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락 위의 둥지(이소벨 쿤, 김연정, 로뎀), 2012년 4월에 읽음
이소벨 쿤(하옥숙)
많은 저술 활동을 폈던 여성 선교사 작가인 이소벨 쿤(Isobel Kuhn)은 중국 내지 선교회 소속으로 아시아에서 사역하면서, 엘리자벳 엘리엇의 경우처럼 그녀의 글 대부분은 불행의 계기를 맞아 병마와 싸워가면서 쓰여졌다.
그녀의 책 「의미를 찾아서」(By Search ing)에서, 이소벨은 젊은 여인으로서 경험하였던 신앙의 투쟁과, 선교의 소명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을 때 직면했던 장애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비록 그녀는 강한 기독교적 전통을 가진 가정에서 성장하였지만, 내면의 행복과 평강이 결핍되어 있었다. 학창 시절에는 대학 연극 클럽의 배우로서 명성을 구가하기도 하고 명사가 되기도 하였으나 어린 시절의 신앙이 자기 자신의 믿음이 아닌 부모의 믿음에 기초한 것이라는 것을 솔직히 인정했으나 그러한 신앙조차 쉽게 버릴 수 없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약혼자와의 파혼 후 시련의 시간 동안, 그녀는 하나님의 필요성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소벨과 하나님과의 결과는 종국에 신앙 성경의 연구와 기도에 뿌리를 둔 신앙의 재헌신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신앙과 함께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관심과 그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해외 선교에 있다는 확신이 찾아왔다.
무디 성경학교를 통한 순례의 역정을 통과한 후, 1928년 중국 도착 후 임시로 기독교 조직인 코너클럽(Corner Club)과 함께 사역하였으나, 자신의 한계와 그 사역에의 부적합함을 인식했다. 중국에서 첫 해 동안 언어 공부를 끝낸 후, 이소벨은 무디 성경학교 시절부터 알아왔던 존 쿤(John Kuhn)과 결혼하였다. 비록 그들 모두 깊이 헌신된 기독교인이었고 중국에서의 선교 사역을 위해 그들의 삶을 바쳤지만, 성격의 충돌과 태도상의 문제로 평온하지 못한 결혼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한 결혼 생활의 갈등은 선교사들에게 있어서 일상의 문제였지만, 그것이 선교사들의 자서전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소벨은 선교사 생활의 실상을 덮으려고 하지 않았으며, 존과의 결혼생활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가장하기를 거부하였다. 17장으로 구성된 자서전적인 수필집 「회고」(Vitae)에서, 그녀는 결혼생활의 갈등을 고백하였다.
왜 이소벨이 결혼생활의 갈등에 대해 그녀의 책 「회고」에서 그렇게 솔직하게 기록하였는가? 그것은 그들의 결혼생활의 문제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며, 또한 그에 대한 해결책이 있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대부분의 결혼이 그녀와 존이 겪었던 그러한 파멸적인 경험들을 견뎌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라고 적고 있다. 또한 하나님께서 상대방을 일깨우도록 기도하며 그가 그렇게 할 때까지 인내하는 것, 두 개의 반대되는 것들을 온전한 하나로 빚어내는 것이 하나님의 길이라는 것이다.
리수(Lisu) 부족인들 사이에 머무르는 동안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우선 순위의 하나로 성경 교육에 치중하였는데 그 일환으로 우기 성경학교(Rainy Season Bible School)를 설립하였다. 이는 부족민들의 생활 방식에 맞추어 만들어진 교육 기관으로서 중국에서의 20년 간의 선교 사역을 통한 그녀의 가장 큰 공헌으로 간주되었다. “나는 성경 가르치기를 즐깁니다. 복음 전도는 결코 나의 은사가 아니었습니다. 성경을 펼치는 것은 학생보다 선생을 훨씬 더 축복하고 풍요롭게 합니다.”
태국에서 개척 선교 사역에 관한 이야기는 이소벨의 책 「부족들을 향해 오르며」(Assent to the Tribes)에 실려 있다.
부족민들의 원시성을 전하려고 애썼던 다른 많은 선교사 작가들과는 달리, 그녀는 그 문화의 긍정적인 면들 또한 강조하였다.
이소벨의 저술은, 한 때 그들이 고백했던 신앙을 완전히 저버린 개종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포함하고 있다. 이것은 선교사들이 빈번히 다루어야만 했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성공담만을 담고 있던 기도 서신의 주제는 아니었다.
이소벨과 존의 태국에서의 사역은, 이소벨이 유방암으로 진단 받음으로 인해 2년을 채 지속하지 못하였다. 선교지에서 수술이 행해졌으나, 그 후 곧 지속적인 치료를 위해 그녀는 고향으로 가야 했다. 그 이후의 몇 개월은 그녀의 삶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 암 치료는 육체적 그녀를 잠식해 갔고, 중국 내지 선교회소속으로 동양에서 사역하기 위해 떠나는 딸 캐서린과의 이별은 감정적으로 약하게 만들었다.
이소벨에게 있어서 저술 활동은 만족스런 것이었다. "만약 내게 말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글쓰는 것이 재미있다는 것입니다. 지겹고 지치게 만드는 것은 바로 가사일 뿐입니다." 비록 그녀는 삶의 대부분을 오지 마을에서 보냈지만, 항상 책을 가지고 다녔으며 여유 시간의 대부분을 책을 읽으면서 보냈다.
그녀의 삶의 마지막 한 해 동안 다른 어떤 것보다 더욱 그녀의 원기를 복돋았던 것은 바로 그녀의 저술이었다. 그녀는 침실에만 갇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루 하루를 철저히 향유하고 있습니다."라고 쓸 수 있었다. 마지막 몇 달 동안에 그녀는 가능한 모든 작품들을 완료시키기를 원하였으나, 동시에 죽을 준비도 되어 있었다.
1957년 그녀의 죽음은 남편과 두 아이들에게는 고통스런 시련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8권의 책과 많은 논문을 통해 그녀가 계속 살아 있을 것이라는 사실로 위로받았다.
리수족
기독교를 믿는 리수족(Lisuzu, 傈僳族)
리수족은 운남성 노강 리수족 자치구와 사천성 서창, 목리 등에 분포되어 있는 소수민족중의 하나이다. 현재 인구는 약 65만 여명으로 통계 되었다. 한족과 백족, 납서족 거주지와 가까이 있어 그들과 교류가 많다.
리수족의 역사는 오래되었으며 그들의 원 선조는 금사강의 양쪽에 기틀을 마련하였으며 16세기 이후 노강과 덕굉 등지로 이주하여 왔다. 리수족은 자신의 언어가 고유한 있으며 이 언어는 률속어속 한장어계 장면어족 이어지에 속한다. 문자는 세 종류를 사용하고 있는데 하나는 서양종교에 의해 창제된 병음문자이며 또 다른 하나는 유서현의 농민에 창조된 음절문자이고 나머지 하나는 신중국 건설이후 라틴 로마자에 의해 창제된 문자이다.
리수족은 춤을 추고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 민족으로 다채로운 문화 예술을 가지고 있다. 주요 명절로는 澡塘會, 濶時節, 傈僳年 등이 있으며 원시종교를 숭상한다. 20세기 초기에 서양 종교의 전파로 노강 일대와 덕굉 일대의 주민들이 기독교를 신봉하면서 현재 이들 대부분이 기독교를 신봉하고 있다.
리수족은 근면하고 용감한 민족으로 사료에 의하면 영국과 일본 등 외세의 침략에 맞서 민족의 근간을 지키려고 했던 민족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현재 중국의 서남쪽의 변방을 국경으로 유지하는데 큰 힘을 쓴 민족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리수족은 거주하는 지역별로 즐겨 입는 옷의 색깔이 다르다. 주로 즐겨 입는 옷의 색깔에 따라 백리수족, 흑리수족, 화리수족으로 구분 된다.리수족도 다른 많은 민족과 같이 술을 마시고 사람들을 접대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들의 술은 수주(水酒)와 소주(燒酒)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수주는 일종의 발효주이며 제작방법은 먼저 옥수수나 고량미 메밀 등의 원료를 잘게 부숴 쪄낸 다음 식힌 후에 누룩과 버무려 통에 넣어 7일 동안 발효시킨 다음 체에 받혀 맑은 물만 따로 병에 담는데 이것이 수주이다. 알코올의 도수가 높지 않고 백색을 띄며 향이 강하며 약간 단맛이 있으며 이술은 위에 좋고 정신을 맑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하여 많은 리수족이 즐겨 마신다.
소주는 리수족의 말로 리지(力基)라고도 하는데 발효후의 술지게미들을 솥에 넣고 증류시킨 증류주를 말한다. 이 술의 색은 맑고 투명하며 알코올의 도수가 비교적 높으며 술 맛은 맵고 시고 상쾌한 느낌이다.
리수족은 술이 없으면 예의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여기는 민족으로 그들은 손님을 접대 할 때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음료로 술을 꼽고 있다. 전통적인 습관에 의하면 주인은 먼저 자신의 죽통에 술을 따라 가득 채운다음 땅에 약간 뿌리는데 이것은 조상에 대한 경의를 표시한다고 한다. 자신이 먼저 약간 마시면서 술맛이 좋다는 것을 표시한 후 각각의 손님에게 술잔 가득이 따라 주고 두 손을 들어 손님에게 경의를 표한 뒤 마신다.
리수족의 음주 습관중의 하나로 동심주 또는 합환주라고 불리는 아주 재미있는 풍습이 있다. 죽통 하나로 또는 그릇 하나로 2사람이 함께 술을 동시에 마시는 것을 말하는데 상대방의 목과 어깨를 서로 누르면서 같이 입을 벌리고 동시에 입속으로 술을 넣어 마시는 습관을 말한다. 이 동심주는 남녀를 불분하고 친구와 친척끼리 또는 연인끼리 모두 즐길 수 있다. 과거에는 귀빈을 초대하거나 동맹을 맺을 때 사용하던 풍습이다.
동심주는 단결과 우의를 상징한다. 만약 리수족이 당신을 초대해 동심주를 마신다면 그것은 앞으로 당신과 동고동락을 함께 할 것이라는 의미이며 이것은 당신에 대한 신임을 나타내며 당신을 친구로 삼는 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리수족은 농업을 위주로 하는 민족으로 주요 농산물로는 옥수수와 메밀을 들 수 있다. 차를 마시는 것을 좋아하며 술을 즐겨 마신다.
주택은 간란식의 형태로 나무와 대나무를 이용하여 2층으로 짓거나 평방의 형태를 띄는 경우도 있다.
의복은 남자는 보통 마로 된 긴 옷을 입으며 무릎까지 오는 검은색 바지를 입으로 머리에 두건을 쓰는데 두건은 검은색, 백색, 파람색 등이 있다. 여자는 백색 치마를 즐겨입으며 머리에는 장식품을 꽂는 것을 좋아한다.
리수족이 거주하는 지역이 높은 산과 원시림에 둘러 쌓여 있는 자연조건으로 대대로 활을 사용하여 날짐승을 잡거나 사냥을 하였다. 특별히 그들은 화살에 독을 발라 사냥을 하였는데 그들의 활은 간단해 보이지만 매우 과학적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 활은 근대에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민족의 영역을 지켜낼 때 거대한 힘을 발휘하였다.
현재의 리수족 거주지에는 농업용 생산 도구 및 일상 용품 등 전 보다 많은 발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활의 사용은 많이 줄어들었고 주민들이 함께 하는 오락 프로그램이 증가하였다.
리수족이 거주하는 지역은 주로 해발이 4000 여 미터에 이르는 곳이 많다. 이곳은 사시사철 기후의 변화가 매우 심하며 때로는 하루에도 몇 번씩 다른 기후의 형태를 나타낸다. 그래서 리수족은 그들 나름대로의 달력을 만들어 농사와 일반 생활에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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