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참마속
후주 유선에게 밝은 정사를 당부하고 내정을 곽유지를 비롯한 대신들에게 맡긴 제갈공명은 촉의 도읍 성도를 출발해 한중으로 갔다. 그곳을 거점으로 삼은 공명은 6만 군사를 일으켜 기산을 공략했다. 기산은 산세가 험해 장안의 외성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이곳을 점거한다면 전장을 위의 영토 내로 남게 되니 전진 기지로 그만이었다. 공명은 순식간에 기산을 점령해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촉한을 가벼이 보다가 불의의 기습을 받은 위는 서둘러 대책을 마련했다. 위의 군주는 조비의 뒤를 이은 명제 조예였다. 그는 수차 기산을 탈환하고자 했으나 번번히 공명의 계략에 속아 패하고 말았다. 공명은 기산을 거점으로 순식간에 세 개의 군을 장악해 기세를 올렸다. 명제는 노장 사마의를 총사령관으로 하여 20만 대군으로 전면전을 펼치고자 했다. 사마의는 지략이 제갈량에 버금가는 책사였다. 그는 촉군을 직접 치기보다는 먼저 보급선을 차단하려 했다. 그 요지는 위수 상류인 가정이었다.
공명은 가정을 사수할 선봉대를 선발했다. 이때 마속이 선봉을 자청했다. 언제나 전투에 앞장서 용맹을 떨치던 그는 공명과 문경지교를 맺은 벗인 참모 마량의 아우였다. 공명은 마속의 용력을 높이 사면서도 지휘를 맡기기는 망설였다.
"다년간 병법을 익혔는데, 어찌 가정 하나를 못 지켜내겠습니까? 만일 실패하면 저는 물론 일가 권속을 모두 참해도 좋습니다."
마속이 큰 소리를 쳤다.
"좋다. 군율에는 변명이 통하지 않으니 네 말을 필히 새겨 두어라."
공명은 젊고 패기에 찬 마속을 선봉으로 보내면서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노장 왕평을 딸려 보냈다. 그리고 마속에게 노면에 진지를 만들고 길목을 지키라고 당부했다. 가정에 다다른 마속은 공명의 지시를 무시했다. 가정은 가파른 봉우리가 삼면을 에워싼 천혜의 요새였다. 그 위에 진을 치고 대적하면 일당백도 문제없이 보였다.
"저 위에 진을 구축하면 윗나라 깃발은 단 하나도 가정을 통과하지 못할 것이오."
마속은 산정에 진을 치고자 했다.
"승상께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산정에 진을 치지 말라고 하셨음을 잊었소이까?"
왕평이 강력하게 반대했다. 기어코 마속은 고집을 부려 산정에 진영을 구축한 채 위군을 기다렸다. 왕평은 5천 군사를 따로 떼어 마속과 떨어진 곳에 진지를 조성했다. 그런 다음 상황도 그려 공명에게 전달했다. 상황도를 본 공명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세가 이미 기울었다. 마속이 우리 모두를 수렁으로 빠뜨리고 말았구나! 나의 실책이로다!"
공명이 한탄하자 측근들조차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그 얼마 뒤 가정이 함락되었다는 보고가 날아들었다. 공명은 즉시 기산 본영은 물론 점령한 3개의 군에 전령을 띄워 한중으로 철수할 것을 명했다. 가정의 상황은 공명이 예측한 것과 한 치도 다르지 않았다. 위군의 선봉 장합은 사마의의 명에 따라 마속의 진영이 있는 산을 포위하고 물과 양식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싸우러 나섰으니 대면하면 당연히 불꽃 튀는 접전만 벌일 줄 알았던 마속은 때늦은 후회를 했다. 마속이 선공을 해서 장합의 심경을 흔들어 보았지만 모두 허사였다. 장합이 상대해 주지를 않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마속은 기지를 버리고 포위망을 뚫기로 작정하고 산을 내려왔다. 가파른 산 위로 식수를 구할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패인이었다.
여러 장수들이 젊은 마속에서 실수를 갚을 기회를 줄 것을 청했지만 엄정한 군율을 들어 이미 마속에게 다짐까지 받은 일이었다. 공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속이 형장으로 끌려가자 공명은 마룻바닥에 엎어져 통곡을 했다. 이른바 읍참마속이었다.
(재상 중국편, 박윤규 지음, 이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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