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잡동사니

토사구팽

기독항해자 2012. 4. 11. 10:57

토사구팽

월왕 구천을 패왕으로 만든 으뜸 공신은 범려와 문종이었다. 그런데 범려는 구천이 뜻을 이루자 곧장 월나라를 떠나 제나라로 갔다. 그 얼마 뒤 한 통의 편지가 오랜 동료였던 문종에게 전달되었다.

"나는 새가 다 잡히면 좋은 활은 거두어지고 교활한 토끼가 모두 잡히면 사냥개는 삶아지는 법이오. 월왕 구천은 목이 길로 입은 새처럼 뾰족하니 어려움은 함께할 수 있어도 즐거움은 같이 누릴 수 없는 인물이오. 그대는 왜 아직 월나라를 떠나지 않는 것이오?"

이른바 토사구팽을 피하라는 전갈이었다. 부차가 처음 이 말을 꺼냈을 때 범려는 크게 깨닫고 월나라의 반을 주겠다는 구천의 제의조차 마다하고 떠났던 것이다. 편지를 받은 문종은 병을 핑계 삼아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뜬금없이 문종이 모반을 꾀한다는 참소가 들어왔다. 구천은 기다렸다는 듯 칼을  내리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대는 오나라를 칠 수 있는 계책을 일곱 가지나 가르쳐 주었는데, 나는 세 가지만 사용했소. 이제 그대는 선왕을 뒤쫓아가서 나머지 네 가지 방법을 사용해 보기 바라오."

범려는 가족과 재산을 배에 싣고 제나라로 갔다. 제나라로 간 범려는 월의 경제를 재건하는 데 보여준 수완을 발휘하여 일약 당대의 갑부로 변신했다. 이름까지 차이자피로 바꾼 다음이었다. 제나라에서는 그를 현자로 알고 상국으로 삼고자 했다. 범려는 얼마간 재상 노릇을 한 모양이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재상의 인장을 돌려보내며 다음과 같이 탄식했다.

"천금의 재산을 지니고 관원으로서는 가장 높은 지위에 올랐다. 보통 사람으로서 이 이상 명예가 없다. 그러나 오래 존귀함을 누리는 것은 오히려 불길한 화를 부를 수 있다."

범려를 자기 재산을 모두 나누어 준 다음 진귀한 보배만 챙겨 제나라를 몰래 떠났다.

(재상 중국편, 박윤규 지음, 이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