. 다 된 문장이 꼭 들어가야 할 한마디 말을 못 찾아 어색하거나 비어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도 시를 읽는다. 단어 하나를 꿔오기 위해, 또는 슬쩍 베끼기 위해. 시집은 이렇듯 나에게 좋은 말의 보고다. 심심하고 심심해서 왜 사는지 모르겠을 때도 위로 받기 위해 시를 읽는다. 등 따습고 배불러 정신이 돼지처럼 무디어져 있을 때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어 시를 읽는다. 나이 드는 게 쓸쓸하고, 죽은 생각을 하면 무서워서 시를 읽는다. 꽃 피고 낙엽 지는 것 되풀이해서 봐온 햇수를 생각하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년에 뿌릴 꽃씨를 받는 내가 측은해서 시를 읽는다.


박완서씨는 이 책에서 자신의 생애에 대한 기억의 창고를 가장 많이 채우고 있는 한국전쟁을 풀어 놓고 있다. 한국전쟁을 경험한 세대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한국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는 먼 옛날의 이야기처럼 들려진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 있었던 붉은색의 대비는 한국전쟁을 경험한 세대와 경험하지 못한 세대의 대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북쪽에 고향을 실향민들이 통일된 조국에서 그리던 자유롭게 고향땅을 밟을 날을  고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