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이 그일라 다윗에게로 도망할 때에 손에 에봇을 가지고 내려왔더라
다윗이 그일라에 온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알리매 사울이 이르되 하나님이 그를 내 손에 넘기셨도다 그가 문과 문 빗장이 있는 성읍에 들어갔으니 갇혔도다
사울이 모든 백성을 군사로 불러모으고 그일라로 내려가서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려 하더니
다윗은 사울이 자기를 해하려 하는 음모를 알고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에봇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고
다윗이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사울이 나 때문에 이 성읍을 멸하려고 그일라로 내려오기를 꾀한다 함을 주의 종이 분명히 들었나이다
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주의 종이 들은 대로 사울이 내려 오겠나이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주의 종에게 일러 주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가 내려오리라 하신지라
다윗이 이르되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들이 너를 넘기리라 하신지라
다윗과 그의 사람 육백 명 가량이 일어나 그일라를 떠나서 갈 수 있는 곳으로 갔더니 다윗이 그일라에서 피한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말하매 사울이 가기를 그치니라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그일라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그 소식을 사울에게 알린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약싹바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디에나, 어느 시대에나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쪽으로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보편적 가치-정의, 선, 평화-를 추구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사는 사람은 어느 사회에나 있습니다,
이렇게 다윗은 다시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다윗과 그의 일행은 성 안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사울왕은 다윗과 그의 부하들을 성에 있을 때 에워싸고 붙잡을 계획이었습니다.
사울왕이 다윗이 그일라에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왔다면 다윗은 진정 위기를 만났을 것입니다.
사울왕이 사람을 모으는 사이에 사울왕의 계획이 다윗에게도 전해졌습니다.
다윗은 사울이 자기를 해하려 하는 음모를 알고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에봇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고
누군가가 사울의 계획을 다윗에게 알려준 것입니다.
사울의 편에도 다윗을 돕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사울이 나 때문에 이 성읍을 멸하려고 그일라로 내려오기를 꾀한다 함을 주의 종이 분명히 들었나이다
다윗은 사울의 계획을 듣자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먼저 제사장 아비아달을 불렀습니다.
그는 이제 대제사장이 될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대제사장이 입는 에봇이 있었습니다.
에봇은 하나님의 뜻을 묻는데 사용하는 겉옷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에봇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지 잘 모릅니다.
우리에게는 에봇이 없고 에봇을 사용하는 것을 본 적도 없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28장에 보면 에봇에 대한 자세한 규정이 나와 있습니다.
그들이 금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정교하게 짜서 에봇을 짓되
그것에 어깨받이 둘을 달아 그 두 끝을 이어지게 하고
에봇 위에 매는 띠는 에봇 짜는 법으로 금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에봇에 정교하게 붙여 짤지며
호마노 두 개를 가져다가 그 위에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기되
그들의 나이대로 여섯 이름을 한 보석에, 나머지 여섯 이름은 다른 보석에 새기라
보석을 새기는 자가 도장에 새김 같이 너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그 두 보석에 새겨 금 테에 물리고
그 두 보석을 에봇의 두 어깨받이에 붙여 이스라엘 아들들의 기념 보석을 삼되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그 두 어깨에 메워서 기념이 되게 할지며
너는 금으로 테를 만들고
순금으로 노끈처럼 두 사슬을 땋고 그 땋은 사슬을 그 테에 달지니라
너는 판결 흉패를 에봇 짜는 방법으로 금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정교하게 짜서 만들되
길이와 너비가 한 뼘씩 두 겹으로 네모 반듯하게 하고
그것에 네 줄로 보석을 물리되 첫 줄은 홍보석 황옥 녹주옥이요
둘째 줄은 석류석 남보석 홍마노요
셋째 줄은 호박 백마노 자수정이요
넷째 줄은 녹보석 호마노 벽옥으로 다 금 테에 물릴지니
이 보석들은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대로 열둘이라 보석마다 열두 지파의 한 이름씩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새기고
순금으로 노끈처럼 땋은 사슬을 흉패 위에 붙이고
또 금 고리 둘을 만들어 흉패 위 곧 흉패 두 끝에 그 두 고리를 달고
땋은 두 금 사슬로 흉패 두 끝 두 고리에 꿰어 매고
두 땋은 사슬의 다른 두 끝을 에봇 앞 두 어깨받이의 금 테에 매고
또 금 고리 둘을 만들어 흉패 아래 양쪽 가 안쪽 곧 에봇에 닿은 곳에 달고
또 금 고리 둘을 만들어 에봇 앞 두 어깨받이 아래 매는 자리 가까운 쪽 곧 정교하게 짠 띠 위쪽에 달고
청색 끈으로 흉패 고리와 에봇 고리에 꿰어 흉패로 정교하게 짠 에봇 띠 위에 붙여 떨어지지 않게 하라
아론이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기록한 이 판결 흉패를 가슴에 붙여 여호와 앞에 영원한 기념을 삼을 것이니라
너는 우림과 둠밈을 판결 흉패 안에 넣어 아론이 여호와 앞에 들어갈 때에 그의 가슴에 붙이게 하라 아론은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흉패를 항상 그의 가슴에 붙일지니라
에봇은 앞치마처럼 생겼습니다.
가슴 부분에는 흉패라는 것을 붙였습니다.
흉패에는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을 새겨놓은 보석이 붙여져 있었습니다.
원래 에봇으로 하나님의 뜻을 묻는 사람은 대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누가하고 있습니까?
다윗이 하고 있습니다.
1절에 보면 에봇이 이곳에 오게 된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이 그일라 다윗에게로 도망할 때에 손에 에봇을 가지고 내려왔더라
당시의 대제사장은 아히멜렉이었습니다.
아히멜렉이 다윗을 도와 준 이유로 사울이 제사장 가문을 도륙냈습니다.
그때 아비아달이 도망쳐서 다윗에게 왔습니다.
아비아달은 아직 대제사장에 취임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니 다윗은 절차를 무시하고 하나님의 뜻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구한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적인 방식이었고, 전통적인 방식이었습니다.
따라서 당연히 권위가 있는 방식이었습니다.
출애굽기 28장 30절에는 우림과 둠밈이라는 것이 나옵니다.
너는 우림과 둠밈을 판결 흉패 안에 넣어 아론이 여호와 앞에 들어갈 때에 그의 가슴에 붙이게 하라 아론은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흉패를 항상 그의 가슴에 붙일지니라
이 우림과 둠밈을 흉패 안에 넣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 아론이 여호와 앞에 들어갈 때에 가슴에 붙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우림과 둠밈이 하나님의 뜻을 묻는 데 사용된 것 같습니다.
히브리어로 우림은 빛을, 그리고 둠밈은 완전함을 의미합니다.
우림과 둠밈이 어떠한 모양으로 만들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성경에는 그 식양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흉패에 넣으라고 지시하자만 만드는 방법이나 모양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
우림과 둠밈은 자루 모양으로 만들어진 흉패에 넣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우림과 둠밈은 항상 흉패와 함께 대제사장의 가슴에 있었습니다.
흉패에 12보석들이 있듯이 우림과 둠밈도 흉패의 한 부분을 이루었습니다.
흉패를 성경은 판결흉패라고 불렀습니다.
이 이름은 우림과 둠밈의 기능과 용도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민수기 27장 21절에 보면 우림의 용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민수기 27:21 그는 제사장 엘르아살 앞에 설 것이요 엘르아살은 그를 위하여 우림의 판결로써 여호와 앞에 물을 것이며 그와 온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은 엘르아살의 말을 따라 나가며 들어올 것이니라 |
하나님께서 모세의 죽음을 앞두고 그에게 여호수아와 제사장 엘르아살이 백성을 인도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지시하는 내용입니다.
그 때 사용하는 것이 우림의 판결법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의도를 판단하는 것이 우림의 역할입니다.
우림과 둠밈을 사용한 예는 성경에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림과 둠밈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우림과 둠밈이 어떻게 사용했는지 나름대로 연구하였습니다.
그것을 성막으로 성경을 말한다에 정리해 놓고 있습니다.
첫째는 우림이면 둠밈이고 우림이 아니면 둠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판결 흉패를 가지고 물었을 때 우림(빛)이 나오면 둠밈(완전)이고 빛이 없으면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으로 판결하였다고 전하여 지는 학설이 있습니다.
둘째는 우림은 흰 돌이고 둠밈은 검은 돌입니다.
하나님께 물어 볼 때에는 언제나 긍정과 부정의 양자택일 대답이 나오게 물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전쟁에 나가야 합니까? 물러서야 합니까?’라고 물으며 판결흉패에서 돌을 한 개만 꺼냅니다.
우림이 나오면 긍정이고 둠밈이 나오면 부정이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우림과 둠밈은 모두 넓적한 돌로서 긍정과 부정이 표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앞면은 긍정이고 뒷면은 부정입니다.
하나님께 물은 후에 양 손을 넣어 우림과 둠밈을 집어내어 펴 봅니다.
양쪽 모두 긍정이면 긍정입니다.
양쪽 모두 부정이면 부정입니다.
그러나 양쪽이 서로 다르면 보류입니다.
합리적인 판단은 말씀 한 번 보고 기도 한 번 해서 드러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중요한 판단일수록 수없이 말씀에 비추어 보고 하나님께 물어야합니다.
넷째는 히브리어 문자는 모두 22자입니다.
히브리어는 22개의 자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흉패의 12보석에 12 지파 이름을 새기는데 모두 72글자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흉패의 72글자 가운데 중복되는 글자를 제외하면 오직 18개의 자음만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불완전입니다.
4글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둠밈은 완전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둠밈에 빠진 4글자를 적어 넣음으로 완전한 22자가 됩니다.
우림은 빛을 내는 본체였습니다.
하나님께 판결을 물을 때 둠밈은 꺼내어 놓습니다.
모두 13개의 보석이 됩니다.
우림(빛)은 흉패 안에 그대로 있습니다.
하나님께 물으면 하나님은 글자에 빛을 주셨습니다.
빛나는 글자가 자꾸만 바뀝니다.
대제사장은 글자를 불이 켜지는 순서대로 적어 놓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판결이었습니다.
이 방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방식이 무엇이든 우림과 둠밈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우림과 둠밈의 모양이나 사용방법에는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의견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우림과 둠밈의 용도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우림과 둠밈을 주신 목적은
첫째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의 하나였습니다.
우림과 둠밈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만 나타내는 것입니다.
둘째는 대제사장 개인의 인간적인 의도가 개입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배제할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철저하게 사람의 뜻이 배제됩니다.
우림과 둠밈에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지 않으면 대제사장은 아무 결정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림과 둠밈을 디자인 하신 하나님의 의도는 철저한 신본주의적 삶을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오늘을 사는 목사는 성경시대의 대제사장처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나는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습니다.
나는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라, 하라고 말씀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모세를 광야에서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게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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