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11일(수)
본문: 누가복음 2장 39, 40절
39주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
40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제목: 예수님의 어린 시절
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
누가는 마태복음에 나오는 동방박사들의 방문과 예수님께서 애굽으로 피하신 내용에 대해서는 생략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누가 공동체가 마태복음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재진술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인자이신 예수님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목적에 부합하는 내용은 다시 기록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내용들은 채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②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예수님은 보통의 아기들처럼 정상적인 성장 과정을 거쳤습니다. 예수님은 특별하게 초고속으로 성장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성인으로 온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되어 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되어 보심으로 인간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홀아비 사정은 과부가 안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안다는 것은 머리로 아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가슴으로 아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인간 되심을 개역 성경은 체휼로 개역성경은 번역하였습니다. “히브리서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개역개정은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영문NIV는 “For we do not have a high priest who is unable to sympathize with our weaknesses, but we have one who has been tempted in every way, just as we are--yet was without sin.”로 읽고 있습니다. 그리고 NASB는 “For we do not have a high priest who cannot sympathize with our weaknesses, but one who has been tempted in all things as we are, yet without sin.”로 읽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되어 보셨기 때문에, 우리를 공감하실 수 있게 되었다란 뜻에서 동정보다는 체휼로 번역을 유지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③ 지혜가 충만하며
예수님은 육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성장 과정을 정상적으로 거치셨습니다. 그래야만 온전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고 완전한 인간이신 신인으로 믿습니다. 예수님의 지혜가 급진적으로 성장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지혜는 육체적 성장에 보조를 맞추어 점진적으로 성장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으로 계실 때는 그분의 신성은 제한되셨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신적 능력과 속성들을 완전히 사용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완전한 인간이 되시기 위해서는 정신적 성장도 정상적으로 거쳐야 했습니다.
④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예수님은 보통의 아기들과 달랐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란 구절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는 보통의 아이들과 똑같았지만, 영적으로 달랐습니다. 예수님의 영은 지속적으로 하나님과 교제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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