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과 삶/크리스천과 독서

변산 바다 쭈구미 통신(박형진 지음, 소나무)

기독항해자 2012. 5. 1. 18:02

변산 바다 쭈구미 통신(박형진 지음, 소나무), 2012년 5월에 읽음



박형진 씨는 이 책을 통해서 시골의 정겨운 추억을 맛갈나게 써서 어렸을 적 기억을 새록새록 나게 한다. 특히 어려울 때의 먹거리들을 소개하여 잊혀가는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고구마

고구마는 솥단지 밑에 닿아서 노릇노릇하게 탄 것이 더 맛이 있다. 적당히 정말 적당히 물을 붓고 불을 때면 고구마의 단물이 조금씩 우러나오고 그 물이 쫄아들어서 솥이 거의 탈 정도일 때, 그 때 고구마가 푸욱 익일 수 있어야 고구마를 잘 찐 것이다. 그 중에서도 고구마 엿물이 쫀득하게 늘어붙은 것은 특히 더 맛이 있어서 껍질까지 버리지 않고 먹을 수 있다. 초가을 고구마는 밤이 차야 맛있으므로 불을 세게 때서 조금 놔뒀다가 솥뚜껑을 확 열어 버려야 하고 날이 추워질 때부터는 물렁고구마가 맛있으므로 물을 나수 붓고 불을 진득하게 때서 오래오래 놔두어야 한다.

고구마 순

고구마순으로 나물을 할 땐 껍질을 벗기지 말고 그냥 쪄서 무쳐야 제맛이 난다. 그것도 두 벌 불 때는 보리밥솥에 쪄서 밥물에 익은 것을, 맛있는 젓국과 약간의 된장기와 파 마늘 고추장을 풀어서 주물러야 맛이 나지 요즈음같이 맹물에 쪄서는 부드럽고 달착지근한 맛이 나지 않는다. 서리 호박, 서리 가지도 그렇게 해야 맛이 났다. 호박은 반을 갈라 넓적넙적하게 썰고 가지는 통째로 밥솥에다 찐다. 반드시 보리밥 두벌 불 때 쪄서 자칠 때 꺼내어 무치는데 호박은 갖은 양념 후에 수저로 뚝뚝 버무리면 굳이 칼로 썰지 않아도 적당한 크기로 갈라진다. 가지는 꺼내서 손으로 찢어서 무쳤다.

물매기 국

물매기는 끓여야 한다. 물 흥덩흥덩하게 붓고 무 삐져 놓은 다음 고춧가루 얼큰하게 풀고 끓이노라면 그놈의 달착지근하고 반가운 냄새가 부엌에서 방안으로 흘러 들어와 사람 마음을 얼마나 흐뭇하게 하던지 그만 신 침이 바보같이 지르르- 입 안에 고이는 것이다. 물매기 국은 찬지름과는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국이다. 물매기 국을 끓여서 그냥 먹을라치면 이건 천하없어도 맹탕인데 희한하게도 그놈의 찬지름만 몇 방울 들어가 놓으면 그만 세상이 벌컥 되지어지는 것이다. 찬지름이란 것은 휘발성이 강해서 펄펄 끓는 데 넣으면 김과 함께 고소한 맛이 빨리 달아나므로 불 내리고 제각기 그릇에 퍼 다음 다음 먹기 전에 몇 방울 떨어뜨려야 한다.

청국장

한 나절 푹 삶을 콩을 지푸락 펴고 시루에 담아 따뜻한 아랫목에 한 삼 일 띄우면 쿰쿰한 냄새와 함께 끈적끈적한 실이 느른하게 빠지는데 여기에 알맞은 소금간과 고추 갈아 놓은 것, 마늘 까놓은 것을 함께 넣고 찧는다. 이 때 덜 찧어서 반토막난 콩이 좀 섞여 있어야 그 놈 깨물어 먹는 맛이 좋지, 얌전 낸다고 박박 찧어대면 힘은 힘대로 들고 맛은 맛대로 없다. 마늘 고추 소금간이 되어 있으니 끓일 때 두어 수저 떠 놓고 끓이기만 하면 되는데 아무리 적게 해도 이앗집에 한 대접 돌리지 않는 법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