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잡동사니

공처가 이야기 두편

기독항해자 2012. 5. 2. 18:22

 이수광(1563~1628)의 '지봉유설'에는 부부 관계에 대한 당시의 생각을 짐작하게 하는 재미 있는 이야기 두 편이 실려 있다. 

  옛날에 아내를 몹시 두려워하여 "천하에 나처럼 남의 여자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하던 장관이 있었다. 그가 한번은 부하들을 시험해보려고 푸른 기와 흰 기를 마당에 꽂아놓고는 남의 여자를 모르는 자는 푸른 기 아래 모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흰 기 밑으로 가라고 명령을 내렸다. 더러는 푸른 기 밑으로 모이고 더러는 흰 기 아래 모였는데, 유독 한 병사가 중간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장관이 이유를 물으니 그 병사는 아내가 남자들이 많은 곳에는 반드시 여색 이야기가 나오니 그런 곳에 가지 말라고 해서 그러고 있다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장관은 "자네가 장관 될 자격이 있네"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다른 한 편의 이야기를 이러하다. 유 아무개라는 이가 살고 있었는데, 나이가 마흔이 넘도록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어 늘 우울해 했다. 하루는 외출했다가 높은 벼슬아치의 행차를 만나게 되었다. 어쩔 줄 몰라 하던 유씨는 담장 아래 몸을 숨기고 행차를 엿보았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그는 젊었을 때의 친구였다. 유씨는 더욱 우울해져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다고 이렇게 스스로 위안했다. "지금 세상에 아내 사랑하기를 나만큼 하는 자가 아마 없을 것이다. 제가 아무리 벼슬이 높다고 하더라도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어찌 나를 이길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 말을 들은 다른 사람들이 모두 허리를 잡고 웃었다는 것이다. 
(소신에 목숨을 건 조선의 아웃 사이더, 노대환, 역사의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