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에스겔

1장 1-3절

기독항해자 2022. 8. 23. 10:27

서른 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년 그 달 초닷새라

갈대아 땅 그발 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에스겔 선지자가 포로로 끌려간 연대는 대강 살펴 보았습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포로로 끌려간 장소에 대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갈대아 땅 그발 강 가에서

3절에 갈대아 땅 그발 강 가란 구절이 나옵니다.

이곳이 유대인이 포로로 끌려갈 살게 된 동네 이름입니다.

예컨대 미국 LA에 가면 화교촌, 한인촌이 있는 것처럼 유대인 마을이 그발강가에 세워진 것입니다.

그발은 히브리어로 케바르, 헬라어로는 코바르라고 불립니다.

뜻은 길이, 아카디아어로는 매우 넓은, 큰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발강은 메소포타미아에 있는 강으로서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이 거주하던 곳입니다.

이곳은 키르케시움에 있는 유프라테스로 흐르는 하볼 강으로서 오늘날 카부르 강(KhBOUR)으로 추정되었습니다.

앗수르가 많은 유대인들을 이 강 언덕으로 이주시켰는데, 당시 그발 강서 가장 큰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를 연결하는 남르 말카입니다.

이 강 개발에 유대인들이 동원된 것 같습니다.

 

최근 니푸르에서 발견된 비문에 의하면 운하의 하나였음이 판명되었습니다.

바벨론 1차 포로기에(주전 605년, 여호야김 2년) 느부갓네살에 의해 끌려간 유대인들이 많이 거주했던 곳입니다.

이곳은 바사왕 아닥사스다 1세(주전464-424)의 비문에 기록된 대운하 카바루와 동일한 곳으로 추정됩니다.

니푸르 동쪽을 흐르는 이 강의 현 지명은 샤트 엔 닐입니다.

에스겔이 사용한 단어에 해당하는 바벨론어 나루 카바르는 니푸르의 땅 속에서 나온 두 계약 서판에 나타납니다.

이 언어는 바벨론 첫 지방 유프라테스의 지류이면서 큰 운하였는데 수세기간 방치되어 있던 이 인공 수로는 현재 말라 버렸습니다.

바벨론이 설형 문자 나루가 운하나 강을 말하지만 케발이 메소포타미아 윗지방에서 시작하여 키에르케시온 부근의 유프라테스로 흘러들어가는 하볼 강과 같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 성읍이 사실 샤투 엔 닐에서 두 갈래로 나눠지기 때문에 이 운하는 바벨론의 북부 유프라테스를 떠나 와르카 죽 성경의 에렉(아카디아어로는 우륵) 남쪽으로 들어갑니다.

그발 강은 오늘날 미세한 퇴적층으로 막힌 샤트 엔 닐일 것입니다.

이곳은 하폭 36m에 달하고 고대 니푸르의 3대 운하의 하나였으며 선박이 자유로이 항해할 수 있었습니다.

 

에스겔 3장 15절에 보면 델아빕이라는 지명이 나옵니다.

"이에 내가 델아빕에 이르러 그 사로잡힌 백성 곧 그발 강 가에 거주하는 자들에게 낭가 그 중에서 두려워 떨며 칠 일을  지내니라."

델아빕은 남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당한 후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들이 살았던 둔덕의 폐허지입니다.

유다의 예루살렘에 준하는 메소포타미아 종교 중심지 니푸르를 근교에 두고 있습니다.

이곳은 원래 도시가 있었으나 홍수나 장기간의 침식 때문에 둔덕으로 바뀐 것으로 여겨집니다.

일부 학자들은 이곳을 샤트 엔 닐이라고 주장합니다.

주전 597년에 2차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 중 일부가 이곳에 정착하여 살았는데, 에스겔 선지자는 이곳에서 그발강 가에 거주하는 유대인 포로들과 함께 두려워 떨며 7일을 지냈습니다.

 

유대인들이 포로로 끌려 온 갈대아 땅은 고대 지명으로는 우르라고 불렸습니다.

후대에 와서 갈대아인의 땅이라고 해서 갈대아라고 불리게 됩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그들의 조상들에게 떠나라고 명령하셨던 그 땅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이곳은 인류문명이 발생한 곳이라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이곳은 사람들은 메소포타미아라고 부릅니다.

그 뜻은 두 강 사이입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기원전 8000년부터 농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아르메니아의 아라랏 산에서 발원한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이 메소포타미아를 거쳐 페르시아 만으로 유입됩니다.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오늘날 바그다드서 유속이 급속히 줄어들고 꾸불꾸불하게 흘러 완만하게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이 두강에 댐과 수로를 건설하였습니다.

수로와 댐 건설은, 일정한 음식을 제공하는 농사를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두 강 사이에 수메르인들은 정교한 수로와 댐을 건설하여 농업과 유목에 필요한 안정적인 물을 제공하였습니다.

이 두 강 사이에 건설된 대표적인 수메르 도시들은 시파르Sippar, 바빌론Babylon, 키쉬Kish, 아부 살라비흐Abu Salabih, 니푸르Nippur, 아답Adab, 이신Isin, 텔로Tello, 움마Umma, 슈푸팍Shuruppak, 기르수Girsu, 라가시Lagash, 니나Nina, 우룩Uruk, 라르사Larsa, 우바이드Ubaid, 우르Ur, 그리고 에리두Eridu입니다.

이 두강은 하나로 합류하여 샤트 알-아랍Shatt al-Arab강이 되어 바스라를 거쳐 페르시아 만으로 들어갑니다.

메소포타미아의 이러한 지형적인 위치 때문에 수메르인들은 경작하기 위해 두 강을 멀리서 끌고 와 자양분이 풍부한 침적토를 만들었습니다.

댐, 수로, 제방으로 완벽한 수로체계를 갖춰 자양분이 높은 토양을 끊임없이 제공하였습니다.

수메르 왕들은 농업과 유목을 위한 안정적인 물 공급을 위해 가뭄과 홍수에 대비한 수로공사가 가장 중요한 정치적인 행위였습니다.

특히 그들은 뜨거운 기후와 연 중 내내 낮은 강수량으로, 성공적인 농사를 위해, 도시주위에 제방과 수로를 이용한 관개시설과 댐을 건설하였습니다.

수메르인들이 인류 최초의 도시와 문자, 즉 문명을 구가할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관개시설이었습니다.

수로건설은 문명의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니푸르에서 토판에 쓰인 문서들이 발굴되었습니다.

이 토판문서는 수메르 종교도시 니푸르에서 기원전 2600년경 발견된 ‘수로’에 관한 수메르 토판문서입니다. 

수메르 도시 니푸르Nippur는 수메르와 바빌론 역사를 통해 정치적인 수도인 적이 없지만, 항상 가장 거룩한 도시였습니다.

니푸르의 수메르 이름은 ‘엔릴’(EN.LÍLki)으로 대기 신이면서 수메르 만신전의 총리인 ‘엔릴’ 신과 같습니다.

엔릴은 우주를 총괄하는 서양의 제우스나 쥬피터과 같은 신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최고의 신인 하늘 신 ‘안AN’에게만 복종합니다.

니푸르는 메소포타미아 문명 초기, 즉 우룩, 우바이드, 그리고 젬뎃 나스르 시대에 중요한 의례도시였습니다.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중앙에 위치한 니푸르는 사방이 높고 낮은 언덕인 텔tell과 굳건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기원전 5000년 우바이드 시대부터 기원후 800년 이슬람 시대까지, 메소포타미아에서 가장 장구한 도시입니다.

그만큼 고고학적으로 중요한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었습니다.

니푸르의 주신은 수메르 만신전의 최고신으로 인류를 창조하였고 그리스 신화의 올림푸스 산에 해당하는 ‘에쿠르Ekur??’ 즉 ‘산과 같은 거대한 집’에 거주하였습니다. 

예루살렘, 메카, 로마, 그리고 델피처럼, 니푸르Nippur는 수메르의 가장 중요한 순례지이며 동시 경제중심지였습니다.

수메르 왕들과 귀족들은, 엔릴신의 추인을 받는 의식을 통해, 통치자로서 권위를 획득하였습니다.

니푸르는 수메르 도시들의 왕들에게 왕권을 수여하는 행정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가장 권위가 있는 성소였습니다.

수메르인들은 니푸르의 종교적 권위 때문에, 이곳에 있는 신전이나 지구라트를 파괴하지 않았습니다.

니푸르의 가장 중요한 지형적인 특징은 길이가 1.5km, 너비가 700m나 되는 수로입니다.

오늘날에도 샤트 알-닐Shatt al-Nil이라는 거대한 수로가 남북으로 가로지릅니다.

이 수로는 니푸르를 서쪽과 동쪽으로 구분합니다.

신전이나 궁궐과 같은 대규모 공공건물은 이 수로는 왼편에는 ‘두르.안.키’Dur.an.ki 즉 ‘하늘과 땅의 연결’이라고 불리는 지구라트가 있습니다.

수메르인들은 이곳에 엔릴 신을 비롯하여 수메르 각도시의 신들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니푸르의 서쪽에 유프라테스 강에 흐르며, 엔릴 신전 남서쪽에 이난나Inanna여신의 신전이 있습니다.

이난나 여신의 신전은 수로 중간 근처에 건설되었습니다.

[출처] 2022.5.26. (木曜日) “문명과 문화의 얼개들”|작성자 더코라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의 하류 중간 지대인 메소포타미아 평원은 수천 년에 걸쳐 인간이 거주하면서 기원전 약 4000년부터 ‘수메르Sumer의 나라’라고 불리는 10여 개의 도시국가가 생겨났습니다.

이 도시들은 흙벽돌로 지은 ‘지구라트Ziggurat’라는 우뚝 솟은 신전을 중심으로 이뤄졌는데, 주요 도시국가로는 우르크Urukㆍ움마Ummaㆍ에리두Eriduㆍ키시Kishㆍ시파르Sipparㆍ쉬르팍Shuruppakㆍ니푸르Nippurㆍ마리Mariㆍ라가슈Lagashㆍ라르사Larsa 등입니다.

이 도시 가운데 니푸르는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 남동쪽 약 160km, 알 디와니야Al-Diwanya마을 북동쪽으로 약 30km 지점에 위치하고 오늘날에는 ‘누파르Nuffar’라고 불립니다.

니푸르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신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신들을 통솔하는 위대한 신인 엔릴Enlil을 도시의 수호신으로 모시는 수메르의 종교 중심지였습니다.

수메르어로 엔릴은 ‘바람과 폭풍의 신’으로, 운명運命과 천명天命을 결정하는 절대 신이었습니다.

니푸르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도시 유적 중에서도 많은 유구遺構가 남아 있는 유적지로 그 범위는 길이 약 1.5km, 폭 700m에 이르며, 최초의 발굴은 1851년 영국의 고고학자인 오스틴 헨리 레이어드Austen Henry Layard에 의해 이뤄졌습니다.

그 뒤 1899년부터 1900년까지 펜실베이니아대학의 메소포타미아 고고학 발굴조사대에 의해 실시되었는데, 1900년 3월 1일부터 5월 11일까지 실시된 제4차 발굴조사대를 지휘 감독한 헤르만 볼라트 힐프레흐트Hermann Volrath Hilprecht에 의해 첫날, 여러 시대의 귀중한 점토판 20여 개가 들어 있는 테라코타terra-cotta(점토로 구워 만든 항아리)에서 도시지도가 새겨진 조각이 발견되었습니다.

힐프레흐트는 1883년 라이프치히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1886년 미국으로 건너가 펜실베이니아대학교의 아시리아어 교수가 되었고, 1889년 제1차 발굴조사대부터 참가했습니다.

제4차 발굴 뒤에 그는 <19세기 성지 탐험-Explorations in Bible Land During the 19th Century>이란 책을 펴냈는데, 발굴조사대의 전 책임자였던 존 P. 피터스John Punnett Peters는 이 책 내용에 이전에 발굴된 유물까지 그의 지휘에 따라 발굴된 것처럼 기록되었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했습니다.

쟁점 중 하나는 도시지도 점토판이 발견된 정확한 위치였는데, 펜실베이니아대학교는 분쟁 해결을 위해 당시 원정대의 건축가인 클라렌스 S. 피셔Clarence Stanley Fisher를 포함한 위원회를 설치해 조사했으나, 더 이상의 문제점은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발견된 니푸르 점토판지도Clay tablet map of Nippur는 고문자학古文字學, palaeography을 통해 문자, 길이의 치수, 지리적 객체의 명칭 등을 분석해 기원전 1400년경 카시트Kassite 왕조 초기에 제작된 것임을 밝혀냈습니다.

기원전 2500년경 카시트인들이 바빌로니아를 정복하고 수많은 고대 수메르 도시를 재건했는데, 이때 카시트인들은 니푸르가 수세기 동안 황폐된 채 모래언덕으로 뒤덮인 것을 발견하고, 기원전 14세기와 기원전 13세기까지 도시를 재건하는 동안 이전 건물들의 기본 틀을 세웠습니다.

이에 따라 카시트인들은 훼손된 건물을 식별하기 위해 고고학적 발굴을 했고, 이 시기에 점토판으로 도시지도가 만들어 졌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주) 카시트인(Kassites)은 근동 산악 종족으로 기원전 1600년에서 1200년까지 자그로스 산맥과 메소포타미아(현재의 도라우드)로 이동해 왔다.

언어는 고립으로 분류되며 이미 기원전에 사멸되었다.

그들은 메소포타미아를 정복하고 바빌론을 지도에서 지워버려고 바빌로니아라는 국가는 자국 영토로 편입시켰다.

전통적으로 사용되는 중간 연대기에 따르면 카시트는 바빌론, 니푸르 그리고 다른 중심들에 대한 패권을 기원전 1595년에서 1155년까지 지속하였다.

카시트의 원래 고향은 불명이며 로레스탄의 자그로스 산맥내에 위치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 최초의 역사적인 등장은 기원전 18세기였는데 그때 그들은 함무라비의 아들 삼수일루나(제위 기원전 1749~1712)의 치세 9년에 바빌로니아를 공격하였다. 

삼수일루나는 그들을 물리쳤지만 그들은 결국 기원전 1595년 히타이트에 의한 바빌론 함락 얼마 후 북 바빌로니아의 지배권을 획득하였다.

그리고 기원전 1475년 왕국의 남부를 정복하였다. 

히타이트 마르둑 우상을 치웠지만 카시트 지배자는 소유권을 다시 얻어 마르둑을 바빌론으로 반환하였다.

그리고 히타이트는 카시트 수카무나를 환대했다.

(자료:위키백과)

 

점토판의 크기는 가로 21.5cm, 세로 17cm이고, 가장자리의 잔해가 양면에 남아 있어 점토판의 원래 크기는 가로 23cm, 세로 18cm 정도로 계산됩니다.

두께는 가운데 부분이 4.3cm인데 비해 가장자리는 2.2cm로 얇습니다.

1955년 미국의 저명한 아시리아어 학자인 사무엘 노아 크라머Samuel Noah Kramer는 이 점토판을 자세히 연구한 결과 지도의 방위는 점토판이 놓인 상태에서 동쪽으로 약 45도 방향이 북쪽이라고 제안했습니다.

따라서 점토판 위쪽의 방위는 서북서WNW 쪽이 됩니다.

또한 크라머는 점토판 지도의 축척을 약 1:9,200이라고 밝혔는데, 이 축척은 니푸르의 지형도와 대조해도 일치한다고 했습니다.

이 축척으로 점토판지도의 실제 거리를 계산하면 가로 길이는 약 19.8km, 세로 길이는 약 15.6km가 되며, 니푸르의 1:10,000지형도와 대조해도 전체적으로 지형지물이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점토판지도는 점토판粘土板, Clay tablet이 적당히 굳은 뒤에 갈대 펜으로 선이나 글자를 새겨서scribes 제작하기 때문에 모든 선은 직선과 완만한 곡선밖에 그릴 수 없습니다.

 

지도 좌측의 세로 방향으로 폭이 넓은 쌍선은 도시의 남서쪽 경계를 이루는 유프라테스강Buranun이고, 중간에 세로 방향으로 폭이 좁은 쌍선은 시내 중심을 관통하는 중앙운하Idschauru Canal입니다.

상단의 가로지른 짧은 쌍선은 눈비르두 운하Nunbirdu Canal로 수메르 신화에 따르면 신 엔릴이 부인 닌릴Ninlil을 처음 만난 장소라고 합니다.

또한 중앙운하의 위쪽에서 운하와 같은 폭의 쌍선이 왼쪽으로 가로지르다가 유프라테스강에 이르러 세로 방향으로 하단까지 내려와 다시 오른쪽(북동쪽)으로 굴곡을 이루며 오른쪽 끝까지 이어지는 쌍선은 도시의 성벽입니다.

성벽의 중간을 끊어 문門 표시를 한 곳은 성문인데, 모두 7개입니다.

중앙운하 위쪽, 상단 성벽의 초입에 있는 성문은 엔릴의 아들인 네르갈Nergal의 주요 문화지인 쿠타Kutha시로 향하는 네르갈 성문Kagal Nergal이고, 유프라테스강에 인접한 맨 위쪽의 성문은 ‘불결한 여자의 문’이라는 뜻의 카갈 무슈카팀Kagal Musukkatim이고, 그 바로 아래는 ‘숭고한 문’이라는 뜻의 성문인 카갈 마흐Kagal Mah이고, 그 아래는 ‘최고의 관문’이라는 뜻의 카갈 굴라Kagal Gula입니다.

하단 성벽 첫 번째 성문은 카갈 난나Kagal Nanna이고, 하단 성벽의 첫 번째 성문은 우르크시로 향하는 카갈 우르크Kagal Uruk이고, 우측 끝에 있는 성문은 우르Ur로 향하는 카갈 이기비우리쉐Kagal Igibiurishe입니다.

또한 성벽 군데군데에 둘레를 나타내는 치수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 숫자는 단위가 지정되지 않은 수메르의 우수偶数로서 1은 약 6m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도시의 중심부 갈라진 틈에 써진 글자는 수메르어로 ‘엔릴의 장소Enlilki’라는 뜻이고, 오른쪽(북동쪽) 끝에 두 개의 사각형이 나란히 그려진 곳은 신전이 위치한 지구라트입니다.

왼쪽은 엔릴 신전인 에쿠르Ekur, 즉 수메르 신들의 회의 장소이며 ‘큰 산의 집’이란 뜻이고, 오른쪽은 에쿠르와 인접한 닌릴 신전인 키우르Kiur입니다.

발굴 당시에는 닌릴 신전에 대한 어떠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아 잘못 묘사된 것이거나, 도시 재건을 위한 카시트인들의 계획적인 설계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아래쪽 가운데 성벽에 붙여 그려진 사각형 테두리는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던 알 수 없는 폐쇄된 영역인 안니긴나Anniginna이고, 그 왼쪽 성벽 모퉁이에 그려진 다각형 테두리는 도시 중심부에 위치한 니푸르 중앙공원인 키리샤우루Kirishauru입니다. 또한 위쪽 성벽과 아래쪽 성벽 바깥쪽에 글자가 써진 널찍한 부분은 해자垓子를 나타내는 히리툼Hiritum입니다.

 

1925년 힐프레흐트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작고하자, 그의 두 번째 부인은 남편의 유언에 따라 2,000여 점에 달하는 그의 고대 바빌로니아 유물을 독일 튀링겐 주 예나에 있는 프리드리히 실러 예나대학교Friedrich-Schiller-Universität Jena에 기증했습니다.

이 유물 가운데 가장 귀중한 것이 카시트시대 초기로 추정되는 역사상 가장 오래된 도시지도인 니푸르 점토판지도입니다.

자료:최선웅의 고지도 이야기  

 

지금의 이라크 남동부에 있던 메소포타미아 고대 도시.

현재는 Niffer, Nuffar.

 

정치 중심지는 아니었지만 메소포타미아 종교생활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수메르 신화에서 니푸르는 힘을 상징하는 폭풍의 신이고, 또 니푸르에 모인 신들이 만든 법령을 집행했던 신 엔릴의 고향입니다.

일설에 따르면 엔릴이 니푸르에서 인간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어떤 왕이 한 나라를 정복했다 해도 엔릴의 신성한 통치 능력을 받지 못하면 소용이 없었기 때문에 이를 계승하기 위해 노력하고 또 허가를 받아야 했습니다.

이런 비준의 필요성 때문에 메소포타미아를 통치하는 모든 왕조는 이 도시와 특히 엔릴의 성역을 신성시했습니다.

미국 최초의 고고학 조사단이 1889~1900년과 1948년에 니푸르를 발굴해냈고, 수메르 점토판이 가장 많이 발견된 도시 동부를 필사(筆寫) 구역이라고 불렀습니다(→ 메소포타미아 문학).

니푸르에서 발굴된 것들은 사실상 수메르 연구의 1차 자료로 인정받았습니다.

이 마을의 선사시대에 관한 자료는 거의 없지만 BC 2500년경 성을 쌓았고 그 유적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습니다.

그후 우르 제3왕조의 첫번째 왕 우르 남무(BC 2112~2095 재위)가 엔릴의 성역인 이쿠르(E-kur)를 오늘의 형태로 조성했으며, 지붕이 없고 담을 두른 안마당에 지구라트와 신전을 세웠습니다.

엔릴의 성소와 주위의 울타리는 후에 파르티아인의 건축공사 때 땅에 묻혔고, 이 도시는 AD 3세기부터 쇠퇴하기 시작하여 12~13세기에 완전히 몰락했습니다.

(다음백과)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성스러운 도시 니푸르를 그린 이 지도는 관개용 운하의 건설로 이 도시가 다시 힘을 얻게 된 카시트 왕조 시대의 것입니다.

현재 이라크 지역인 유프라테스 강 연안에 있었던 니푸르는 수메르의 신전(판테온)에서 가장 존경받는 엔릴 신을 신봉하는 중심지였습니다.

이 도시가 엔릴 신에게 바친 첫 사원은 기원전 2100년경 우르 도시국가의 지배자를 위해 건설됐습니다.

왼쪽의 두 평행선은 유프라테스 강을 나타냅니다.

그로부터 거의 수직 방향으로 뻗어 나온 운하 하나가 도시를 고리 모양으로 감아 돌면서 상부와 하부로 지도 조각을 양분합니다.

해자 하나와 니푸르의 도시 성벽이 상부에서 강과 운하에 평행하게 지나가는 동시에 하부와는 교차되어 펼쳐집니다.

성벽에 간간이 설치되어 있는 여섯 개가 넘는 성문에는 일련의 설형문자로 된 이름이 실려 있습니다.

남서쪽 사분면(하부 왼쪽)에는 공원이 하나 있는데, 그 오른쪽에 에쿠르라고 알려진 엔릴 신과 관련된 지구라트 대사원이 있습니다.

운하의 다른 쪽에는 에키우르 신전이 있는데, 이는 풍요의 여신인 이난나(또는 이시타르)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사원들은 이 도시의 중요한 시설이었습니다.

니푸르에는 기원전 5000년경에 처음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래로, 기원후 800년경까지 사람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 무렵 이곳은 기독교의 주교좌였는데, 엔릴 신이 사라진 후로도 오랫동안 줄곧 종교의 중심지였습니다.

(경향신문)

 

현재 정확한 지명은 잘 모르지만 대강 어디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발강 가는 운하가 있던 운하의 둔덕 어디쯤일 것입니다.

거기에 유대인들이 모여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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