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과 삶/경건서적산책

성령으로 배부른 금식(젠센 프랭클린, 전의우, 두란노)

기독항해자 2012. 4. 13. 09:47

성령으로 배부른 금식(젠센 프랭클린, 전의우, 두란노), 2012년 4월에 읽음



성령으로 배부른 금식

프롤로그 금식의 은혜와 목적

금식은 닫힌 문을 열고 기적적인 하나님의 공급을 체험하며 우리 삶에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와 부드러운 손길을 느끼는 비결이다. 영적으로 건조해졌다고 느낄 때, 섬세한 기름부음이 느껴지지 않을 때, 하나님과의 신선한 만남이 필요할 때, 금식은 하늘문을 열고 지옥문을 닫는 비밀 열쇠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기상 사역을 시작하면서 배고픔을 가장 먼저 느끼셨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느끼신 것 또한 목마름으로, 먹을 것과 관련이 있다. 영광의 주님께서 잔혹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목마름을 느끼셨다.

금식은 절대로 쉽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금식만큼 힘든 일이 없다. 예수님은 금식의 어려움을 아신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4:15). 또한 그분은 우리에게 유혹을 이길 힘도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6).

금식은 영적 목적을 위해 음식을 삼가는 행위다. 사람들은 텔레비전 금식이나 컴퓨터 게임 금식, 인터넷 금식을 계획 중이라고 말한다. 이것들이 기도 생활에, 하나님 말씀을 연구하는 데,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섬기는 데 방해된다면 일정 기간 집중적으로 멀리하는 게 좋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금식이 아니다.

금식은 일정 기간 음식을 안 먹고 지내는 것이며 금식하는 동안 대개 분주한 일상을 내려 놓는다. 금식하고 하나님을 구하며 그분의 말씀을 연구하는 데 따르는 희생 가운데 하나는 일상을 내려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목적이 잘못된 금식도 있다. 하나님에게 점수를 따거나 죄를 씻으려는 목적으로 금식을 해서는 안 된다. 우리 죄를 씻어 주는 것은 오직 하나, 예수님의 피다. 금식은 다만 우리가 지금까지 삶에서 타협한 부분을 찾아 주고 지은 죄를 생각나게 하여, 회개할 수 있게 돕는다.

금식은 기독교식 다이어트가 아니다. 살을 빼려고 금식을 해서는 안 된다. 금식에 기도가 따르지 않으면 금식할 필요가 없다. 금식할 때, 기도와 하나님 말씀에 집중하라.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금식을 해서도 안 된다. 금식은 우리 영성의 깊이를 사람들에게 보여 줄 기회가 아니라 사람들의 필요에 초점을 맞출 기회다.

그리스도인에게 금식이 필요 없다고 믿으면 속는 것이다. 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하는 세 가지를 말씀하신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너는 구제할 때에”, “저는 금식할 때에.” 예수님은 ‘만약’이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할 때’라고 말씀하셨다. 기도할 시간과 구제할 시간이 있다면 금식할 시간도 있어야 한다.

당신은 이미 알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계획이 있으며, 당신의 삶을 향한 소명이 있음을 안다. 하나님이 당신의 삶에서 하시려는 일이 있음을 알며, 당신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있음을 안다.

1부 성경적 금식이란

01 은밀한 기도 훈련, 금식

금식은 단지 일정 기간 음식을 안 먹는 게 아니다. 이것은 다이어트일 뿐 금식이 아니다. 성경적 금식은 영적 목적을 위해 음식을 삼가는 행위다. 금식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아주 일상적인 부분이었다.

우리의 아버지이자 거룩하신 우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과 잠시라도 친밀한 교제를 체험하고, 이러한 교제에서 오는 상급과 축복을 조금이라도 맛보면, 우리의 시각은 바뀐다. 금식이,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능력의 은밀한 근원임을 곧 깨닫기 때문이다.

1. 모든 그리스도인의 세 가지 의무는 구제와 기도, 금식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제자들에게 세상의 원리와 상충되는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가르쳤다. 마태복음 6장에서 팔복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은 각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실천하며 살아야 하는 패턴을 제시하였다. 이 패턴은 그리스도인이 행해야 할 세 가지 구체적 의무, 곧 구제와 기도와 금식이다. 예수님은 “너는 구제할 때에” “너희는 기도할 때에” “너는 금식할 때에”라고 말씀하셨다. 구제와 기도처럼 금식도 그리스도인의 삶의 일상적인 부분임을 분명히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구제와 기도에 힘쓰는 만큼 금식에도 힘써야 한다.

2. 예수님처럼 금식하라

우리가 금식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자녀에게도 눈을 돌리신다. 금식은 경제적 번영과 하나님의 축복을 부를 뿐 아니라 몸을 건강하게 해 준다. 금식은 능력의 은밀한 근원이다.

02 죄를 부르는 식탐 다스리기

만나는 영양 성분이 완벽하게 균형 잡힌 음식이었다. 만나는 이들의 배를 채웠고, 이들의 몸을 건강하게 지켜 주었다. 덕분에 이스라엘 백성은 40년 동안 아프거나 허약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끊임없이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다.

1. 일단 시작하라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에게 초자연적 축복을 쏟아 부으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육적인 욕구를 채우는 데 집착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 삶에도 초자연적 축복을 쏟아 붓길 원하신다. 그러나 우리가 금식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그 축복은 절대 실현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금식하기에 편한 시간은 절대로 없음을 아신다. 이것저것 재지 말고 무조건 시작하라. 그러면 핑곗거리는 모두 저절로 해결된다.

한 해를 금식으로 시작하면 유익한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한 해를 금식으로 시작하면 그해에 나아갈 방향을 정할 수 있다. 하루를 시작하는 기도는 그날의 진로를 결정하고 그날 일어날 모든 일에 영향을 미친다. 한 해를 시작하는 금식도 마찬가지다. 새해의 처음 며칠간 어떤 일을 하느냐가 그해의 진로를 결정한다.

둘째, 우리가 1월에 금식했으므로 우리와 가족에게 일 년 내내 축복이 임한다.

셋째 이유는 더욱 강력하다. 한 해를 금식과 기도로 시작하면 마태복음 6장 33절의 원리를 따른 것이다. 한 해를 시작하면서 먼저 하나님을 구하면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한 해 내내 우리에게 더하신다.

03 금식에 대한 오해 풀기

하나님의 말씀은 금식을 통해 성공한 사람들의 놀라운 증언으로 가득하다.

모세는 40일간 금식한 후 십계명을 받았다. 하만이 모든 유대인을 몰살시키라고 명령했을 때, 에스더는 도성의 모든 유대인을 몰살시키라고 명령했을 때, 에스더는 도성의 모든 유대인들에게 자신과 함께 3일간 음식과 물을 전혀 대지 말자고 했다. 그 결과 유대인들은 살아남았고 하만의 악한 계략은 탄로나 도리어 자신이 죽었다. 사무엘상 1장 7절에 기록되었듯이, 한나는 아이를 갖지 못해 깊은 절망에 빠져 “울고 먹지 않았다.” 하나님은 한나의 간구를 들으셨고, 선지자 사무엘이 곧 태어났다. 성경에 보면 유다, 에스라, 니느웨 사람들, 느헤미야, 다윗, 안나도 금식했다.

1. 금식의 유형

성경에는 금식과 관련해 다양한 상황과 유형, 기간이 기록되어 있다. 여호수아는 40일을 금식했고, 다니엘은 21일간 부분 금식을 했다. 사도 바울은 금식했다는 기록이 두 번 나오는데, 한 번은 3일간, 또 한 번은 14일간 금식했다. 베드로는 3일간 금식했으며 예수님은 4일간 금식한 사실은 누구나 다 안다.

성경에는 완전 금식, 보통 금식, 부분 금식 이렇게 세 가지 유형의 금식이 나온다. 완전 금식을 전혀 먹지 않는 것이므로 짧은 기간만 해야 한다. 물도 마시지 않기 때문에 건강 상태를 점검해 가면서 해야 하며, 의사의 조언이 반드시 필요하다.

보통 금식을 할 때는 정해진 기간 동안 어떤 음식도 먹지 않는다. 물론 물은 마실 수 있으며, 금식 기간에 따라 체력 유지를 위해 묽은 죽이나 스프, 주스를 마셔도 괜찮다.

마지막으로 부분 금식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다만 부분 금식을 하면서 밤 11시부터 아침 7시까지 자는 시간 동안을 금식 기간으로 정해서는 안 된다. 부분 금식은 대개 특정한 음식과 음료를 장기간 입에 대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부분 금식의 가장 일반적인 예가 다니엘서에 나온다. 바벨론 포로를 시작할 때, 다니엘과 세 친구는 왕의 식탁에 오르는 기름진 고기와 단 것을 거부하고 채소와 물만 먹었다. 이들은 10일 도안 채소와 물만 먹고도 왕의 진미를 먹는 사람들만큼 건강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나중에 다니엘은 이스라엘의 고통을 슬퍼하면서 또다시 부분 금식을 시작했다.

성경에는 금식 기간과 관련해 3일, 7일, 21일, 40일 같은 의미 있는 숫자들이 나온다. 반나절 금식과 24시간 금식에 대한 언급도 나온다. 어떤 유형의 금식을 얼마 동안 하는 게 좋을지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실제적인 공식은 없다. 금식 기간은 자신의 환경에 따라 결정해야 하지만 사소한 부분에 좌우되는 것은 곤란하다.

2. 내 몸 청소하기

금식과 관련해 몇 가지 도움이 될 만한 요령을 알려 주겠다. 금식이 우리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면 하나님에게도 아무 의미가 없다. 금식에 기도와 말씀이 따르지 않으면 금식은 다이어트에 불과하다. 그러나 한 가지 매우 중요한 사실이 있다. 금식 그 자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쉼 없는 기도라는 것이다.

하늘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깊은 기도로 이끌리는 날이 있다. 그런가 하면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 기도에 전혀 집중하기 어려운 날도 있다. 그렇다고 자신을 비난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리의 희생을 보신다. 금식 중에는 텔레비전을 멀리하라. 금식 중의 텔레비전 시청은 절대 좋은 생각이 아니다.

장기 금식에 들어가지 전 며칠 동안 많이 먹는 것은 좋지 않다. 오히려 금식을 대비해 음식 섭취량을 서서히 줄여야 한다. 금식 기관에 상관없이 물을 적어도 4리터는 마셔야 한다. 물은 우리 몸에서 독소를 제거함으로써 금식을 잘 시작하도록 돕는다. 그런가 하면 포만감도 주어 물은 금식하는 사람에게 좋은 친구다.

금식할 때 처음 하루나 이틀 정도 두통을 앓을 때가 많다. 많은 사람들이 사탄이 두통을 주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체내에 쌓였던 독소가 빠져나가는 중이라서 그렇다. 금식은 우리 몸을 대청소하는 것과 같다. 최소한 3일을 금식하면 소화 시스템이 정지된다. 금식을 하면 전체 소화기관이 휴식을 취하는 데 의학적으로 건강에 아주 좋다. 금식하는 동안 두통을 느낀다면 진작 금식했어야한다는 증거다. 두통은 몸이 에너지를 불순물과 독소를 태우기 때문에 생기는 결과다. 두통은 대개 사흘이면 사라진다.

솔직히 금식은 늘 유쾌하지는 않다. 어떤 사람은 나른함을 느끼며, 어떤 사람은 두통을 느끼며, 어떤 사람들은 잠을 못 잔다. 결정적으로 배가 너무 고프다. 그러나 확실히 말하건대, 물을 충분히 마시면서 처음 며칠만 잘 견뎌내면, 몸에서 독소가 빠져나가면서 금식이 편해진다. 금식은 확실히 몸을 청소해 준다. 금식하면 처음 며칠 간 혀에 일종의 막이 생긴다. 금식이 신체가 독소를 제거하도록 돕는다는 뜻이다. 실험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미국인은 인공 방부제, 색소, 안정제, 조미료, 그 외 식품 첨가물을 매년 2킬로그램 가까이 섭취한다. 그러므로 체내에 쌓인 독소를 제거하려면 정기적으로 금식해야 한다.

금식은 몸이 스스로를 치료할 시간을 준다. 금식은 신경과민과 긴장을 완화시키며, 소화기간이 쉴 수 있게 해 준다. 금식은 혈압을 낮추고 콜레스테롤 수치도 낮춘다.

금식할 때 물은 강력한 세정제다. 체내의 독소가 금식 중에 소변으로 배출되는데, 이때 소변으로 배출되는 독소의 농도는 보통 때의 10배나 된다. 소변이 평소보다 짙은 이유는 체내에 쌓인 질병 유발 물질이 금식을 통해 배출되기 때문이다.

2부 약속의 곳간을 여는 금식의 능력

01 부르심을 깨닫는 금식

모든 소명, 하나님의 모든 부르심, 하나님의 모든 인도에는 출발점이 있다. 하나님에게는 우리에게 맡기실 구체적인 소명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소명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

구제와 기도와 금식은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세 가지 의무로써 우리 몸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리는’ 방법이다. 금식은 우리를 하나님의 성령에 민감하게 하고, 거룩하게 살게 한다. 금식을 통해 하나님을 찾기 전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온전히 살지 못한다. 금식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새로운 계시와 비전과 분명한 목적을 주실 길을 닦는다.

금식은 신자의 삶에서 엄청난 무기요 능력의 근원이다. 우리는 금식을 통해 우리 몸을 산 제물로 드림으로써 하나님이 우리 삶을 위해 준비하신 소명을 깨닫게 될 것이다.

1. 금식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

살다보면 여호사밧처럼 큰 절망의 순간이 닥치기도 한다. 하지만 두려워할 것 없다. 하나님이 당신을 구원하시고 그분의 계획을 보여 주실 것이다. 사탄은 금식을 싫어한다. 사탄은 금식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한다는 사실을 안다. 사탄은 우리가 금식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활용할 때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약속 대신 우리의 욕구와 환경에 초점을 맞추게 하려 한다. 사탄이 당신의 삶에서 다시는 그러지 못하도록 봉쇄하라.

02 이기는 영성을 위한 금식

금식은 단순한 육체적 훈련이 아니다. 금식은 영적 향연이다. 일단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면’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주림은 이해하지 못할 만큼 커진다.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는 하나님이 더 잘 아신다.

03 첫 사랑을 회복하는 금식

주의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삶이 틀에 박힌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 버린다.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도 똑같은 운명을 맞을지 모른다. 언제나 변함없이 날카롭고 예민한 감각으로 성령을 대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설교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마음이 없는 틀에 박힌 일상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우리에게 찬양과 예배드림이 필요하다. 날마다 기도하고, 성경 읽고, 매주 교회에 출석하면서도 첫사랑을 잃어버린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삶에 지친 나머지 성령과 그분을 기쁘게 하는 일에 대한 열심과 감각을 잃어버렸을지 모른다는 얘기다.

1.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틀에 박힌 종교 행위를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은 마음이 빠진 행위를 맛있어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다른 곳에서 “배를 채우실” 수 있으시므로, 우리의 ‘찌꺼기’는 조금도 필요 없으시다. 하나님이 만족하시는 음식은 우리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참 예배다. 하나님은 이런 예배를 원하시며, 이런 예배를 받기에 합당하시다.

금식은 우리를 영적으로 새롭게 하는 지속적인 수단이다. 금식 훈련은 우리가 틀에 박힌 세상사에서 벗어나도록 돕는다. 금식은 예배의 한 형식으로, 우리 몸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리는 행위를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금식 훈련은 우리를 겸손하게 하며, 우리가 하나님을 의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우리의 첫 사랑을 회복시킨다. 금식은 우리와 예수님의 관계를 더욱 친밀하게 한다.

하나님은 우리 삶에서 더욱 강력하게 일하기를 원하신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항상 발전적으로 전개된다. 하나님은 친구가 친구에게 말하듯이 우리에게 말씀하길 원하신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친구로서 말씀하셨다.

우리의 영광스러운 왕께는 형식적이며 무관심한 예배자에게는 절대로 계시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열정 없는 종교 의식으로는 절대 넘지 못하는 중보의 벽이 있다. 그러나 평범을 깨고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이 관해 전에는 전혀 몰랐던 부분이 보이기 시작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비밀한 계획과 우리를 위한 그분의 바람을 우리와 나누기 시작하신다.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은 확대되신다.

하나님을 예배하려고 마음을 집중하면 하나님이 들으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확대할 때 사탄의 세력을 축소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투 중에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하나님을 확대하는 것이다.

04 예수로 충만해지는 금식

우리는 교회 프로그램과 활동, 종교적 구조, 인간의 전통 같은 음식을 지나치게 섭취하여 영양과다에 이르면서도 하나님에 관한 더 깊은 일에 대해서는 심각한 영양실조에 걸릴 위험이 있다. 영양과다를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유일한 해결책은 금식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금식은 평생 축적된 독소를 몸에서 제거하는 비결이다. 아울러 영양과다와 이로 인한 질병을 치료하며, 새로운 에너지와 활력과 장수와 복된 건강이 넘치는 놀라운 미래를 보장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마5:6). 우리가 하나님의 더 깊은 일에 주릴 때, 하나님이 우리를 채우신다.

1. 생명의 떡으로 채우라.

주린 사람들은 필사적이며, 갈수록 하나님에 더 주리게 된다. 이들은 종교적 규범이나 규정, 전통적 사고에 매이지 않으며, 하나님의 임재에 더 깊이 들어간다. 그리고 이들은 상황을 바꾸며 치유하며 기적을 일으키는 하나님의 능력을 더 갈망한다. 오직 예수님만이 이들의 주림을 채우신다.

금식은 육신이 경험하는 일시적 주림보다 깊은 영적 주림을 일으킨다. 우리가 하나님에 주릴 때에야 하나님은 우리를 채우신다. 예수님이 다니시며 기적을 행하지 못하신 도시들이 있다. 이들에게는 주림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에 주릴 때, 하나님은 인간의 규범을 깨고 우리의 삶에 은혜를 베푸신다. 누구라도 평범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평범을 과대평가한다.

05 공개적으로 상 받는 금식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을 섬기는 공개적인 사역보다 비공개적인 사역이 언제나 더 많아야 한다. 예수님은 공개적으로 기도하신 만큼이나 은밀하게 기도하신 적도 많았다. 예수님은 밤을 새워 기도하며 홀로 아버지와 친밀한 시간을 자주 가지셨다. 이러한 은밀한 기도 시간이 토대가 되어 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일으키시는 등 하나님의 능력을 공개적으로 증거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승리는 공개적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 은밀하게 얻어진다. 함께 하는 금식이든 개인 금식이든 간에, 금식이 은밀한 훈련인 이유가 여기 있다. 은밀한 훈련이 적으면 공개적인 상도 적다.

1. 티내지 마라.

함께 하든 혼자 하든 간에, 금식은 개인적이고 은밀한 훈련이다. 금식은 기대감에서 나오는 희생이다. 금식이 하나님에게서 뭔가를 얻어 내는 교묘한 도구라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이 공개적으로 상을 주시는 “합리적 예배”라는 뜻이다(롬12:1). 하나님은 공개적으로 상을 주신다.

첫째, 하나님은 금식이 가난의 사슬을 끊으리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금식을 통해 씨앗을 뿌릴 때마다 내 삶에 큰 축복이 들어온다. 금식이 생활일 때 가난은 물러간다. 정기적으로 금식을 시작하며, 금식과 기도와 구제를 통해 하나님을 높이면, 이러한 삶이 가난을 떨쳐 보리는 데 직접 연관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금식에는 건강과 치유도 따른다고 말씀하셨다. 금식은 우리를 낮추고 깨끗하게 하며,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과 쓴 뿌리를 제거한다. 어떤 사람들은 진정으로 용서하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지만 실패한다. 금식을 시작하고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서 용서의 문제를 해결하시리라 믿어라. 금식은 하나님의 바람에 민감하게 해 주면, 영적 대청소를 돕는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과 쓴 뿌리 등은 질병과 피로와 스트레스로 이어지기 쉽다.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신다. 금식을 통해 하나님을 찾는 데 마음을 집중하면 하나님은 우리 교회에서 우리 교인들의 삶에 행하신 일을 당신에게도 행하실 것이다.

06 믿음을 키우는 금식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들에게 상주시길 기뻐하신다. 우리가 어떤 희생에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을 찾을 때, 하나님은 높아지며 확대되신다. 금식을 통해 우리의 삶과 사역이 사람들에게 분명해진다.

금식은 성령의 타이밍과 음성에 더 민감하게 한다. 금식은 우리 삶에서 놀랍게 일한다. 그러므로 떠났던 사람들이 우리에게 돌아오고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그렇다고 금식이 우리의 행위를 통해 하나님을 조종하고 그분의 팔을 비트는 일은 아니다. 금식은 단지 우리의 틀을 깨고 우리의 믿음을 한 단계 성숙시킨다.

3부 성령으로 배부른 금식 훈련법 다섯 가지

01 말씀을 묵상하며 금식하라

하나님에 대한 주림과 목마름은 몸으로 느끼는 일시적 주림에 대한 만족보다 훨씬 큰 상을 준다.

안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주렸고 말씀에 대한 주림이 음식에 대한 주림보다 컸으며, 성실한 금식을 통해 장차 일어날 일에 준비되어 있었다. 나이가 든다고 금식이 쉬워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은혜를 받으면 금식이 쉬워진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금식을 명하셨다면 앞일에 대해 우리를 준비시키는 중이다. 금식하려면 믿음이 필요하다.

1. 말씀을 듣고 먹으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복음의 선포를 들음으로, 믿음이 성장한다. 기름부음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되는 교회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 믿음은 잘 차려진 프로그램이나 역동적인 찬양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모임에서 오지 않는다. 믿음은 하나님의 사람이 조금의 타협도 없이 선포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서 온다. 이곳이 믿음의 출생지다. 이러한 계시가 우리 영혼을 진정으로 사로잡을 때, 사탄은 하나님의 집을 향한 우리의 충성을 절대로 꺽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영양실조에 걸렸으면서도 세상에 대해서는 과식하고, 그 결과 패배의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때로 금식을 통해 육신을 굶기고 영혼을 먹이는 게 가장 좋다. 금식은 우리가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을 구분하도록 도와준다. 금식은 우리가 정말로 중요한 것에 집중하게 해 준다. 금식은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할 기회를 준다. 사람들이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을 시간에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이것이 금식을 통해 부지런히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직장에서 동료들이 점심을 먹는 동안 우리는 물 한 병으로 만족한다면, 이것이 금식을 통해 하나님을 부지런히 찾는 것이다. 일터에서 물만 마시면서 길고 힘든 하루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왔으나 저녁 식탁에 앉는 대신 말씀을 먹는다면 이것이 금식을 통해 하나님을 부지런히 찾는 것이다.

부지런하다는 말은 끈질기다는 뜻이다. 부지런하다는 말은 뭔가 열심히 하면서 포기하길 거부한다는 뜻이다. 믿음은 진취적이다. 믿음은 절대로 광야에 서서 신세를 한탄하지 않는다. 우리는 믿음으로 전진한다. 광야에 들어가서도 계속 전진하며, 한 번에 한 치밖에 못 나가더라도 전진을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전투에 임할 때 계속해서 “나는 전진하리라!”고 외친다.

하나님은 그분을 부지런히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분이며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한 상을 천국에 이미 쌓아 두셨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하면 곧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자신을 부지런히 찾는 모든 자에게 상을 주신다.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때문이다.

02 찬송하며 금식하라

1. 근심을 물리치다

근심은 낙담, 우울, 중압감과 관련이 있다. 우리는 고통을 줄이려고 몸에 더 쑤셔 넣은 대신 금식하며, 너무나 많은 사람을 괴롭히는 근심 대신 찬송의 옷을 주시는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우울과 중압감을 마치 옷처럼 입고 있다. 이러한 옷이 우리를 어둠과 절망에 가둔다. 이것을 우리는 계속 주저앉히는 무거운 옷이다. 이 옷은 우리가 머리를 못 들게 하며, 손을 듣고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하게 한다. 이러한 무게가 우리 삶에서 찬송을 빼앗아 간다.

우리가 찬송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교회는 침울해진다. 성령 충만하지만 찬송의 옷을 잃어버리고 근심의 옷을 입은 교회야말로 더 없이 비참하다. 하나님은 우리의 찬송을 단순한 교회 출석보다 더 원하신다. 그렇다고 연합된 몸으로 모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가 홀로 있는 시간만큼이나 함께하는 시간도 하나님을 찬송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시간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찬송은 사탄을 물리친다.

함께하는 금식과 함께하는 찬송은 능력이 있다. 이러한 금식과 찬송은 하나님의 집에서 치유의 강이, 해방과 승리의 강이, 정결의 강이 흘러나게 한다. 지금은 재 대신 화관을 쓰며, 슬픔 대신 기쁨을 맛보며, 근심 대신 찬송의 옷을 입을 때다.

2. 찬송의 옷을 입자

금식의 결과로 전쟁에서 승리하고 삶이 변화된다. 지금 우리의 삶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든, 우리는 금식하며 우리를 아주 소중한 존재로 보시는 하나님을 구할 수 있다. 원수의 거짓말을 믿지 마라. 근심의 무게에 짓눌리지 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찬송의 옷을 준비해 두셨다. 그분의 멍에는 쉽고 그분의 짐은 가볍다. 금식할 때, 우리는 그분의 눈을 통해 자신을 보기 시작할 것이다.

03 인내하며 금식하라

우리 앞에 놓인 산은 너무나 높아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작은 믿음의 씨앗을 그 산에 심고 기다린다. 믿음과 인내를 반드시 함께해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큰지 강조하지 않고 우리의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지 강조하셨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더 이상 문제의 크기로 우리의 믿음을 측정해서는 안 된다. 대신에 우리의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지 보기 시작해야 한다. 우리의 길을 가로막는 산이 무엇이든 간에, 아무리 작더라도 믿음의 씨앗을 심자. 그리고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으므로 그 산이 옮겨지리라고 믿어야 한다.

1. 응답이 늦어도 기도하라

금식하고 기도하며 믿음에 굳게 서 있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아 보일 때가 있다. 아무리 기다려도 흙에서 ‘싹’이 틀 기미가 전혀 안 보인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지런함에 상을 주신다.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들이 온전하게 되어 번영하는 것을 기뻐하신다. 어떤 일에 대해 하나님을 믿는다면 자신의 믿음을 실천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것을 기뻐하신다.

04 사랑으로 금식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높은 위치에 우리 자신을 두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우리가 바른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금식은 우리 손에 능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검을 쥐어 준다. 나아가 금식은 우리가 ‘원하는 것’과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구분하게 해 준다. 금식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먹을 때, 우리는 검을 손에 쥐며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을 분별하는 위치에 있게 된다. 자신이 직면한 상황에 대해 하나님이 어떤 마음을 갖고 계신지 아는 것만큼 높은 권위는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최종적 권위다.

1. 금식으로 만나는 하나님

금식은 우리를 하나님의 우선순위에 올려놓는다. 금식은 우리의 우선순위를 보다 수직적으로, 하나님의 바람에 보다 일치하도록 바꾼다. 우리는 구체적인 목적을 세우고 그것을 위해 금식해야 한다. 금식을 계속하다 보면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외칠 것이다. “하나님, 내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을 이루소서!” 먼저 하나님을 구하면 하나님은 나머지 모든 것을 기꺼이 우리에게 더하신다.

2. 성령님과 함께하는 금식

금식을 하면 성령께서 우리 속에 들어오신다. 성령께서는 우리 마음에서 파내야 할 것들을 파내기 시작하신다. 우리가 마음에서 ‘찻주전자’까지 파내지 않았다면 주님의 은혜와 용서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오래 전에 쌓아 둔 최초의 미움을 파내야 한다. 이 일은 때로 아주 오래 걸릴 수도 있다. 우리가 찻주전자까지 파내면, 생수의 강이 우리 속에서 다시 흐르고 다른 사람들을 시원하게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우선순위다. 금식은 우리의 찌끼를 제거하고 안쪽을 깨끗이 씻어 내는데, 그 결과 바깥도 깨끗해진다.

금식은 우리가 원하는 것과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구분하도록 도와준다.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염려하지 않고 먼저 하나님을 구할 때,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도 주시리라는 믿음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금식 중에는 모든 게 느려진다. 낮도 밤도 너무너무 길어 보인다. 그러나 조용히 하나님을 구할 때, 우리는 마음으로 갈망하는 분을 만날 것이다.

05 자녀를 위해 금식하라

우리가 금식하는 이유는 우리 삶을 위해 무엇이 바른 길인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미래나 자기 앞에 놓인 선택에 대해 혼란스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금식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하나님의 인도를 믿어라. 금식하고 하나님을 찾으면서 우리의 삶을 향한 바른 길을 구하는 것이 성경적이다.

1. 바른 길을 구하라

우리는 에스라처럼 굳게 서서 자녀들을 위해 거룩한 금식을 선포하고 이 세대를 이끌 바른 길을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삶의 폭풍이 강하게 일어날 때, 하나님의 약속을 우리의 ‘계기판’으로 삼아야 한다. 조종사의 안전을 보장해 주는 것은 계기판뿐이다. 그리스도인으로 말하면 성경을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금식은 하나님의 팔을 비트는 것이 아니다. 금식은 하나님이 원하지도 않는 일을 하시게 하는 것 아니다. 금식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스스로를 준비하는 행위다. 우리가 힘써 하나님을 구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4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의 열매

01 성령의 검으로 승리하는 인생

1. 성령의 검을 날카롭게 하라

다양한 형태의 금식 가운데 다니엘 금식으로 통하는 금식이 일반적인 형태이다. 다니엘 금식이 성경에서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은 개인 금식이기 때문이다. 21일 동안, 채소와 과일만 먹고 물만 마신다.

금식하면 식사시간을 공부시간으로 바뀔 때가 많다. 하나님의 말씀에 더 집중하게 되고, 이때 하나님은 더 깊은 진리를 보여 주신다. 다니엘은 금식하면서 홀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보낸 후에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기 시작했다. 깨달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데서 온다.

얻어맞아 멍이 든 몸과 무딘 검으로 사탄의 세력과 싸우다 지쳐 영적 싸움을 그만두는 그리스도인이 많다. 금식하며 기도할 때, 우리 입술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이 날카로워진다. 단순히 몇 끼를 거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집중적으로 연구했을 뿐인데,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재 대신 화관을, 슬픔 대신 기쁨을, 근심 대신 찬송의 옷을 주신다. 우리의 찬양이 울려 퍼지며, 사탄은 흩어지며, 우리의 인내가 깊어지며, 우리는 하나님의 우선순위를 따르며, 천사들의 메시지를 전하며, 자신과 어린 자녀들을 위한 하나님의 바른 길을 발견한다.

2. 겸손히 회개하자.

성경에 따르면 니느웨는 둘러보는 데만 사흘이 걸릴 정도로 큰 도시였다. 역사가들에 따르면, 니느웨의 성벽은 높이가 30미터였고 성벽 위에 다시 30미터 높이의 망대들이 있었다. 성벽은 그 위에서 전차가 달릴 정도로 두꺼웠다. 성 안에서 12만 명 정도 살았으며, 성 둘레에는 너비가 45미터 깊이가 18미터가 되는 해자가 둘러져 있었다. 니느웨는 자긍심이 높았고, 강했으며, 난공불락이었다. 외부의 군대가 니느웨를 포위하여 고사시키려면 적어도 20년은 걸렸을 것이다.

하나님은 요나를 보내 니느웨에 회개를 선포하게 하셨다.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의 말을 믿고 두려워했던 것을 보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얼마나 강한지 어느 정도 알았던 듯싶다.

니느웨 사람들은 금식을 선포했으며 왕은 아무 사람이나 짐슴이라도 음식은 물론 물조차 입에 대지 말라고 명했다. 그렇게 하라는 보장은 전혀 없었으나 왕은 이렇게 스스로를 낮추면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은 니느웨에 대한 진노를 거두시고 니느웨를 멸하지 않으셨다.

3. 구체적으로 기도하라

욤 키푸르는 유대인들이 가장 거룩히 지키는 날이다. 욤 키푸르는 ‘속죄일’이라는 뜻이며, 이 속죄일은 하나님의 용서를 간구하는 날이다. 이 날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제정하셨다(레16:19-20). ‘괴롭게 하다’라는 단어는 금식을 의미한다. 대개 다른 유대 절기는 전혀 지키지 않는 유대인들도 하나님께 지은 죄를 속죄하려고 금식하고, 회당에 가고, 일을 삼가면서 욤 키푸르를 지킨다. 속죄일 앞에는 자신의 삶과 죄를 돌아보는 열흘간의 ‘두려움의 날’이 있다.

1963년 욤 키푸르에 이집트와 요르단과 시리아 연합군이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모든 이스라엘 국민은 24시간 동안 하나님 앞에서 금식하며 회개하는 중이었다. 연합군은 공격 날짜를 잘못 잡았다. 역사는 병사들이 24시간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채 회당에서 뛰어나와 전선으로 행했다고 기록한다. 처음에 전투는 아랍 연합군 쪽으로 기울었으며 연합군은 사흘 동안 이스라엘군을 몰아붙였다. 이스라엘의 승리는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사흘째 되던 날 전세는 역전되었다. 이스라엘군은 수적으로 절대 열세였는데도 승리했으며, 잃은 땅을 회복했을 뿐 아니라 추가로 땅을 정복했다.

우리가 금식 중일 때 약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탄은 우리가 먹지 않으면 죽을 거라고 믿게 만들려 한다. 그러나 먹지 않는다고 죽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분의 약속 창고를 열기 위해 우리의 상황에 생명을 불어 넣을 준비를 하신다. 금식은 우리 자신을 발전시키는 수단이 아니다. 금식이 우리를 위해 하는 가장 큰 일은 이것이다. 금식은 우리와 아버지의 확실한 교제를 가로막는 온갖 장애물, 이 세상이 쌓아 놓은 모든 장애물을 제거한다. 금식은 그 자체로 하나님께 드리는 지속적인 기도다. 그러므로 금식하는 중이라면 24시간 내내 기도하는 중이다. 하루 종일 금식 중이라면 하루 종일 기도하는 중이다.

02 모든 간구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금식한다고 해서 죄가 씻어지지는 않는다. 죄는 오직 예수님의 피를 통해서만 씻어진다. 그러나 지은 죄가 있다면 모두 회개하고 진지하게 금식해야 한다. 금식은 우리가 회개하도록 숨겨진 죄를 드러내기까지 한다.

금식할 때는 여느 때와 같은 모습이어야 하며, 행동이나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 성미를 통해 겪는 금식의 고통에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켜서는 안 된다. 자신의 필요에 민감해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믿음을 통해, 우리와 하나님의 올바른 관계를 통해, 우리가 금식하지 않았다면 가 보지 못했을 곳으로 들어간다. 닫혀 있던 문들이 열리며, 우리의 영향력이 물결처럼 퍼져 간다.

1. 말씀으로 인도하신다.

우리의 빛이 흑암 중에 떠오를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를 짓누르고 우리가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모르는 캄캄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하나님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비추실 것이다. 우리의 앞길이 캄캄하더라도 믿음으로 금식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상을 주시며 우리를 인도하신다.

03 거룩하게 구별되고 하나님께 쓰임받는 삶

성화는 일상에서 거룩해지는 과정이다. 상화는 정결함의 실천이며 자신을 세상과 죄로부터 분리하는 과정이다. 성화는 성령께서 우리의 행동과 생각과 바람이 예수님을 더 닮게 하시는 과정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행하길 원한다. 바로 성화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 머무는 열쇠다.

금식은 우리 자신을 거룩하게 하는 근본적인 수단이며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떼어 내어 하나님과 더 가깝게 해 준다. 금식은 우리가 자신의 삶을 걸러 내고 자신을 구별하여 하나님을 찾게 해 준다. 금식은 우리 삶에 숨겨진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죄와 온갖 것을 찾아내도록 돕는다. 금식은 우리가 육체를 섬기는 일과 영혼을 섬기는 일을 분별하도록 돕는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분의 피가 우리를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며, 우리가 거룩함 가운데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된다.

1. 지금은 함께 금식할 때

동기가 거룩해야 한다. 바람이 거룩해야 한다. 태도가 거룩해야 한다. 영혼이 거룩해야 한다. 우리의 육체가 거룩해야 한다.

2.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축복

하나님은 우리가 자신보다 더 큰 일을 그분께 구하길 원하신다. 그리고 그분을 믿고 그 일을 맡기기를 원하신다. 금식은 우리를 하나님의 뜻 가운데로 인도한다. 금식은 우리가 자신의 삶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따르게 한다. 하나님이 우리 삶에서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이며, 우리를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곳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지금은 금식하며, 부지런히 하나님을 구하며, 자신을 거룩하게 하며, 하나님의 우선순위를 분별하며, 그분의 약속을 따라 행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