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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6,7절

기독항해자 2018. 11. 11. 07:59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우리가 믿는다고 말할 때, 무엇을 믿어야 할까요?

히브리서 기자는 두 가지를 믿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은 그분을 찾는 자들에게 상주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살았던 사람은 노아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1. 홍수 직전의 노아의 삶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1)

홍수 심판 이전의 노아는 그의 삶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세워갔습니다

방주를 완성한 후에도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방주로 들어가라고 하시자, 노아와 그의 가족은 방주로 들어갔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간 배경이 있습니다

바로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하나님은 노아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의로움을 보셨다고 말합니다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노아의 의로움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성경에는 이신칭의 복음이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순종을 보십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하나님 앞에서란 슬로건을 제시하였습니다

우리는 환경을 탓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조건을 탓해서는 안 됩니다

노아는 이 세대에서 의로움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노아의 순종하는 믿음을 보셨습니다.


지금부터 칠 일부터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내가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라(4)

하나님께서 일주일의 시간을 주셨습니다

이미 노아와 그의 가족은 방주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방주에서 짐승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였습니다

먼저 정결한 짐승들이 쌍을 이루어서 방주로 들어갔습니다

다음으로 부정한 짐승들이 쌍을 이루어서 방주로 들어갔습니다

끝으로 공중의 새들이 쌍을 이루어 방주로 들어갔습니다

그것은 장관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 앞에서 포퍼먼스를 행하신 것입니다

아마도 노아는 사람들에게 말했을 것입니다

일주일 후에 하나님께서 홍수로 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표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짐승들과 새들이 쌍을 이루어 방주로 들어가는 포퍼먼스를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방주로 들어오기를 기다리셨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방주로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말에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설마 진짜로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광야를 지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하자, 하나님께서는 불뱀을 보내서 그들을 물게 하셨습니다

뱀에 물린 사람들이 죽어나가자, 사람들이 모세에게 호소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놋뱀을 만들어 놋뱀을 보는 사람들은 고침을 받게 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설마 진짜로라고 의심한 사람들은 놋뱀을 보지 않았고 그들은 결국 죽게 된 것입니다.

 

2. 홍수심판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11,12)

마침내 노아의 나이 육백 세 되던 해, 217일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시간 당 30mm 이상으로 하루에 300mm만 와도 큰 홍수가 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두 군데로부터 육지로 물이 몰려 왔습니다

땅 아래 있던 지하수가 솟구쳤습니다

하늘에서는 비가 내렸습니다

홍수 전에 대기중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수증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들이 지구를 둘러싸고 있어서, 기후가 전지구적으로 일정했습니다

그래서 시베리아에서도 맘모스 화석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자, 사람들은 두려워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보따리를 사고 높은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방주로 달려갔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방주의 문은 사람이 열 수가 없습니다

이 문을 닫으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16, 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닫힌 방주의 문을 여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한 번 닫힌 구원의 문은 또 열려지지 않습니다

구원의 문이 열렸을 때가 기회입니다

삼일동안 비가 오게 되면, 집들이 물에 잠겨서 지붕위에 물이 차 오르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일주일 동안 비가 온다면 마을은 눈 씻고 찾아 볼 래야 볼 수가 없습니다

40일 동안 비가 왔습니다

사람들은 높은 산으로 높은 산으로 이동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껄 껄 후회하면서 옮겨 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에게 홍수를 보내신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갔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16:8-11, 넷째 천사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며 또 회개하지 아니하고 주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더라 또 다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짐승의 왕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아픈 것과 종기로 말미암아 하늘의 하나님을 비방하고 그들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그들의 모든 노력은 부질없는 짓이었습니다. 결국 모두 다 수장되었습니다.


홍수가 땅에 사십 일 동안 계속된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 떠올랐고 물이 더 많아져 땅에 넘치매 방주가 물 위에 떠 다녔으며 물이 땅에 더욱 넘치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더니 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이나 오르니 산들이 잠긴지라(17-20).

혹자는 전세계적인 홍수를 부인합니다

그렇지만 홍수가 전세계적임을 증거하는 많은 증거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 증거는 노아의 방주입니다

홍수가 전세계적인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면, 방주는 불필요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홍수를 피해서 도망을 치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만약 홍수가 지엽적이었다면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다시 홍수로 세상을 멸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실 때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이후에 지엽적으로 파괴적인 홍수가 계속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모든 고대문명의 역사에서 홍수에 대한 전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세계 모든 국가의 원주민들은 거의 범세계적 홍수에 대한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홍수가 전세계적인 홍수였느냐 지엽적인 홍수였느냐의 논쟁이 아닙니다

성경은 과거의 심판을 통해서 미래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하나님이 물로 세상을 심판한 것처럼 불로 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성경은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문이 닫힐 때가 오게 됩니다. 구원의 문이 한 번 닫히면 더 이상 열리지 않게 됩니다.

 

3. 물이 물러감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1).

이렇게 물이 150일을 있었습니다

물 밖에는 보이는 것이 없었습니다

모든 생물들은 다 물 속에 수장 되었습니다

물이 언제 걷힐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노아 가족은 기다리려야 했습니다.

81절에 보면,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개역성경에는 기억하사를 권념하사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권념하신다는 것은 살피시고 돌아보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잊어버리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종종 우리가 고난 가운데 있다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잊어버리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실 때도, 우리를 주목하시고 계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섭리하시고 개입하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관심이 있으십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하나님께서 관심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찾도록 하시기 위해서 고난을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0년 동안을 고센 땅에서 평화롭게 잘 지냈습니다

이렇게 지낼 때에,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지 않았고 약속의 땅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을 소망하도록 많은 시련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시련이 오자, 그들은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기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억하시기 위해서 성경은 손바닥에 새겨 넣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49:15,16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모세는 왜 기억하사란 말을 썼을까요

그것은 홍수로 인해서 물이 가득찬 기간이 길었기 때문입니다

노아의 인생이나 인류의 역사에 비추어 보면 아주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렇지만 홍수의 기간이 긴 것은 분명합니다

40일 동안 비가 내렸습니다

그리고 110일 동안 물이 줄어 들지 않았습니다

보이는 것은 물과 둥둥 떠다니는 동물의 사체뿐이었습니다

언제 물이 줄어들게 될지, 노아는 알지 못했습니다

기다림은 항상 지루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를 잊지 않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언제가 가장 적당한 때인지 아십니다.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 들었고(1).

물이 110일 동안 줄어들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섭리를 하지 않으신다면물은 줄어들지 않고 그대로 있었을 것입니다

노아를 기억하신 하나님은 노아와 그 배에 타고 있는 동물들을 위해서 특별한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하나님께서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물이 줄어들었습니다

성경은 어떻게 물이 줄어들었는지 구석구석에 새겨 놓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구절은 시편 1046절부터 9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옷으로 덮음 같이 주께서 땅을 깊은 바다로 덮으시매 물이 산들 위로 솟아올랐으나 주께서 꾸짖으시니 물은 도망하며 주의 우렛소리로 말미암아 빨리 가며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정하여 주신 곳으로 흘러갔고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갔나이다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주께서 꾸짖으시니 물은 도망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도망한 물은 정하여 주신 곳으로 흘러갔습니다

동시에 지각 변동이 일어나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빙하시대가 도래 하였습니다

욥기에 보면 엘리후가 욥에게 이렇게 말하는 구절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욥기37:9,10 폭풍우는 그 밀실에서 나오고 추위는 북풍을 타고 오느니라 하나님의 입김이 얼음을 얼게 하고 물의 너비를 줄어들게 하느니라.”

지구상에 있는 빙하가 다 녹게 되면, 지구는 다시 물로 덮일 것입니다.

 

4. 물이 줄어들기를 기다리는 노아

일곱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4)

노아의 방주는 홍수 시작된 지 150일 후인 717일에 아라랏산에 머물게 됩니다

방주가 멈추게 된 아라랏산은 어디이고, 그것이 발견된 적이 있는가? 궁금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184062일 저녁, 지진이 터키에 있는 반호의 북쪽에 위치한 알메니안 평원의 가장 높은 산을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이 산의 이름은 아그리 다그로, 아라랏 산으로 더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1840년 이후 나무가 없는 아라랏 산 정상에 손연장으로 다듬은 목재로 된 방주 비슷한 구조물을 보았다는 몇몇 보도가 있자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1840년 이후 눈으로 확인된 기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배는 부분적으로 메워진 호수에 반쯤 묻혀 있습니다

방주의 내부는 나무 칸막이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내외부는 진한 유약이나 칠로 발라져 있습니다

내외부는 매우 단단하고 거의 돌같이 굳게 되어 있습니다

설치된 문이 있습니다.

요셉은 바벨론의 감독이며 기독교 네스토리우스파의 대감독입니다

요셉은 그가 본 사실을 1893년 시카코 만국 박람회에서 보고했습니다

로스코비츠스키는 러시아의 항공사입니다

그는 1915년 세계 제1차 대전 중에 보았으며 그후 1917150명의 러시아 원정대가 보았다고 합니다

아라랏 산은 튀리지아에 있는 연합군 기지와 브리반에 있는 소련 기지 간의 직선 항공로 상에 있습니다

방주를 보았다고 주장하는 구소련 사람들 중의 하나는 마스켈린 소령인데, 그는 전쟁 중 군사 위장대의 지휘관이었습니다

그 외도 많은 사람들이 목격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사십 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낸 창문을 열고(6)

717일에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게 됩니다

아라랏산은 하나의 산이 아니라 여러개의 산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산맥입니다

그 중에 가장 높은 산을 대아라랏이라고 부릅니다

지도를 보면, 흑해와 카스피해의 두 바다 사이에 아르메니아지방이라고 하는 고원지대가 있습니다

높은 봉우리가 많고, 이곳에서 동남쪽으로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이 흘러 이라크 평야를 적셔주고 있습니다

아르메니아 지방은 소련, 터키, 이란의 세 나라로 갈라져 있는데, 아라랏산은 이 3국 국경에 솟아있는 화산이며 터어키령에 있습니다

그 최고봉은 5,156미터나 됩니다

아르메니아 지방의 크리스챤들은 옛날부터 이 산마루에 노아의 방주가 남아 있다고 믿고 있으며, 이 산에는 아무도 오를 수 없는 신성한 산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717일에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문 후에, 물이 계속해서 줄어들어 101일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노아는 창문으로 산들의 봉우리를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40일을 지난 1111일에 노아는 창문을 열고 물이 얼마나 감했는지 알고자 까마귀를 내 보냈습니다

까마귀를 내놓으매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 

까마귀는 노아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산봉우리와 짐승의 사체들이 충분한 휴식처와 먹을 것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다음으로 노아는 비둘기를 내 보내게 됩니다

며칠이 지나서 비둘기를 내보냈는지 나와 있지만, 패턴을 보면 일주일 후에 내 보낸 것 같습니다

1118일에 비둘기를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비둘기는 주로 평지나 골짜기를 즐겨 찾는 새로서, 마르고 깨끗한 곳에만 앉는 습관이 있습니다

비둘기는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하였기 때문에 돌아왔다고 말합니다

온 지면에 물이 있으므로 비둘기가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와 그에게로 오는지라 그가 손을 내밀어 방주 안 자기에게로 받아들이고.”

매튜헨리는 돌아오지 않은 까마귀와 돌아온 비둘기를 대상으로 까마귀는 교회를 떠나 세상과 벗 삼으며 거기서 썩은 고기를 먹는 타락한 영혼의 상징으로, 비둘기는 부패하고 더렵혀진 세상에서 평안을 찾이 못하고 교회로 나와 그곳에서 참된 휴식과 평안을 누리는 경건한 영혼의 상징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맥기 목사도 매튜헨리의 해석을 따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해석은 지나친 영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아는 까마귀의 특성을 잘 알고 까마귀를 먼저 내보낸 것뿐입니다. 성경에 보면, 까마귀가 하나님께 충성스럽게 쓰임받고 있는 장면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그릿 시냇가에 있을 때 떡과 고기를 날라다 준 새가 까마귀였습니다.

다시 노아는 7일을 기다렸습니다

1125일에 비둘기를 두 번째로 내보냈습니다

이번에는 비둘기가 감람나무 새 잎사귀를 물고 왔습니다

감람나무가 새 잎사귀를 낸 것입니다

다시 7일 후인 122일에 비둘기를 세 번째로 내보냈습니다

비둘기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완전히 땅이 마른 것입니다.

 

5. 방주에서 나오는 노아 가족

육백일 년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땅 위에서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 물이 걷혔더니

노아는 비둘기를 세 번째로 내보낸 후에, 다시 4주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노아 나이 600세 되던 해의 첫 날에 방주의 뚜껑을 열었습니다

방주의 뚜껑을 열고 본즉 지면에 물이 걷히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땅은 마르지 않고 진흙 상태로 있었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땅이 마르기를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충분히 빠른 시간에 땅을 말리실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종종 기도할 때, 우리가 문제가 즉각적으로 해결되기를 원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문제를 통해서 충분한 교훈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땅에서 물이 걷히는 것을 알게 된 노아는 다시 진득하니 기다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을 걷히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물을 다 말리시고 땅을 원래 상태로 되돌려 놓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노아는 인내하면서 땅이 마르기를 기다렸습니다.


둘째 달 스무이렛날에 땅이 말랐더라

마침내 땅이 마르게 되었습니다

홍수가 시작된 지 만 110일 되는 날입니다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문 지 7개월 10일 되는 날입니다

노아가 방주 뚜껑을 열고 지면의 물이 걷힌 상태를 확인 지 57일째 되는 날입니다

노아는 땅이 말라가는 것을 확인하며 지냈습니다

그리고 217일 이전에도 노아는 방주에서 나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노아는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오고

노아가 기다린 것은 방주에서 나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오고.” 

노아가 기다린 말씀이 이 말씀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방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방주에 나왔습니다

노아는 자신의 경험과 상식을 의지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방주에서 나올 때를 결정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결정할 것을 하나님의 결정에 맡겼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믿음은 이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자유와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하나님께 맡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37:3-6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베드로전서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잠언 16: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시편 55: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맡기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은 맡기는 것을 잘 용납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다 해야만 성이 찹니다

맡기기 위해서는 겸손해져야합니다

겸손해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6. 방주에서 나온 노아가 한 첫 번째 일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방주에 나온 노아가 한 첫 번째 일은 제단을 쌓은 것입니다

노아는 집을 짓지 않았습니다

노아는 우리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다른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가장 먼저 한 일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이런 삶은 홍수 이전에 노아가 습관적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음을 보여 줍니다

노아는 예배 중심의 삶을 산 것입니다

이렇게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은 노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노아는 예배 중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였습니다

노아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정결한 짐승과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를 드렸습니다

정결한 짐승과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로 이미 노아 이전에 알려졌던 것 같습니다

이런 예배는 셋의 후손들에게 이어진 것입니다

노아가 태어날 당시에 생존하지 않은 족장은 아담, , 에녹 뿐이었습니다

노아는 이렇게 예배드리는 것을 조상들로부터 보고 배운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예배 중에 아벨의 예배는 받으시고 가인의 예배는 받지 않으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가인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은 방식으로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않으면 우리의 예배도 부정한 예배가 됩니다

정결한 짐승과 정결한 새는 말씀 중심의 삶, 생명나무로 나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서 첫 번째 한 일을 본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아메리카 대륙으로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이주한 청교도들입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떠난 신대륙 땅에서의 대가는 참으로 혹독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유를 얻은 땅에서 동료의 절반 이상이 죽어가는 비극을 경험하였습니다

먹을 것이 없었고 그리고 무서운 추위를 견뎌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고통을 겪은 끝에 맞이하게 된 첫 결실의 가을이었습니다

형편이 그러하였으니 거두어들인 결실이라고 해야 얼마나 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한 해를 버티기에도 충분치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하나님 앞에 감사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우리들의 삶의 환경은 좋을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조건 또한 언제나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들은 언제, 어디서나, 어떤 환경 중에서라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노아가 내린 땅에는 정든 친척들과 친구들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노아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비록 노아와 그의 가족이 홍수 심판으로 구원을 받기는 했지만,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이 오기까지는 사람의 본성은 원죄 아래 있게 되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본성이 악하기 때문에, 사람이 마음으로 계획하는 바도 악합니다

악하다란 말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사람들이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코람 데오의 삶이 아니라 自行自止하는 삶을 말합니다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아무리 선한 일을 많이 할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산다면, 하나님은 악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나의 영광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