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내가 사랑한 시

부모로서 해 줄 단 세가지(박노해)

기독항해자 2016. 7. 2. 15:48

부모로서 해 줄 단 세가지



 

무기 감옥에서 살아나올 때

이번 생애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혁명가로서 철저하고 강해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허약하고 결함이 많아서이다.

 

 

하지만 기나긴 감옥 독방에서

나는 너무 아이를 갖고 싶어서

수많은 상상과 계획을 세우곤 했다.

 

 

나는 내 아이에게 일체의 요구와

그 어떤 교육도 하지 않기로 했다.

미래에서 온 내 아이 안에는 이미

그 모든 씨앗들이 심겨져 있을 것이기에.....

 

 

내가 부모로서 해줄 것은 단 세 가지였다.

 

 

첫째는 내 아이가 자연의 대지를 딛고

동물들과 마음껏 뛰놀고 맘껏 잠자고 맘껏 해보며

그 속에서 고유한 자기 개성을 찾아갈 수 있도록

자유로운 공기 속에 놓아두는 일이다.

 

 

둘째는 안 되는 건 안 된다를 새겨주는 일이다.

살생을 해서는 안 되고

약자를 괴롭혀서는 안 되고

물자를 낭비해서는 안 되고

거짓에 침묵동조해서는 안 된다.

안 되는 건 안 된다! 는 것을

뼛속 깊이 새겨주는 일이다.

 

 

셋째는 평생 가는 좋은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자기 앞가림은 자기 스스로 해나가는 습관과

채식 위주로 뭐든 잘 먹고 많이 걷는 몸생활과

늘 정돈된 몸가짐으로 예의를 지키는 습관과

아름다움을 가려보고 감동할 줄 아는 능력과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홀로 고요히 머무는 습관과

우애와 환대로 많이 웃는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그러니 내 아이를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유일한 것은

내가 먼저 잘 사는 것, 내 삶을 똑바로 사는 것이었다.

유일한 자신의 삶조차 자기답게 살아가지 못한 자가

미래에서 온 아이의 삶을 함부로 손대려 하는 건

결코해서는 안 될 월권행위이기에

나는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자 안달하기보다

먼저 한 사람의 좋은 벗이 되고

닮고 싶은 인생의 선배가 되고

행여 내가 후진 존재가 되지 않도록

아이에게 끊임없이 배워가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저 내 아이를

믿음의 침묵으로 지켜보면서

이 지구별 위를 잠시 동행하는 것이였다.....

 

박노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