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에녹에 대한 성경 기록은 모두 세 곳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히브리서, 그리고 유다서에 나옵니다.
창세기에 4절, 히브리서에 한절, 유다서에 3절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록된 양으로 치면, 에녹은 성경의 등장 인물 가운데 아주 보잘 것 없는 사람입니다.
창세기 5장은 인류 최초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두 10사람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중에 아홉 사람은 모두 오래 살았습니다.
가장 짧게 산 사람은 라멕이었는데 777살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죽었습니다.
여기에 죽었다는 기록이 왜 중요할까요?
아담이 범죄한 이후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육체의 죽음을 맛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주 특이한 기록이 나오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한번쯤 이 본문에서 머물러서 이 본문이 주는 의미를 생각해 보았을 것입니다.
단 4절이지만 그것이 갖는 의미는 아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다 죽어야 하지만,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지만, 죽지 않을 수 있는 길이 있음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5장의 기록을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육십오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다른 아홉 사람과 달리 성경 기자는 죽었더라는 말 대신에 길게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죽음도 분명히 하나님이 우리 인류를 데려 가시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에녹은 죽음 이외에,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이 데려 가신 것입니다.
에녹이 죽지 않고 천국으로 불려 올라가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기자는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기록을 두 번이나 언급하고 있습니다.
에녹의 삶을 단 네 줄로 요약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라고 결론을 맺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라는 기록을 우리는 노아에게서 딱 한번 더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6장 9절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이후에 우리는 어디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한” 이란 구절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을 말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건은 ‘하나님과의 만남’과 ‘하나님과의 동행’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죄인된 우리를 하나님께서 만나주셔야 합니다.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먼저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합니다.
이 죄 문제는 죄인인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오직 거룩하신 하나님만이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고, 해결해 주셨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소와 양의 죽음을 통해서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약시대에는 우리 주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찾아오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죄인된 우리들을 만나 주시기 위해서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들을 만나 주시기 위해서 먼저 우리의 죄를 사하셔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독생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가 죄사함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렇다고 모두가 죄사함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사건을 적용하기 위해서 우리들 각자의 심령 속에서 찾아오십니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을 찾아오시는 사건이 바로 하나님의 만남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바로 중생이라고 말합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고백하게 하고, 구원 사건을 믿도록 만듭니다.
그리고 우리 심령에 통회하는 마음을 주셔서 회개하도록 만듭니다.
성령하나님을 통해서 중생한 성도에게는 이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납니다.
믿음과 회개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 사건에서 있어서 우리가 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만나기 위해서는 누군가(바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죄값을 지불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심령을 바꾸셔서 이 구원 사건을 믿도록 하신 것입니다.
죄 문제의 해결없이 하나님과의 동행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만이 오직 천국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에녹처럼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선행이나 고행이나 공로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기만 하면 됩니다.
성경은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전인적인 사건입니다.
구원은 전인격으로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이고 입인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과 최초로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중생은 최초로 하나님과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출발선입니다.
에녹에게도 바로 하나님과의 만남 사건이 있었습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게 된 계기가 된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에녹이 아들을 낳게 된 것입니다.
21, 22절은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고 하나님과 동행하기 시작하였다고 말합니다.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은 후 그의 삶은 바뀌게 된 것입니다.
하나의 전설이 있습니다.
므두셀라라는 말의 뜻을 문자대로 하면 "창을 던지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므두셀라는 힘이 센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마을 사람들은, "창을 던지는 저 사람만 없어지면, 저 마을을 우리가 깨끗이 소탕할 수 있을 터인데"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곧 이런 관념이 부연되어서 므두셀라라는 이름에는 언제나 "그가 죽으면 심판이 온다"라는 의미가 따라다녔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에녹은 그 아들을 통하여 들려온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메시지를 알게 되었을 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속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하신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 심판될 것이다!"
에녹은 므두셀라라는 아들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이 심판의 메시지를 생각하게 되었고, 범사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게 된 계기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기 전에 하나님과의 만남이 사건이 있었습니다.
유다서 14-16절을 보시겠습니다.
“아담의 칠세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내며 이를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에녹은 모세가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듯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에녹이 받은 메시지의 주제는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에녹에게 심판의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에녹은 이 말씀을 믿었고 믿음으로 이 심판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이 심판의 메시지를 받은 후에 주와 동행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동행하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아모스 3:3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
두 사람이 동행하기 위해서는 생각과 뜻이 같아야 합니다.
생각과 뜻이 같이 않다면, 아무리 함께 수십만리를 간다할지라도 그것은 동행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생각의 일치, 뜻의 일치해야만 동행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란 지속적인 복종으로 경건한 생활을 하였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수적으로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따로 만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보통 경건의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한 시간입니다.
이 경건의 시간을 통해서 우리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
둘째로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가운데 여러 가지 장애 요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장애 요인들을 능히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나의 능력처럼 사용할 수 있습니다.
기도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나의 뜻을 하나님께 알리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것은 보편적이고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두 번째 단계로 우리의 기도가 업그레이드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한 경건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말씀 앞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만약 말씀 앞에서 우리의 일상 생활을 멈추고 듣는 시간이 없다면, 우리의 기도는 무엇인가를 얻는 수준에 끝나버리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단순한 간구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대화가 되도록 특별한 시간과 장소를 구별하여 경건의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삶을 말합니다.
말씀을 듣기만 하고 순종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순종하는 것을 보통 사역이라고 부릅니다.
사역이란 우리가 하나님을 듣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놀랍게도 에녹은 당대에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선지자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유다서 14-16절입니다.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보는 것처럼 에녹은 선지자였습니다.
선지자의 기능은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는 설교자의 기능입니다.
그들은 받지 않은 말씀을 전할 수 없습니다.
에녹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가운데 주께서 임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보라 주께서 거룩한 자들과 함께 임하셨나니"
그 주님은 그 시대에 임하셔서 뭇사람들을 심판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가장 강렬한 대상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토합니다.
언어는 곧 그 사람의 인격입니다.
에녹은 그 시대 사람들의 부패성을 일의 행위와 언어를 통해서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에녹에게 그 시대를 향한 심판의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에녹은 그 말씀을 믿고 선포하였습니다.
만약 설교자가 자기가 믿지 않는 말씀을 전한다면 얼마나 무력할까요?
아무도 믿지 않는 말씀을 증거할 수는 없습니다.
에녹은 믿었으므로 심판에 대하여 선포하였습니다.
에녹은 말과 행실에 있어서 당대의 사람들과 다르게 산 사람입니다.
그는 그 시대에 탁월한 인격과 도덕성을 보여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는 말따로 행동따로의 사람이 아니라 그가 믿는 대로 행동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우리의 가정에서 직장에서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가장 먼저 가정에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직장과 삶의 현장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말씀의 원리가 모든 삶의 현장에서 나타날 때 바로 그것이 진정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선데이 크리스챤이 아니라 에브리데이 크리스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생활 속에서 거룩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주님은 열매없는 무화과처럼 우리를 찍어 버리실 것입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었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란 인정을 받았습니다.
히브리서11: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는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옮기우기 전에" 에녹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설정했습니다.
그후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는 삶을 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