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돌아가고 싶은 리즈시절이 있다. 설령 그것이 남에게는 들키고 싶지 않은 흑역사일지라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며 아름다웠던 기억을 끄집어 올리며 잠시나마 행복해 한다. 물론 기억은 축약과 단순화한 선택으로 나만의 명장면으로 남겨놓은 덕분에 당시의 혼란함마저도 뒤로 물리곤 노스탤지어에 빠지곤 한다.
한때 중국영화가 아니고 대만영화를 사랑한 이들이라면 1990년대 초· 중반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유덕화, 주성치 등 이들의 스타일을 따라했을 게다.
요즘 우리사회를 강타한 ‘응답하라~’시리즈에 이어 얼마 전 개봉한 영화 프랭키 첸의 ‘나의 소녀시대’가 입소문을 타고 흥행가도를 달리며 복고 바람이 불고 있다. 누구나 용감무쌍한 한때가 있던 법이었으니 ‘첫사랑 밀어주기 작전’이라는 타이틀의 영화 한편이 중년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다.
여전히 남아 있는 그때의 각종 감성들...여기, 수원화성 성안마을 골목길에도 그런 순간들이 알알이 박혀있다. 오랜 시간 한자리에서 지금까지 대를 잇고 있는 맛집들이 수두룩하다.
정조대 옛 길따라 맛 집들이 구석구석에 숨어있다. 오랜 역사는 기본, 맛까지 느끼는 행복한 여행이 골목길마다 그득하다. 다소 외관은 후지고, 세련미는 떨어지지만 대장간의 풀무질과 담금질로 단단한 칼을 만들어내듯 집마다 주인의 고집과 오랜 내공에 의해 쌓은 맛으로 지금까지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들인다.
자, 준비되셨는가. 땡볕 날씨를 단박에 물리칠 수 있는 육수와 면발을 자랑하는 냉면집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입안에 침이 고이는 통닭과 오래된 만둣집이, 어젯밤 그놈의 알콜 기운 때문에 얼큰하고 개운한 국물이 절실히 요구될 때 찾는 아구찜 집이, 아니면 부드럽게 술술 넘어가는 면발의 칼국수 집이, 불금에 걸맞게 소주와 막창이 걸작인 대폿집이... 이 골목길에서 꿈꾸던 그 옛적 나의 청춘으로 돌아가 보는 거다. 절로 입맛이 다셔지는 맛집 여행길 지금 출발한다.
서울에만 종로가 있다고? 수원도 종로 종각에 새로 단 여민각 종 말고 동종(지금은 수원박물관에 전시)이 있었다. 본디, 종로라 하면 가장 번화함이 떠오르는 것처럼 수원 역시 북문인 장안문에서 남문인 팔달문까지 뻗어 내린 남북로 사거리에 종각이 있었던 거다.
그러니까 현재 새로 난 대로 말고 종로 뒷길 작은 길이 200여년 전부터 내려오던 옛 길이다. 정조대 팔부자 거리의 맥을 잇듯 세월이 흐르면서 민초들과 함께 했던 먹거리 타운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종로교회 뒤 시간의 검은 이끼가 낀 콘크리트 건물이 나온다. 옛 청과물시장이지만 위세는 어디가고 검은머리 파뿌리가 다된 노인들이 떠나지 못하고 여전히 터전을 지키고 있다. 거기서 북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허름한 대폿집이 있는가하면 ‘대왕칼국수’라는 집이 나온다. 전통을 고수하는 집으로 홍두깨로 민 면발이 끝내준다.
수원토박이라면 누구나 아는 집들인데 매향교를 기점으로 한 종로· 매향 통닭부터 이어지는 진미, 용성, 장안, 영동, 일미 등 통닭거리는 수원의 명소로 남문 골목길에 포진돼 있다.
다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맛 집 탐방을 위해 매향교를 건넌다. 수원천변 쪽이 아닌 매향통닭 다음 골목이다. 중국산동식 만두의 대표주자 ‘수원’과 탕과 찬이 맛있다는 칭찬일색 ‘동흥식당’이 붙어있다. 이집 육개장은 고은 시인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식과 중화요리의 대결이랄까. 고민은 각자의 취향대로 결정하시라.
조금만 내려오면 옛 전화번호 한 자리국 숫자가 지금까지 붙어있는 ‘종로칼국수’집과 마주한다. 간판 그자체로 문화유산감이다.
수원술꾼들이면 모르는 이 없는 ‘입주집’이 그 골목길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본래 처음의 자리가 아닌 옮긴 자리지만 곱창의 맛을 찾는 인파로 늘 북적인다. 창문틈으로 스멀스멀 새어나오는 막창 굽는 냄새는 전설로 계속 이어져가고 있다.
아, 스쳐지나갔지만 돈족탕과 추어탕을 파는 집, 게장집도 있다. 형형색색 간판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으니 찾기는 쉬울 터, 이집들도 들러보시라. 모두 다 자랑스런 족보를 가지고 있다.
계절이 계절인 만큼 정말로 오래된 집 ‘대원옥’ 냉면집도 빼놀 수 없겠다. 본디 이집은 돼지수육도 맛있기로 유명한데 딱 흠이라면 가격이 다소 비싸다. ‘평양 냉면’집도 그리 싸다고는 할 수 없다 두집 모두 맛만큼은 정직하다.
남수문 가까운 천변 쪽 ‘이문식당’은 생선구이가 일품이다.
이런저런 맛으로 배를 채웠다면 공간 그자체가 영화 속 한 장면인 찻집 ‘시인과 농부’에 가자. 알배기 감자를 덤으로 주는 집으로도 유명한데 실제로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 홍상수 감독)’를 촬영해 이젠 명소의 반열에 올랐다.
영동· 지동시장 입구 왼편 골목에 자리한 아구탕· 찜 집들도 꼭 가보자. 특히나 어둠이 스멀스멀 다가올 때나, 부슬부슬 비가 내릴 때 아구탕을 안주로 한잔두잔 기울이는 소주맛은 비교대상이 없다. '카아~' 소리가 절로 터져 나온다.
골목과 골목사이로 거미줄처럼 옹기종기 자리한 맛 집 탐방에 나서노라면 어느 순간 잊었던 첫사랑이 툭 말을 걸며 슬며시 팔짱을 낄 것만 같다.
“잘 살고 있는 거지. 오랜만이야~”
황폐하고, 무미건조하고, 고달픈 현실을 살맛나는 순간으로 바꿔주는 이 골목 맛집투어, 참 맛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