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성서풍속

이스라엘의 의복

기독항해자 2017. 7. 23. 08:04


사람은 누구나 벌거벗은 채 상하 구별 없이 태어난다. 그러나 곧 옷을 입는 법을 배워 몸을 따뜻하게 하거나 시원하게 하여 몸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사회적, 경제적 위치를 보여주기도 한다. 의복은 때로는 어떤 이의 종교와 직업, 그리고 민족적 특성까지도 표현해 준다. 이러한 현상은 인류 역사와 꽤 오랫동안 함께 해 왔고 현재까지도 의복의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

  성서 속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의복에 관한 많은 단어가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단어들이 어떤 형태의 의복이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 이스라엘의 기후는 건조하다고 알려져 있긴 하지만 겨울에 오는 비와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으로 섬유가 보존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덕분에 성경 속의 의복의 명칭과 비교해 볼 수 있는 실제 의복의 형태가 없어 이 의복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는 난감하다. 더불어 이스라엘의 율법은 형상을 만드는 것을 금했기 때문에 고고학적 자료 속의 고대 이스라엘 민족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유물들이 거의 없다. 단지 우리는 극히 한정된 유물들과 함께 주변 문화 속에 남겨져 있는 고대 이스라엘 민족의 모습으로 그들의 의복을 재현해 볼 수밖에 없다. 

  의복을 지칭하는 가장 흔히 사용되는 히브리어는 베게드(beged)로 성별과 지위에 구별없이 모두가 입고 있는 의복을 말한다. 고대 근동에서는 울과 아마 섬유(혹은 린넨-한국어 성경은 베옷으로 번역했다), 면 등으로 몸에 붙지 않는 원피스처럼 조금 느슨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을 입었다. 유목을 즐겨했던 가나안과 이스라엘에서 울은 가장 흔한 생산품이었고 베옷은 훨씬 고가였으며 주로 이집트에서 생산되는 것이 가장 인기가 많았다. 고대인들은 현대인들처럼 자주 옷을 갈아입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류층의 사람들만이 이런 고가의 옷을 입었고 사치품의 하나로 선물로 주기도 했다. 예를 들어 요셉은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는 그의 형제들에게 옷을 주었다: “또 그들에게 다 각기 옷 한 벌씩을 주되 베냐민에게는 은 삼백과 옷 다섯 벌을 주었다”(창 45:22). 삼손은 그의 결혼식에 참석한 삼십 명에게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벌을 주겠다고 약속했다(삿 14:12). 나아만은 자신의 문둥병을 고치기 위해 이스라엘로 가는 길에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갔는데 엘리사에게 감사의 표시로 주었다(왕하 5:5).


  이스라엘 모습이 남겨져 있는 가장 대표적인 주변 문화의 흔적은 앗수르에서 발견되었다. 특별히 열왕기하 18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산헤립의 이스라엘 침략의 기록은 우리에게 이스라엘 민족의 남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산헤립이 니느웨의 자신의 궁전 벽에 남긴 이 부조에는 그가 남왕국 유다의 라기스를 정복했을 때 라기스의 주민들을 포로로 끌고 가는 장면이 남겨져 있다(그림 1). 이 부조를 통해 우리는 성경 속의 의복에 관한 묘사와 비교하여 고대 이스라엘의 의복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남자들의 경우 몸 위에 바로 걸쳐 입은 옷을 에조르(’?zor)라 불렀는데 스코틀랜드의 남자들이 입던 킬트처럼 허리에 간단히 옷감을 두르는 형태이다. 여기에 허리띠를 매어 고정시켰다. 이러한 옷들은 활동이 많은 군인들이나 노동자들이 주로 입었던 것으로 보인다. 에조르(’?zor) 위에는 쿠토넷(kutt?net)이라 불리는 여자들이 주로 입는 원피스 형태의 옷을 걸쳤다. 쿠토넷(kutt?net)은 남자와 여자 모두가 입었는데 일반 남성의 경우는 길이가 짧았지만 지위가 높은 남성이나 여인들의 것은 마치 드레스처럼 길이가 길어 발목까지 닿았다. 살만에셀 III세의 검은 오벨리스크에는 예후와 그의 시종들이 발목까지 오는 길이의 의복을 입고 있는데 의복의 끝은 장식용 술이 달렸고 허리에는 띠를 두르고 있어 상류층의 남자들이 구별된 의복을 입었던 것을 보여주고 있다(그림 2). 쿠토넷(kutt?net)의 소매 길이는 짧은 것과 긴 것 두 종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군인들의 경우 쿠토넷(kutt?net) 위에 하고라(h?gora)라 불리는 띠 같은 것을 둘러 무기나 다른 용품들을 찰 수가 있었다(그림 1의 아래 부분 포로로 끌려가는 남자들 참조할 것). 예를 들어 “요압이 군복을 입고 띠(h?gor)를 띠고 칼집에 꽂은 칼을 허리에 맸는데 그가 나아갈 때에 칼이 빠져 떨어졌더라”(삼하 20:8)고 했다. 일을 하거나 여행을 할 때 활동성을 위해 쿠토넷(kutt?net)의 끝자락을 올려 하고라(h?gora)로 여며서 입었다. 쿠토넷(kutt?net) 위에는 겉옷을 걸쳤는데 이것은 심라/삼라(?imla/?amla)라 불렸다. 심라/삼라(?imla/?amla)는 로마의 토가처럼 몸 위에 걸쳐 자연스럽게 끝자락이 흘러내리도록 하고 끈으로 묶기도 했으며 몸을 휘감아 둘렀다. 이 옷은 사각형의 옷감의 형태였으며 고위층의 옷에는 장식이 달려있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심라/삼라(?imla/?amla)는 일반인들에게 있어 장식의 기능보다는 추위와 비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겉옷의 기능이 컸다. 일교차가 심한 이스라엘에서는 낮에 일을 할 때는 심라/삼라(?imla/?amla)를 벗었지만 밤에는 이 옷을 담요처럼 몸을 덮는 데 사용하였다. 출애굽기 22: 26-27은 이웃의 옷 즉 심라/삼라(?imla/?amla)를 전당 잡지 말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고 말씀하신다. 가난한 자에게는 이 의복만이 그의 알몸을 가려 밤의 추위에서 지켜 줄 수 있는 유일한 옷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전당 잡은 옷”을 “빚을 갚지 못해 압류당한 옷”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주전 7세기에 토기 조각 위에 씌어진 편지는 이 “전당 잡은 옷”의 성서 밖의 자료로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그림 3). 이 편지는 히브리어로 씌어졌으며 지중해변 야브네-얌 근처 메짜드 하샤비야후라 불리는 유적지에 있던 작은 요새 안에서 발견되었다. 이 편지는 부역 노동자가 자신의 옷이 부당하게 착취당하였음을 불평하고 있다. 그는 그의 의무를 다 하지 않았다고 고소되었으나 그는 그의 결백을 주장하고 그의 옷을 빼앗아 간 지방 관리에게서 옷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청원하고 있다. 

  왕실과 제사장들의 겉옷은 지위와 위엄을 상징하는 것으로 메일(m?‘il) 혹은 아데렛(’adderet)이라 불렸는데 고급스러운 겉옷으로 느슨하게 밑으로 드리워 입었다. 사울이 왕으로서 그 지위를 빼앗겼을 때 사울은 사무엘의 겉옷(m?‘il)자락을 붙잡아 찢었다. 사무엘은 옷이 찢어진 것을 사울의 왕국이 찢어졌다는 것으로 상징적으로 표현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그에게서 떼어 사울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실 것이라고 이야기한다(삼상 15:27-28). 마치 이 구절의 답을 보여주듯 다윗은 그가 숨어 있는 줄도 모르고 동굴 안으로 들어온 사울의 겉옷(m?‘il)자락을 베었다(삼상 24:4). 결국 그의 왕권은 다윗에게 넘어갔다. 이 사건이 있기 전 이미 사울의 후계자였던 요나단 역시 다윗에게 왕권을 양도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요나단은 자기의 입었던 겉옷(m?‘il)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자기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h?g?ro)까지도 그에게 주었다(삼상 18:4). 옷을 상대방에게 주는 것은 요나단에서 다윗에게로 왕위의 계승이 이동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유사한 모양의 겉옷이었던 아데렛(’adderet)의 경우에도 엘리야는 자신이 입고 있던 겉옷 즉 아데렛(’adderet)를 엘리사에게 주어 그의 능력을 전수했다(왕상 19:19). 요나의 설교에 의하면 니느웨의 왕 역시 겉옷으로 아데렛(’adderet)을 입고 있는데 이 모습은 앗수르의 벽 부조에서 흔히 보여지는 것으로 화려한 장식과 술이 달려있다. 이스라엘에서 유일하게 발견된 상류층 혹은 왕으로 보여지는 남성이 그려진 토기 조각이 라맛 라헬 유적지에서 발견되었다(그림 4). 그림 속의 남자는 수염이 길고 머리를 길게 어깨에 늘어뜨리고 있으며 손을 마치 축복의 자세처럼 들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앗수르 왕들의 벽 부조에서 흔히 보여지는 것으로 이 남자가 두르고 있는 화려한 아데렛(’adderet)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그가 평범한 일반인이 아니라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여성과 아이들의 의복은 남성의 의복과 크게 차이가 없던 것으로 보이며 용어 역시 유사했다. 그러나 신명기 22:5에 의하면 남성은 여성의 옷을 입지 못하도록 금하게 되어 있어 아마도 고대에는 옷의 구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성의 심라/삼라(?imla/?amla)는 남성의 의복보다는 좀 더 길었고 오른쪽 어깨는 덮지 않은 채 몸을 둘러 왼쪽 어깨 위에 걸쳐 늘어뜨렸다. 머리와 어깨 그리고 때로는 얼굴까지도 베일(s?‘ip)을 두르고 있었다(그림 1의 포로들 중 여인들의 모습을 참조할 것). 리브가는 이삭을 만날 때 베일로 자신을 가렸고(창 24:65) 다말은 장인인 유다를 속이기 위해 베일을 썼다(창 38:1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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