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누가복음묵상

누가복음을 기록한 목적(눅1:1-4)

기독항해자 2010. 6. 29. 17:49

본문: 누가복음 1장 1~4절

1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2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은 든 사람이 많은지라

3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4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

제목: 누가복음을 기록한 목적

①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누가복음은 이루어진 사실을 기록한 책입니다. 이것은 가공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상상의 산물이 아닙니다. 실재로 있었던 일을 기록한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누가가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사도행전을 기록한 동일한 사람에 의해 기록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원래 한 권으로 이루어진 책이었습니다. 편의상 두 권으로 나눈 것입니다. 나뉘기 전에는 누가행전으로 불려졌습니다. 이 두 권이 한 권이었다는 사실과 수신자가 동일하다는 사실을 통해서 우리는 동일한 저자가 기록하였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②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누가는 목격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목격자들을 직접 대면할 수 있는 위치에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2절에서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누가는 목격자는 아니었지만,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여고 붓을 든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누가의 정직성을 볼 수 있습니다. 누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만을 토대로 복음서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여러 증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복음서를 기록한 것입니다. 그리고 직접 발품을 팔아서 증인들을 만나서 복음서를 기록한 것입니다.

③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우리는 누가에게서 목자의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누가는 이 복음서를 한 사람을 위해서 쓰고 있습니다. 그것이 목자의 마음입니다.

마더 테레사의 말은 이것을 잘 보여 줍니다.

“우리는 한 개인이 중요합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려면 그를 만나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수가 늘어날 때까지 기다리는 사이, 숫자 속에서 길을 잃고 맙니다. 그 사람에 대한 사랑과 존경도 보여주지 못하고 맙니다. 저는 일대일 관계를 믿습니다. 제게는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한 분뿐이시기에 그 사람 역시 그 순간만큼은 저에게 이 세상에서 유일한 사람이 됩니다. 오늘날처럼 사회가 급변하는 때에, 사람들은 하나같이 분주하고 늘 서두릅니다. 앞만 보고 가는 사이, 경쟁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넘어집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고 돌보고 싶습니다.”

목자는 양 한 마리 한 마리를 돌봅니다. 수많은 사람이 있어도 우리는 한 사람을 대상으로 사역하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한 사람이 소중합니다.

누가는 이 복음서를 데오빌로에게 쓰고 있습니다. 데오빌로의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친구’,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입니다. 데오빌로가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누가가 이 사람만을 위해서 쓴 것인지, 이 이름이 뜻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인 모든 성도들을 위해서 쓴 것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대상이 누구이든 우리는 누가의 열심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우리도 누가처럼 주님을 사랑하게 되면, 이런 열정의 사람이 될 줄 믿습니다.

④ 알고 있는 바를 확실하게 하려 함이라

4절 말씀이 누가복음을 기록한 목적입니다.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라.” 성도는 존귀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친구이고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우리는 이 네 가지 신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존귀한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 칭호로 불릴 수가 있습니다. “각하!” 누가는 각하들이 알고 있는 바를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이 복음서를 썼습니다. 알고 있는 바는 배운 것을 말합니다. 이 당시에는 구전에 의한 문답식 방법으로 지식을 전하였습니다. 기독교는 오랫 동안 문답식 방법으로 교육을 해왔습니다. 오늘처럼 기록된 책이 아니라 구전으로 교육을 하였습니다. 구전으로 배워서 안 것을 확실히 알게 하기 위해서 책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마음이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서 책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위해서 기록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